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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52)화 (52/156)

#052

방독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서준과 요한의 피로 얼룩진 땅이었다.

“유감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프레드.”

프레드 프랭크.

하몽 편의점의 점주이자 서준의 고용주, 익살스러운 콧수염을 길렀으며 톰팃톳에 머물기보다는 여러 주를 여행하길 즐겼다. 깔끔한 체하는 걸 좋아했고, 비염 기가 있어 코를 킁킁거렸다. 싼값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서준이 무척 마음에 들던 눈치였다.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머릿속에서 프레드의 정보가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횡설수설하던 서준의 입술이 천천히 멈췄다. 다행히 뇌까지 쪼개지지는 않은 듯했다. 대신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프레드를 노려보았다. 외눈에는 핏줄이 벌겋게 서 번들거렸다.

“편의점 앞에 있던 씹새끼가 당신이었어?”

“서준, 내가 두 번이나 말하지만 말하는 게 너무 험해요. 특히 그런 단어는 자중하도록 해요. 품위 없이 들린다고요.”

“씨발, 뭔 개소리야…. 아.”

된소리를 내뱉던 중 그는 돌연 정신을 차렸다. 프레드는 분명히 일손이 부족하다며 형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었다.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지독한 우애였다. 서준은 입술과 혀에 혐오를 담아 움직였다.

“캠프장 관리인이 당신 형이었어?”

“오, 맞아요! 푸디, 나의 형. 멍청하고 순종적인…. 마침 잘되었군요. 서준, 대체 푸디를 어떻게 한 거예요? 푸디는 하나를 알면 둘을 까먹었지만, 그래 봬도 힘만큼은 아주 좋았는데.”

프레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물어보았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어조는 일견 멍청하게 비쳤으나, 그의 눈빛은 간교하게 빛났다. 서준은 무엇 하나 숨기지 않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 당신 형? 우주 괴물이 목부터 발끝부터 씹어 먹었어. 잘 찾아보면 머리는 남아 있을걸?”

하지만 서준의 상냥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프레드는 동정하듯 혀를 찼다.

“이런, 서준. 마약은 좋은 점이 없답니다.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해요.”

“나 지금 연쇄 살인마한테 충고 들은 거야? 인생 개같이 살았네.”

서준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야유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드는 날 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수염을 움찔거리며 조잘거렸다.

“도대체가 요즘 학생들은 마약에 너무 무방비해요. 환경 탓인가? 하나같이 대마를 피우고는 헛걸 보죠. 보기만 하면 몰라, 정말 있었다며 떠들잖아요. 티라노사우루스, 엘비스 프레슬리, 모나리자! 뭐…. 우주 괴물은 제법 신선했어요. 그래도 역시 마약은 몸에 나쁘니 두 번은 하지 말아요. 정말이지 마약 같은 건 나라에서 더 엄하게 처벌하면 좋으련만.”

“누가 들으면 살인은 참 범법이 아닌 줄 알겠네. 와, 새로운 지식을 알려 줘서 정말 고마워요!”

서준이 이를 악물고 빈정거려도 프레드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그는 사냥감을 몰아넣은 사냥꾼이었다. 곧 도살당할 가축이 짖는다고 진심으로 화를 낼 사람이 있을까. 서준은 너덜너덜한 입술을 질겅질겅 씹고는 피와 함께 침을 삼켰다. 그는 다소 기죽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물어보기나 합시다. 대체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솔직히, 나하고 당신…. 우리 관계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서준이 시간을 벌고자 떠든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프레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서준의 얄팍한 수 따위에 자비롭게 어울려 주었다. 프레드는 짐짓 관대한 척 입을 열었다.

“음, 그렇군요. 알고 싶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렴요, 말해 줄게요. 서준 말대로 우리 사이는 제법 괜찮았잖아요?”

제법 괜찮은 사이 운운하는 프레드의 손에는 여전히 석궁이 들려 있었다. 살인자는 서준과 대화하는 내내 단 한 번도 흉기를 놓지 않았다.

