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39)화 (139/156)

#138

매디슨은 리이미아라는 친구가 돌연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자 대단히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이 씻으러 욕실로 가기 전까지는 분명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며 요한에게 설명했다. 사실 그의 말투는 따지는 것에 가까웠다.

“리이미아가 나한테 말도 없이 나갔을 리가 없는데. 혹시 네가 무슨 짓 한 거 아니야?”

요한은 매디슨의 표독스럽게 비틀린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는 매디슨이 조잘거리는 말을 제대로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다만 저 입술이 움직여 말한 내용이 못내 신경 쓰였다. 머리뼈 속 뇌를 깨끗이 비운 뒤 풍선을 가득 채우고, 그 풍선이 뻥 터진 것처럼 혼미했다. 풍선을 찌른 바늘은 매디슨이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였다.

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는걸?

기세등등한 태도에는 혹시 이유가 있었던 걸까. 그의 주장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당당했다. 만약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매디슨의 정신세계는 요한이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렇게나 입을 움직였다.

“글쎄요. 나는 리이미아와 만난 적도 없으니 할 말도 없어요.”

썩은 우물물처럼 어두운 눈빛이 매디슨을 향했다. 지금까지 요한은 서준을 느긋하게 따라잡으면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라 기대했다. 제법 즐기는 기분도 냈다. 아슬아슬하게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면 안타까우면서 들떴다. 그들은 사뭇 다정하게 뛰노는 연인들처럼 술래잡기하는 중이었다. 비록 서준은 모르지만.

몽실몽실한 구름처럼 부푼 마음이었기 때문일까?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이 여행길에 서준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생기리라는 가정조차 한 적 없었다. 맑게 일렁이던 눈동자에 수분이 차오르는 건 금방이었다. 화려하게 꾸민 손톱을 깨물던 매디슨이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왜 울어? 내가 뭐라고 했어? 했냐고.”

“그런 게 아니에요.”

코를 훌쩍이던 요한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흰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갑자기 너무…너무 슬픈 상상을 했어요…….”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고 목은 깔깔하게 쉬었다. 느닷없는 눈물 바람에 매디슨이 입가를 움찔 떨고는 뒷걸음질 쳤다. 슬그머니 두어 걸음 멀어진 그에게 요한의 촉촉한 시선이 닿았다. 멀어진 매디슨과 달리 요한은 한층 더 집요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무릎이며 마른 종아리와 불룩 튀어나온 복숭아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꺼풀이 닫혔다가 열리는 간격 등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버릇을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매디슨은 그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져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요한의 시선은 마치 피부를 가르고 근육과 지방의 결을 응시하는 듯했다. 간단히 말해서 몹시 소름이 끼쳤다.

상의를 꼭 거머쥔 매디슨이 애써 평범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이상한 눈깔 좀 치워. 그보다 넌 어떻게 할 거야? 난 리이미아를 찾을 거야. 어차피 그리 크지도 않은 집이니까.”

요한은 참되고 성실한 마음과 뜻을 다하여 대답했다.

“같이 찾아 드릴게요, 매디슨. 여기는 흉가잖아요. 위험한 곳이죠.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않겠어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가 나름대로 계산해 보니, 매디슨과 그의 동행인이 서준과 곧장 헤어져 흉가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물론 매디슨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의 이야기였다. 요한이 한껏 갸륵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리이미아를 찾다 보면 서준이 올지도 모르고요.”

“그, 그러든지.”

도와준다는데도 어째서인지 전혀 고맙지 않았다. 매디슨은 신기한 기분을 맛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서둘러 가방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등이 따갑도록 달라붙는 시선을 무시하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잘그락잘그락 소리가 났다.

“가방이며, 겉옷이며……. 그리고 자동차 열쇠도 여기에 있으니까 이 집에서 나가지는 않은 것 같아.”

“그래요? 우리가 제법 큰 소리를 냈는데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2층의 다른 방이 아니라 1층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요한이 막 흉가에 발을 내디뎠을 때 1층에는 이렇다 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1층을 세심하게 뒤져 본 것도 아닌지라 다양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매디슨도 수긍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것도 아니면 잠깐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갔을 수도 있고요. 매디슨이 씻는 동안 심심해져서 말이에요.”

흉가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요한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는 이토록 지저분하고 음침한 집보다는 바깥의 싱그러운 풀과 나무, 흙의 냄새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리이미아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야.”

매디슨이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다시금 단언했다.

“리이미아가 이 집에서 나갔을 리는 없어.”

“왜요?”

워낙 확고한 어투에 요한이 별 뜻 없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매디슨이 입술을 질겅거리며 깨물더니 신경질을 부렸다.

“뭐야, 너. 네가 리이미아를 알아? 내가 아니라는데, 왜,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 이거야? 잘 들어! 나만큼, 매디슨 캠리만큼 리이미아를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불안한 듯 떨리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는 양 주먹을 꽉 쥐고는 오른발로 바닥을 꽝 내리찧었다. 그대로 요한을 노려보는데 어찌나 열기가 대단한지 눈에서 불똥이 튈 정도였다. 요한이 떫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나보다 매디슨이 잘 알겠죠, 뭐…….”

