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67)화 (67/156)

#066

“음….”

확실히 살인 허수아비와 트레이시, 베일리를 주먹으로 응징하는 것보다는 현실성 있는 계획이었다. 서준의 얄팍한 주먹질은 손가락 골절보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리라.

머릿속으로 승률을 가늠하던 서준은 미처 숨기지 못한 기대와 희망으로 반짝거리는 피어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살아 있지 않은 몸인데도 불구하고 눈동자에는 어렴풋한 희망이 서려 있었다. 그 마음을 숨기고 싶었던 걸까, 시선이 얽히자 피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은 이런 일은 드문 편이에요. 적어도 제가 본 죽은 자들은 에이프릴처럼 패악을 저지르는 경우는 보지 못했었죠.”

후우, 하며 작은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아이에게 폐 호흡은 필요하지 않으니 기분상의 문제였다.

“원래는…. 그러니까 이렇게 이상한 공간이 아니라면 말이죠, 유령하고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건 그렇게 좋은 계획이 아니에요. 넉넉하게 시간을 들여서 그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아내는 게 올바르죠.”

제법 노련미가 묻어나는 말씨였다. 서준은 새삼스럽게 피어의 야무진 표정에서 숙련된 퇴마사의 흔적을 느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숱한 경험을 쌓은 피어가 지금은 유령이 되어 버렸으니 세상일이 참으로 얄궂었다. 서준은 생각이 난 김에 물어보았다.

“피어, 넌 혹시 생전에 엑소시스트나 뭐 그런 거였어?”

나이가 나이이니 직업은 아닐지언정 스스로 활동해 왔을지도 모를 일 아니던가? 하지만 피어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저었다.

“그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요. 눈에 보이니까….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야 했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을 찍은 사후 사진, 포스트 모템이란 것도 찾아봤어요. 제가 하려는 일하고는 별 상관 없지만요. 그러고 보니 제 사진도 이제 사후 사진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더 어릴 때는 엄마가 찍어 주신 사장이 몇 장 있었거든요.”

“글쎄다. 사진 속의 넌 살아 있던 시절에 찍은 거니까….”

말을 어물거린 이유는 순전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피어는 정상적으로 말도 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죽은 존재였다. 반면 사진 속에 박제된 피어는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생생히 살아 있었다. 말문이 막힌 그를 보던 피어가 아이답지 않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이 샜네요. 처음에는 산 사람과 구분하지 못해 말을 걸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외로워서 말을 걸었죠. 물론 제대로 대화가 되는 건 아니었어요. 그들은, 뭐랄까. 고장 난 라디오 같았죠.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자꾸 듣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왜 죽었는지 찾아봤어요. 요즘은 정보 과다한 시대니까요. 어렵지는 않았죠.”

피어는 정보 과다라는 단어를 신중히 발음했다. 어려운 용어를 자칫 잘못 발음할까 봐 신경을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보 과다….”

그리고 그 단어는 서준에게도 깊은 감상을 남겼다. 그는 눈썹을 약간 찡그리고는 되물었다.

“그, 귀신들의 생전 추억 같은 게 그렇게 중요해?”

“당연하죠.”

다 큰 어른의 은밀한 기대감을 아이는 무시했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소녀가 말을 이었다.

“봐요, 제가 설탕이나 향신료로 만들어졌나요? 아니에요. 저는 살도 피도 없어요. 있는 건 기억이에요. 계속 말했잖아요. 죽을 때 뭘 두려워했는지,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아는 게 중요한 이유는 죽은 사람에게 마음이 몸을 대신할 껍데기를 만들기 때문이에요.”

“껍데기….”

“그것만이 아니에요. 죽은 사람의 사연을 알아야 그들을 향한 두려움이 사라져요.”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네.”

피어의 손가락이, 말하자면 영혼의 자취가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 빛이 작은 손톱을 투명하게 빛냈다.

“옛날 사람들은 천둥과 벼락을 신이 내리는 벌이라고 믿고 두려워했대요.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살아갔던 우리는 이제 그게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아요. 원리를 이해하고 이전처럼 막연한 공포에 떨지 않게 된 거죠.”

서준은 몰랐다. 그는 과학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기실 서준이 친하게 지내는 과목이 몇 없기는 했다. 하지만 그도 눈치가 있어 입을 다물고 피어의 설명을 얌전히 들었다.

