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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41)화 (141/156)

#140

하필 주소지가 톰팃톳이라 괜히 더 헷갈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캠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탄했다. 서준의 입장에서는 인연보다는 우연에 가깝다고 보았지만, 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섯 번째 방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흉가의 여섯 번째 방은 먼지가 자욱했다. 한동안 방문한 사람이 없는지 부옇게 쌓인 티끌에 숨쉬기조차 꺼려질 지경이었다. 방의 중앙에는 단순한 생김새의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구석에는 액자가 아무렇게나 널린 채였다. 이 방은 누군가 거주했던 내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창고에 가까웠다. 이쯤 되면 당연하게도 리이미아는 없었다.

“리이미아?”

캠리가 문 뒤쪽을 둘러보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열심히 쥐어짜여 돌돌 말린 물감 서너 개뿐이었다.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서준은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의자를 슬쩍 들어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꼭 보비가 앉았던 의자 같네…….”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어요. 그나저나 캠리.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만, 혹시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요? 편하게 말해요.”

캠리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편안한 미소에 용기를 얻은 서준이 의자를 제자리에 놓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의 경우인데, 리이미아가 혼자 흉가를 벗어난 게 아닐까요?”

솔직히 서준이 만나고 겪은 리이미아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인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첫 만남부터 무례했으며 언동이 경솔했다. 가히 서준이 본받고자 하는 올바른 인간상이었다. 그러나 오랜 친구이기 때문일까? 캠리가 등을 곧게 펴고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리이미아가 이 흉가에서 나갔을 리가 없거든요. 아직 이곳에 있어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우정의 힘, 뭐 그런 건가?’

아마 그가 지금까지 산 인생의 두 배는 더 살아도 이해하지 못할 힘이었다. 적잖은 위기감을 느끼며 서준이 어깨를 오들오들 떨었다. 그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동안 캠리가 의자에 앉았다. 상당히 지저분한 의자였는데 아무래도 피로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왼손으로 무릎을 두드리고 오른손으로는 이마를 문질렀다. 미간에 수심이 가득했다.

“다리가 좀 아프네요.”

확실히 캠리의 무르팍 양쪽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혹시 아까 그 방에서…….”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당신과 만나기 전에 넘어졌거든요. 그보다, 서준. 목이 마르지는 않아요?”

그녀는 다시 보온병을 꺼내 흔들었다. 서준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텅 빈 배 속에 뭘 넣었다가 속이 쓰릴까 봐 거절했었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로 한번 세균을 떠올리자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이 났다.

이제는 댁의 커피에 내 위장과 그리 친하지 말았으면 하는 존재가 번식했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덜 무례하게 들릴까 고민되었다. 모호하고 애매하며 불분명한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캠리가 살며시 농담을 건넸다.

“뭐예요, 설마 내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요?”

“어…….”

스스로 한 말이 몹시 우스웠는지 입을 가린 그녀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물론 서준은 웃지 못했다. 그가 떫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자 캠리가 시무룩하게 덧붙였다.

“전 독 같은 거 안 타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두 사람이 모여 적절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탄생하는 침묵이 캠리와 서준의 사이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서로 어색하게 눈치를 보았다. 차라리 저 커피라도 마시면 분위기가 한결 나아질까? 사실 대단한 일도 아니지 않던가?

그때 무언가 묵직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진동이 울렸다. 커피가 든 보온병을 향해 손을 뻗던 서준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캠리도 상체를 구부리고는 겁에 질린 시선으로 닫힌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말했다.

“바, 방금 그거 뭐였을까요?”

“글쎄요.”

확실한 건 하나였다. 바로 이들이 여기서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답잖은 실랑이나 하며 느슨해졌던 몸이 다시금 긴장해 바짝 굳었다. 서준은 2층의 여섯 번째 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액자 따위는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칼에 쉽사리 찢겨 나갈 터였다. 의자를 던진다면 한 번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만 괜히 눈에 띌 필요가 있을까? 그는 캠리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캠리, 이곳에 계속 있는 건 위험하겠습니다. 이 방에만 있어 봤자 아까 그 깜깜한 방에 갇힌 거나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여섯 번째 방은 완전히 막다른 골목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릴 게 아니라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계단이 전부였다. 어느 방법을 고르건 여섯 번째 방은 최선도, 차악도 되지 못했다. 단단히 결심한 서준이 캠리에게 통보하듯 입을 열었다.

