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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37)화 (137/156)

#136

음산하기 짝이 없는 흉가를 올려다보는 요한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거의 감격한 듯한 표정이었는데 이는 기적 같은 여행길을 반추하며 생긴 부작용이었다.

병원에서 막 나왔을 때, 요한은 앞길이 몹시 막막했다. 물론 운명의 귀퉁이를 살짝 긁어 먹은 덕택에 서준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았으나 그것이 그에게 운송 수단을 장만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요한은 서준이 언젠가 제 삶에도 볕 들 날이 오리라며 혼자 중얼거리던 말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에 비례하듯 좋은 일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렇게 받아들이자 하늘이 보답하듯 요한은 선량한 사람과 만났다.

병원 앞에는 냄새가 무척 훌륭한 푸드 트럭이 있었다. 그곳에서 핫도그를 하나 사 먹으며 어떻게 이동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요한의 옆에 소매를 시원스레 뜯은 라이더 재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턱과 코 밑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트럭 운전사였다.

익숙하게 핫도그를 산 트럭 운전사는 요한의 우울한 낯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더니 이유를 듣고는 선뜻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큼직한 몸뚱이는 트럭에 실려 빠르고 편하게 흉가 근처까지 배달되었다.

“고마워요, 핫도그 맨!”

창밖으로 엄지를 척 내민 트럭 운전사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던 요한이 싱글벙글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아무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도 무른 땅은 푹 팼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흉가 앞에 서 있자니 심장이 섣부르게 들떠 쿵쿵거렸다. 평소 체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날듯이 달려온 요한은 숨을 할딱거렸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긴장한 탓이다.

그는 다급하게 뛰어오느라 구겨진 옷자락이며 부숭부숭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별 소용은 없었지만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요한은 목에 건 십자가를 의미 없이 꼭 쥐었다. 그 순간, 마침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졌다. 부슬거리는 빛무리가 그림자의 틈을 벌리듯 떨어져 날렵한 콧날과 널찍한 어깨에 닿았다. 아직 물기가 남은 푸릇한 숲에서 고요히 눈을 감은 청년은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요한을 모르거나, 혹은 이름만 아는 사람이 목격한다면 언뜻 종교적이라 여길 듯한 광경이었다. 물론 그가 입 속으로 속닥거린 기도의 내용은 대단히 기만적인 바 신께서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본인이 소원한 기도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요한은 제가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식으로 방긋방긋 웃었다. 칠렐레팔렐레 올라간 입꼬리가 꼴불견이었다.

광채를 품은 눈이 흉가를 응시하는 시선은 신혼부부가 첫 집을 바라보듯 따스했다. 이번만은 제가 늦지 않았노라 자신할 수 있었다. 천운이 따르는지 서준의 행선지를 알아내자마자 달려오지 않았던가? 때마침 요한이 나온 병원과도 거리가 멀지 않았으니 하늘이 그를 도왔다고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핫도그 맨은 사정을 듣더니 말없이 금니를 드러내 씩 웃고는 트럭이 낼 수 있는 진정한 속도를 보여 주었다.

요한은 부푼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흉가 근처를 기웃거렸다. 트럭은 없지만 이 안쪽으로 차를 가져오기 어려우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대신 근처에 모터바이크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

서준이 그토록 애차라고 아끼던 트럭을 버리고 모터바이크를 새로 장만할 것 같지 않았다. 단단한 손가락이 뺨을 긁었다. 그는 이미 전화로 숲속의 낡아 빠진 집이 인기가 많다는 소식도 들은 후였다. 원래는 흉가에 몰래 들어가 서준을 깜짝 놀라게 하고는,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우린 운명이 틀림없다고 재간을 부릴 작정이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요한이 애타게 찾는 서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흉가에 있다면 그쪽은 그쪽대로 놀랄지도 몰랐다. 그는 흉가의 노숙인으로 오해받을 가능성과 반대로 존재감을 드러냈을 경우 습격당할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요한의 눈빛이 찰나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는 다시 눈을 깜빡거리며 순한 미소를 꾸며 내었다. 뭐든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트럭 운전사의 선의를 받아서인지 세상이 한결 더 곱게 보였다. 사실은 금방이라도 서준을 만나리라는 희망의 지분이 컸다.

“호의에는 호의가 돌아온다고 했는걸.”

뿌듯하게 중얼거리던 요한이 제멋대로 진리를 지정하며 경첩이 달랑거리는 흉가의 현관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이어서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안녕하세요. 누구 계세요?”

대답은 없었다. 요한은 흉가 내부에 발을 딛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준아, 있어? 나야.”

안타깝게도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요한은 다소 시무룩한 기분으로 흉가에 입성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먼지가 부스스 떨어지는 벽이며 가죽이 갈기갈기 찢겨 완전히 망가진 소파로 꾸며진 내부는 제법 흉가다운 몰골이었다. 요한은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는 어느 근세 시대 여성의 초상화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톰도 흉가가 어쩌니 그랬는데.”

그는 제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히치하이커의 이야기를 간신히 재조립하며 즐거워했다. 집을 떠나자 고향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다양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실감했다. 요한은 간접 체험 못잖게 직접 체험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늘어날수록 서준과 재밌게 대화할 생각에 기뻤다. 요한이 여성의 초상화를 향해 손 인사를 하고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흉가는 건물 자체가 2층까지인지라 한달음에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음과 현실이 늘 같지 않아 그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어이쿠 소리를 냈다. 하마터면 다리가 쑥 꺼질 뻔했다. 사실 계층이 낮아 굴러떨어질 염려는 없었으나 부서지고 썩은 발판에 발목이 끼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지갑이 큰일이었다.

