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98)화 (98/156)

#097

때마침 그의 목소리와 겹쳐 우르릉 소리가 났다. 아직 해가 질 시간은 아니었지만 습한 공기를 머금은 잿빛 먹구름이 하늘을 빼곡하게 가리자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원체 가로등 따위가 없는 길이었으니 의지할 빛이라고는 트럭의 전조등이 전부였다. 팀도 하던 말을 멈추고 작게 중얼거렸다.

“깜깜하네요.”

“비가 오면 시야가 지금보다 안 좋아질 수도 있겠어요.”

속도를 더 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팀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는 역시 괴담이면 이렇게 서늘한 분위기와 더욱 어울리지 않느냐며 방긋거렸다. 속삭이는 듯한 어조에는 어딘가 공허함이 서려 있었다. 저런 태도는 과연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꾸며 낸 것일까?

세찬 바람이 트럭의 앞 유리를 두드리는 동안 팀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의 이름은 티모트라고 합니다. 티모트는 운이 몹시 나쁜 사람이었다고 해요. 학우들에게 괴롭힘당하는 학창 시절이 그의 불운한 청년기의 시작을 알렸죠. 그뿐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유별난 취미는 그를 더욱 고립시켰어요. 그래도 티모트는 제법 희망찬 성격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해 떠나기만 한다면 더 넓은 세상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걸 알았죠. 하지만 졸업식 날, 그는 부모님을 잃었어요. 다름이 아니라 티모트의 졸업식에 참가하려던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한 거죠. 그의 고된 생활이 끝난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겁니다.”

불행은 티모트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아왔다. 간신히 들어간 대학교는 졸업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으며 겨우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의 급여를 주던 회사는 밀린 월급 3개월 치를 지급하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티모트를 불쌍히 여겨서인지, 아니면 불우한 남자가 취향이었던지 모를 여자 친구는 더욱 처지가 안되고 애처로운 청년에게 날아갔다.

티모트는 제 인생을 반추했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자신보다 가엾은 삶이 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이 불운하다고 제가 행복해지던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심한 탈력감이 몰려왔다.

“애인과 헤어진 티모트는, 그래요. 아마 그쯤이 한계였을 거예요. 삶에 더는 좋은 날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절망이 그를 덮쳤겠죠. 도미노가 무너지듯 티모트를 숨 쉬게 하는 모든 구멍이 막혔어요. 그렇게 티모트는 죽음을 결심했지요.”

“허어어….”

그리고 서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티모트가 눈곱만큼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지 멀쩡하고 듣자 하니 빚도 없는 모양인데 뭐가 불만이라는 거지?’

자신도 스트레스로 인한 온갖 질병을 달고 살았던 주제에 정작 타인은 몹시 엄격하게 재단했다. 속으로 티모트의 연약한 심성에 경악하던 서준은 곧 관심을 거뒀다. 하기야 그로서는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팀의 괴악스러운 취미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한 심령 스팟을 일일이 찾아다닐 바에야 차라리 톰팃톳 탐방이 이 히치하이커의 목적성에는 훨씬 부합할 것이다.

‘난 그게 싫어서 도망쳤지만…….’

“죽음을 결심한 티모트가 가장 처음에 선택한 건 손목을 긋는 거였어요. 아주 고전적이었죠. 그는 깨끗한 면도날로 오른손을 긋고 뜨겁게 물을 받은 욕조에 팔을 집어넣었어요. 물속에서 실처럼 풀어지는 핏줄기와 희뿌연 수증기로 가득한 욕실……. 티모트는 정신을 잃었죠.”

“욕실에서 죽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서준은 팀이 운운하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히치하이커’를 잊지 않았다. 티모트의 자살 시도가 한 번에 성공했다면 팀의 이야깃거리가 될 리가 없었다. 과연 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즐겁게 대꾸했다.

“맞아요. 티모트는 그때 죽지 않았어요. 대체 무슨 우연인지 바로 옆방에서 화재가 일어난 게 원인이었죠. 소방차며 구급차, 시끄럽게 나돌아 다니는 사람들까지. 결국 그 난리 통에 티모트는 어영부영 함께 구출당했어요. 아마 본인도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여겼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티모트가 바라던 엄숙하고 고요한 죽음과는 전혀 걸맞지 않았거든요.”

이야기를 듣던 서준의 안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다음으로 티모트가 시도한 건 익사였어요. 그는 이왕이면 깊은 호숫가에서 죽기를 바랐어요. 화폭처럼 아름다운, 차가운 겨울 호수에서 생명이 스러지기를 기대했죠. 양발을 단단히 묶은 그는 살얼음이 낀 호수로 뛰어들었어요. 살이 에이는 고통을 느끼며 이번에야말로 죽음이 찾아왔다고 직감했죠.”

“그래서, 그때는 어떻게 살아남았대요?”

당연히 티모트는 이번에도 죽지 않았을 터였다. 서준이 물어보자 팀이 쓴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집어 들고, 왼손으로는 둘둘 마는 시늉을 해 보였다. 헐렁한 셔츠의 소매가 살짝 내려가며 그의 얄팍한 손목이 보였다. 그림자일까? 깊고 긴 자국이 서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미처 그것을 자세히 눈에 담기 전 팀이 양손으로 깍지를 끼었다. 손가락이 겹치며 그의 손목은 배낭에 가려졌다.

“낚시꾼들이었어요. 그들은 티모트를 살렸고, 또 티모트를 좌절시켰죠.”

이후로도 티모트는 숱한 실패를 경험한다. 절벽에서 내던진 몸뚱이는 마침 아래에서 머물던 등산객이 펼친 텐트에 떨어지고, 극독이라고 산 알약은 사실 비타민제였다. 심지어 총을 쏘아도 머리가 터지기는커녕 총알이 걸려 나오지도 않았다.

