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당연하지만 서준도 타산적인 속내가 없지 않았다. 그는 눈높이가 낮고 비리비리한 히치하이커를 곁눈질했다. 입은 옷가지가 얇아서인지 남자의 허연 팔뚝이나 몇 근 나가지 않을 근육이 한 눈으로도 똑똑히 보였다. 특히 히치하이커가 배낭을 만지작거리는 야물지 못한 작은 손을 보노라면 자신감은 더욱 높이 치솟았다.
서준에게 주먹다짐에 조예가 있노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숱한 단점만큼이나 몇 되지 않는 장점도 알고 있었다. 바로 긴 팔과 다리였다. 피차 빈약한 근골의 소유자라면 훌쩍하니 키가 큰 제가 더 유리한 입장이라는 건 분명했다.
히치하이커가 무안하다는 듯 묘하게 웃으며 뺨을 붉혔다. 그러곤 배낭을 앞으로 껴안은 상태에서 안전벨트를 맸다. 불룩하게 나온 히치하이커의 배를 바라보며 서준은 앞을 보았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운전대의 감촉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트럭이 출발했다.
한동안 그들은 미약한 진동을 느낄 뿐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룸 미러를 통해 힐끔거리는 히치하이커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서준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사교성을 끌어모아 소비한 후였다. 다행히 히치하이커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님 된 도리를 실천하고자 했다. 그는 어정쩡한 분위기를 타파하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요? 제 이름은 팀이에요.”
히치하이커는 자신을 팀이라고 소개한 뒤, 제 성이 유독 발음이 어렵다며 이름으로 불러 주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서준도 이름과 성을 알려 주었다.
“나도 그냥 서준이라고 불러요. 성으로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왜요? 밝고 멋진 성인데.”
“성이 싫은 건 아닌데……. 그냥 성하고 이름을 내 고향 식으로 붙여서 말하면 발음이 좀 웃겨요.”
치를 떨며 말하자 팀은 더 파고들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칙칙한 얼굴로 미소 비스무리한 것을 입꼬리에 걸었다.
“알았어요, 서준.”
팀은 혼자서도 잘 떠들었다. 서준은 이것이 차를 얻어 타면서 여행할 때 필요한 친화력인가 싶어 속으로 감탄만 내뱉었다. 이제 서준은 팀의 가족 관계와 학창 시절 성적, 욕실 수건을 열두 장 중 한 장만 남기고 버리게 된 사연, 여자 친구와 다툰 이유, 그녀가 키우는 애완동물의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듣는 귓구멍이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팀이 떠들어 댄 것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가 히치하이크하며 여행하는 목적에 관해서도 듣게 되었다.
“심령 스팟?”
지루하도록 똑같은 풍경을 지나치던 서준이 무심코 되물었다. 그가 옆을 돌아보자 팀은 처음 탔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은 입가가 천천히 벌어졌다.
“예. 제 취미는 심령 스팟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종종 휴가를 내고 전국의 심령 스팟을 방문하죠. 지금 가려는 곳도 그래요. 캔자스에 있다는 투명 인간의 저택이요.”
좋아하는 화제를 꺼내서인지 팀의 목소리가 흥분한 듯이 높아졌다. 콧소리가 약간 섞인 비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사실 투명 인간의 저택이 캔자스에 있는지 정확하지는 않아요. 어디까지나 위치를 추론하자면 그곳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심령 스팟이면 그, 귀신이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서준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는 공포 영화에는 흥미가 있었지만 실제로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원체 존재하지도 않던 흥미는 실제로 그들을 만난 이후 더욱 확고하게 사라졌다. 팀이 고개를 흔들었다.
“꼭 귀신이 나온다는 건 아니고….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도 그렇게 불러요. 예를 들면, 방금 말한 투명 인간의 저택은 3층짜리 일반 가옥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투명 인간을 만들기 위한 사설 연구소였다고 해요.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자행했고 마침내 성공했죠. 딱 한 명뿐이지만 투명 인간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대단한 실험이라면 지금쯤 전국이 떠들썩해야 정상일 텐데요.”
각고의 노력 끝에 서준은 코웃음을 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썩 대단찮은 반응에도 팀은 언짢은 기색 없이 동조했다.
“맞아요. 왜냐하면 투명 인간의 탄생으로 끝이 아니었거든요. 투명 인간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다른 뭔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 일어나 모든 걸 쓸어 갔다고 하더라고요.”
“천재지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화재나 산사태였다. 하지만 팀이 언급한 재난은 바로 허리케인이었다.
“무자비한 바람이 모든 걸 쓸어 버렸다고 해요. 마치 도로시를 신비한 나라로 데려간 태풍처럼 말이에요. 바람에 휩쓸려 간 사람은 투명 인간이었어요. 유일한 성과가 사라진 연구소는 후원자의 분노를 샀고, 그 일을 계기로 폐쇄당했다고 해요.”
팀의 열렬한 기세에 서준은 다소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그라도 저렇게나 즐기는 사람에게 대놓고 찬물을 끼얹어 빈축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서준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팀이 약간 왼쪽으로 기울었던 몸을 바로 세우며 웃었다.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죠? 하지만 발견만 한다면 정말 재밌을 거예요. 그리고 저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러는 건 아니거든요.”
팀이 배낭의 지퍼를 내렸다. 그는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잔뜩 헤집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인쇄물이었는데, 서준은 앞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시선을 내렸다.
컬러로 인쇄된 종이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화면을 고스란히 찍은 듯했다.
‘사이트 주소는 오컬트 나이트? 뭐야, 댓글이 많이 달렸잖아….’