“천둥과 벼락을 파헤친 게 과학이라면, 영혼을 파헤치는 건 과거의 기록인 셈이에요. 두려움이 없어야 영혼은 그저 영혼으로 존재할 수 있어요. 불필요한 군살이 붙어 버리면 영혼은 다른 존재로 점점 바뀌어 버려요. 그건 불쌍한 일이에요.”

서준은 입을 다물었다. 죽은 본인이 저렇게 말하는데 반박할 거리가 부족했다. 선뜩한 손길이 그의 차가운 안구를 쓰다듬는 듯했다. 과거라니, 이런 우연이 세상에 다 있을까? 하지만 늘 그렇듯 서준의 인생에서 싫다는 감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살기 위해서 이미 수치스러운 선택을 몇 번이나 하지 않았던가.

피어는 하지만, 하며 이마를 찡그렸다. 소녀는 고심하더니 흙을 발끝으로 직 그었다.

“이런 판국에 한가롭게 저 사람들의 구성 요소를 알아내는 건 어렵겠죠. 그러니까 살인 허수아비의, 에이프릴의 배를 파헤치자는 말이에요.”

“왜 하필 배야?”

“생각해 보세요, 아저씨. 우리는 죽는 순간 마지막에 잃어버린 걸 영원히 잃어버려요. 그건 상실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겠죠. 상실은 집착을 부른다…고 책에서 읽었어요. 아저씨도 말했잖아요. 엄마와 베일리 아저씨가 먹는 것에 집착한다고요. 에이프릴은 배를 가르는 것에 집착해요. 그러니 에이프릴이 부모님에게 한 일은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아마 에이프릴도 배곯아 죽었겠죠. 그러니 배 속에 제 손을 숨겼을 가능성이 커요.”

그렇지 않나요? 하고 피어가 긴장한 얼굴로 서준을 올려다보았다. 서준은 피어의 추측이 어느 정도 옳다고 여겼다. 소녀가 한껏 생각해 낸 추론은 그럭저럭 얼개가 맞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피어의 말대로 죽은 자의 사정을 아는 게 중요하다면 그들은 추측이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고 왜곡되지 않은 과거 자체를 알아야 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거치지 않고, 타인의 입으로 정제되지 못한 현실을.

그리고 서준은 그것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는 없을 오른쪽 눈이 욱신거렸다. 손바닥으로 지그시 눈꺼풀을 눌렀다. 단단한 의안이 피부 한 겹 너머로 느껴졌다.

“아저씨?”

서준은 피어의 말끄럼한 시선과 마주쳤다. 유령, 귀신, 혼령, 영혼…. 그 어떤 단어를 사용해도 피어가 죽은 존재라는 걸 상기시킬 뿐이다. 악인은커녕 무엇도 되지 못한 작은 아이.

눈을 잃기 전의 서준이라면 거리낌 없이 피어를 버려두었을 터이다. 그는 홀로 생존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알았고 타자와 관계할 마음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지금 와서는 모두 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준은 비참할 정도로 어리석은 광인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요한의 순연한 사랑을 엿보았을 때, 온몸이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이 그를 덮쳤다. 알몸뚱이로 대로를 활보한 것보다 더한 공포였다. 더는 요한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주의 이유로는 충분했다. 오랜 꿈이라고 변명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그렇게 이곳에 왔다.

서준은 피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버석한 촉감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장갑을 낀 탓에 감각이 둔하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장갑 탓일까? 아무리 선명해도 이미 죽은 사람이 지닌 질량은 산 사람과 차이 날 수밖에 없다.

“피어, 내가 좀 이상하게 굴지도 몰라. 그래도 미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실은 아주 예전부터, 그는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고 싶었다. 서준은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흙바닥을 긁었다. 길디긴 창자가 두 손 가득 담겼다. 썩기 시작한 내장의 감촉은 개구리의 배를 만지는 듯했다. 축축하고 불쾌한 탄력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눈꺼풀 안쪽에서 벼락같은 빛살이 지나갔다.

“큭!”

거꾸로 매달린 채 마구잡이로 흔들린 기분이었다. 속을 진탕 휘젓고 창자를 일자로 곱게 편 다음 다시 아무렇게나 쑤셔 박는다면 이 불쾌함의 반절이나 겨우 표현할 수 있을까? 서준의 손에서 내장이 떨어졌다. 철퍼덕 소리가 아래에서 났지만 차마 어떤 꼴이 되었는지 볼 신경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저씨?”

옆에서 조심스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꾸할 기력조차 부족했다. 서준은 간신히 손사래를 치며 무릎으로 기어갔다. 그의 꼴은 트레이시나 베일리보다 더 좀비에 가까웠다.

