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5. 혐오와 분노와 공포의 레몬 캔디 히치하이커
울창한 숲을 사이에 두고 파란 트럭이 지나갔다. 덜커덩덜커덩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운전자의 정수리가 차 천장에 통통 닿았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둔통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이마에 진한 주름을 남겼다. 서준이 눈을 사납게 찢고 이를 갈았다. 이렇게 조악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갓 디코이 모텔을 빠져나왔을 때, 방수포를 단 파란색 트럭은 도로를 쭉 달렸다. 문제는 당황했던 탓인지 그것이 원래 가려던 방향이 아닌 엉뚱한 길목을 향했다는 점이다. 저주받은 비디오테이프는 그러잖아도 주름이 덜 잡힌 뇌를 한층 더 매끈하게 만들었다. 하마터면 착각을 깨닫지 못해 조지아가 아닌 몬태나에 도착할 뻔했다.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며 방향을 바로잡고, 차를 갓길에 세워 쪽잠을 자고……. 물론 그동안 지나간 길에 머물 곳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종종 도로 근처에서 영업하는 모텔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으나 하필이면 직전에 일이 생긴 장소가 장소였던지라 평범한 여인숙조차 사악한 마귀가 도사린 마굴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서준은 가녀린 관절이 지르는 비명을 무시하고 운전석에 몸을 웅크렸다. 그는 얇은 담요 한 장으로 차가운 밤이슬을 견뎌 냈다.
아무튼 고난의 여정 끝에 겨우겨우 본 궤도로 접어들었으나 말썽거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 운이 나쁘게도 원래 가려던 길목에 벼락을 맞은 나무가 쪼개져 쓰러져 있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황당함이란!
“이놈의 도로는 왜 가는 곳마다 이 모양 이 꼴이야?”
운전대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가뜩이나 피로가 쌓인 몸이 더욱 둔하고 무거워졌다. 서준은 입으로는 연신 투덜거리고 찌뿌둥한 어깨를 돌리며 트럭의 창문을 내렸다.
목을 빼쭉 내밀어 바깥을 살피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겨우 찾아낸 곁길의 상태는 입이 삐뚤어져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꼴이었다. 다행히 땅이 파이거나 큼직한 돌덩이가 진로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 숲 냄새를 머금은 습한 바람이 들어와 피부에 달라붙었다. 약간 축축한 공기는 진한 풀 내음과 야생동물의 잡내를 함께 풍겼다. 나무 밑동에 달라붙은 이끼를 연상시키는 냄새였다. 싸락싸락 흔들리는 나뭇잎은 색이 짙은 녹빛으로, 어둡게 우거진 수풀은 사람을 거부하는 듯했다. 기분 나쁜 숲이었다. 하기야, 위대한 자연의 입장에서야 서준처럼 부득부득 차를 이끌고 지나가는 인간 따위가 더욱 못마땅하겠지만…….
자신도 좋아서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며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왼쪽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무심코 고개가 돌아갔다.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였다.
나뭇가지는 뼈만 남은 앙상한 팔뚝처럼 보였다. 신경질적으로 마른 가지에 비죽 돋아난 잔가지는 사람의 손가락처럼 느껴졌고, 끄트머리에는 소매인 양 길게 늘어진 것이 이리저리 나부꼈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당연히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는 저것 또한 옷자락일 리 없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올가미 같았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에 나무에 걸린 밧줄……. 서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것이 암시라면 너무나 진부하고 고리타분했다. 그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트럭을 멈추지 않아 이미 거리가 벌어진 후였다. 얇은 입술이 움찔 떨렸다.
‘덩굴이었겠지.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난 눈도 하나니까…….’
인제 와서 되돌아가기는 늦었다. 길이 좁아 차를 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직접 확인해 이 불길한 상상을 구태여 현실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아.”
때마침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수풀의 끝이었다. 그는 일말의 찝찝함을 위장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덜커덩, 트럭이 힘차게 앞으로 쏟아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한 하늘이었다. 몇 시간째 운전하던 눈가가 슬슬 피로해졌다. 서준은 소중한 왼쪽 안구의 고충을 이해했다. 본디 두 개가 나눠서 할 일을 혼자 떠맡았으니 충분히 힘들 만했다. 그도 가능하면 수시로 마사지와 찜질을 해 주며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었다. 이제는 디코이 모텔이 다시 한번 나타나도 뻔뻔스레 입장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도로는 여전히 한적했으며 모텔은커녕 잠시 쉬어 갈 만한 식당이나 편의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도 노숙인가….’
