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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99)화 (99/156)

#098

팀은 제가 하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맞추려는지 부러 음산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낮게 속삭이는 말투를 사용했으며 시선은 탐색하듯 이편을 훑었다. 그리고 서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떠오르는 대꾸가 별달리 대단치 않았다. 헛기침을 몇 번 한 서준이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

“동서양을 통틀어 흔한 괴담이네요…. 나도 비슷한 택시 괴담은 아는데.”

“하하,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히치하이커 괴담은 다들 고만고만한가 봐요. 아, 그래도 다른 괴담하고 분명한 차이점도 있어요.”

“차이점? 아, 아니. 괜찮습니다. 굳이 말해 줄 필요 없어요. 피곤할 텐데 한숨 잠이라도 주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때가 되면 깨워 드릴게요.”

단호하고 공손한 거절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진실로 티모트의 숨겨진 비밀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염치가 있지 공짜로 차를 얻어 탔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운전석의 옆자리는 재롱을 부리는 자리라고도 하잖아요.”

서준은 그런 소리를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는 늘 차의 규칙적인 진동을 수면과 맞바꾸는 편이었다. 그러나 팀은 기어코 히치하이커 귀신의 은밀한 취향을 알려 주었다. 그는 이 사실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이라도 있는 양 굴며 주둥이를 다물지 못했다.

“히치하이커 티모트가 차를 타면 말이죠, 그가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같은 장소를 맴돌게 되어 있어요. 티모트가 보기에 자신을 죽인 사람이 아니라면 선물을 주고 차에서 내리죠. 제법 친절한 축에 들지 않나요?”

“글쎄요, 듣기로는 꼭 보충 수업시키는 교사 같은걸요.”

어느덧 하늘이 캄캄해졌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은 소리로만 제가 있다는 걸 알렸으며 달조차 구름에 가려 빛은 오로지 트럭의 전조등뿐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기시감을 느꼈다. 뒤이어 그의 눈에 유타피아의 풍경이 겹쳤다. 악마의 사거리로 들어서던 무렵과 제법 유사한 상황은 외눈 청년에게 소름이 끼치는 심상을 선사했다.

그때 그는 사거리에서 악마와 귀신을 만났다.

“어라.”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팀이 옆에서 왜 그러세요, 하고 물어본다. 그것은 염려하는 듯 들렸다. 그러나 이미 팀이 집요할 정도로 쏟아 낸 정보는 서준에게 한 가지 불행한 영감을 안겨 주었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하고 볼 안쪽의 살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이 새삼스럽게 현실감을 일깨웠다. 서준은 떨떠름한 눈빛으로 팀을 보았다.

‘이놈도……. 사람이 아닐 수가 있나?’

하나뿐인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서준은 정들지 않았고, 고향도 아니지만 어쨌든 톰팃톳을 떠나 숱한 괴상망측한 놈들과 만났다. 그중 유령의 비율은 꽤 높았다.

상당히 합리적인 의문이 서준의 머릿속에서 담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팀은 히치하이커 티모트의 이야기를 무슨 제 과거사를 풀어놓듯 낱낱이 털어놓았다. 심지어 티모트의 외견 묘사가 어처구니없을 지경으로 팀과 비슷하지 않은가? 다친 무릎의 위치, 언뜻 보인 소매 안쪽의 손목 등 수상쩍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제 서준의 인생에 있어 귀신이란 생활 밀착형적인 존재였으므로 꼭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어떻게 구분하지? 지금까지 만났던 유령들이 하나같이 대중없으니, 원…….’

규격화된 표준이 있다면 참 좋으련만, 정석적인 유령이었던 피어나 좀비 스타일인 로렌 부부, 괴물형과 인간형, 허수아비형 등 다종다양한 변신 능력이 있던 에이프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든 도우드까지 이놈의 귀신들은 다들 제멋대로였다.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쩌지?’

그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룸 미러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손바닥만 한 거울에 팀의 상악이 비쳤다. 바로 이때서야 서준은 자신의 값싼 연민의 대상이 아닌 동승자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싸구려 동정이 걷힌 자리에는 유독 흰자 부위가 넓은 눈을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콧대와 뺨이 길고 피부의 결은 그리 매끄럽지 못해 거친 느낌이 들었다. 투박한 모양새의 눈썹과 달리 눈매는 교활한 구석이 있어 둔한 인상을 풍기지 않았다. 팀의 생김새를 요모조모 살피던 머릿속에 문득 궁금증이 들어찼다.

귀신도 거울에 비치는 걸까?

‘비친다는 이야기도 있고, 안 비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다른 귀신들과 만났을 때 실험이라도 해 봤다면 손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과의 조우는 그토록 여유로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서준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룸 미러를 다시금 힐끔거렸다. 일단 팀은 확실하게 거울의 상에 나타났다.

하지만 팀이 정말 귀신인지, 아니면 괜스레 귀신인 척하며 사람을 놀리는 질 나쁜 인간일지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서준은 귀신을 여럿 만났지만 스스로 뛰어난 영감이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불가사의한 상황과 마주했을 따름이다.

