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염치없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렴풋하게 번져 나갔다. 서준은 핏기 없이 창백한 손가락으로 눈가를 쓰다듬는 여자를 상상했다. 유독 서늘한 달빛 아래에서 그녀는 조용히 흐느끼고, 허공을 유영하듯 움직이는 손은 젖은 뺨을 부드러이 어루만졌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D가 투명 인간의 저택에 오게 된 사연이었다. 기구하면서도 기괴한 이야기였다. ‘달밤의 투명화’ 이후로는 D를 연구소에 넘긴 대금에 관련한 시답잖은 문장이 이어졌다.
D의 외삼촌은 보호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녀를 팔아넘겼던 모양이다. 조카를 친인이 아닌 애물단지쯤으로 여기는 작자이니 몹시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라도 한 듯 유쾌한 어조가 눈에 띄었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눈이 연구원의 첨언을 되새겼다.
‘독심 능력자가 마음을 읽어서 사실 여부를 파악했다고 했지. 적어도 이 연구소 놈들은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뜻이야.’
심지어 D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자신을 위한 변호조차 변변찮았으리라.
아니지……. 단 한 명의 맹신밖에 얻지 못했던 예언가의 눈언저리 살이 씰룩거렸다. 투명 인간의 저택은 터놓고 말해 불법으로 인체 실험을 해 대는 정신 나간 단체였다. 투명 인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애먼 초능력자를 모아 온갖 불법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D의 입이 트였다 한들 귀담아듣기나 했을까? 귓구멍을 고집스레 막아 두었을 게 분명했다.
“…….”
모래를 씹은 듯 껄끄러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팔만 투명해지다니, 이렇게 어중간한 투명 인간이 있을까? 차라리 인체의 말단 부분부터 흐려졌다면 그러려니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은 남기고 팔만 잠시 투명해졌다니…….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일말의 찝찝함을 껴안고 파일의 가장 앞장을 펼쳤다.
그곳에 있던 것은 S의 자료였다. 누렇게 변색된 낡은 종이가 비닐 안쪽에 구겨져 있었다. D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지워지고 원래는 붙어 있었을 사진도 떨어졌다. 유독 희게 남은 자국을 잠시 바라보던 서준은 S의 약력을 읽어 나갔다. 허허롭던 D의 인적 사항에 비하면야 이것저것 시시콜콜하게도 채워진 문자의 압박이 대단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도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연구소에서 가장 오랫동안 감금당한 피험자였다. S를 다양한 각도에서 알기로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엄선하여 뽑아낸 정보가 이 남루한 종이 한 장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이쯤 되니 제법 정든 청년의 신장은 서준과 비슷했고 체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불행에 찌든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남자를 머릿속에서 그려 보았다. 빈곤하기 짝이 없는 상상 속에서 추상적인 이목구비가 삐걱거리며 조립되었다. 조악한 낯은 조금이라도 집중을 흐트러뜨리면 삽시간에 흩어졌다.
결국 서준이 떠올린 얼굴은 제 것과 진배없었다. 잠깐이나마 들었던 정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다만 약간의 동정심은 남았다. 만약 S가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 그리고 정체불명의 약물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그는 더 건장한 체격으로 자랐을 가능성이 컸다.
막말로 서준 자신도 세상이 공포 영화라는 허황한 공상에 빠져 사는 게 아니라 요한처럼 규칙적인 식생활과 맑고 깨끗한 정신을 탑재했다면 이토록 빈약한 몸뚱이가 아니라 눈부신 이두박근을 자랑했을지 모를 일 아니던가? 서준은 S의 부족한 근수에 혀를 찼다.
‘면역력 한번 볼만하겠군.’
그러므로 비고란으로 시선이 내려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과연 짐작대로 연구원이 S의 체력을 걱정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추가 - 체력을 키우기에 앞서 절대적인 식사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균형 잡힌 식단과 관련하여 영양사 먼시 양과 상담을 잡아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