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25)화 (125/156)

#124

순간적으로 쌍둥이인가 싶었다. 같은 자리에 점이 있는 낯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서준은 심장이 덜컹 흔들렸다. 얼굴의 생김새도 생김새였지만, 무엇보다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그러나 피부를 쓸던 영문 모를 섬뜩함은 차게 부는 바람과 함께 금방 날아갔다. 캠리가 저를 끌어안은 리이미아의 손등을 가볍게 쳤다.

“너무 그러지 마. 음, 이 친구가 저를 너무 좋아해요. 전 캠리예요.”

“서준입니다.”

“캠리이.”

트럭 창으로 손을 뻗어 간신히 악수하자 옆에서 리이미아가 신경질을 부리며 샐쭉하니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오싹한 기분을 갈무리하자 두 사람의 다른 점이 곳곳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잠깐이라도 왜 그들을 똑같이 여겼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여기 핸드폰도 안 터져서요. 저기 레스토랑 보이죠? 주인이 연락한다고 해 줘서 모두 기다리는 중이에요.”

“레스토랑?”

서준이 목을 길게 빼고 살피자 과연 앨리스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이 있었다. 파랗게 칠한 간판에는 흰 소녀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건장한 중년 남자가 어슬렁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제빵 장갑을 낀 남자였는데, 미풍이 불 때마다 단내가 풍겼다. 남자가 크게 외쳤다.

“여러분! 연락해 보았습니다만 무너진 게 여기만 그런 게 아니랍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니 일단 들어와서 기다리는 게 어떠십니까?”

식당 주인이 쩌렁쩌렁하게 말하자 앞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 중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식으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건 아니고요?”

“하하, 그럼 좋지요.”

식당 주인이 넉살 좋게 받아넘겼다. 물어본 쪽도 그리 진지한 추궁은 아니었는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준은 레스토랑보다는 모텔이 급했지만 그가 운전하는 건 덤프트럭이 아니라 보닛 트럭이었다.

“하아…….”

막막함에 한숨을 내쉬는데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검게 물든 구름은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을 듯했다. 식당 주인도 날씨를 알아차렸는지 장갑 낀 손을 비비며 얄궂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정말 매출이 오르게 생겼는데요?”

‘가게 위치를 이따위로 선정해 놓고 매출 찾기는….’

서준이 속으로 혓바닥을 배배 꼬았다. 못되게 살기로 작정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왜 다른 사람을 비꼬기가 이토록 쉬운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캠리, 우리도 얼른 들어가자. 늦게 들어가면 좋은 자리 다 동날 거야.”

리이미아가 캠리의 등을 떠밀었다. 손가락이 길고 마디가 두꺼운 손이었다.

“레스토랑에 뭐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있어?”

“캠리,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세상은 뭐든 1등과 2등이 나뉘는 거야.”

“뭐….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서준, 그럼 들어가서 봐요.”

“네? 예.”

붙임성 있게 인사한 캠리가 리이미아를 끌고 걸어갔다. 리이미아는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는데 뒷모습을 보니 두 사람의 키가 똑같았다.

‘요즘에는 친구끼리 저러는 게 유행인가?’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체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어 영 구별이 되지 않았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주차한 뒤 지갑만 들고 훌쩍 내려섰다. 트럭 운전석에서 엉덩이를 뭉갠 덕에 주차를 가장 먼저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준은 레스토랑 앨리스의 첫 손님이 되었다.

식당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다면서 실컷 구시렁거릴 때는 언제고 그는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초록색 발깔개를 밟았다. 레스토랑은 좁았다. 답답하도록 옹색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하니 큼직한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풍경이 소박하니 평화롭고 서정적인 면이 있었다.

천장에 붙은 등은 옅은 노란색으로 눈이 편했고 깔린 나무 바닥도 어찌나 매끄러운지 식탁이며 의자 다리가 얼핏 비쳤다. 꿀처럼 향긋한 단내는 공기 대신 맴돌았고 온갖 양념통도 소품처럼 아기자기했다. 주인이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목가적이다…….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서준이 직전에 목가적인 투명 인간의 저택이라는 곳에 있었던지라 되레 소름이 돋았다.

그는 감상은 집어치우고 얼른 자리를 잡았다. 입구와 화장실 양쪽에서 적절히 떨어진 위치였다.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느슨히 기대자 조리실이 언뜻 엿보였다. 그곳에서는 불을 쓰고, 액체가 조르르 부어지고, 프라이팬이 화구와 부대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슬쩍 기울이자 큰 냉장고 뒤쪽으로 흰 팔꿈치가 보일락 말락 했다.

무슨 요리를 하는 걸까 궁금해하던 차에 마침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주차를 이제 끝낸 모양이었다. 식당 주인을 포함해 전부 일곱 사람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인조로 세 팀이었다. 가장 먼저 팔랑팔랑한 걸음으로 캠리와 팔짱을 낀 리이미아가 들어왔다.

두 번째는 남자가 둘 있는 일행이었다. 자매처럼 똑 닮은 리이미아와 캠리와는 다르게 그들은 무척이나 다른 외양이었다. 한 명은 큰 키에 콧대가 우아하게 생긴 미남으로, 연갈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린 것조차 조각처럼 수려했다. 입가에는 시종 미소를 띠었으며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가 맵시 있게 걸친 정장이 값비싸다는 것쯤은 눈치가 없는 서준조차 알아차릴 정도였다.

