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71)화 (71/156)

#070

“네, 엄마. 아직 조지아까지는 멀었죠. 한참 남았어요.”

작은 차 어디에 그만한 거구를 구겨 넣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큼직한 몸뚱이였다. 요한은 어깨와 뺨 사이에 휴대 전화를 끼운 채 전화했다. 그의 양손은 충분히 바빴다. 한쪽 손으로는 주유기를 잡고 다른 손으로 주유구를 더듬거렸다.

곧 주유기를 꽂아 넣은 요한은 양손을 두꺼운 허벅다리에 대강 문지른 후 왼손으로 휴대 전화를 잡았다. 그의 손등에는 큰 흉이 남아 있었다. 떨어져 나간 살점이 차오른 자국이었다. 요한은 시원스레 부는 바람을 기분 좋게 받으며 전화를 이어 나갔다.

“준이 부모님께도 안부 인사 전해 주세요. 말씀하신 대로 따라가고 있다고요. 하하, 절 믿어 주시는데 최선을 다해야죠. 그럼요. 저도 얼른 만나고 싶어서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에요. 물론 과속은 조심할게요.”

청년의 쾌활한 목소리가 지나온 길을 설명했다. 드넓게 트인 도로 너머의 지평선과 아름답게 펼쳐진 옥수수밭, 공장 지대와 도심을 벗어난 깨끗한 공기와 하늘…. 요한은 서준을 쫓는 여행길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는 애교를 부리며 걸쇠가 풀린 주유기를 차에서 빼냈다. 공기 터지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주유구 뚜껑을 닫은 뒤, 요한이 아양을 부리듯 배시시 웃었다.

“집이야 저도 그리워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비프스튜도 먹고 싶고요. 나트륨을 그렇게 획기적으로 줄인 훌륭한 요리는 전역을 뒤져도 찾기 어려울걸요?”

입으로는 연방 수다를 떨던 요한의 시선이 가늠하듯이 허공을 응시했다. 색이 바랜 지붕은 관리하지 않는 티가 여실했다. 맑은 하늘을 고스란히 옮긴 듯 깨끗한 파란색 눈동자가 이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는 주유소와 편의점을 번갈아 보더니 곧 태양처럼 밝게 미소 지었다.

“아, 엄마. 나중에 전화할게요. 네. 저도 사랑해요, 엄마.”

***

편의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직원이 자리를 비웠는지 카운터 안쪽이 텅 비어 있었다. 요한은 눈을 깜빡거리며 편의점 내부를 살폈다. 편의점은 평범한 구조였다. 으레 주유소에 붙어 있을 법한 장소로 오래된 건물 특유의 얼룩 따위가 벽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심할 정도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의 곰팡이는 현대인의 친근한 친구였으므로 놀라기도 우스웠다.

더러운 유리창에 화재 관련 포스터와 야생 동물을 주의하라는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화재야 주유소이니 당연했고, 야생 동물은 근방의 너구리나 들개 등을 말하는 듯했다. 가볍게 눈으로 읽어 내려가니 공수병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현대인이 유의해야 할 문제이긴 했으나 아무래도 요한의 눈길이 오래 머문 것은 불조심 포스터였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끄트머리가 말린 포스터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서준의 극진한 손길이 닿아 있던 하몽 편의점과는 천양지차였다. 이벤트 시기를 놓치고 치우지 않은 장식품 같은 해골 모형이 특히 가관이었다. 작은 동판에 적힌 위대한 성모를 운운하는 설명이며 부러진 늑골이 사실감을 더해, 유리 상자 안에 놓여 진열된 모형은 제법 그럴싸했으나 역시 생뚱맞았고, 요한의 관심을 끌기는 모자랐다.

종종 머릿속에 근육만 들어찼다는 오해를 사지만 그는 독서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한이 손을 대는 책은 대부분 인문학 범주에 들어갔다. 물리나 과학, 수학은 요한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과 체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흥미를 잃은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요한이 찾고자 한 물건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비록 주유소나 편의점이나 꼴이 비루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도둑이나 강도를 경계하는 마음은 충분한지 천장 모서리에 폐쇄 회로 TV가 당당히 달려 있었다.

요한은 달콤하게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올려다보았다. 4-4-4호선 도로는 다른 곳으로 빠질 갈림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위대한 대자연 외에는 이렇다 할 문명의 이기도 없었다. 이는 다시 말해 서준도 이곳에 들렀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요한은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귓속으로 발음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의 이목을 끈 것은 바로 편의점 안쪽 선반에 놓인 TV였다. 그가 크리스티나도 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브라운관인지, 아니면 적당히 구색만 맞췄는지 알 길은 요원했으나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직원이 틀어 놓고 자리를 비운 선반 위 TV는 홀로 시끄럽게 떠드는 중이었다. 뉴스는 근방에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인한 도로 매몰 사고를 다루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워낙 한갓진 도로였기 때문이다. 매몰된 도로는 바로 주간 고속 도로 제4-4-4호선이었다.

리포터는 이런 지루한 사건에 배당받은 것이 썩 마음에 차지 않는 듯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뒤로 무너진 토사와 흙과 돌덩이로 막힌 도로가 언뜻 보였다. 포커스가 제대로 맞지 않는 그곳에는 경찰차가 도착했다. 가끔씩 고개를 돌리며 뒤를 확인하던 리포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경찰차로 다가가자 카메라맨도 바삐 따라가는지 화면이 덜걱덜걱 흔들렸다.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은 귓가를 긁으며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다가, 리포터가 내민 마이크에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리포터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오, 여기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혹시 이 길 너머 심각한 사건이 벌어진 걸까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 다급한 얼굴을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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