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8. 흉가의 인플루언서
“아, 이런…….”
밝게 뜬 태양을 올려다보자 낭패한 기분이 한껏 몰려왔다. 트럭의 시동을 끄는 손길이 무척 다급해졌다. 서준은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리고, 근황을 전달하고, 잠시 유명 인플루언서가 들렀던 주인 없는 주택을 구경하러 가겠다며 떠벌린 후 잠시 쉬려고 차를 세운 갓길에서 그만 곯아떨어졌다.
‘이렇게 오래 잘 줄은 몰랐는데.’
당장 곰 인형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판국에 너무 여유롭게 굴었다. 피로가 심하게 쌓였던 탓이지만 그는 곰 인형의 동그란 눈망울을 떠올리며 자책했다. 차라리 비타민 통을 남발한 사람이 캠리라면 모를까, 리이미아가 챙겼으니 곰 인형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고작 하루에 불과한 인연이었지만 그의 고약한 심성을 충분히 통감한 후였다.
서준은 부랴부랴 눈곱을 뗀 손으로 화이트 스타에 계정부터 만들었다. 내심 사이버 세상을 멀리하던 그였으나 당장 그네들과 연락할 창구가 이것 외에는 없었다. 그는 그나마 자신에게 우호적이던 캠리의 계정에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히도 그녀의 계정은 따로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아도 메시지를 보내는 게 가능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서둘러 흉가를 향해 달려왔던 것이다. 캠리와 리이미아가 노래를 부르던 흉가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미 한물간 유행이었는지 한창 흉가 체험이 성행하던 시기에 비하면 스크롤을 내릴수록 게시물이 적어지고 반응도 시들해졌다. 작고 가벼운 머리통이 옆으로 살며시 기울어졌다.
‘캠리하고 리이미아가 하던 말을 들어 보면 아직도 인기가 좋은 것처럼 들렸는데, 그 정도는 아니잖아?’
혹은 한창 레드오션일 때는 관심받기가 어려우니 적절히 흥미가 식었을 때 가 보겠다는 심산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서준은 고민해 봐야 제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오래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서둘러 운전했고, 참새가 뱀을 잡아먹는 광경을 애써 무시한 끝에 흉가에 이르렀다.
“후우…….”
빈 생수병을 운전석에 대강 놓은 뒤 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근처에는 풀이 쓰러지고 흙이 파헤쳐진 바퀴 자국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역시 맞게 왔구나, 하는 기쁨은 짧았다. 물기가 묻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 내자 장갑 너머로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휴대 전화만 챙겨 주머니에 넣은 서준이 운동화를 자박거리며 앞으로 움직였다. 발치까지 자라난 잡초를 밟으며 나아가자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 흉가라고 불리는 산장이 우뚝 서 있었다. 뒤로 까마귀 서너 마리가 날아가고 때마침 부는 바람에 나무가 싸르락싸르락 흔들렸다. 일견 장엄한 분위기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흉가는 의외로 멀끔했다. 2층짜리 산장은 칠이 벗겨지고 벽에 이끼가 자라나 도무지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상처럼 금방이라도 쓰러지기 직전이거나 적어도 발길질 한두 번에 무너질 지경은 아니었다.
‘하기야 사람이 발도 못 디딜 정도였으면 필리 에프인지 학점 에프인지도 위험해서 안 왔겠지.’
다만 어디까지나 예상보다는 멀쩡하다는 것이지, 흉가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꺼림칙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사는 사람도 없어 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기 직전 서준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 두어 걸음 물러나 흉가를 다시금 눈에 담았다. 기시감이 뇌를 콕콕 찔러 댔다. 서준의 귀에 흐릿해진 남자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숲속의 오두막이라고들 부르죠. 2층짜리 산장인데, 2층 두 번째 방의 거울을 보게 되면 아무리 얌전한 사람이라도 흉포한 기분에 휩싸인다고 해요.’
‘사실 거기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심령 스팟이었는데 얼마 전에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다녀가서 지금쯤 인파가 몰렸을지도 모르겠어요.’
2층짜리 산장, 흉가, 심령 스팟, 유명 인플루언서! 놀랍게도 이곳은 히치하이커 살인자 팀이 종알거렸던 심령 스팟이었다. 두렵다기보다는 황당한 감정이 앞섰다. 미국의 땅은 넓건만 세상은 좁았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글마다 왜 거울 앞에서 셀프 카메라를 주야장천 찍어서 인증했는지 뒤늦게 이해가 갔다.
‘2층의 두 번째 방이 핫스팟이었군.’
덕분에 캠리와 리이미아를 찾아 흉가를 일일이 뒤질 필요가 없다는 점만은 긍정적이었다. 구태여 말썽거리를 꼽아 보자면 그 외에는 죄다 부정적이란 점이었지만…….
“심령 스팟이라.”
찝찝한 단어였다. 지구에는 사람만이 살지 않는다는 걸 강제로 깨달은 서준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잖아도 인구 증가로 복닥복닥한 지구에 사람, 우주 괴물, 귀신에 악마가 몸을 비비적거리며 동거하는 중이었다. 비록 그가 발붙인 땅이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의 세계는 아니었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도 않은 기기묘묘한 사회였다.
“…….”
서준은 이제 공포 영화의 법칙을 믿지는 않아도 귀신의 존재는 인지하게 되었으므로 주둥이를 꾹 다물었다. 상식적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인사말이 톡 튀어 나갈까 두려웠다. 강렬한 예감이니 육감이니 운운할 정도조차 아니었다. 상식이었다, 상식!