다양한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티모트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도로를 눈여겨보았다.

남모르게 그곳을 찾은 티모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도로 옆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저 가능한 한 깊이, 더 깊이……. 덩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돌부리에 찧은 무르팍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열이 오르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자살 희망자의 눈에 두꺼운 나무가 하나 들어왔다.

껍질에는 짙은 초록색 이끼가 가득했고 울퉁불퉁한 표면은 사람이 절규하는 듯 기이한 모양새였다. 이 나무가 좋겠다…고 티모트는 결정했다. 그는 배낭에서 꺼낸 밧줄을 나뭇가지에 걸었다. 걸린 밧줄을 잡아당기자 끼익, 하고 나뭇가지가 탄력 있게 휘어졌다. 티모트의 체중은 남자치고는 가벼운 편이었다. 그가 목을 매달아도 부러지는 일은 없으리라. 이번에야말로 진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리란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바위에 올라간 티모트는 밧줄에 목을 감았다. 발을 떼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하지만 해가 져도 티모트는 가만히 있었어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요.”

서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뻔했다. 갑작스럽게 죽음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러나 티모트를 비웃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제야 괴담 속 청년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새끼손톱만 하게 생겼을 따름이었다. 그는 한껏 사교성을 끌어 올려 유쾌한 목소리를 꾸며 냈다.

“그래서, 티모트는 얌전히 포기하고 바위에서 내려왔나요?”

“맞아요. 그때 티모트는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살아 보기로 결심한 거죠. 자살의 실패가 그에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넣은 셈이에요.”

“좋은 마음가짐이죠.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으악!”

슬렁슬렁 대꾸하던 서준의 어깨가 놀란 고양이처럼 솟았다. 트럭이 작게 흔들리며 뿌드득 으깨지고 갈리는 소리가 바퀴에 휘감겼다. 본래 새하얗던 뺨이 병적으로 창백해진 서준이 입을 다물었다. 간신히 삼킨 욕설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커다란 까마귀였다.

바로 옆이 숲이니 날짐승이 있는 것이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죽어 도로에 널브러진 까마귀가 애차 바퀴에 진탕이 되었으리란 점이었다. 건성으로 듣는다고 들었지만, 나름대로 정신이 분산되었던 모양이었다. 팀도 트럭이 까마귀를 밟은 걸 알아차리고는 뒤늦게 탄식했다.

“이런, 여긴 까마귀가 많으니까요….”

“…….”

“아아, 그렇지. 마침 티모트가 살고자 결심했을 때, 도로로 나와 본 게 저런 까마귀 시체였어요.”

“별로 좋은 볼거리는 아니었겠군요.”

저절로 불퉁한 어조가 튀어나왔다. 심술궂은 대답에도 팀은 하하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티모트의 눈에 대단히 인상 깊은 정물이기도 했죠. 죽기를 포기하고 처음으로 마주친 생물이 허망하게 죽어 있는 새라니, 상징적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틀리지 않았어요. 자, 생각해 보세요. 이제 막 삶을 향한 희망에 젖어 있던 청년이 발을 내디딘 도로는 아주 깜깜했어요. 숲에 들어갈 때는 아직 낮이었지만 고민하는 동안 해가 저물었죠. 진이 다 빠진 티모트는 홀로 집에 돌아갈 길조차 막막했어요. 그런데, 바로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왔죠!”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 히치하이커의 얼굴에 떠올랐다. 문득 팀이 묘사하는 것처럼 정말 티모트도 환희에 차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의구심은 입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고 괴담은 절정에 도달했다.

“마침 그때에도 이런 어둠이 깔렸어요. 별조차 빛나지 않았으니 도로 위에서 길을 잃은 티모트에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얼마나 눈부셨을지 상상이나 가세요? 티모트는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렸죠. 그래도 그는 양팔을 흔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어요. 소리는 지르지 못했지만요.”

“왜요?”

예비용 바퀴가 있지만 가는 것도 일이었다. 서준은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느덧 깜깜해진 하늘 때문일까? 화자의 색이 진한 눈동자는 고동색으로 보였다. 그들은 이야기 속 티모트처럼 전조등에 의지해 달려 나갔다.

“한참을 올가미 앞에 서 있더니 목이 빡빡했던 거죠. 뻑뻑하게 마른 목구멍에서는 쇳소리에 가까운 신음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아, 티모트는 미처 생각지 못한 거예요. 운전자의 시계 또한 그처럼 어두컴컴하리란 사실을요.”

어쩐지 서준은 괴담 속 티모트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의 인생을 축약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운전자는 지쳐 있었고 둥근 빛이 비쳐 낸 새하얀 다리는 너무나 갑작스러웠죠.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졌어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는 것보다 티모트가 자동차의 앞 범퍼에 부딪히는 게 더 빨랐죠. 그는 그렇게 죽었어요. 차에 치여 몇 바퀴 구른 몸은 바닥에 엎어졌고 목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자잘한 상처가 남았죠. 운전자는 티모트의 가녀린 발목을 붙잡고 잡아끌었어요. 그의 피부는 쓸리고 긁히며 도로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겼죠. 하지만 목격자라고는 죽은 까마귀뿐, 시체는 숲에 버려지고 운전자는 서둘러 떠났어요.”

목격자는 없었답니다, 팀은 노래하듯이 가볍게 덧붙였다.

“그래서일까요? 티모트는 자신을 죽인 운전자를 찾기 위해 지나가는 차에 얻어 타 얼굴을 확인한다고 해요. 살인자를 찾아내 죽이기 위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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