“우리만이라도 나가야 해요.”

그라고 아름다운 우정을 깨는 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나 당장 목숨부터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캠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굽이쳤다.

“그건, 안 돼요. 제발요. 서준, 아직 첫 번째 방은 찾아보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첫 번째 방에는 창문이 있으니까 정 안되면 그쪽으로 내려가면 돼요. 벽에 담쟁이덩굴이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요.”

“…….”

엄밀히 말하자면 서준은 리이미아를 반드시 챙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그러나 리이미아를 만나야만 서준이 원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캠리의 어두운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곰 인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좋아요, 캠리. 대신 첫 번째 방에도 리이미아가 없으면 가방만 챙겨서 바로 이 흉가에서 나가도록 합시다. 솔직히, 거기에도 없으면 리이미아가 당신도 버리고 혼자 도망간 게 분명해요.”

“…알았어요. 첫 번째 방에도 리이미아가 없으면 우리끼리 괴인을 피해서 나가요.”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던 캠리도 납득한 듯 수긍했다. 그렇게 그들은 발끝을 세워 첫 번째 방으로 향했다. 조심조심 움직여도 오래된 나무 바닥이 노인처럼 쉰 비명을 내질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감각이 끔찍했다.

다행히 서준이나 캠리나 몸뚱이가 묵직한 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뼛속이 빈 새처럼 가볍게 걸어 문이 닫힌 두 번째 방을 지나쳤다. 먼저 서준이 계단 아래쪽을 넌지시 살폈다. 언뜻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냉혹하고 서늘한,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그는 긴장한 목구멍으로 겨우 침을 삼켰다. 저 여자가 리이미아가 목격한 칼을 든 괴인일까?

서준은 캠리를 향해 첫 번째 방의 문을 손짓했다. 당장 1층의 여자가 올라올 것 같지는 않으니 이때 들어가야 했다. 캠리도 마음이 바짝 졸아들었는지 창백한 얼굴로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허연 것이 홱 다가왔다.

“흡!”

첫 번째 방의 문을 열자 목을 매단 인형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반겼다. 계단으로 나자빠져 구르지 않은 건 순전히 운이었다. 서준의 머리통이 벽에 꿍 부딪혔다.

***

“응?”

벽을 신발로 거칠게 차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요한이 목을 갸우뚱 기울였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숙였던 허리를 바로 펴면서 문을 바라보았다. 낡은 문은 평온했다.

“매디슨이 발이라도 찧었나?”

요한은 혼잣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조그만 흉가에서 난동을 부릴 사람이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매디슨은 목이 잘린 인형이 전시된 방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구두의 굽이 부러졌다. 그때 그는 굉장히 화를 내며 애꿎은 신발에 신경질을 냈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 내 발이 이렇게 되었으니 네가 움직이라며 요한을 부려 먹었다. 바로 2층의 두 번째 방에 있는 제 휴대 전화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가방과 가방 사이에 잘 세워 뒀으니 곱게 모셔 오라는 그의 발언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콧대를 우쭐거리는 행태에 비해서 사소한 일에 불과해 요한은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하지만 의문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대체 준이는 저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 걸까…….”

요한은 나름대로 큰 고뇌에 빠져 있었다. 매디슨은 용모가 고운 편이기야 했지만 썩 인간적인 매력이라 부를 만한 구석이 없었다. 대단히 노력한다면 고양이 수염만큼은 나올지도 모르나 대체 언제까지 뒤적거려야 할까? 묵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도 치마를 입어 봐야 하나. 아, 여기 있구나.”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직전, 다행히 그는 매디슨의 휴대 전화를 발견했다. 과연 매디슨이 잘 세워 뒀다고 자찬할 만큼 교묘한 각도였다. 요한이 휴대 전화를 손에 들자 화면이 밝아졌다. 보아하니 따로 꺼 두지는 않은 듯했다.

“어.”

그런데 무언가 잘못 눌렀는지, 멈춰 있던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잘게 흔들렸다. 그도 곧 이해했다. 바로 동영상 화면이었다. 아무래도 매디슨은 동영상을 촬영하던 모양이었다.

화면 태반을 가리던 어두운 사물은 손이었다. 화면이 고정되자 매디슨의 얼굴이 큼직하게 나타났다. 그는 무표정하게 제 휴대 전화를 주시하더니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매디슨의 조그만 목소리가 휴대 전화에서 들려왔다.

“드디어 그날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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