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레이지는 요한을 불신하면서도 카운터 뒤편으로 들어가 조작을 시작했다. 그녀는 피와 커피로 범벅이 된 카운터를 대강 닦아 내고는 의자에 앉았다.
“미리 말해 두는데 소리는 원래 없어.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손을 바삐 움직이던 레이지가 경고를 날렸다. 요한도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았기에 선선히 수긍했다.
“상상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
매몰차고 날카롭기만 하던 얼굴에 얼핏 혐오가 서렸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힘겹게 호흡하는 번의 숨소리, 도베르만이 철창을 이로 물어뜯고 갉는 소리…. 생활 소음으로 보기에는 약간 이상한 소리가 편의점 내부를 채웠다.
적막은 사람에게 평온함을 안겨 주지만,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키워 나가기도 한다. 요한은 입술을 핥은 후 넌지시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팔에 난 상처요. 개한테 물린 거죠?”
태연자약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 사장은 자신이 불렸다는 걸 곧장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어디 태평하게 사담이나 나눌 사이이던가?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장에게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사장은 그때야 레이지의 경고를 이해했다. 번을 인질로 잡은 남자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턱이 빠득거렸다. 그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자신을 우롱한다고 여겼다. 그저 기름이나 제공해야 할 살덩이 주제에! 기껏해야 방년의 나이대인 청년이 두 자녀를 지닌 가장을 조롱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는 공경, 혹은 두려움을 받아야 옳았다.
커피의 향과 피비린내가 섞인 카운터에 등을 기대며 사장은 개의 사체를 들어 올렸다. 목을 붙잡아 부러 손에 힘을 주며 과시했다. 들어 올린 사체에서 피가 흘러 그의 손을 흠뻑 적시고 팔까지 흘렀다.
“아, 이 개를 말하는 거라면, 그렇지. 시끄럽게 짖어 대는 놈들은 패 죽여야 조용해지지.”
새빨간 피로 물든 손이 형광등의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요한은 피가 상처로 고여 스며드는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윗물이 아랫물로 흐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피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흘러내렸다.
“그 개의 주인은 죽었겠죠. 당신들이 키우던 개가 아닐 테니까.”
요한의 질문에 무표정하던 얼굴이 잔혹하게 일그러졌다. 레이지는 그의 말을 음미하듯 황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창고에서 당한 이후부터 요한이 입만 열면 복장이 터지는 표정을 짓던 레이지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붉은 혀가 뱀처럼 날름거렸다.
“아아…. 좋았지, 도트 알본. 어리석고, 순진하고. 혼자 사는 데다가, 무엇보다 하얀 살이 부드러웠어. 부유하게 산 사람이 풍기는 기름진 냄새…. 그런 사람한테서는 좋은 기름이 나와.”
요한은 새하얀 살갗의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다. 개를 아끼고, 부드러운 얼굴에 따뜻한 살냄새를 풍겼을 사람. 운이 나빠 이런 주유소에 들러 버리고 만 사람. 그러나 그의 시도는 금세 불발되었다. 애초에 애도하겠다는 갸륵한 마음씨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레이지는 그 사람을 따라 했지요? 개를 목숨만큼 아낀다든가,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든가….”
“맞아. 그런 식으로 해야 그럴듯하거든. 진심이 담긴 말이니까.”
황홀경에 젖은 게 언제였냐는 듯 달뜬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건조해졌다. 추억을 음미하던 레이지는 다시금 버석버석한 손길로 작업했다. 그녀는 성가신 모기를 쫓아내듯 요한을 치워 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반면 사장은 손에 잡히는 것을 꽉 쥐어짜며 분을 삭이는 중이었다. 이미 망가진 개의 두부頭部는 물론 카운터 근처의 제품들이 하나같이 찌그러졌다.
바퀴 달린 의자가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가 벽에 부딪혔다. 등을 곧추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지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였다. 하얀 손 안에는 평범한 USB가 하나 놓여 있었다. 고작해야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인 데다 값싼 물건이었다.
