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그렇게 서준은 퇴원했다. 임시 의안을 끼고, 다래끼 난 환자처럼 안대를 한 채. 숨을 들이마시자 싱그러운 풀 내음 대신 맵싸한 매연이 솔솔 들어왔다. 서준은 목을 붙잡고 캑캑거렸다. 기침을 몇 번 하고 난 뒤에야 비 내린 후의 깨끗한 공기가 콧구멍을 통과했다.
코를 훌쩍거리며 어깨에 멘 가방끈을 추켜올렸다. 스포츠 백팩 안에는 그간 병실 생활을 하며 사용한 옷이며 물건이 잡다하게 들어 있어 제법 묵직했다. 그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를 바로 세우며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빗물 웅덩이를 밟을라 폴짝 뛰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부모님의 안락한 보살핌을 받으며 편히 집으로 이송되어야 옳았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하필 어제저녁 모친이 근무하는 회사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우박과 돌풍을 동반한 폭우는 당연하다는 듯 뇌우도 함께했다. 그런데 이놈의 벼락이 같은 곳에 열세 번이나 내리꽂혔다.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다.
서준으로서는 서버니 클라우드니 하는 단어를 귀동냥으로 들었으나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어지간한 말썽이 아니었는지 수많은 직원이 반강제적으로 차출되고, 하루를 꼬박 지새웠으나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덕분에 아버지는 간단한 세면도구며 옷 따위를 들고 어머니에게 갔다. 그는 서준의 병실에서 연락을 받은 후 떨떠름한 표정으로 13일이라 벼락도 열세 번이나 쳤나 보다, 하며 그 나름의 농담을 시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서준의 부친에게 코미디언의 재능은 없었다.
서준은 아버지가 부리는 익살 뒷면의 걱정을 읽은 후 미련 없이 그를 어머니에게 보내 주었다. 서준의 배려에도 부친은 망설였으나 유괴범이라는 실질적이고도 가장 큰 위협이 사라진 후여서인지 고집을 오래 부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제가 집까지 곱게 데려오겠노라 꾸준히 연락한 이가 있었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고 또 무척이나 간절해서 서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준아!”
그 목소리의 주인이 차에서 다급하게 내리며 서준을 불렀다. 만약 퇴화하지 않은 꼬리가 있다면 마구잡이로 회전시킬 기세였다.
만면에 미소를 듬뿍 머금은 요한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스포츠맨다운 자세는 어디로 갔는지 갈팡질팡하며 다급하게 서두르는 꼴이었다. 하지만 긴 다리는 그대로 붙어 있었기에 요한은 눈 깜짝할 사이 가깝게 다가왔다. 옅은 땀내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서준은 엉겁결에 양팔을 벌렸다.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온몸이 으스러져라 포옹할 것처럼 굴던 요한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멈춰 섰다. 흙탕물이 약간 튄 운동화 한 쌍과 딱 한 걸음을 남긴 거리였다.
정면을 향하던 서준의 시선은 점차 위로 올라갔다. 크게 오르내리는 가슴팍, 뼈대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빗장뼈, 힘줄이 도드라진 목덜미, 그리고 웃으면서 울 듯한 괴상한 표정을 한 얼굴.
분명 조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입매가 꿈틀거리고, 눈은 부릅떠 억지로 눈물을 참는 듯했다. 그는 서준의 오른쪽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는데 그 손이 형편없이 떨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요한의 입매가 곧 궁상맞게 일그러졌다. 검지 손톱 끄트머리가 안대의 끈을 툭 건드리는 순간, 그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주, 준아. 눈이…. 눈이, 없어? 정말로?”
온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요한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눈물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걸 보자 어쩐지 서준도 코가 시큰거렸다. 그는 괜스레 요한의 어깨를 밀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 넌 뭘, 그런 걸 가지고…. 너, 너야말로 손이 무슨 꼴, 그게, 크흥. 흑, 흐으으…. 시발, 내 눈….”
“준아악!”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자 요한이 와락 어깨를 끌어안았다. 억센 포옹이었다. 서준은 살갗의 뜨거운 온도를 실감하며 눈물이며 콧물, 침을 흘렸다.
그렇게 말만 한 사내 두 명은 병원 앞 큰길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참으로 추잡한 몰골이었다. 머리 한구석에서도 인식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체면 따질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서준과 요한은 그저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못한 채 눈물의 습기로 사이를 메꿨다.