“서준, 나는 말이죠. 어렸을 적부터 살인에 매료되었답니다. 특히 사람을 재가공한다는 건 정말 중독적이죠. 마약 따위보다 훨씬, 훨씬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부분은 제 부모님의, 그러니까 어머님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어요. 억압된 청교도적 환경은 저의 정신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죠.”

서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기껏 이 세상이 공포 영화가 아닌 기기묘묘 기기괴괴 괴상망측한 현실인 걸 받아들였더니 이따위 고전적인 사연을 꺼내 들다니?

“그러다가 우연히 ‘블랙 레이크의 놀라운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살인마와 미녀’를 보았죠. 말 그대로 놀라웠어요! 아, 세상에는 나만이 이런 감성을 지닌 게 아니구나. 영화로 만들어진 만큼, 다수는 아니어도 공감 가능한 욕망이구나!”

프레드의 목소리는 점차 열기를 띠고 그의 눈 아랫부분이 벌겋게 물들더니 흥분으로 얼룩진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그 영화 속 선구자의 이름도 프레드였어요. 이름, 곰보 자국, 캠프장 관리인, 이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지는 게 과연 우연일까요?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운명이었던 거예요, 서준. 마땅히 이렇게 될 일이었던 거죠.”

굳건한 믿음은 프레드에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세워 주었다. 옳고 그르고는 차치하고, 적어도 그는 삶의 방식을 정해 버린 것이다.

지독한 광신 앞에서 피로와 고통으로 식은땀을 흘리던 서준조차 잠시간 통증마저 잊어버렸다. 눈앞의 면면은 마치 거울을 보듯 하루 전의 자신과 흡사했다.

‘운명 운운하면서 살면 저런 인간이 되는 건가? 요한이 보기엔 나도 저랬다는 말이야?’

물론 서준의 믿음에 바탕이 된 것은 환생과 미래 예지라는 연유 모를 힘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토양에서 이기적인 신앙을 키워 낸 것은 결이 비슷하지 않은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서준은 불편한 상념에서 시선을 돌리며 아무렇게나 입을 놀렸다. 사실 참견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

“프레드가 얼마나 흔한 이름인지야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 따지면 푸디인지 푸딩인지 하는 당신 형, 이름이 프레드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입술을 달싹거리던 중 목이 깔깔해 그는 침을 삼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애써 긁어낸 근성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간신히 서준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는 손가락을 우그려 힘 있게 흙을 잡았다. 손바닥에 난 자잘한 상처 사이로 파고드는 조그마한 돌 조각 따위가 따갑고 쓰라렸지만, 그나마 감각이 느껴지는 걸 감사히 여길 때였다. 서준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사이 프레드는 새침하게 콧수염을 퉁기며 대답했다.

“오, 세상에. 그런 사소한 오류는 넘어가자고요.”

프레드는 이른바 운명을 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으로 다루며 제멋대로 굴었다.

“유산으로 이 캠프장을 사들였을 때의 환희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릿해요. 모든 게 운명처럼 차근차근 맞물려 돌아갔어요. 행복한 나날이었답니다. 뭐, 영화와는 다른 장소에 정육점을 세운 건 아쉬웠지만 늘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주절주절 떠들던 프레드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장난스럽게 굴던 것과 달리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금 프레드의 사소한 미련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물가물하게 허물어지던 의식이 번쩍 깨어났다. 서준은 귀에 걸리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정육점…?”

“맞아요, 서준. 정육점이요. 작업장이라고 해도 괜찮지만, 나는 정육점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거든요. 의미로나, 외관상으로나…. 어울리지 않나요? 사실 고백하자면 여러 번 위치를 바꿔 보기도 했었죠. 그나마 이곳이 가장 괜찮더군요. 동양에선 이런 걸 풍수-지리라고 부르지요? 확실히 작업장을 이곳에 마련한 다음부터는 돼지 잡는 것도 한결 수월했어요. 아아, 좋았던 나날이여!”