게다가 만일 흉가에 주인이 있다면?

이미 다 삭아 빠진 계단이라고 주장한들 왜 그곳에 발을 올렸냐고 물어볼 게 틀림없었다.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호두를 굴리던 요한이 신중히 발을 빼내고는 팔을 뻗어 계단 난간에 걸려 있는 천 조각을 잡아당겼다. 적당히 계단이 평평해지자,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저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발끝을 세우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큰 덩치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밤손님 같은 작태였다.

2층에는 방이 여럿 있었다. 1층에 방이 몇 개나 있는지 세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래층보다는 많은 게 확실했다.

“무슨 유명한 방이라고 했는데…….”

본디 말이란 것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다 보면 처음과는 전혀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록 요한이 들은 정보는 두 사람의 입밖에 거치지 않았지만 애당초 정확하게 몇 번째 방에서 머물겠노라 운운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주소와 위치를 확인하기 급급해 인터넷에서 대강 훑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회환을 빠르게 털어 냈다. 전부 돌아보면 될 일이었다.

요한은 아직도 서준의 등 뒤에서 그를 감싸고는 남몰래 껴안겠다는 포부를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계단에서 올라와 처음 눈에 들어온 방이었다. 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돌렸다.

타악, 문에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하나 있었지만 두꺼운 커튼이 쳐져 굉장히 어두워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럭저럭 발 뻗을 위치 정도는 가늠이 되었다.

그나저나 무슨 소리일까? 그가 문을 더 활짝 열자 타악, 다시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문 뒤에 무언가 걸린 모양이었다. 요한은 우선 문을 닫고 커튼을 연 다음 그곳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 뒤의 그것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문을 닫자 그것은 끼이익, 끼이익 힘겹게 목을 울리며 불쑥 다가왔다. 밧줄이었다. 정확하게는 밧줄에 목이 졸린 것이 빙그르르 맴돌았다. 익살스러운 얼굴이 요한에게 다가왔다가, 쳐내자 다시 멀어졌다.

“아하, 문 바로 앞에 있어서 걸린 거구나.”

그것의 정체는 목이 매달린 솜 인형이었다. 목을 너무 세게 조인 탓에 인형의 헝겊에 진한 주름이 잡혔다. 아마 누군가 가엾은 인형을 풀어 주지 않는다면 인형은 점점 형체가 망가질 터였다. 인형의 코를 톡 친 요한이 창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르륵, 시원하게 커튼을 걷어 내자 좀 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방에 빛이 가득 찼다. 그는 겸사겸사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켰다. 숲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흉가답게 창문은 깨진 부분도 있어 그곳으로 들어오는 건 휘파람 소리와 비슷해 조금 우스웠다.

흉가의 2층 첫 번째 방은 한마디로 지저분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낡고 부서진 가구야 원래 흉가에 갖춰진 물건이라 해도 뚜껑이 열린 페트병이나 유통 기한이 그리 멀지 않은 빵 봉투 따위를 소장품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요한의 운동화가 빵 봉투를 발끝으로 툭 찼다.

“흉가라더니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가 봐.”

그는 심심한 눈빛으로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옷은커녕 옷걸이도 없는 옷장 하며, 모서리에 있는 묵직하고 거대한 항아리의 속을 구석구석 뒤집어도 서준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그 덕에 요한의 심장은 고요히 뛰었다. 문 바로 앞에 매달린 인형이 그나마 깜짝 상자 같아 유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결국 그는 첫 번째 방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와야 했다.

그리고 들어간 두 번째 방도 마찬가지였다. 진동하는 피비린내며 바닥에 떨어진 알약, 서랍장 위에 등을 기대고 선 듯한 멀끔한 가방 두 개가 약간 수상했지만 애타게 찾는 사람의 흔적만은 발견할 수 없었다. 요한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벽에 매달린 큼직한 거울의 뒤를 슬쩍 보았다.

“이런 데 보면 숨겨진 공간 있고 그러던데…….”

그러나 거울과 벽 사이에 있던 것이라고는 하도 오래 붙여 놓았는지 끈적하게 눌어붙은 먼지뿐이었다.

그때 물소리가 들렸다. 착각인 줄 알았던 소리는 점차 선명해졌다. 또 비가 내리는 걸까? 요한은 첫 번째 방으로 돌아가 아직도 열려 있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졌지만 무척이나 맑은 하늘이었다.

다시 방에서 나왔을 때였다. 그가 세 번째 방이라고 내심 짐작했던 곳에서 문틈으로 수증기가 옅게 흘러나왔다. 그곳은 머무는 방이 아니라 욕실이었다. 그러자 당연한 의문이 뒤따랐다.

이곳은 명실공히 흉가였다. 그런데 어떻게 물이 나올까? 설마 아직도 수도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걸까? 요한은 발소리를 죽였다. 그의 무게와 낡은 바닥의 조합은 썩 좋은 조건이 아니었지만 노력했다. 다행히 물소리가 하 요란했던 탓인지 요한의 은밀한 기척은 말끔히 숨겨졌다. 욕실에서는 흥겨운 콧노래만이 흘러나왔다.

문이 살며시 열렸다. 시야를 방해하는 부연 수증기 너머로 몸을 씻는 뒷모습이 보였다. 긴 고동색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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