반면 미남과 동행한 청년은 정반대의 부류였다. 그는 키가 땅딸막한 와중에 자세마저 구부정했다. 차림새조차 청년을 구원해 주지 못했다. 빨간색과 초록색 스프라이트가 들어간 셔츠와 유행이 수십 년은 지난 듯 기장이 촌스러운 청바지는 청년의 더벅머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잖아도 납작한 콧대는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을 쓴 탓에 더더욱 힘겨워 보이기까지 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낯을 한 청년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수선을 부렸다. 그는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미남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휴, 휴. 우리 저쪽에 앉아. 저, 저쪽.”

“저 자리가 좋아? 그러면 그곳에 앉아야지. 나의 귀여운 올리버.”

귀여운 올리버가 가리킨 자리는 서준의 바로 앞자리였다. 서준은 한쪽이나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이블 위에 있던 메뉴판을 덥석 잡았다. 그는 휴와 올리버가 형제일 가능성과 동성 연인일 가능성 중 무엇이 높을지 점쳐 보았다. 첨예한 승부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건 눈이 번쩍 뜨이도록 엄청난 미녀와 몸에 딱 달라붙는 남색 탱크톱을 입은 근육 덩어리였다. 남자는 과도하게 부푼 근육을 과시하는 태도가 뻔히 드러났다. 다만 짧게 깎은 밤톨 머리를 하고 콧대와 턱이 유난히 둥글어 어린 티가 났다. 마치 어른의 몸뚱이에 심술궂은 소년의 머리통을 붙인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그가 어깨에 건 스포츠 백은 반쯤 열려 속이 보였는데, 그 안에는 파우더 통이 가득했다. 서준은 단백질 파우더가 틀림없으리라 장담했다.

그리고 남자와 발을 맞춰 걷는 여자를 보았을 때, 그는 숨 쉬는 걸 잊을 뻔했다. 나름대로 크리스티나라는 존재와 이웃이라는 감읍한 영광을 누리며 자라났고, 또 성별을 초월한 미소년 헨리와 대화를 나누었기에 미인이라면 그럭저럭 면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육 덩어리의 동행인은 저도 모르게 턱이 빠질 정도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앞머리를 넘겨 반쯤 드러낸 이마는 옥을 깎은 듯이 희었고 목뒤 쪽에 부드럽게 말린 밤색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다. 작은 얼굴에 섬세하게 자리 잡은 눈은 흰자가 깨끗해 암녹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일행처럼 낯부끄러운 차림새도 아니었다. 검은 긴 바지와 재킷, 흰 셔츠를 입어 단정했다. 특별히 꾸민 곳이라고는 오른 손목에 여러 겹으로 낀 실 팔찌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세련된 인상을 남겼다. 메뉴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감탄하던 서준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래도 크리스티나는 성자니까 감히 비교할 수가 없지. 비교한다는 생각조차 무례했어. 반성하자.’

그는 시선을 내려 엉성하게 찍은 와플 사진을 보았다. 이왕 들어온 것 그냥 시간만 보내기도 민망스러우니 무엇이든 주문을 하기는 해야 할 모양새였다. 메뉴를 찬찬히 짚어 보던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베이컨에 계란프라이, 소시지와 튀긴 감자, 주먹만 한 햄버거, 온갖 탄산음료와 달짝지근한 주스, 와플이며 시럽을 친 팬케이크……. 하나같이 속에서 부대낄 것 같은 요리였다.

메뉴판을 볼수록 위장을 뜨끈뜨끈하게 데워 줄 국밥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소주에 얼큰한 육개장이나 한 그릇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메뉴에 있지도 않은 요리를 떡하니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서준은 주인을 불러 그나마 따뜻해 보이는 양송이수프와 와플, 그리고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오, 우리 식당의 와플은 정말 맛있죠. 제 아내는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뭐든 잘하거든요. 훌륭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손님!”

양송이수프의 맛이 심히 궁금해지는 발언을 하며 중년 남자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가 직접 주문받는 걸 보아하니 시중을 들 종업원은 따로 없는 듯했다.

‘하기야 이런 구석진 데 웨이트리스까지 고용하면 돈이 남아나질 않겠지….’

서준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식당 주인은 옆 테이블로 옮겨 휴와 올리버의 주문을 받았다. 그때 캠리의 고즈넉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이미아, 난 화장실에서 손 좀 씻고 올 테니까 먼저 앉아서 주문하고 있어.”

“좋아. 메뉴는 나랑 똑같은 거 맞지?”

“그럼……. 물론이지. 우리는 늘 비슷한 걸 고르잖아.”

서준은 그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 그에게 당장 중요한 건 식당 주인의 아내가 과연 양송이수프를 제대로 끓이는가였다. 차라리 즉석식품을 데울 뿐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테이블 반대편에 누군가 털썩 앉았다.

의아해하며 시선을 올리자 거만한 자세의 리이미아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똑같은 가방 두 개를 던지듯이 놓고는 팔짱을 꼈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말문이 막히는 법이다. 서준이 눈만 깜빡거리자 리이미아가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얼굴을 봤으니 알겠지만, 함부로 친구 추가를 하는 건 곤란하다는 걸 알아 둬. 안면 한번 텄다고 십년지기처럼 구는 거 정말 귀찮거든?”

“친구 추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리이미아의 눈꺼풀 위에 난 점을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못 알아듣는 척하기는! 화이트 스타 안 해?”

리이미아가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이름을 말했다. 서준은 뒤늦게 그녀가 말하는 화이트 스타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모호한 긍정을 흘렸다.

“아아……. 그거.”

화이트 스타는 요 몇 년 사이 젊은이를 비롯해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거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다. 나이는 물론 국경까지 무너뜨렸다는 소리가 자자했지만 서준과는 영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의 몇 되지 않는 지인은 대부분 인터넷을 즐기기보다는 바깥에서 몸을 직접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에어리가 꾸준히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야 들었지만 그녀가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대부분 치어리더 관련 활동이었다. 보비가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머리 한편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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