그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과거를 음미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의 자찬은 서준을 내려다보며 갑작스럽게 끝났다.

“그런 멋진 날도 오늘까지지만요. 서준, 왜 당신을 골랐냐고 물었지요? 좋은 질문이에요. 당신의 그 새까만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환상적이었어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했죠. 푸디는 취향조차 범속해서 금발 여자를 탐냈지만, 난 검은 머리카락이 돋아난 청년의 두피를 깔끔하게 발라내는 게 특히 황홀했답니다.”

프레드의 오른쪽 뺨이 어두운 녹색으로 물들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녘, 동트기 전 마지막 어둠 한 조각이 그의 살갗을 불길하게 덧칠했다. 심장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서준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기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승산은 없었다. 피로 때문만이 아니다. 프레드는 익살스러운 모습과 달리 노련한 살인자였다. 경험이 풍부했으며 부주의한 성미도 아니었다.

따라서 어지간한 빈틈, 이를테면 기적이 등을 떠밀어 주지 않으면 서준의 머리통에는 새로운 구멍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었다. 그는 초조함을 억누른 채 빈정거렸다.

“나를 그렇게 아꼈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월급 생각하면 그렇게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는다는 건 알죠?”

“경기가 불황인 걸 난들 어쩌겠어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프레드가 입꼬리를 길쭉하게 올렸다. 이어 비벼 문지른다면 시취가 물씬 피어오를 입술이 벙긋하게 벌어졌다.

“저야말로 묻고 싶어요. 서준, 왜 톰팃톳을 떠나려 했나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다급하게 인사를 나누지 않았을 텐데…. 일정이 다 헝클어졌잖아요. 오늘 하루는 엉망이었고. 이렇게 준비 없이 정리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소중한 추억을 곱씹을 새도 없이 단번에 정리해야 할 때의 섭섭함이란, 아! 안타까워라.”

땅속으로 파고든 손가락 끝에 차가운 감촉이 걸렸다. 동시에 프레드가 석궁을 든 손목을 움직였다. 묵직한 흉기가 크게 흔들렸다. 과시적인 손놀림이었다.

“비록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톰팃톳을 마음의 고향이라 여겼는걸요. 그래도 너무 아쉬워 말아요. 당신의 머리만은 내가 계속 함께 지니고 다닐게요.”

프레드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답을 구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내뱉은 말은 대화라 보기에는 썩 마뜩잖은 구석이 있었다. 따지자면 프레드가 한 것은 일종의 선언이자 예고였다. 타인의 목숨을 갈취하려는 살인자가 제멋대로 내린 끝마침에 불과했다.

그는 저린 다리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등 뒤에서 천천히 동이 터 왔다. 옥색이 섞인 창공은 아름다웠다. 서서히 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만물의 모든 것이 생기를 머금고 반짝거렸다. 이슬이 맺힌 풀잎과 붉은색의 흙, 습기를 머금은 나무껍질의 향기, 인간들이 벌이는 소동과 무관하다는 듯 기어 다니는 작은 곤충, 아침을 맞이하여 맑게 우는 새의 지저귐, 드넓게 펼쳐진 하늘.

“아….”

상황마저 잊고 무심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눈부셨다. 서준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깨달았다. 그저 이런 하늘을 내일도 보길 바라는 갈망이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원하는 아주 사소한 소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하루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평소와 같은 풍경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서준에게는 이 순간이 삶의 목적이었다. 톰팃톳을 떠나 찾고자 했던 목표였다.

“흐, 흐으, 흐하하! 아하하하!”

발작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땅을 벗어나야 발견할 줄 알았던 대상이 실상 어디에서나 보이는 하늘이라는 게 황당했다. 서준은 눈이 하나밖에 남지 않고서야 비로소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실성했나요, 서준?”

“아니, 아. 그래. 내가 왜 여길 떠나려고 했는지 당신한테는 말 안 해 줄 거야. 그건 당신한테 해 줄 말이 아니야, 프레드.”