“피어, 잠시, 가까이 오지, 우웨에겍.”

결국 서준은 참지 못하고 토악질했다. 성대하게 게워 내는 그의 옆에서 피어가 얼쩡거리며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준은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이나 이어 갔다.

‘남의 밭인데 이래도 되나? 근데 악령이랑 괴물이 날뛰는 마당에 여기 주인, 밭 관리 너무 안 하는 거 아니야?’

위에서 쓴 물이 올라올 때까지 한참 동안 속을 비운 서준이 비틀거리며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눈이 얼얼하고 목구멍이 쓰라렸지만 실컷 비운 보람이 있는지 혼몽하던 정신이 깨끗해졌다. 입가를 대충 닦은 서준이 안절부절못하는 피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피어. 네 말대로 죽은 사람의 과거를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고어 스플래터 쇼를 재생한 가치가 있었다. 그는 장갑을 도로 끼며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두어 대 쥐어박았다. 정수리가 얼얼하니 아파 왔지만 알알하던 정신머리가 그나마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준은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피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 손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냈어.”

***

에이프릴은 심심했다. 기껏 생긴 장난감을 잃어버린 탓이다. 무료하다…는 감정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던 시절부터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었다. 훔치고 싶으면 훔치고, 죽이고 싶으면 죽였다.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건 ‘나’였다. 그 외의 것들은 부속품에 불과했다. 타인이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런 타자의 감정이야 에이프릴이 알 바 아니었다. 전부 자기 이외 다른 사람의 문제일 뿐.

그래서 벌을 받게 되었을 때는 무척이나 화가 났다. 특히 그를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할 만큼 했다고 지껄이는 부모의 주둥이를 찢어 버리지 못해 분기가 치밀었다. 부모라면 자식을 조건 없이, 영원히 아끼고 편을 들어 주어야 마땅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너흰 몹시 나쁜 부모야.”

“마, 마, 마, 맞아요.”

턱이 빠진 트레이시가 맞장구쳤다.

“옳으신 말씀, 말쓰, 쓰으으으음.”

혀가 길게 빠진 베일리도 동의했다.

“너희 따위 말고 피어도 얼른 오면 좋을 텐데.”

“맞, 아, 아, 요.”

“옳으, 시, 이인, 말, 씀.”

흉측한 몰골의 부부가 인형처럼 몸을 움직이자 에이프릴은 한숨을 푹 내쉬며 한탄했다. 그들의 육체는 엉그러져 이제 사람이라 부르기 미흡했다. 아무래도 뜀박질을 시킨 것이 원인인 듯했다. 하긴, 오래 썼지. 에이프릴이 혼잣말했다.

망가진 인형과는 교양 있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물론 그는 못된 부모인 로렌 부부를 싫어했으므로 그들이 멀쩡했더라도 썩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프릴은 자식을 버리는 부모를 혐오했다. 가능하다면 모조리 죽이고팠다.

“하필 다리를 다 붙이고 만난 게 너희인 게 내 불행이었어.”

“옳으신, 옳으신, 마아아알, 씀.”

기어이 베일리의 혀가 끊겼다. 에이프릴은 수많은 다리로 선홍색 살점을 짓밟았다. 다리의 원주인들은 옥수수밭의 거름이 된 지 오래였다. 에이프릴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옥수수밭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서 필요한 만큼 다리를 모았더니 이후로 근방에 행인이 뚝 끊겼다. 로렌 부부와 피어가 들어온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로렌 부부는 에이프릴의 오랜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트레이시와 베일리의 배를 가른 후였다.

반면 로렌 부부의 아이인 피어에게는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피어는 에이프릴과 똑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옥수수밭에서 아사했다. 오로지 피어만이 그와 동질감을 느낄 자격이 있었다.

피어는 에이프릴을 피해 도망 다니지만 그게 얼마나 더 이어질까? 유골을 되찾지 못하는 한 피어는 옥수수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에이프릴은 어른스럽게 기다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내심도 점점 끝이 보였다…. 원체 욕망대로 살았던 몸이다. 에이프릴은 네 살배기 아이와 비교해도 참을성이 부족했다.

차라리 직접 찾으러 갈까 고민하던 때, 높이 솟은 옥수수 줄기가 흔들렸다. 옥수수 사이로 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에이프릴의 입가가 찢어지듯 올라갔다. 그가 말 그대로 무거운 발들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피어와 새로운 장난감이 그에게 걸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