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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04)화 (104/156)

#103

그나마 안전벨트라도 제대로 매어 놔서 몸뚱이가 안 흔들리는 게 다행이었다. 요한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뇌를 진탕 흔드는 혼란 속에서는 그도 쉽지 않았다.

발악하는 팀 또한 마찬가지였다. 팀은 오른손에는 자신의 배낭을, 왼손에는 반쯤 비워 내 무게가 거의 없는 생수병을 들고 난동을 부렸다. 그는 먹이를 빼앗긴 자그마한 원숭이처럼 굴었다. 차라리 차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흐아아! 흐아아압!”

그러나 눈치가 빠른 편인지 팀이 기민하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손이 제 안전벨트를 풀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맹목적인 눈빛이 번뜩거렸다. 팀은 아예 제 몸뚱이를 운전석으로 날렸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운전을 방해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원래도 요한의 큼직한 몸이 조금 모자라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러잖아도 비좁았던 운전석에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니 딱 빅뱅이 터지기 직전의 우주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때 앞 유리창에 돌연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헉!”

아니, 나타난 게 아니라 운전대가 왼쪽으로 꺾이며 숲의 나무에 갖다 박을 뻔한 것이었다. 요한은 간신히 팀을 뿌리치고 방향을 바꿨다. 튕겨 나간 팀이 끅, 하는 신음을 냈다. 겨우 한숨 돌렸나 싶었지만 팀의 발악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제 자리의 의자를 붙들고는 요한에게 발길질했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성인 남성이 몸을 쭉 뻗자 이만한 방해가 따로 없었다.

“으아악!”

우스운 점은 팀은 자신이 걷어차는 주제에 제가 칼에 찔리기라도 하는 양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다. 요한은 복잡한 와중에도 도저히 난폭하게 돌변한 히치하이커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해를 포기했다. 애초에 잘하는 분야도 아니었으므로 어렵지 않았다. 대신 요한은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자동차 문의 잠금을 풀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베푼 호의였으나 결과가 미흡하다면 굳이 끝까지 껴안고 갈 필요가 있겠는가?

요한의 인생에 난공불락의 문제는 한 사람이면 충분히 차고 넘쳤다.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소통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팀이 붙들고 있는 오른쪽 문을 여는 건 요한이라도 힘들었다. 하지만 제 왼쪽에 있는 문은 얼마든지 열 수 있었다.

벌컥 차의 문이 열리며 세찬 바람이 불어닥쳤다. 자동차가 달리는 와중에 열린 문은 너무나 얄팍하게 느껴졌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문은 당장이라도 나가떨어질 듯한 급박함과 위태로움이 있었다. 허억, 하고 팀이 숨을 들이마셨다. 납작한 가슴이 크게 부풀고 바들바들 떨리는 갈비뼈의 윤곽이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요한이 차에서 도망치려고 저러나 짧은 의심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난투에 지친 주둥이는 거름망 없이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다.

“도망, 치려고!”

물론 이는 요한을 모르니 하는 말이었다. 자동차는 서준을 쫓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도대체 요한이 왜 소중한 차를 버린단 말인가? 다투는 와중에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내가 왜 그런 아까운 짓을 하겠어요.”

그는 씨익 웃으며 팀의 발목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도 모자람이 없이 넉넉했다. 그러고는 무를 뽑듯이 팀을 쑥 뽑아 왼쪽으로 던졌다. 열린 문으로 그를 내팽개친 것이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두운 갈색 눈이 찰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느릿하게 끔뻑거렸다.

히치하이커를 자칭한 살인자는 뻔뻔한 구석이 있었다. 팀은 자신이 저지른 숱한 살인, 살인 미수, 폭행을 도외시한 채 요한의 거리낌 없는 행위에 경악했다.

“큭!”

하지만 그의 발악도 만만찮았다. 팀은 요한에게 죽기 전 먼저 해코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온 힘을 쥐어짜 차체에 매달렸다. 세찬 바람이 거칠게 그를 구타했다. 전신이 얻어맞은 듯 괴로웠다. 손가락 하나는 잘못되었는지 이상한 방향으로 구부러졌다. 그런데도 팀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연처럼 팔랑거리면서도 달라붙어 이를 갈았다. 팀의 무릎은 아스팔트 바닥에 갈리며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데도 괴이쩍은 집념이었다.

“이, 살인자!”

팀이 사실 적시적인 욕설을 내뱉었다. 요한도 이쯤 되니 기가 찼다.

“글쎄, 지어낸 이야기였다니까? 내가 이렇게 창작에 재능이 넘치는 줄은 준이도 몰랐을걸!”

그는 짜증 난다는 듯이 웃으며 이를 악물었다. 요한도 방법이 있었다. 그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 여상한 손길로 문을 닫았다. 당연히 이물질이 있으니 쉬이 닫히지 않았다.

꽝!

“악!”

꽝!

“아악!”

꽝!

“아, 이 개자식!”

물론 문이 닫히지 않는다면 닫힐 때까지 노력하면 되는 문제였다. 근성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팀은 고작 세 번 만에 차체에서 나가떨어졌다. 정확하게는 손목이 부러져 더는 붙잡을 수 없게 됐을 뿐이지만 요한에게는 둘 다 엇비슷했다.

