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00)화 (100/156)

#099

하몽 편의점의 주인과 그 형제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널리 퍼진 이후 편의점은 자연스러운 절차를 밟듯 망했다. 그들 프랭크 형제는 서로 외에는 이렇다 할 가족이 없었다. 더 열심히 찾는다면 프랭크 형제의 먼 친척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나, 그들은 연쇄 살인범의 유산을 차지하겠노라 기꺼이 나서지 않았다.

결국 주인을 잃은 하몽 편의점과 내부의 물품은 어영부영 흩어졌다. 편의점에 있던 싸구려 가공육은 무척 인기가 없거나 혹은 반대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물론 실체는 공장에서 출하된 평범한 햄 따위에 불과했지만 혹자는 이것이 프랭크 형제가 몰래 편의점에 끼워 넣은 인육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개소리였다.

이때 서준은 레몬 시가를 다수 얻게 되었듯, 다른 부가 물품도 얼렁뚱땅 손에 넣었다. 이는 캠프장의 일을 처리하던 에리스 박사의 선물이기도 했다. 대다수는 그가 처리했지만 몇몇 물품은 아예 상자째로 서준에게 떠안겼다. 대표적으로는 레몬 시가였고 둘째로는 레몬 캔디였다. 레몬 시가에서 담배 한번 팔아 치우겠답시고 공장을 열심히 돌린 결과물은 양이 많기도 했다.

서준은 이 레몬 캔디가 든 상자를 고스란히 요한에게 떠넘겼다. 그는 담배면 족했다. 상자를 받은 요한은 왕에게 승은을 입은 후궁처럼 감읍했다. 왜 바로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네가 준 선물을 아끼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서준이 보기에는 무가당이 아니라 먹지 않은 듯했다.

아무튼 이 무슨 얄궂은 일인지, 팀이 내민 사탕은 바로 레몬 시가의 그 레몬 캔디였다. 적어도 포장지는 그러했다.

새삼스럽게 하몽 캠프장에서 날뛰던 가스마스크와 괴생명체 X가 떠올랐다. 요한과 함께 겪었던 더없이 실제적이고 실체적인 공포, 그리고 상처들. 서준은 죽을 때까지 외눈으로 살 것이며 요한의 손에 난 흉터 또한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러나 왜인지 그것이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오른쪽 안구의 상실은 그에게 현실을 안겨 주었으므로. 그리고 기억이 불러일으킨 향수는 서준이 자신의 악성 어린 끈기를 되찾게 했다.

“서준?”

팀이 재촉하듯 사탕을 내밀었다. 서준은 제 이름을 부르는 히치하이커를 바라보았다. 건강하지 못한 안색은 일견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고, 그의 조그맣게 벌린 입술 사이의 치아는 공연히 가지런했다. 삐뚜름한 부분 없이 반듯한 사각형을 응시하며 서준은 오른쪽 장갑 끝을 이로 물었다.

전제를 바로잡자. 팀은 과연 티모트인가? 그리고 티모트는 정말 죽은 자인가? 대단히 우연하게도, 그에게는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다.

역하지 않은 고무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차게 식은 공기가 손등에 닿았다. 뼈 위에 부드러운 살가죽을 얹어 놓은 형태의 손가락이 노란 껍질에 쌓인 설탕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런 기대를 품기에는 제 능력이 너무나 미약했다. 그러니 바라는 것은 아주 약간의 도움이다.

트럭이 점점 느려지다가 곧 멈추어 섰다. 팀이 의아한 듯이 서준을 불렀다. 하지만 그에게 대답하기에 앞서, 눈꺼풀 안쪽에서 환한 빛이 모든 시계를 집어삼켰다.

작은 손이 사탕을 포장지에 감싸고 있었다.

장소는 부엌일까? 고급스러운 색상의 가구와 대리석 바닥, 깔끔하게 정리된 식기가 언뜻 보였다. 이 부유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식탁 위에는 작은 알약이 굴러다녔다. 서준은 그것이 수면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환각이 심할 때는 도무지 제정신으로 잠들지 못해 약의 힘을 빌리려 들었던 때가 있었다. 약을 빻았는지 식탁보에는 흰 가루가 묻어났다.

팀이 콧노래를 부른다. 그의 뒤편에는 작은 액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애인과 함께 부둥켜안고 웃는 사진,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해 일가친척과 모여 찍은 사진, 대형견의 턱을 쓰다듬으며 노는 사진. 하나같이 일상적이고 편안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장식할 법한 한 단면 사이로 유독 이상한 사진이 한 장 숨어 있었다. 그것은 다리만 나온 사진으로, 짧은 바지를 입고 엎드린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사진의 화질은 매우 열악했다. 작은 그림을 억지로 확대했을 때처럼 모양이 정확하지 않고 흐렸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다리는 빛나는 듯이 희었다. 다른 사진에 비하면 볼품없었다. 그러나 사진이 담긴 액자는 모서리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사탕을 포장지에 감싼 팀이 웃었다.

“서준?”

