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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03)화 (103/156)

#102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다가왔다. 팀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가 만들어 낸 히치하이커 원혼 티모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긴장한 목구멍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크게 움직인 목울대를 조심스럽게 매만지자 요한이 말을 이었다.

“히치하이커는 생각보다 더 끈질겼어요. 살인자는 이렇게 생각했겠죠. 만약 여기서 이 사람마저 죽인다면 아무래도 꼬리가 밟히지 않을까? 덜미를 잡히는 건 두려운 일이잖아요. 음, 살인자한테는 말이에요. 톰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아, 아? 저요……. 글쎄요. 저라면……. 저라면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래도 진짜 시체가 트렁크에 있다면.”

이때 팀의 눈동자가 뒤를 흘겨보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눈을 세게 감았다 떴고, 자신의 시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팀은 메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약한 비린내가 그의 혀로 옮겨 왔다. 그리 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초면인 사람을 태우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잖아요.”

대답을 온전히 끝낸 후에야 팀은 요한이 제 이름을 틀리게 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지적할 수 없었다. 입술이 아교를 바른 듯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요한은 가볍게 맞장구쳤다. 히치하이커 괴담을 들을 때처럼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다.

“맞아요. 살인자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조금 난폭하게 운전해서라도 히치하이커를 떼어 놓는 편이 이득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또 이렇게도 생각했죠. 트렁크의 팀, 아. 미안해요. 이름을 헷갈렸네. 그래요, 팀. 시체의 이름이 톰이었어요.”

톰을 부르는 입은 어색한 부분 없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마치 친인을 부르듯 일말의 애정까지 담긴 기묘한 울림이었다.

“톰하고 살인자는 사실 별로 대단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들은 주유소에서 만났거든요.”

“주유소요.”

팀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어투로 대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노란색 자동차가 주유소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상상이 피어올랐다. 곧 정차한 차에서 요한이 나왔다. 금발의 호쾌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청년은 누군가와 인사를 나눈다. 친근감 어린 손길은 초면의 사람들을 무방비하게 만들었다.

“CCTV가 없다는 점만 빼고는 훌륭한 주유소였어요. 직원들은 친절했고, 살인자와 톰은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주유소 뒤쪽으로 이동했죠. 거기에는 임시 건물이 있어 등을 기대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차근차근한 이야기 속에서 톰은 점점 실체를 갖췄다. 톰. 팀은 짧은 이름을 입 속에서 발음했다. 톰이라는 이름은 중년의 사내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었다. 묵직한 뱃살과 애교 있는 둥근 볼, 불그스름한 콧방울과 눈가.

“사소한 잡담이었어요. 그리고 살인자는 톰이 무척… 무척이나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어요.”

동시에 팀도 깨달았다. 외롭다는 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톰이 사라져도 당장 알아차릴 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살인자는 몹시 매력적인 먹이를 발견한 셈이다. 팀은 팔뚝에 돋은 닭살을 가리기 위해 상체를 웅크렸다. 그러잖아도 왜소한 어깨가 더더욱 좁아졌다.

그는 공벌레처럼 시트에 파고들었다. 팀의 새하얀 두개골 안쪽에서 두뇌가 맹렬히 회전했다. 혹시 자신을 놀리려는 수작질이 아닐까 의심이 불쑥 솟았다. 하지만 그도 살인을 저질렀기에 저 의뭉스러운 태도 저변에 익숙한 체취가 난다는 걸 알았다.

요한의 손은 정말 깨끗할까. 뼈를 가볍게 으스러뜨릴 수 있을 만치 저 단단하고 억센 손가락 사이사이로 피가 스며들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그는 팀이 차에 타겠다는 걸 대단히 꺼렸었다. 그때. 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요한은 뒤를 보았었나? 어땠더라? 머릿속에서 기억이 뒤엉켰다.

팀은 제가 운전석의 옆자리에 앉을 때 요한이 뒤를 확인했던 걸 뇌 주름 사이에서 찾아냈다. 이제 그의 안색은 확연한 환자의 것이었다. 푸른 혈관이 비칠 정도로 창백해진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팀이 그토록 바라던 세 번째 까마귀 사체가 저 앞에 제물처럼 얌전히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아, 엇차.”

요한도 이야기하느라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졌던 모양이다. 노란색 자동차는 급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속도를 줄였다. 그러곤 텅,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트렁크에서 난 소리였다. 묵직한 무언가가 구르고 들이받는 소리. 운이 좋은 히치하이커는 무심코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아아아악!”

허파의 공기를 전부 짜내는 듯한 고함에 요한도 깜짝 놀라 팀을 바라보았다. 부릅뜬 눈과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 푸르게 질린 뺨! 그는 명백하게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 확고한 감정 표현에 요한은 결국 참지 못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제 허벅지에 벌건 손자국이 나도록 내리쳤을지도 몰랐다.

