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그녀를 구성하던 육신이 비산했다. 작게 조각난 살점은 조리실 곳곳에 찰싹 달라붙었다. 피부나 가죽, 살과 근육만이 아니라 내부 장기 또한 수만 갈래로 찢겨 나갔다. 마치 폭사한 시신처럼 조리실에 흩날린 육편을 온몸으로 맞은 서준은 잠시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머릿속이 혼곤한 와중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폭발의 주체는 살과 장기였고, 뼈는 폭발에 휩쓸린 정도에 불과했다. 만약 뼈까지 폭발하듯 튀었다면 이곳에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으리라.
등골이 오싹해진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속눈썹에 맺힌 핏방울이 하나뿐인 시야를 방해하며 똑 떨어졌다. 가히 충격적인 웬드릭의 몰골에 얼이 쑥 빠진 건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굉장한 비밀을 털어놓은 리이미아를 비롯해서 캠리와 알리스, 심지어 욕설과 저주를 퍼붓던 올리버까지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모두 시뻘건 양초가 되어서는 눈만 희게 뜨고 있었다. 하나같이 넋이 나간 모습에 덜걱 겁이 났다.
‘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한 게 맞나?’
그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하지만 웬드릭의 폭발은 제 인지를 뛰어넘는 초현실이었다. 혹시 자신이 섣부르게 행동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웨, 웬드릭…….”
그나마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는 걸 꼽자면, 찰스의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는 점이다. 웬드릭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탓에 그는 전신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새하얀 조리복은 본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찰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맹인처럼 팔을 뻗고,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단단한 몸이 조리대에 세게 부딪혀 온갖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웬드릭? 어디 간 거야? 웬드릭, 나의 여왕……. 그대가 나에게 화를 내다니, 그럴 리 없잖아. 다정하고 호탕한 당신이 내게 그리 잔인하게 군다는 건 말이 안 되는걸.”
그는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진 칼이며 도마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허공을 두리번거렸다. 찰스는 오로지 남은 피 안개라도 손에 거머쥐려 애썼다.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로 부연 핏물이 묻었다. 하지만 그조차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아마도 핏기가 쑥 가신 얼굴…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서준은 온통 피로 젖은 그의 안면을 확인할 길이 없었고, 찰스는 짐승처럼 목을 울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끄으으, 끄으으……. 비통한 신음이 아래를 향했다. 제법 무게감 있는 체구가 굼벵이처럼 둥그렇게 말렸다.
찰스의 사랑은 하늘이 감동하리만치 격렬하고 애절해, 그는 잔해만 남은 몸뚱이를 꺼리지 않고 가련히 여겼다. 그러니 찰스의 귀에 그 소리가 가장 먼저 들린 건 당연한 이치였다. 잘린 혈관에서 피가 쏟아지듯 꿀럭, 꿀럭 하며 얇은 막에 싸인 것이 왈칵 흘러내렸다. 몹시 자그마한 소리를 놓치지 않고 번쩍 머리를 세우자 부릅뜬 눈동자가 미약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핏물로 푹 젖은 내장이 들썩거렸다.
웬드릭의 육체는 배를 중심으로 터져 하반신은 비교적 멀쩡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결과였다. 몸을 지탱할 힘이 없어진 하체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꿈틀거린 부위는 근성 없이 쓰러진 하반신의 아래에 깔린 위장이었다. 찰스는 허겁지겁 두 다리를 치웠다. 그는 바닥 가까이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는 애정을 듬뿍 담아 속닥거렸다.
“웬드릭? 아직 여기 있는 거지? 나의 여왕, 켁!”
하지만 찰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위장이 갈라지며 나온 것은 새하얀 벌레 뭉치였다. 하나하나가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애벌레 같은 모양새를 가진 무언가는 구물구물 찰스의 안면에 달라붙었다.
“흐이익!”
사람의 팔은 잘라도 애벌레는 싫어했던 걸까? 쥐를 잡는 고양이처럼 엎드려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그가 채신머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그러나 애벌레는 이미 들러붙은 후였다.
“우욱.”
옆에서 누군가 헛구역질을 했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찰스의 새빨간 몸이 다시금 새하얗게 변하는 과정에서 눈을 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십, 혹은 수백에 달하는 수의 벌레가 찰스의 전신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는 춤을 추듯 손과 발을 휘둘렀으나 벌레는 거머리처럼 질겨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돼, 꺼져! 꺼져!”
비명을 지르느라 크게 벌린 입 속으로도 벌레가 들어갔다. 희고 통통한 벌레가 혀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일견 익살스러웠으나 도저히 웃을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다리와 허리, 배, 팔이며 목, 마침내 얼굴까지……. 벌레에 뒤덮인 찰스는 사람이 아니라 곤충의 알집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모든 벌레가 숨을 쉬듯 작아지더니, 다시 훅 몸집을 부풀렸다. 안 돼, 저리 꺼져, 이 괴물아……. 찰스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끊겼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깔깔하게 잠긴 목을 울리며 알리스가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만이 아니라 조리실에 있는 모두, 심지어는 본인이 벌레에게 몸이 점거당한 찰스조차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찰스를 벌레 사육장으로 만들어 버린 일등 공신인 서준조차 그러할진대,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좋게 생각하자. 어쨌든 저 자식이 죽고 내가 살면 이득이다.’
서준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감지 않으려 애쓰며 열심히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다. 다행히 낯짝이 두꺼워 한 푼의 어려움도 없었다.
