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6. 투명한 너
찰칵, 찰칵. 찰칵, 찰칵…하며 쇠를 밀어내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목과 어깨, 등과 허리, 팔과 다리…. 하나하나 늘어놓을 것도 없이 전신이 쑤셔 왔다. 목구멍이 말라붙은 듯 심한 갈증이 일었고 양쪽 눈꺼풀이 무겁고 뻑뻑했다. 가슴이 답답할뿐더러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겨웠다. 관절이 기름칠하지 않은 고물처럼 비명을 질러 댔다. 빌어먹을 몸뚱이 같으니! 그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삐걱거리는 제 사지에 이를 갈았다.
도저히 안온하게 한숨 자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눈알을 덮은 위아래로 움직이는 살갗이 마침내 슬금슬금 올라갔다. 물론 두 쪽이 다 올라간다 한들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눈알은 오로지 하나뿐이었으므로, 서준은 흐릿한 시야를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어어?”
물속에 빠진 것처럼 멀게 들리는 목소리가 귀를 건드렸다. 세상은 늘 그렇듯이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계륵 같은 능력을 달기는 했지만 외톨이가 된 안구는 제법 기특한 구석이 있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가 필요 없도록 스스로 진화했다. 그런데 왼쪽 눈에 비치는 시야가 무척이나 불편한 게 아닌가? 순간 남은 눈마저 시력이 떨어졌나 싶어 서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소 다양한 각도를 책임지던 왼쪽 눈의 위, 아래가 그늘진 듯이 어두웠다. 겁에 질린 그는 허둥거리며 눈두덩을 매만지려 했다. 안타깝게도 그 시도조차 불발되었다.
“어어!”
멍청한 신음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답답하게 울렸다. 그리고 서준은 알아차렸다. 손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손만이 아니었다. 손과 발, 하다못해 머리까지.
그는 뒤늦게 불편한 시야, 울리는 목소리의 원인을 파악했다. 무언가가 제 머리통을 홀랑 덮고 있었다. 보드라운 뺨과 입술에 닿는 감촉이 껄끄러운 천이었다.
굵고 거친 삼실로 짜인 마대 자루 안에서 뜨거운 호흡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눈가로 올라왔다. 조그맣게 뚫린 두 개의 눈구멍이 있어 그나마 숨이 트였다. 아마 안경을 썼다면 물방울이 맺히지 않았을까? 뭉게뭉게 떠오르는 허튼 생각에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덕분에 그는 제가 뒤집어쓴 마대 자루가 목을 단단히 조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약간 빠듯할 정도로 목을 졸라매는 촉감……. 양손도 마찬가지였다. 결박당한 손을 움직이려 들수록 손목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번 깨닫자 다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뻣뻣한 목을 간신히 구부리고, 부족한 눈을 필사적으로 깜빡거리자 메마른 안구에 비친 제 가슴팍에는 성긴 밧줄이 둘둘 감겨 있었다. 마른 빗장뼈가 욱신거린다. 푸르스름한 멍이 비치는 꼴도 언뜻 보이는데, 한 몸처럼 걸치고 다니던 블루종 재킷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몰골은 자연스럽게 양팔의 향방도 가리켰다. 등받이에 묶인 손을 흔들자 의자가 덜걱거린다. 그래, 의자였다. 새삼스럽게 인식되었다. 그는 의자에 결박된 상태였다.
문득 눈물과 콧물을 쭉 빼던 보비가 떠올랐다. 마대 자루 속 하얀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서준은 오늘 당한 짓거리를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경찰 빼고…….’
상황을 대강 추스르자, 다음으로는 어쩌다 이런 형편에 놓였는지 머릿속을 더듬었다. 목울대를 크게 울리며 침을 삼키고 발갛게 열이 오른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는 운전 중이었다. 괘씸하게도 귀신인 양 사람을 농락하던 히치하이커의 엉덩이를 뻥 차 주었다.
그리고 어땠더라?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두운 먹구름을 걱정했던 기억도 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서늘하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깐 트럭을 세웠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양 갈래로 나누어진 길이었다. 그 길을 보았을 때, 머리 뒤쪽이 기묘하게 당겼다. 두통과는 다른 감각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선명하게 갈린 길 앞에 선 서준에게 마치 선택을 종용하는 듯했다. 뜬눈으로 꿈을 꾸는 감각은 침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애당초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고민하기 위해 멈춘 건 아니었다.
그저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 담배를 한 대 피우려는 심산이었다. 폐 가득히 매캐한 연기를 빨아 마시며……. 운동화 밑창이 바닥을 밟고 당연한 수순으로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른손에 담배 한 개비를 쥐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먼지나 풀풀 날렸다. 아마 그때쯤 한숨을 내쉬었던 것도 같다.