분명 톰팃톳에서 나온 시절만 해도 훨씬 그럴듯한 여행을 꿈꿨건만 현실은 늘 이런 법이다. 단념하고 마음을 굳힐 때였다. 멀리 앞에서 누군가 도로 한복판 위를 양팔을 들어 크게 휘저으며 달려왔다.
“어어!”
갑작스러운 난리 통에 서준이 당황하며 운전 속도를 줄였다. 이 나이에 벌써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인영 또한 뚜렷해졌다. 그는 키가 작고 왜소한 남자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피로감이 묻어나는 얼굴에, 등에는 배낭을 멘 가벼운 차림새였다. 그런데 트럭이 그를 치지도 않았건만 돌연 고꾸라지는 게 아닌가?
놀란 서준이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이 앞으로 불쑥 쏠리며 안전벨트가 가슴과 허리를 조였다. 퍼뜩 고개를 들었지만 트럭의 높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허둥거리며 문을 열고 굴러떨어지듯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헉, 흐억.”
고작해야 한두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남자가 비스듬히 엎어져 있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트럭 앞바퀴에 빨려 들어갔을 뻔한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어이, 이봐요. 대체 무슨 짓을…….”
서준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뺨을 철썩철썩 때리며 정신을 일깨워 주고 싶었지만 괜한 꼬투리를 잡힐까 봐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가 분풀이할 필요도 없었다. 가까이서 본 남자는 이미 입술의 색이 검푸르고 낯빛 또한 어두웠다. 살갗이 희게 튼 뺨이며 땀으로 젖어 축축한 이마는 병색이 완연해 섣부르게 건들기 꺼려졌다.
차라리 구급차를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서준이 주머니 속 휴대 전화를 꺼내려 할 때였다. 남자가 바싹 마른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그는 뭍으로 나온 붕어처럼 힘겹게 뻐끔거렸다. 귀를 바짝 붙여야 겨우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무척이나 작고 가느다랬다.
“무, 무울…….”
탈수 증상이었던 걸까? 남자의 중얼거림에 서준은 운전석으로 돌아가 가방을 열었다. 아직 뜯지 않은 500mL 생수병을 하나 꺼내고는 그것의 뚜껑을 비틀어 남자의 입에 부어 주었다. 고개를 모로 돌린 그의 인중과 윗입술을 적시고 떨어진 물이 아스팔트 바닥을 검게 물들였다.
다행히 수분이 모자란 것 외에는 이상이 없었는지 남자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서준이 건네준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 넣은 그의 눈에 한결 명료한 빛이 감돌았다.
“아, 고맙습니다…….”
“혹시 지병이라도 있어요? 구급차를 부를까요?”
물론 비용은 남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서준은 부디 그가 보험을 들어 놓았길 바라며 예의상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깜짝 놀라 고개를 휘저었다. 매가리 없이 축 늘어졌던 몸이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보험이 없는 모양이다. 남자는 상반신을 바로 세우며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휑뎅그렁한 도로에 있기에 그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의 셔츠는 얇은 긴팔이었고, 바지의 옷감 또한 그리 두텁지 않았다. 오른쪽 무릎에는 갈색 자국이 얼룩져 있었는데, 천이 약간 해진 걸 보아 다치기라도 한 듯했다. 남자의 목 부근에 있는 반들반들한 단추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맙, 고맙습니다. 목도 마르고 머리는 어지러운데 차는 안 지나가지…….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요.”
“대체 어쩌다 이런 곳에 혼자 계신 겁니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곳은 그저 도로 한복판이었다. 그것도 낙후되고 들짐승이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할 법한 그런 도로. 이곳은 여전히 수림 한가운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무가 우거졌다. 장대처럼 솟은 나무의 두꺼운 몸통이 도로 옆에 빼곡하게 자라났고, 버섯의 갓처럼 넓게 자란 이파리가 만들어 낸 그림자는 둥글게 휘어져 땅을 가렸다.
게다가 마구잡이로 엉킨 풀이며 덩굴 따위가 무성했다. 한마디로 주변에는 사람의 발이 닿을 만한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서준의 의아한 시선을 알아차린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아, 저는 히치하이커예요.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가며 여행 중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차를 얻어 타고 가는 중이었죠. 그런데 하필이면 도로 중간에 나무가 쓰러져 있지 뭔가요.”
“아, 그거. 저도 봤습니다.”
“그래요? 아직도 안 치웠다니….”
히치하이커의 말에 따르자면 그 사연은 이러했다. 히치하이커를 태워 주던 운전자가 도로가 막혀 있는 것을 보고는 원래 가려던 방향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향했다. 애초에 그 운전자는 일정에 여유가 있고 마침 근처에 친구도 있었다는 듯했다. 문제는 히치하이커였다.