과연 벌레들은 서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원체 탱탱하고 둥글둥글하던 벌레가 숨을 쉴 때마다 그들이 달라붙은 찰스는 조금씩 작아졌다. 아! 저건 숨을 쉬는 게 아니었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워낙 주변이 피투성이라 낌새를 미리 알지 못했다. 벌레는 찰스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웬드릭의 분노일까? 아니면 그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먹잇감을 택한 걸까? 이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한 건 찰스가 살아남지 못하리란 것이다.
“아악! 미쳤어! 저건 또 뭐야?”
그때 매서운 고함이 들렸다. 복잡한 머릿속이 깨끗해질 정도로 날카로운 고음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훌륭한 목청의 주인은 리이미아였다. 그는 눈을 지릅뜨고는 턱을 달달 떨었다. 그러나 리이미아가 본 것은 벌레에 에워싸인 찰스가 아니라 엎어진 휴였다.
그 또한 웬드릭의 피로 물먹은 솜처럼 푹 젖은 꼴이었다. 그런데 휴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허물어지는 게 아닌가? 그는 빗물에 녹아내린 소금 인형처럼 힘없이 뭉그러졌다. 그나마 덜 녹은 휴의 안구에는 전등의 빛이 허무하게 비칠 뿐, 영혼의 부재를 알리듯 또렷한 안광은 흔적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눈을 바라보며 서준은 깨달았다. 팔을 잃은 시점에서 이미 휴의 육체는 견고함이 깨졌다. 본디부터 단단하지 못한 몸뚱이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셈이다.
‘웬드릭의 팔이 떨어졌을 때 찰스의 반응이 심상찮았는데 괜히 요란 떤 게 아니란 말이지. 단백질 인간들은 말 그대로 몸이 무른 거야.’
더불어 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금 증명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믹서기에 휴의 팔이 죄 갈려 나간 것도 그렇다. 골다공증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인간의 뼈가 그토록 쉽게 곤죽이 될까? 멀쩡한 사람을 등 떠밀지 않았다는 걸 알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제 가설이 맞았노라 여유롭게 굴 시간이 없었다.
“아, 휴! 휴, 부탁이야! 눈을 감지 마, 제발!”
올리버가 재차 휴를 부르짖었다. 그는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하는 휴를 향해 애절하게 외쳤다. 그리고 서준은 두 번 고민하지 않았다.
“휴, 끅!”
“윽!”
거듭 말하지만 손도 발도 묶인 마당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서준의 작지만 옹골찬 대가리는 다시 한번 활약했다. 찡하게 울려 오는 정수리의 고통을 대가로 올리버에게 쌍코피를 선사했다. 과연 두 번째가 되니 올리버도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짓이에요?”
“내가 할 말이야, 이 새끼야! 너 뭐 하자는 놈이야?”
얌전하다 못해 시무룩한 태도로 있던 서준이 머리통을 사정없이 흔들며 난동을 부리자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빗물을 터는 개처럼 피와 침을 사방팔방 튀기는 그의 모습에 화를 내려던 올리버가 겁이 난 듯 어깨를 뒤로 쭉 뺐다.
“그리고 나야말로 부탁하겠는데, 제발 좀 저런 수상한 식품은 네 방구석에서나 가지고 놀아!”
“휴, 휴는 먹는 게 아니에요! 그, 그리고 당신, 역시 당신도 그 광고를 봤군요? 장갑도 그래서 낀 게 맞죠?”
“뭐가 아니야? 들어가는 재료가 죄다 식용이더니만! 그리고 내 장갑? 난 결벽증이야, 어디까지나 현대 상식에 걸맞은 병이라고! 왜 부정 타게 친근감 가지고 그래? 난 나 좋다는 멀끔한 놈이 있어, 새끼야!”
비록 수상한 주문을 적은 양피지와 손톱은 식품이 아니었으나 일단 우기고 보았다. 본디 말싸움이란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기는 법이었다. 겸사겸사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도 끼워 넣었다.
“악마가 팔아 치운 물건이 뭐 얼마나 멀쩡할 줄 알았어? 어! 찰스가 하는 꼬락서니를 눈 제대로 뜨고 봐! 넌 눈이 두 짝이나 되잖아! 그리고 대체 왜 자꾸 아까부터 찰스 이목을 끌어? 좀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 어디가 덧나냐? 이유가 뭐야? 생존 본능이 부족하냐? 사실 그거 유료였어? 애인 만들기 파우더 사느라 돈이 부족해서 못 산 거야?”
“악마요?”
알리스가 되물었다. 그녀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새우튀김처럼 몸을 펄쩍거리는 서준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픈 눈치였으나 용케 가만히 있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우선 첫째로는 현실적으로 발목이 꽁꽁 묶여 이동하기가 힘들었고, 둘째로는 그가 이 기상천외한 상황에 대해 뭔가 이해하는 것처럼 떠든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스는 당장 질문의 답을 듣지 못했다. 서준이 제 기분에 취해 갖은 말을 쏟아 냈을 무렵, 그들은 유독 찰스와 벌레들이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피부로 와닿는 섬뜩함이란…….
미친개처럼 으르렁거리던 서준이 삐걱거리는 목을 돌렸다.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물론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기, 저 바스러지는 미라 같은 게 찰스였을까? 바짝 마른 시신이 조리대 아래를 나뒹굴었다. 기실 그것만이라면 서준은 독장치며 기뻐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 위풍당당하게 기어 오는 오동통하고 때깔 고운 벌레의 행렬 앞에서는 감히 언성을 높이지 못했다.
찰스를 먹어 치운 벌레들이 다음 목표를 정한 모양이었다. 느리지만 확실한 죽음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