그는 마지막 친절을 베풀었다. 팀을 놔두고 달리던 자동차가 곧 멈추더니, 스르륵 내려간 창문에서 팀의 배낭이 휙 쏟아졌다. 그 잠깐 사이에도 이미 팀과 차의 간격이 벌어져 줍기에는 너무 멀어졌지만 그것까지는 요한이 알 바 아니었다.

“후우……. 너무 지친다.”

그는 뒤에서 무어라 고함치는 팀을 무시하고는 더운 땀을 닦았다. 팀이 들고 날뛴 생수병은 바닥을 굴러다녔다. 요한은 생수병을 주워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몽땅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갈증을 해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입술을 축일 정도는 되었다.

요한은 다소 멍한 시선으로 룸 미러를 보았다. 팀이 저 멀리에서 배낭을 향해 기어가는 꼴이 비쳤다. 그가 부러뜨린 건 손이었지만 아무래도 다리도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답지 않게 혀가 끌끌 차였다.

평소에는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를 대놓고 겪으니 그도 황당했다. 텅 빈 생수병을 뒷자리로 던진 요한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세상에는 무서운 사람이 너무 많아. 고향을 떠나면 이렇게 고생하는 거구나. 왜 저렇게 화가 많은 걸까?”

경찰을 불러야 하나? 준법 시민다운 고민이 짧게 스쳤다. 하지만 준법 시민이기에 앞서 사랑에 빠진 청년은 귀찮고 시간이 드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곧 환하게 웃으며 그냥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요한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노란색 자동차가 달달거리며 움직였다. 그는 떠났고, 적적한 도로에는 히치하이커 한 명만이 홀로 남았다.

“흐으으…….”

팀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을 할딱거렸다. 그에게는 오래된 병이 있었지만 이렇게 지독한 통증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팀은 재물이 넉넉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고 언제나 좋은 대우를 받았으니까. 팀은 아직도 멀리 있는 배낭을 향해 가슴과 배를 움직이며 꾸물거렸다. 손은 확실하게 부러졌다. 다리의 뼈는 무사한 것 같았지만 아스팔트 바닥에 갈린 부위가 너무 아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살인자……. 살인자!”

뺨을 적신 눈물이 흙먼지와 함께 입술에 닿았다. 짭조름하고 텁텁한 맛은 끔찍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자아실현을 멈추고 요양이나 해야 할 지경이었다. 팀의 눈동자가 도로에 덩그러니 놓인 배낭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애벌레처럼 몸뚱이만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에 배낭은 너무 멀었다.

그러나 이곳에 그를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요한이 떠난 뒤에도 오고 가는 차는 단 한 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든, 구급차를 부르든, 하다못해 가족이나 친구를 부르든 간에 우선 배낭의 휴대 전화부터 꺼내야 방도가 생길 판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지쳐 뒤를 돌아보는 것도 용을 쓰던 팀의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돌았다. 그는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나는 운이 좋아…….”

승용차가 한 대 다가오고 있었다. 팀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저 운전자는 살려 주리라 결심했다. 그는 부러진 손가락이 보이도록 팔을 높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손가락은 엄지를 제외하고는 구부러진 형태로 부러져 진정 히치하이커처럼 보였다.

차가 점점 가까워졌다. 팀의 눈이 슬며시 가늘어졌다. 차량이 이상하게도 낯익었다. 번호판도 그렇다. 숫자가 몹시 익숙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숫자의 나열이었다. 혹시 아는 지인의 차인가 싶어 눈에 바짝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뻣뻣하게 굳었다. 저 승용차는 팀의 차였다. 그가 직접 폐차시킨 자동차였다. 첫 살인의 증거물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어야 할 차가 뻔뻔스레 가까워졌다. 찌그러진 보닛이 보였다. 사람을 친 자국이었다. 승용차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 빨라졌다. 차는 멈추지 않고 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어, 어어.”

덕분에 팀은 운전석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장담컨대 팀은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어깨까지 닿는 붉은 기 도는 금발, 얇은 스웨터는 모를 수가 없었다. 여자의 얼굴에 난 긁힌 자국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그것이 팀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

“역시 수리를 해야 하나?”

요한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무래도 문을 열고 달린 게 문제이긴 했는지 운전석 쪽 문이 이상했다. 서준을 쫓는 시간이 지체되는 게 가장 큰 불만이었지만 역시 중고 차량에 돈 들이는 것도 망설여졌다. 서준과 만나기만 한다면 이런 차 정도야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지만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요한이 재차 무겁게 숨을 뱉었다. 폐활량이 좋은 탓에 길게도 나왔다.

“어휴우.”

뒷머리를 벅벅 긁은 그는 다시 차에 타 안전벨트를 맸다. 우선 길가에서 이럴 게 아니라 정비소가 있는 동네라도 가야 할 듯했다. 그때 매서운 클랙슨 소리가 울렸다. 빠아아아앙……. 길게 늘어지는 소리는 눈 부신 빛과 함께 왔다. 요한이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거센 충격이 먼저였다. 쿠웅, 차가 흔들렸다.

그리고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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