동시에 팀이 팔을 뻗어 어깨를 부여잡았다. 미적지근한 체온이 옮겨졌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그를 뿌리쳤다. 날카로운 기세에 팀은 아래가 거뭇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어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그가 바라보는 창백한 얼굴은 식은땀으로 젖어 기묘한 색기를 풍겼다. 아름다운 얼굴이 두려움에 질려 바들거리는 모습은 이성애자에게도 제법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서준은 사탕을 손에 꽉 쥐었다. 피로한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아, 아닙니다. 잠깐 피곤해져서……. 다시 출발할게요.”

잠시 도로에서 가만히 서 있던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깜깜하고,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알아차렸다. 그가 엿본 과거는 단편적인 정보였으나 낱장으로 풀어진 종이를 한데 엮을 끈의 역할로는 충분했다.

팀은 히치하이커 유령 따위가 아니었다. 살인자였다.

‘아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확률은 높아.’

생각을 살짝 고치자 호흡이 한결 편안해졌다. 꽉 막혔던 목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팔뚝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트럭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속도를 높였다. 바깥의 나무는 검은 그림자로밖에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팀의 기쁨에 찬 비명이 좁은 운전석 가득 울려 퍼졌다.

“저길 봐요, 또 죽은 까마귀예요!”

그의 말대로 저 앞에는 죽은 까마귀가 놓여 있었다. 이제 서준은 저 시체에서 공포 대신 연민을 느꼈다. 팀의 말 중 단 하나는 옳았다. 이곳에는 까마귀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가엾은 까마귀를 한가로이 동정할 틈이 없었다. 팀의 주의가 오로지 정면을 향한 찰나를 놓쳐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액셀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거리가 제법 되어 보이던 까마귀가 빠르게 바퀴 아래로 사라지고 곧 으깨지는 소리가 불쾌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서준은 손을 뻗어 팀의 안전벨트 버클을 풀어 버렸다. 어어, 하며 팀이 뒤늦게 제 옆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원체 안전벨트를 허술하게 매고 있었다. 풀려난 끈은 채찍처럼 팀의 팔을 철썩 때렸다. 그의 몸뚱이는 무방비해졌다. 그러곤 내려찍듯이 발을 굴렀다. 급정거는 일순 중력을 앗아 가는 듯했다. 아스팔트 바닥을 길게 그으며 피와 뼛조각이 튀었다. 바퀴에는 검은 깃털이 우수수 달라붙었다.

까앙, 팀의 이마가 앞 유리에 거세게 부딪혔다. 그의 눈동자가 위로 홱 넘어갔다. 서준이라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그 또한 가슴께가 얼얼하고 얼굴에 시뻘겋게 열이 올랐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일을 끝내야 했다. 서준은 긴 다리를 뻗어 차의 문을 뻥 차서 열고는, 팀도 뻥 차 버렸다.

“흐으, 어어!”

작고 왜소한 몸뚱이는 나약한 비명과 함께 손쉽게 굴러떨어졌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로 위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서어, 주운!”

두통 때문인지 팀은 서준의 이름을 부를 때 말끝을 늘였다. 서준은 대꾸하지 않고 그의 배낭도 차 밖으로 던져 버렸다. 와르르 쏟아지는 물건들이 몹시 흉했다. 개중에는 새까만 기계 같은 것도 있었다.

“별짓을 다 한다, 이 자식아.”

서준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리고는 오래 끌지 않고 문을 도로 닫았다. 그는 주저 없이 출발했다. 저 악독한 인간으로부터 한시라도 바삐 멀어지고픈 욕망이 서준을 충동질했다.

그는 빠르게 뛰는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팀은 여러 정황을 잘 꾸며 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히치하이커 괴담을 이야기하며 운전자의 시선을 섞어 말한 것이다. 팀은 자신이 이야기 속 히치하이커인 양 굴었으나 사실 그는 운전자 쪽이었던 셈이다.

“운전 중인 사람한테 뭘 먹이려던 거야, 저 새끼…….”

다급하게 팀을 차에서 내쫓느라 아직도 주먹에 레몬 캔디가 잡혀 있었다. 깜짝 놀란 서준이 사탕을 황급히 내던졌다. 이미 닫힌 문에 튕긴 사탕은 바닥으로 도로록 굴렀다. 의자 아래로 들어간 사탕을 부러 찾는 것도 귀찮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대체 수면제가 든 사탕을 먹이고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걸까? 서준은 팀의 계획을 모른다. 팀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가 털어놓은 개인사가 진실일지, 혹은 꾸며 낸 거짓말일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잠깐의 동행으로도 알 수 있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팀의 지독한 악의였다.

‘세상에는 별 인간이 다 있구나.’

온몸이 벌벌 떨렸다. 만약 귀신이라고 착각해 팀을 죽이려 들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서준의 시선이 가방을 향했다. 그 속에 있을 폭 2센티, 높이 15센티가량의 짧은 과도를 떠올렸다.

그는 이미 살인을 저지른 전적이 있었다. 비록 벌을 받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이해해 주었다지만 과연 두 번째 살인에도 그토록 온정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을까? 서준은 회의적이었다. 뱃속에 고여 있던 묵직한 한숨이 다시 흘러나왔다.

“아, 착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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