요한의 심장이 번에게 여러 차례 질문하고 답을 얻어 냈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뛰었다. 그가 모르는 서준의 일상적인 모습이 저 자그마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기쁘게 웃으며 요한이 물어보았다.
“그 사람이 왜 병원에 가려고 했다고 생각해요?”
“어디가 아팠겠지. 열어 보니 체한 건 아니었지만.”
레이지는 관심 없다는 투로 쌀쌀맞게 대꾸했다. 사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언뜻 천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야 당연하죠.”
“헛소리 작작 하고 번이나 내놔. USB는 그다음에 주겠어.”
카운터에서 걸어 나온 레이지가 사장의 옆에 섰다. 그녀는 손에 쥔 물건의 가치가 제 형제의 목숨값이라는 것이 기가 막혔으나 본디 미치광이는 정상인이 이해 못 할 셈법을 가지기 마련이다. 레이지는 치솟는 불쾌함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게 무슨 억지람. 레이지, 상식적으로 USB를 넘겨야 내가 번을 돌려주죠.”
요한으로서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레이지를 바라보았다. 와락 구겨진 얼굴을 향해 요한이 찬찬히 설명했다.
“번을 돌려줬는데 USB를 주지 않으면 난 당신들 손에 죽을 게 뻔하잖아요. 반면 내가 USB를 받으면 나는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번을 데리고 있어 봐야 짐짝밖에 더 되겠어요? 당장이야 인질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곳을 나가고 달려야 할 때 번…. 그러니까 최소 60kg 정도의 무게를 지면 속도가 느려지는 건 당연하고. 난 그렇게까지 번하고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
반들반들한 검은 눈동자가 요한을 노려보았다. 그의 말은 일견 타당하게 들렸으며 그럭저럭 논리적이었다. 잠깐 사이에 보인 요한의 성격 또한 그의 설명과 들어맞았다.
만약 요한이 방어적으로 굴었다면 레이지는 허튼소리라며 단번에 일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말했다시피 먼저 몸을 움직이는 걸 선호했다. 교활하지만 공격적인 성미…. 심지어 번을 방패로 삼았을 때조차 인질을 이용해 안전을 꾀한 게 아니라 아버지의 손으로 자식을 때리게 만드는 극악무도한 인간이었다.
“좋아. 그럼 동시에 교환하도록 해.”
“좋아요. 아, 그쪽 사장님 문 쪽에 서 있지 말고 레이지의 오른쪽으로 가 있으세요. 그래야 내가 편하게 나가지.”
사장의 시선이 살기를 담아 번뜩거리자 요한의 품에 안긴 번이 무어라 꾸루룩거렸다. 잘 들리지는 않았다. 레이지가 가볍게 혀를 차며 빈손으로 사장의 팔을 툭 쳤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벌건 피가 스며들었다. 개를 내려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장이 혀를 차며 위치를 옮겼다. 물론 자리를 바꾸는 와중에도 요한을 노려보는 건 잊지 않았다.
“셋에 넘기는 걸로 하죠.”
“셋.”
요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레이지가 곧장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둘.”
깨물어서 붉게 부푼 입술이 오므라들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 레이지는 번을 보며 어깨를 들었다. 번의 코에서 핏물이 주룩 흘렀다.
“하나.”
초읽기가 끝난 순간,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레이지의 손아귀에 있던 USB가 허공을 날았다. 요한은 번의 등을 발로 차 밀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사장이 불을 켠 라이터를 쥐고 주먹질했다. 돌덩이 같은 주먹이 살의를 담아 맹렬하게 날아왔다. 그러나 번을 놓아주며 비어 버린 손으로 USB를 낚아챈 요한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쇠 지렛대로 사장의 손목을 가격했다.
“끄, 윽!”