“하하, 하하하! 팀,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그냥 괴담이라니까……. 그걸 믿었단 말이에요?”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요한의 눈꼬리에는 눈물마저 찔끔 맺혀 있었다. 너무나 상쾌한 그의 태도에 팀은 얼이 빠졌다. 경악과 두려움으로 얼룩졌던 얼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어깨를 들썩거리던 요한이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는걸요. 그냥 꾸며 낸 이야기에요. 팀도 이것저것 말했으니까 나도 하나 정도는 말해야지 싶었는데, 딱히 재미난 게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즉석에서 하나 만들어 봤는데 나한테 제법 재주가 있나 봐요?”

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흙색에 가깝던 피부는 이제 피가 몰려 새빨갛게 변했다. 요한을 죽여 매너리즘을 타파하겠다는 최초의 결심은 나약해진 지 오래였다. 팀이 보기에 요한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단순히 사고방식이 고약하기만 하다면 모를까, 신체 건장한 이상자였다. 팀은 요한을 죽이려던 마음을 접었다. 저런 육체는 위험했다.

첫 시도가 아쉽게 무너진 것이 심장을 비대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팀은 팔과 다리가 길고 말랐으나 어깨만은 넓은 남자를 떠올렸다. 나약한 정신을 가진 그를 조종하는 건 쉬웠다. 실패는 아쉬웠지만…….

“트렁크에 든 건 그냥 친구가 준 공구 상자예요. 여기 오기 전에 한번 점검하느라 넣어 뒀는데 까먹었네. 나중에 다시 꺼내야겠다.”

요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팀은 아직도 완전히 의혹을 내려놓지 못하고 무릎 위에 놓인 배낭을 꽉 껴안았다. 그의 입가에는 비굴한 웃음이 흘렀다. 현실적으로 싸우게 된다면 팀의 체격으로는 요한을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 팀은 아직도 평평해지지 않은 이마를 왼손으로 문질렀다.

그는 운이 좋았지만 딱 하나, 천부적으로 뛰어난 신체만은 가지지 못했다. 물론 지금 와서는 크게 아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은 사물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지성인이었으므로.

“아, 팀. 뒷좌석에 내 가방에서 생수병 하나만 꺼내 줄래요? 운전 중이라 내가 꺼내기가 힘들어서.”

“아, 예.”

사실 그들이 뱃속에 시커먼 꿍꿍이를 품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할 법한 부탁이었다. 애당초 요한의 선의에 의해 차를 얻어 타고 있는 셈이었으니. 팀은 제 배낭을 오른팔에 끼우고 왼손은 뒤로 뻗었다. 요한의 가방은 닫히지 않은 상태였고 생수병도 입구가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꺼내기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팀이 생수병의 주둥이를 잡자 가방이 같이 딸려 왔다. 이윽고 생수병을 꺼내자 뒷좌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가방에서 작은 것이 자동차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팀은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지갑이었다. 손때가 묻어 있고 유별난 부분이 없는 낡은 지갑에 불과했다. 다만 그것은 버튼이 헐거웠는지 떨어진 충격으로 활짝 열렸다. 팀은 입으로나마 미안하다며 주절거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못 박혔다.

지갑에서 나온 건 동전이나 지폐, 카드 따위가 아니었다. 짙은 갈색에 가까운 얼룩이 묻은, 길게 찢은 천 쪼가리는 돌돌 말려 있다가 점점 풀어졌다. 그리고 이 얼룩은 팀에게도 익숙했다. 마르고, 마르고, 또 마른 액체. 본디 새빨간 색이었을 체액. 피였다.

허억…. 허억…. 허억….

밭은 숨이 목구멍에 틀어막혀 나오지 않았다. 가쁘게 움직이는 흉곽은 배낭으로 겨우겨우 가렸다. 기껍게도 그는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이었다. 팀이 온전히 피해자의 자리에 앉았던 것은 오로지 병마와 다툴 때뿐이었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자동차 안에서 팀은 너무나 무력했다. 그는 폭력의 위대함을 모르지 않았다. 팀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결심은 빠르고 행동은 더욱 빨랐다. 선공의 가치를 높이 치는 건 비단 요한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흐아아!”

빈약한 기합과 함께 팀은 손에 쥔 생수병으로 요한의 머리를 내리쳤다. 터엉, 하는 소리는 가볍기 짝이 없었다. 팀의 공격은 탄력 있는 고무공처럼 튕겨 나갔다. 팔뚝 가는 자의 설움이었다.

“운전 중, 에 위험하게 무슨 짓이에요?”

하지만 팀의 공격이 완전히 소용없지는 않았다. 평소라면 얄팍한 손목 따위는 쉽게 비틀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요한은 운전 중이었다. 괴담이나 늘어놓던 히치하이커의 히스테릭한 기습은 요한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고통은 한 점도 없었으나 운전대를 쥔 손이 방해받자 시야가 출렁거리듯 흔들렸다. 운전대가 조금만 틀어져도 풍경이 바뀌었다.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유리창에 비치는 정경이 뒤섞였다.

“난 죽지 않아! 내가 죽기 전에 죽여 버리겠어!”

팀의 고함과 눈물이 아래가 아닌 옆으로 흩날렸고, 자동차는 도로를 거칠게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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