잠시간 떨떠름한 정적이 트럭 운전석 내부를 휘감았다. 평소라면 어색한 분위기를 즐겼겠지만 옆에 앉으신 분이 자신을 죽이려 드는 유령일 수도 있는 판국인지라 심장이 빠르게 뛰며 수런거렸다. 침묵은 금이라지만 때로는 피부를 찌르는 바늘과도 같았다. 서준의 협소한 뇌 주름은 차라리 택시 괴담이라도 지껄여 보라는 의견을 냈다.

‘괜히 화만 돋울 거 같은데.’

가늘게 뜬 검은 눈이 팀을 살살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하나뿐인 눈동자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팀의 피부 안쪽에 든 것이 텅 빈 공기인지, 아니면 뼈와 살인지 분간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 어느 날 발화한 초능력은 생활에 그리 실용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아, 아아아. 그러고 보니 저는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됐는데, 혹시 승차감이 나쁘거나 하진 않으신지요?”

형편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연기자처럼 까칠한 목소리가 목을 긁으며 튀어나왔다. 거짓말도 아닌데 왜 이토록 자연스럽지 못한지 자신도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미약한 자기변호는 팀이 제 배낭을 뒤적이는 소리에 묻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훌쩍 얼굴을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아주 좋아요. 이렇게 능숙한 게 꼭 몇 년은 운전을 해 온 베테랑 같은 느낌이에요.”

“하하, 하하하하아…….”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외부와의 접촉이었다. 서준은 썩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주머니 속의 휴대 전화를 꺼냈다.

“아, 지금쯤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 친구, 그리고 또 친구가 내 연락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는걸?”

하지만 이놈의 고물은 또 말썽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통화가 불가능하단 표식이 화면에 작게 떴다. 고작 기계에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어 새하얀 낯이 흉악스레 일그러졌다.

“서준? 갑자기 왜 그래요?”

가방 속에 손을 넣은 팀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 휴대 전화가 안 터져서요.”

“이 근방이 원래 그런가 봐요. 제 것도 그랬다니까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 도로는 따로 빠지는 길도 없이 앞으로 쭉 나가면 되니까.”

“아……. 초행이라더니 잘 아시네요.”

팀인지 티모트인지 모를 작자의 설정 오류를 꼬집자 히치하이커가 초췌한 안색에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랬나요?”

태연한 낯짝을 한 팀의 눈에 이채가 돈 것은 그가 조잘거리며 다시 앞을 보았을 때였다. 팀이 손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그의 손톱 끝은 깨끗하지 못한 편이었다. 서준의 시선이 짧은 손가락을 따라갔다. 전조등의 불빛이 도로를 비추었고, 마치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죽은 까마귀가 원 한가운데 날개를 바짝 펼친 채 누워 있었다.

필름을 되감은 듯이 똑같은 광경이었다. 이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트럭의 앞바퀴에는 이미 짓눌린 새의 살점과 핏물, 그리고 검은 우모가 진흙처럼 달라붙어 있으므로.

“또 까마귀네요.”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얇은 장갑 너머로 도드라졌다. 이번에는 죽은 새를 밟지 않고 텅 빈 도로를 약간 돌아서 지나갔다.

하지만 트럭의 바퀴가 새로운 핏물로 적셔지지 않았던들 안도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연속적으로 마주한 까마귀 사체는 일종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두개골이나 녹아내린 양초, 시든 꽃처럼.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불길함이 목뒤를 선뜩하게 쓰다듬었다.

팀은 괴담에 등장하는 히치하이커가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같은 장소를 맴돈다고 말했다. 희게 질린 얼굴이 먹구름 낀 하늘처럼 흐려졌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기이한 경험을 겪어 왔다. 불안한 상상은 증험을 양분 삼아 잡초처럼 자라났다.

이, 피부를 차게 적시는 한기가 비단 자신의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지금이라도 나는 당신을 살인한 운전자가 아니라며 격렬히 소명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만약 또 죽은 까마귀를 본다면, 서준은 제가 멀쩡한 정신으로 운전하리라 장담하지 못했다. 차를 모는 건 집중력을 요구하는 행위였다. 잠깐의 피로함이 얼마나 큰 사고로 이어지는지 서준 또한 몸으로 겪지 않았나.

이제 어둠이 완전히 깔린 도로는 한 치 앞만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기력을 깎아 냈다. 부스럭, 부스럭 옆에서 들리는 소리가 가늘어진 신경을 자꾸만 건드렸다.

그러고는 불쑥 옆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서준은 차를 아무렇게나 틀어 버릴 뻔했다. 그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겨우 억누르고 뻣뻣한 목을 움직였다. 팀이 아주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뻔뻔스레 입을 열었다.

“아, 제가 놀라게 했나요? 죄송해요. 많이 피곤한 것 같아서…….”

주먹을 꽉 쥐고 있던 팀의 손아귀가 느릿하게 벌어졌다. 손바닥에 놓인 것은 엉뚱하게도 사탕이었다. 노란색 포장지에 감싸인 사탕은 포장지 틈으로 새큼한 향기를 풍겼다. 배낭을 뒤적거리던 건 이 자그마한 사탕을 찾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팀은 일견 수줍은 태도로 사탕을 쥔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는 왜 받지 않느냐는 듯 기대를 품고 주먹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그러나 서준은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건…….”

팀이 내민 것은 레몬 캔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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