***
“준아, 여기. 얼음.”
“음, 큼. 고마워.”
편의점에서 방금 산 얼음팩에서는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서준은 헛기침하며 요한의 손에서 얼음팩을 받았다. 그의 손은 양손이 모두 붕대로 감겨 있었다. 서준은 얼음팩으로 눈가를 식히며 우물우물 물어보았다.
“손 아직도 많이 아파?”
“아. 이거?”
요한은 제 손을 흘깃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별로 아프지는 않아. 손톱 나고 새살 돋는 게 좀 간지러워서 그렇지. 운전도 멀쩡하게 할 정도잖아? 약 때문에 불편해서 해 놓은 거야.”
눈두덩이를 식히던 서준은 요한의 맷집에 감탄했다. 자신이라면 운전은커녕 삼시 세끼 수저질을 할 때도 아프다 아프다 노래를 불렀을 터였다.
요한은 녹아 물기가 흐르는 얼음팩을 받아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그는 서준의 얼굴을 꼼꼼히 살피다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요한이 멈춘 곳은 딱정벌레처럼 생긴 노란 자동차 앞이었다. 차체가 둥글둥글한 것이 마치 장난감처럼 생겨 요한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요한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자연스럽게 잠금을 풀었다. 서준은 감탄하며 물어보았다.
“차 새로 샀어? 캠핑장 갈 때 탔던 차는 어쩌고?”
그는 조수석을 열어 주며 아직 발간 기운이 남은 눈을 접어 웃었다.
“큰고모 차였는데, 새 차 사신다고 나한테 주셨어. 그리고 그때 탔던 차는 빌렸던 거야.”
“좋겠다. 차도 있고.”
서준이 입맛을 다시며 룸미러에 달린 깜찍한 열쇠고리를 건드렸다. 요한의 큰고모가 달았을 게 분명한 십자가와 자그마한 곰 모형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저도 모르게 그것을 빤히 바라보자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차린 요한이 배시시 웃었다.
“귀엽지, 준아?”
“뭐. 곰이 그냥 곰이지.”
“이거 십자가랑 분리할 수도 있어.”
근육으로 짜인 팔뚝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살갗에서 포푸리 향이 묻어났다.
“가질래?”
모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인형이었다. 물론 서준은 어엿한 어른이었으므로 대번에 거절했다.
“요한, 내 나이를 생각해. 그리고 얼른 자리에 앉아.”
“취향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법이야, 준아.”
요한이 운전석에 앉는 사이, 그는 좌석 틈으로 스포츠 백팩을 꾸무적꾸무적 쑤셔 넣었다. 긴 원통형 가방이 뒷좌석으로 툭 떨어졌다. 그때 서준의 시선이 뒷좌석의 밑으로 향했다. 공구함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생뚱맞은 물건이라 왼쪽 눈을 깜빡이자 요한이 어깨를 건드렸다.
“안전띠 매, 준아.”
“응.”
자기 보신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서준은 냉큼 돌아앉았다. 이윽고 시동이 걸린 딱정벌레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열어 둔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배기음만이 정적 속에 자리 잡았다.
서준은 이러한 적막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무가치한 시간을 느껴 본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크리스티나가 친구들과 하몽 캠프장에 가는 독립 기념일이 오길 초조하게 셈했다. 막상 그날이 도래하자 시간을 살필 경황도 없었다. 이 보잘것없는 찰나가 그리웠던 걸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모호하게 인상을 쓰던 서준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관뒀다. 오래 끌어 봤자 변변찮은 결론이나 내릴 것을 스스로 충분히 알았다. 경험에 의한 판단이었다. 대신 그는 신경 쓰이던 것을 입에 담았다.
“요한. 뒷좌석에 있는 공구함은 뭐야?”
“공구함? 아, 그거. 크리스티나한테 받은 거야. 차 새로 생겼다고 하니까 하나쯤 두라고 하던데. 나도 망치 같은 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러모로 쓸 만하니까.”
“아, 크리스티나가.”