그리하여 서준은 입술을 감쳐물고는 조용히 흉가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은근하고 은밀하게 발을 내디뎠다. 녹슨 경첩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가장 먼저 깨어난 감각은 후각이었다. 오묘한 곰팡내가 사방에서 몰려와 코를 찔렀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와락 구긴 서준이 입가를 손으로 덮었다. 주변을 굴러다니는 먼지 덩이가 입 속에 들어가는 참사를 막았으므로 이는 제법 훌륭한 판단이었다. 당장 오늘 하루 위장에 들어간 게 생수 한 병이 전부인 마당에 대체 무엇과 엉켰을지 모를 먼지를 먹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서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흉가는 본디 산장으로 만든 용도가 맞는지, 내부의 형태가 주거용 오두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 어느 여유로운 자산가가 별장으로 지은 게 아닐까 싶었다. 벽에 붙은 액자는 생김새가 단순하지 않았고 벽지 또한 신경을 써서 바른 흔적이 엿보였다. 물론 갓 지었을 시절에나 그랬다는 뜻이다.
지금은 흉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퍼진 악명에 어울리는 몰골이었다. 벽지는 흉하게 찢어졌고 냉기가 스민 벽에서는 검게 곰팡이가 자랐다. 게다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제 발자취를 남기려고 특별히 애를 썼는지 붉은 스프레이로 난잡한 낙서가 삐뚤빼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액자 또한 원래 안에 있었을 그림은 초상화였던 듯한데 누군가 얼굴을 말끔히 도려내어 섬찟한 기분만 들었다. 서준은 액자에서 시선을 돌리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캠리와 리이미아가 있을 위치는 대강 짐작이 갔지만, 그렇다고 1층을 소홀히 여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알코올에 찌든 노숙자나 짐승이라도 마주치면 큰일이지.’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에서 가장 위험한 건 낙후된 구조물이 아니라 품에 칼을 숨긴 인간이었다. 적어도 그의 인식으로는 그러했다. 아무렴, 귀신이 그만큼 쉽게 나타나겠는가? 서준도 옥수수밭에서 귀신과 만난 적은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뿐이었다.
‘도우드는 예외로 치자. 걔는 악마가 끌고 나타난 거잖아. 따지자면 악마에게 붙잡힌, 선량한? 영혼 같은 거였지.’
그는 도우드가 마음씨가 곱고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던 사실을 부러 외면했다. 다행히 1층에는 몰래 숨어든 노숙인도,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먹이를 반길 곰이나 늑대도 없었다.
1층에는 거실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은 공간과 개수대 등 겨우 남은 몇 가지 세간살이로 부엌이었구나 싶었던 공간, 그리고 침실로 삼았는지 폭삭 무너진 침대가 있는 큰 방이 있었다. 침대는 모서리를 받치는 네 다리가 전부 부서진 상태였는데 이불 중간이 불룩하게 올라와 있어 괜스레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서준은 말없이 큰방의 문을 닫았다.
1층을 전부 뒤적거렸으나 역시 캠리와 리이미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를 살펴야 할지는 자명했다. 우울한 시선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흉가답게 계단도 멋진 모습이었다.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발깔개며 너절하게 밟힌 자국이 남은 조각보가 엉성하게 덮인 계단은 도저히 올라가기 싫은 몰골이었다. 한숨이 거나하게 나왔다. 주먹으로 허리를 툭 친 서준은 무척이나 거북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계단을 밟으며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보낸 메시지 못 본 것 같던데, 올라갔다가 마주치면 놀라는 거 아냐?’
두 번째 계단을 밟으며 그는 또 생각했다.
‘아니지. 어쨌든 저쪽은 사람 수도 두 명이고 한 명은 남자잖아. 괜찮지 않나? 아닌가? 아, 거 인간관계 어렵네…….’
세 번째 계단을 밟았을 때, 그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 형편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악!”
계단을 가리던 발깔개가 아래로 쑥 내려간 것이다. 다행히 깔개가 발목을 감싸 다치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서둘러 발을 빼고는 벽에 철썩 들러붙었다. 그의 목이 크게 울렁거렸다. 침을 꼴깍 삼킨 서준은 벌렁거리는 가슴팍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원체 긴장하고 있던 덕분에 과하게 놀란 감이 있었다. 그는 발이 빠졌던 계단을 뾰족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정도가 지나치게 삐걱거리는 계단을 간신히 올라오자, 2층의 살풍경한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2층에는 총 6개의 방이 있었는데, 복도 중앙에 넓은 벽이 있어 한눈에 모두 보지는 못하는 구조였다. 서준은 벽에 네모나게 남은 자국을 올려다보며 이 흉가의 원주인의 취향을 가늠하려다 말았다. 원주인의 취미가 액자를 벽에 빈틈없이 붙이는 게 무슨 상관일까? 지금 서준의 신경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건 2층에 맴도는 적막함이었다.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기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음전한 성미의 캠리는 둘째 쳐도 성격이 어수선한 리이미아가 있다면 이토록 조용할 리 없었다…….
혹시 그들은 진작 떠난 게 아닐까? 문득 짧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제 생각을 부정했다. 캠리와 리이미아는 화이트 스타 계정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이미 방문을 끝낸 후여도 그들이 사진 한 장 올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영상이야 편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인증용 사진을 안 올릴 리가 없지 않나? 플로렌스는 그렇게 말했는데.’
복잡한 심경 속에서 장갑을 낀 손이 2층의 두 번째 방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