한바탕 소란이 가시고, 그들은 2층의 방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혹시 리이미아가 장난삼아 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첫 번째 방은 요한이 실컷 들쑤신 다음이었고, 두 번째 방에 리이미아가 숨을 곳은 없었다. 세 번째 방은 방이 아니라 욕실이었다. 그리하여 매디슨과 요한은 네 번째 방의 문을 열었다. 요한은 그 옆 다섯 번째 방의 못이 숱하게 박힌 문을 곁눈질하며 혀를 찼다. 서준이라면 파상풍 예방 접종을 운운하며 끔찍해했을 문짝이었다.

그때 매디슨이 작게 몸을 떨었다. 그는 요한이 딴청을 피우는 사이 거침없이 네 번째 방에 먼저 들어갔는데, 과연 이곳에도 리이미아는 없었다.

“이게 다 뭐야?”

하지만 매디슨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비틀거리다 문틀을 부여잡았다.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는 그의 모습에 요한이 뒤에서 기웃거렸다.

“와.”

흉가의 2층 네 번째 방은 채광 하나는 괜찮았다. 이 집은 흉가가 되기 이전부터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두 번째 방에는 창문이 없어 어둑어둑했는데, 네 번째 방은 큼직하게 난 창문으로 햇살이 듬뿍 들어와 따스한 주황색으로 흰 벽지가 물들었다.

물론 이것은 집이 멀쩡할 때의 경우였다. 그나마 남은 벽지는 이미 색이 누리끼리해졌고 대부분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흉한 몰골이었다. 고작 이것만이었다면 흉가에서 대범하게 몸을 씻는 매디슨이 놀라지 않았으리라.

네 번째 방의 양 벽에는 선반이 있었고 그곳에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집주인이 가리지 않고 수집한 듯 종류가 다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목이 잘려 있었다.

“히익…….”

머리는 버렸는지 오직 몸만 남은 인형이 수십 개나 있는 광경은 괴기스러웠다. 매디슨이 뒷걸음질 치며 어깨를 옹송그렸다. 그 순간, 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요한이 무심코 매디슨의 발치를 보자 그의 신발 굽에 부러진 삼각대가 걸려 있었다.

“아!”

***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무척 가까운 곳에서 난 게 분명해 서준과 캠리는 굳은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물론 이는 서준의 짐작이었다. 현재 그들은 창 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서 문을 꼭 닫고 있는 중이었다. 낯짝은커녕 어렴풋한 윤곽만으로 대강 상대방이 그곳에 있다는 걸 가늠해야 했다.

캠리의 손에 이끌린 서준은 어둠 속에서 잔뜩 긴장한 채 숨을 죽였다. 나무판자가 삐걱거리고 누군가가 내는 발소리는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계단을 오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는 목소리도 조금 들렸을 뿐이다. 이후로는 조용했다. 그것이 더더욱 불안한 마음을 부채질했다. 서준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가슴께를 누르고는 캠리의 귓가로 추정되는 부근에 속삭였다.

“혹시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리이미아는 아닐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캠리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릴 때마다 서준은 우울해졌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리이미아라면 아마 제 이름을 불렀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엉거주춤하게 선 서준의 어깨를 차가운 손이 꽉 쥐었다. 보기보다 악력이 대단했다. 뜻밖의 통증에 서준이 무심코 고개를 숙이자 캠리가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서준, 잘 들어요. 저 사람은 칼을 들고 있어요. 얼마나 흉악할지 짐작이 되나요? 칼을 준비했다는 건 당신이든 나든, 어쩌면 다른 사람이든 찌르기 위해 준비했다는 뜻이에요. 우리, 기껏 그 식당에서 죽지 않았잖아요.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죠.”

그녀의 발언은 옳았다. 정말로 칼을 품에 지닌 광인이 바깥에서 어슬렁거린다면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에 숨어만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신고를 해야……. 아, 여기 아무것도 안 터지지. 젠장!’

서준은 캠리의 말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리이미아를 만나 곰 인형을 되찾으려 했을 뿐인데 어쩌다 이러고 있는지 통 모를 일이었다. 그때 캠리가 부스럭거리더니 말을 걸어왔다.

“그보다 서준, 혹시 목이 마르지는 않아요? 숨소리가 거칠던데.”

그녀가 꺼낸 물건은 보온병이었다. 캠리는 서준의 손을 끌어당겨 보온병의 겉 부분에 닿게 해 주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매끄러운 병이었다. 장갑 너머로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캠리가 보온병의 뚜껑을 돌리며 이어 말했다.

“결벽증이라고 한 건 들었지만, 웬드릭의 잔해가 닿았을 때 보니까 그렇게 심한 건 아니죠? 그리고 지금은 뭐라도 먹고 힘을 낼 때잖아요.”

“음…….”

솔직히 서준은 결벽증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에게 대꾸할 말이 궁했다. 캠리가 슬쩍 이를 드러내 웃더니 덧붙였다.

“아까 가방은 미처 가져오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보온병은 챙겼더라고요. 리이미아가 줬던 커피예요. 조금 식긴 했지만, 그래서 더 마시기는 좋을 거예요.”

어두워서인지 유독 새까맣게 보이는 액체가 보온병 속에서 찰랑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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