사장이 숨과 함께 침을 내뱉었다. 단순히 후려친 게 아니라 손목을 위에서부터 내려찍는 공격은 그의 살점을 깊숙하게 패고 뼈를 부러뜨렸다. 사장의 손가락에서 힘이 풀리며 라이터가 떨어졌다. 요한이 수월하게 사장을 밀어 내며 몸을 피하자 라이터의 불은 그가 아닌 매대 아래의 상자에 떨어졌다. 정가에 판매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물건을 떨이로 모아 둔 상자였다. 좁은 공간이었다.
레이지가 번을 수습하는 사이 사장은 손목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다시 요한을 노렸다. 이렇다 할 무기는 없었지만 그의 지독한 살의가 실체를 지니기라도 한 듯 압박감을 발휘했다. 그러나 사장은 알지 못했다. 요한이 그들의 생각보다 조금 더 이성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가는 유리 상자가 박살이 나며 찾아왔다.
“악! 마마!”
“멜린다!”
레이지와 사장의 절규가 편의점 내부를 가득 채웠다. 요한은 번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인질을 구태여 끝까지 잡고 늘어질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더 가볍고 편리한 인골이 코앞에 번듯하게 장식되어 있지 않던가? 쇠 지렛대가 깨뜨린 유리 조각이 비산했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에 레이지의 창백한 얼굴과 부릅뜬 사장의 눈동자가 비쳤다.
요한은 손쉽게 새로운 인질을 붙잡았다. 그는 눈구멍과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머리뼈를 안정적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인사하듯 가볍게 흔들었다.
“마마의, 마마의 머리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목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레이지가 번을 내팽개치고 이를 갈았다. 그녀는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잡고픈 눈치였으나 썩 변변찮은 게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사장은 레이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전혀 덜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온 얼굴에 핏줄이 불룩하게 솟았으며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 한쪽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너, 멜린다에게 손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손톱을 뽑고, 산 채로 핏줄을 뜯어내 주마.”
“이분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려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미 잘 알고 있거든요. 가족끼리 정이 넘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요한이 왼손으로 쇠 지렛대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는 한결 가벼워진 태도였다. 기실 살과 근육으로 채워진 번보다야 두개골 하나뿐인 멜린다의 무게가 적은 건 당연했다. 짐작대로 사장과 레이지는 새로운 인질 때문에 꼼짝도 못 했다. 물론 요한도 유골을 함부로 대하는 불한당이 되고픈 건 아니었다.
“조용히 나간다니까 왜 안 믿는지 모르겠어요.”
“개자식, 유골을 함부로 건드리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넌 지옥에 떨어질 거야!”
격분한 레이지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번이 잡혔을 때보다 더 조바심을 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다쳐도 살이 차오른다. 흉은 남을지언정 상처는 낫는다. 그러나 죽어 버린 멜린다의 유골은 깨지면 두 번 다시 아물지 못했다. 요한은 효율적인 인질에 제법 만족하며 입을 열었다.
“레이지, 당신이 척한 사람 말이에요. 그 사람이 간다는 병원요. 그거, 본인이 간다는 뜻이었을까요?”
“아까부터 계속 뜬금없는 소리만….”
“아마 그 사람은 동물 병원에 가는 중이었을 거예요.”
요한이 멜린다를 공처럼 가볍게 던졌다 잡았다. 레이지는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손에 집중해 막상 요한이 하는 말에는 건성으로 굴었다.
“동물 병원?”
미심쩍다는 듯 되묻던 사장의 낯이 천천히 굳었다. 요한이 살짝 미소 지으며 바깥의 우리에 갇힌 개를 힐끔거렸다.
“포스터도 붙여 놨잖아요? 왜 몰랐던 것처럼 그러는지 저야말로 모르겠어요.”
침을 흘리고, 물을 무서워하고, 공격적인 개. 사소하게 넘겼던 증상 하나하나가 다시 보였다. 비록 야생 동물은 아니었으나 우리 속에 갇힌 개는 어떤 조건을 충분히 달성했다.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사장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팔을 보았다. 아까 제가 무엇을 했던가? 죽은 개를 높이 들었다. 개의 피가 흘러 구멍이 뚫린 상처에 들어가도록….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수없이 했었다. 가업도 가업이거니와,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당했을 때처럼 총에 맞거나 경찰이 들이닥칠 가능성도 늘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광견병이라니? 한 발짝 늦게 상황을 파악한 레이지가 경악하며 사장을 돌아보았다.