크리스티나가 엄선한 공구함이라면 쓸 만한 물건이 알짜배기로 채워져 있을 터였다. 문득 서준의 하나뿐인 눈이 크게 홉떴다. 왜 지금까지 그녀를 잊고 있었을까! 갖다 댈 이유야 많았다. 서준의 비실대는 몸뚱이가 겨우 한 명분의 몫이나마 하려면 병원에 틀어박혀 안정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구실 따위는 몸소 비명을 질러 비루한 목숨을 건지게 해 준 위대한 크리스티나를 잊은 변명이 되지 못했다. 서준은 쓸모없는 골통을 탓하며 평연한 낯으로 운전대를 잡은 요한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요한, 맞아. 맞아.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는 좀 어때? 왜, 정신적인 충격이라든가. 몸은? 몸은 괜찮아? 괴물을 죽였을 때 좀 다치지 않았었나?”
“진정해, 준아. 음. 크리스티나는….”
나지막하게 말하던 요한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며 서준을 곁눈질했다. 서준이 더럭 겁을 먹은 것은 당연했다.
분명 그의 기억으로는 크리스티나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약간 화상과 잔상처를 입기야 했지만 그녀 다음으로 몸이 멀쩡한 보비조차 석궁에 다리가 꿰였으니 그만하면 사지가 멀쩡한 편이었다. 게다가 보비는 서준에게 하등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질문의 대상에 오르지조차 못했다. 서준은 다시금 물어보았다.
“왜 그래? 크리스티나도 어디 아파?”
그러잖아도 흰 얼굴에서 핏기가 쭉 사라지자 요한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크리스티나야 건강하지. 그런데 아마 그래서 문제였던 거야. 크리스티나가 겉으로 보면 우리 중에서 가장 멀끔했던 거.”
느릿하게 한숨을 쉰 요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서준이 병원에 쓰러져 있는 동안 폭풍우처럼 몰아쳤던 시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준이 너도 정부며 군인이 괴물에 관해서는 완전히 통제하겠다고 나선 거는 들었지? 아, 괜히 물어봤나. 어차피 거기 사인하지 않았으면 난 널 보지도 못했을 텐데.”
요한의 입은 투덜거리랴 설명하랴 여러모로 바빴다. 그가 운전대를 왼쪽으로 꺾자 자동차의 전면 유리창에 비치는 풍경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치들이 말했듯이 모든 건 가스마스크가 벌인 일로 알려졌어. 사실 진실하고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니지. 그렇지만 생각해 봐. 준아. 이곳은 톰팃톳이야. 보비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조 룸펠슈틸츠헨 감독을 배출하고, 한나 오 랜턴과 친구들이 죽어 나간 동네지.”
선정적인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필이면 영화의 살인마와 자아를 동일시한 프랭크 형제 덕분에 먼 과거 레드 레이크 캠프장에서 벌어졌던 끔찍하고 기묘한 죽음과 조 룸펠슈틸츠헨 감독의 엉터리 공포 영화까지 고구마 캐듯 줄줄이 튀어나왔다.
전국을 대상으로 사람을 납치해 죽인 살인마 형제의 행각은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조 룸펠슈틸츠헨 감독의 영화와 드라마는 다시 사람들 입에서 떠돌아다녔고, 영화의 주역을 맡았던 배우의 친손녀가 엮였다는 소문은 작은 마을을 소동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수많은 이의 행적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파헤쳐졌다. 누구보다 먼저 이르게 집으로 돌아온 크리스티나가 대중에게 던져진 건 불행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편을 들어 주고, 어쩌면 같은 짐을 나눠 들 수 있던 에어리는 늑골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총상을 입은 윌리엄과 양손이 참담한 꼴이었던 요한도 치료를 받는 시간이 있었다. 유일하게 크리스티나만이 입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는 지쳤고 가족의 품이 그리웠다. 십 대 소녀가 아니라 누가 겪어도 힘들 하루를 끈질기게 버텨 용케도 생존했다. 병원에서 약간의 처치를 받은 후 집으로 가겠다고 한 그녀를 누가 비난할까? 서준이라면 감히 그러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허투루 내뱉는 말조차 그러모아 성언처럼 떠받들고 내딛는 걸음을 밟지 않도록 늘 바닥을 주시하리라.
하지만 그는 세포처럼 분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서준이 아니었다. 크리스티나의 황홀한 미모조차 화제로 변모했다. 원체 고독을 즐기던 그녀는 타의로 창고에 기어들어 갔다. 친구들이 죄다 병원에 있는 동안 기름과 나사, 멍키 스패너만이 크리스티나를 위로했다. 요한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