서준은 등을 돌려 운전석에 상반신을 기울였다. 라이터를 향해 손을 뻗었고 뒤에서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입술이 조금 벌어지고 턱이 당겼다. 돌아보기 위해 어깨에 힘을 준 순간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흐…….”
잇새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 순간 기습이라도 당했던 걸까? 당시의 기억은 필름을 잘라 낸 듯이 선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발가락 끝에서부터 스멀스멀하게 올라오는 불안감은 서준의 목을 조르기 충분했다. 만약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면 뇌진탕에 걸렸을지 어찌 알까? 또는 마약 따위의 불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약물을 사용했다면?
그는 제 몸을 천금보다 귀하게 아꼈다. 이미 떠나간 눈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남은 부위가 더욱 소중했다. 온몸을 더듬거리며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았겠으나 온몸이 포박된 상태에 양손에는 머리통과 마찬가지로 포대가 씌워져 있으니 그도 어려운 일이었다.
후욱, 후욱……. 서준이 뜨거운 숨을 삼키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의자가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보비 때와는 달리 그를 포박한 것은 바닥에 고정되지 않은 평범한 나무 의자였다. 게다가 버둥거리니 상반신을 둘둘 말아 놓은 밧줄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괴였다. 희망이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더욱 몸을 뒤틀었다.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는 뱀처럼 온갖 신묘한 자세로 어깨를 이리저리 비틀자 피부를 긁던 밧줄이 빠르게 헐거워졌다.
“흐읏!”
짧은 기합을 내뱉자 얄팍한 팔뚝이 저도 근육이 있다는 걸 나타내려는 듯이 꿈틀거렸다. 밧줄에 거칠게 비빈 살갗이 벌겋게 일어나고 곧 레몬 맛 사탕보다 달짝지근한 자유가 찾아왔다.
그러나 자유는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라던가? 쓸데없는 힘까지 준 탓에 서준은 앞으로 엎어졌다.
“으악!”
낡아 빠진 나무 바닥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뻣뻣한 천은 피부를 보호하기는커녕 갈아 버릴 기세였다. 그는 얼얼한 이마를 팔뚝으로 문지르며 거북이처럼 기었다.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던 끝에 의자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겨우 허리를 곧추세우자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이나마 넓어졌다. 역시 사람의 마음이란 어느 때고 평안해야 하는 법이다.
서준은 혀를 차며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손목을 조이는 기묘한 장치 덕에 무척이나 불편했다. 기실 그의 몰골은 아이가 만든 봉제 인형 같은 꼴이었다. 손과 머리에 포대를 뒤집어쓴 싸구려 인형! 아무리 용을 써도 벙어리장갑만도 못한 손으로 풀기에는 장치가 참으로 신식이었다. 뱃속 깊이서부터 한숨이 우러나왔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주머니를 쑤셔 보았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쯤 되면 휴대 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약정 해지할까?’
꼭 필요한 상황에서 기능이 마비되거나 존재가 사라지는 놀라운 휴대 전화의 거취를 고민하던 서준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코끝이 찡긋거리고 가벼운 콧소리가 새어 나왔다. 의자에 묶여 있을 때는 정신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이곳은 상당히 특색 있는 장소였다. 너른 방은 마치 교실처럼 앞문과 뒷문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책장이 자리를 차지했다. 책장에는 책과 사소한 집기 따위가 가득했다. 둥그런 연필꽂이나 자 따위의 사무용품도 보였다.
하지만 책은 젖은 상태로 방치했었는지, 하나같이 곰팡이가 가득하고 끄트머리가 삭아 너덜너덜했다. 비단 책장만이 아니라 나무 바닥도 발을 가볍게 구르자 비참한 비명을 질러 댔다. 구석구석 사람이 지냈던 흔적이 입김에도 날아가는 먼지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발등에 걸리는 밧줄을 괜히 발로 차대며 앞으로 걸어가자 정면에는 큼직한 칠판이 있어 더더욱 교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것은 교탁일까?
그러나 이도 영 맞지 않는 것이, 길쭉하고 폭이 좁은 단상 위에는 판사 봉이 얌전하니 놓여 있었다. 원목으로 만든 판사 봉은 나중에 챙겨 넣었는지 방의 다른 물품에 비하면야 상태가 몹시 온건했다. 실내 장식용품으로 보기에는 참 엉뚱했다. 종잡을 수 없는 인테리어였다. 서준의 까만 눈동자가 끔뻑거렸다.
“이건…….”
거미처럼 긴 다리가 슬금슬금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뭉치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손이 초록색 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마대 자루 위로 흰 분필 가루가 묻어났다.
[무죄를 증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