그도 얌전히 나무가 치워질 때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다시 차를 태워 줄 마음씨 좋은 운전자를 찾아냈으면 되었을 것을, 굳이 홀로 도보 여행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그렇게 지쳤다고요?”
“도로를 바로 걸어왔다면 그럴 리 없었겠죠. 하지만 제가 순간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어요. 정말 멍청한 판단을 내렸죠. 제가 말하기 뭣하지만, 초행길이라 영 감을 못 잡았어요.”
놀랍게도 그는 서준이 트럭을 타고 빠져나온 곁길을 가리켰다.
“찻길을 걷는 건 위험해 보였고 색다른 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는 자신 있었어요. 체력도 충분했고 길도 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걸을수록 내가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앞을 걷는지, 뒤를 걷는지. 어느 쪽으로 들어왔는지,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는지조차.”
그는 지친 얼굴로 어두컴컴한 숲을 흘깃거렸다.
“챙긴 물이며 비상식량도 전부 먹어 치웠어요. 얼마나 헤맸는지 시간 감각도 둔하게 마비되어서는…….”
“차라리 구조 요청을 하지 그랬어요?”
“숲에서는 전파가 안 터졌어요. 나와서는 배터리가 다했고요.”
히치하이커가 지친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침을 삼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겨우겨우 숲을 빠져나왔을 때는 정말 기뻤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멍청하지만, 기력이 죄 빠져나간 걸 몰랐던 셈이죠.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고 눈앞이 흐릿해졌어요. 그런데 뒤에서 차 배기음이 들리지 뭐예요? 눈이 돌아갔죠.”
히치하이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준은 내심 그가 숲에서 방황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도로를 막은 나무를 생각했을 때, 어쩌면 히치하이커와 자신이 아주 잠깐의 시차를 두고 숲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에는 웬 정신 나간 자식이 자신의 깨끗한 신분에 빨간 줄을 그으려 드나 분기가 치솟았지만, 대화할수록 점점 그런 악독한 마음은 가라앉았다. 여행자라는 말에는 언뜻 동질감마저 느꼈다. 수분을 보충한 히치하이커는 한결 편안해진 어조로 말했다.
“저는 캔자스의 캔자스시티로 가는 중이에요.”
“캔자스요?”
서준은 히치하이커의 목적지가 자신이 가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그는 캔자스시티까지 갈 일은 없었지만, 이 텅 비어 쓸쓸한 도로에서 히치하이커를 벗어나게 해 주는 건 가능했다. 그는 이제 갓 탈수 증상에서 헤어난 가엾은 여행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피곤한 낯에 은근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자 히치하이커의 피부에 돋은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심지어 하늘은 흐린 잿빛으로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랐다. 산 날씨만큼은 아니어도, 도로의 날씨 또한 변덕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장갑을 낀 손이 매끈한 턱을 문질렀다.
“나는 캔자스시티까지는 안 가지만 적어도 여기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태워 드릴 수 있는데, 어때요?”
“정말요? 아, 하지만 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히치하이커가 반색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곧 스스로 염치를 아는 인간이라고 주장하듯 겸연쩍게 사양했다. 그러나 히치하이커의 거절은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를 내버려 두고 갔다가는 여러모로 마음이 찝찝하리라는 걸 서준은 알고 있었다.
“제가 여기 올 때도 도로에 쓰러진 나무가 치워지지 않았더군요. 언제 차가 다닐지 모르는데 계속 이곳에만 있다가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나뿐인 눈이 슬쩍 숲을 엿보았다. 들짐승이 불쑥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무성한 수림이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좀 얻어타겠습니다. 고마워요.”
히치하이커는 어디까지나 겸손의 미덕을 발휘해 사양했었다는 듯이 두 번째로 제안하자 냉큼 받아들였다.
“가방을 치울 테니 내 옆자리에 앉도록 하세요.”
서준은 엄지로 뒤를 가리며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 주었다. 겉보기처럼 작고 초라한 몸뚱이는 변변찮은 힘에도 쉽게 딸려 왔다. 서준이 먼저 운전석에 올라타고 가방을 치우자 히치하이커가 제 배낭을 껴안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트럭 내부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구경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태워 주면 위험하지 않나요? 조금쯤은 경각심을 가지는 게 좋아요.”
“흐음.”
히치하이커의 말은 타당했다. 하지만 서준은 지금 새로운 인간상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중이었으며, 친절함을 발휘하고자 마음먹은 상태였다. 크리스티나라면 결코 길에 쓰러져 허덕이는 사람을 모른 체하지 않으리라. 양심적이고 바른 청년은 심드렁하게 검지와 중지의 두 번째 마디로 안전벨트 버클을 툭 두드렸다.
“안전벨트나 똑바로 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