아무래도 팀의 취미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양이었다. 팀이 설명한 투명 인간 저택에 관한 게시글에는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사실상 투명 인간 운운하는 게시글의 유일한 증거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것이 고작해야 낡아 빠진 구두 한 켤레였다는 점이다. 팀은 여전히 피로한 얼굴에 들뜬 표정을 지으며 종이를 꽉 쥐었다.
“이게 바로 그 투명 인간이 신었던 구두라고 해요. 게시글을 올린 사람은 자기도 그 연구소에서 실험당했다고 하고요.”
서준은 착잡한 눈빛으로 팀을 바라보았다. 이건 조작도 뭣도 아닌 소설에 불과했다. 하다못해 투명 인간이 구두를 신은 채 탭 댄스를 추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아니고, 대체 이 구두만 덜렁 찍은 사진이 무슨 증거가 된다는 걸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탐탁잖은 반응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던 팀은 말할수록 격양되었는지 달뜬 목소리로 조잘거릴 뿐이었다.
“이 사이트에 괜찮은 정보가 많이 올라와요. 특히 자칭 ‘천사’라고 하는 회원이 있는데, 엉뚱한 사족을 붙이는 것 치고는 아주 꼼꼼하고 열정적이죠. 다른 사이트보다 믿음이 간달까요?”
“자칭 천사요…….”
천사 운운하는 데서 이미 믿음이 모조리 사그라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미심쩍은 마음이 뭉근하게 솟아나다 못해 범람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번 말문이 트인 팀은 묻지도 않은 심령 스팟에 관해 줄줄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여기서 갈 만한 심령 스팟이라면, 아, 그렇지. 버려진 산장이 있어요. 이름은 딱히 없고 숲속의 오두막이라고들 부르죠. 2층짜리 산장인데, 2층 두 번째 방의 거울을 보게 되면 아무리 얌전한 사람이라도 흉포한 기분에 휩싸인다고 해요. 옛날에 산장에 쉬러 온 두 친구가 무슨 이유인지 다투다가 칼부림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난도질당한 몸에서 흐른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여 붉은 방이라고들 하죠. 그 방에서 두 사람이 거울을 보면 위험하다고요.”
그러면서 혼자 보는 건 괜찮다며 서준을 안심시켰다. 물론 그런다고 펄떡거리며 뛰는 심장에서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실 거기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심령 스팟이었는데 얼마 전에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다녀가서 지금쯤 인파가 몰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런 면에서 해피 피그 공장이 괜찮을지도요. 아니면 성 몽고메리 병원이나…. 몽고메리 말라달리의 기부로 지어진 성 몽고메리 병원은 들어 보셨죠? 지금은 폐병원인데…….”
피로하고 지친 첫인상과 달리 팀은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그는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한해서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처음에는 제법 귀담아듣던 서준도 곧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능변가여도 경험자 앞에서는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결코 본의는 아니지만 이래 봬도 연쇄 살인마, 우주 괴물, 귀신, 그리고 악마와 만남을 가진 경력자였다. 게다가 그들과의 조우는 썩 행복한 경험이 되지 못했다. 팀이 숨을 쉴 때마다 몇 번 맞장구나 끼워 넣을 뿐, 이야기는 뇌로 흘러가지 않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몽고메리 말라달리의 운동화가 경악스러운 가격으로 경매에 부쳐진 사연을 즐겁게 느끼기에는 서준의 감수성이 빈약했다.
그는 룸 미러를 통해 팀의 기이한 열정이 담긴 눈동자를 보았다. 눈두덩이 거뭇하고 핏기 없이 흰 얼굴이 밤을 며칠은 새운 몰골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두운 갈색 눈동자는 번쩍거리며 광채가 돌았다.
문득 서준은 팀의 눈빛에서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어렴풋하게 뒷덜미를 건드리던 기시감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바로 자신이었다. 과거의 서준이었다. 타인이 듣기에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톰팃톳에서 광인처럼 예언을 쏟아 내던 자신과 쏙 닮아 있었다. 당연히 그 시절 서준의 말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대체 요한은 내 뭘 보고서 믿는다고 한 걸까?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톰팃톳에 있던 시절에는 그의 믿음이 이토록 이상하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요한은 맹목적인 구석이 있었다.
“…….”
갑자기 목덜미에 홧홧하게 열이 올랐다. 손바닥이 근질근질하고 바짝 마른 입 안쪽으로 침이 고였다. 더운 날씨도 아니건만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턱 아래를 괜히 왼손으로 문지르며 창문을 열었다. 곧 찬 바람이 뺨을 간지럽혔다. 태양을 가린 먹구름 아래에 뭉친 공기는 물기를 머금어 눅눅했다.
그때 옆에서 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 이야기가 재미없나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원래 운전 중에는 집중해야 하잖아요. 사고 나면 큰일이고.”
너무 대놓고 딴청을 피운 탓인지, 열중하고 있던 팀조차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것저것 변명을 주워섬기던 서준은 할 말이 궁해져 모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그러자 이 히치하이커는 무언가 단단히 착각했다. 서준도 귀담아들을 만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들었는지 양손을 단단히 쥔 것이다.
“아무래도 건물형 심령 스팟은 당장 와닿는 게 없긴 하지요. 서준, 그러면 이런 이야기는 어때요? 마침 이 근처와 관련된 괴담이 하나 있어요.”
“이 근처요?”
서준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길게 뻗은 도로와 감옥의 창살처럼 빼곡하게 자라난 나무줄기를 번갈아 보았다. 애당초 근처라고 말할 장소가 있기나 하던가? 그러나 서준이 당황하건 말건 팀은 확고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이 도로에 말이죠. 나온다고 해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히치하이커가…….”
관찰하듯 힐끔거리는 어두운 갈색 눈동자가 거울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