“파, 파파…. 설마, 아닐 거예요. 아니에요. 파파.”
그리고 모든 이의 관심이 사장을 향했을 때, 얇은 비닐이 불에 눌어붙고 구멍이 생겼다. 사장이 요한의 입에 처박으려다 실패한 라이터가 상자 속에서 조용히 불을 옮겼다. 불꽃놀이 패키지 아래에 있는 떨이 상자의 가장 맨 위에 있는 상품은 스파클라였다. 긴 철사 끄트머리로 불똥이 튀고 본래 그러한 물건이라는 듯 불이 붙었다. 따다닥! 따발총 소리가 나더니 불꽃이 일어났다. 첫 번째 폭죽에 불이 붙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니었다.
휘파람새가 울듯 높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빛이 터지는 순간은 끔찍하도록 눈부셨다. 원래 높은 공중에서 폭발해야 할 화약이 새빨간 꼬리를 길게 늘이며 천장으로 올라갔다. 백열등과 부딪힌 화약이 얄팍한 유리를 깨면서 아래로 쏟아졌다.
“아악!”
하필 운 나쁘게도 바로 밑에 있던 레이지가 양팔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그러나 빨간 폭죽은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선봉에 불과했다. 곧 상자 가득 요란한 소리가 나며 상자 하나 분량의 폭죽이 불타올랐다.
피유우웅…. 퍼엉!
귀가 먹먹해지도록 큰 소리를 터뜨리며 수많은 폭죽이 긴 궤적을 그렸다. 온갖 방향으로 날아가며 흩어진 화약은 모래처럼 작은 불똥을 퍼뜨렸다. 알록달록한 잔상을 남기는 새하얀 빛 알갱이가 너절한 편의점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레이지와 사장, 심지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던 번까지 온몸을 허우적거리며 폭죽을 피했다. 고속으로 촬영한 장면을 일반 속도로 재생하듯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극적이고 불꽃은 화려하게 튀었다. 눈부시게 폭발하는 화약과 매캐한 공기가 어우러졌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요한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편의점 문을 박차고 나갔다. 활짝 열린 문으로 나가자 어느덧 어둑해진 사위가 그를 맞이했다.
서늘한 밤공기와 전신을 감싸고 주유소 특유의 기름 냄새가 났으나 그것이 못내 향기롭게 느껴졌다. 하늘 높이 떠 반짝거리는 별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원하던 영상을 얻은 요한의 눈에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비쳤다. 하지만 그는 당장 자신의 작고 귀여운 장수풍뎅이로 달려가는 대신 쇠 지렛대로 우리의 철창을 고정하던 못을 시원스레 빼냈다.
철창으로 이갈이하던 도베르만은 거구의 남자가 다가오자 몸을 움츠렸다. 요한은 개가 달려들기 전 먼저 도베르만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는 사실 개가 공수병에 걸렸건, 걸리지 않았건 별 상관없었다. 사장 같은 사람은 원한에 있어 무척 끈질긴 부류이니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사용했을 뿐이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손에 든 거추장스러운 선물을 도베르만의 머리에 씌운 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개가 깽! 짖더니 제자리에서 두어 바퀴 돌고는 쌩하니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안쪽에서 레이지가 번을 창고에 밀어 넣고 사장이 넓은 천을 들고 휘적거리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정이 깊은 사람들이니 가족을 무시하지는 않으리라. 요한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로 챙기는 그들의 가족애에 경의를 표했다.
머리에 해골을 뒤집어쓴 개가 편의점 안쪽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때 우연히 개가 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밟았다. 꺼졌던 TV가 켜지며 발작적으로 흥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 사람을 산 채로 걸레처럼 쥐어짜서 기름을 짜내는 미친 가족이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