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91)화 (91/156)

#090

뻐억!

뺨을 주저 없이 주먹으로 갈기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준은 눈앞에서 떠다니는 별 개수를 헤아리며 이를 갈았다.

‘돌았나 봐. 이게 무슨 사춘기 청소년 같은 센티멘털한 감수성이야.’

역시 쓰잘데기라고는 한 푼어치도 안 되는 멍청한 생각을 몰아내는 데에는 자학만 한 게 없었다. 가성비가 훌륭했다.

홧홧하게 열이 오른 볼 안쪽을 혀로 핥으며 안내문을 구겼다. 코팅된 종이에 볼품없는 금이 갔다.

“대가리 똑바로 굴려라…. 정 안될 것 같으면 창문으로 도망간다. 그것도 불가능하면 귀신하고 정면으로 마주 본다. 포기는 죽은 다음에 해도 충분해. 이런 허접한 모텔에서 혼자 죽겠냐고.”

부러 소리 내어 말하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언제는 낙원이니 뭐니 지껄여 댄 입으로 두말을 하며 서준은 제 나약한 태도에 싫증을 부렸다.

‘이 세상은 영화가 아니야. 그러니까 영화와 현실이 같을 거라는 망상은 버려야 해.’

기껏 눈 하나 바쳐 가며 얻은 교훈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뻔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어리석기도 힘든데 서준은 자신이 그것을 해냈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 ‘실제상황’ 덕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한결 수월했다. 그러니 그가 지녀야 할 자세는 취사선택이었다. 서준은 안내문의 다음 항목을 읽으며 다짐했다.

‘실제상황을 경전처럼 떠받들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게 정보 덩어리라는 걸 모른 척할 필요도 없지.’

7) 화장실 거울에 낙서를 하지 마시오

화장실에는 발조차 들이밀지 않았다. 자꾸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실제상황’을 떠올렸다. 조세프도 낙서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귀신 같은 존재는 했던 것 같았지만…. 어쨌든 자신은 한 적이 없으므로 서준은 아랫줄로 내려갔다.

8) 세면대의 찬물 뜨거운 물 표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이건….”

고혹적인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항목은 확실하게 이상했다. 조세프가 실수로 화상을 입었을 때, 그는 8번 항목을 꼼꼼히 읽고는 상처에 차가운 물을 붓기 위해 뜨거운 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렸다. 그러나 막상 쏟아진 건 뜨거운 물이었다. 화상은 더 심각해졌고 조세프는 화장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차가운 물이었다면 그가 그토록 화를 내며 항의 전화를 했을 리 없었다. 왜 안내문과 달리 뜨거운 물 표시에서 뜨거운 물이 나온 걸까?

“잠깐. 아니, 설마.”

서준의 안색이 거멓게 죽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쥐어 잡았다. 아찔한 통증과도 같은 감각에 경악이 입가를 스쳤다. 새까만 눈동자가 벌벌 떨면서 안내문을 다시 읽어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점을 발견했다.

“뭐 이런 개같은….”

이 안내문은 거짓말이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안내문을 구성하는 문장은 기본적으로 명령형이다. 하지만 몇몇 항목은 부탁하는 어투에 가까웠다. 명백히 다른 어조였으나 내용이 다른 항목과 비슷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세프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하지만 그것이 함정이었다. 명령형이 아닌 항목을 뽑아 보면 이렇다.

냉장고의 음료는 마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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