“무슨 말인지…. 뭐, 상관없겠죠. 킁, 금방 끝내 줄게요.”

프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석궁의 줄을 퉁겼다. 그는 서준에게 더 말을 걸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리고 프레드의 등 뒤, 수풀 사이로 기적이 찾아왔다. 기적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금으로 만든 실처럼 광택이 도는 머리카락, 주근깨가 흩어진 뺨, 불에 덴 자국이 있는 손,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크리스티나는 망설이지 않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새벽의 공기를 가르듯 깨끗하게 뻗어 나가는 비명이었다. 공포 영화의 주역에게 배운 비법이 그녀의 폐를 가득 채웠다가 아낌없이 터져 나왔다. 보비의 허접한 비명과는 질이 달랐다. 날카로운 고음이 방독면을 벗은 프레드의 귓구멍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준이 몸을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손에는 끝이 뾰족한 파이프가 단단히 잡혀 있었다. 본디 그것은 자전거의 안장을 연결하는 파이프였다. 아들의 난행을 용서하지 못한 톰팃톳의 경찰관이 절단한 흔적이었다.

정육점 앞마당 여섯 번째 개암나무 아래에는 골든의 자전거가 묻혀 있다. 서준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틈과 끝이 잘린 파이프, 그리고 살인자가 되기 위한 결심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구원을 바라서는 안 되었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씹듯이 말했다.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거야.”

푸욱!

파이프는 손쉽게 프레드의 목젖을 파고들었다. 목울대가 움찔 떨렸다. 프레드의 몸은 녹슨 양철 인형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뒤를 보았던 그의 고개가 뻣뻣하게 서준을 향했다. 프레드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는 눈만 굴려서 아래를 보았다. 두꺼운 파이프가 제 목에 꽂힌 모습이 몹시 이상해 보일 것이다. 서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 마음을 잘 알았다.

그는 팔에 힘을 줘 파이프를 더 깊게 찔러 넣었다. 우연히도 딱 한 치의 길이였다.

“프레드, 난 당신의 좆같은 유년기, 좆같은 사상, 좆같은 정신머리, 좆같은 미래 계획이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끄으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뱉던 프레드의 손에서 석궁이 떨어졌다. 그가 더듬거리며 옆구리를 매만졌다. 하지만 프레드가 찾던 손도끼는 이미 요한이 가로챈 후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요한이 묵묵하게 팔을 들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도끼를 내리쳤다.

꽈득, 하며 프레드의 정수리가 일시에 쪼개졌다. 안구가 약간 튀어나온 프레드는 그대로 절명했다. 쿼터백의 손힘은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묵직하게 쓰러지는 살인자의 시체를 받아 줄 선인은 아무도 없었다.

서준은 휘청거리며 프레드를 피했다. 하지만 워낙 힘을 쓴 직후여서인지 그도 앞으로 엎어질 뻔했다. 그런 서준을 받아 든 것은 요한이었다.

“아, 준아. 어떡해. 빨리 병원 가자. 응? 일단 붕대 같은 걸 찾아서,”

“…요한.”

“응?”

“요한 젠틸!”

“으응?”

요한은 사람 하나 죽인 주제에 참으로 멀끔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안절부절못하기야 했다. 다만 그 이유가 서준의 부상 때문인 건 확실했다.

“너, 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서준은 다급하게 외치며 요한의 가슴을 더듬었다. 요한은 가슴팍에 여전히 볼트를 매단 주제에 부끄러워하며 서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 그거…. 이것 봐. 준아.”

요한이 가슴에 꽂힌 볼트를 쑥 잡아당겼다. 그러자 웃옷 주머니가 찢어지며 괴생명체 X에게서 잘라 낸 촉수가 함께 딸려 나왔다. 촉수 내부에 촘촘하게 돋아난 이빨이 볼트의 촉 부분과 맞물려 있었다. 요한은 면목 없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미안해. 내가 잠깐 기절했나 봐. 눈을 떴을 때는 너랑 가스마스크가 말하고 있길래 상황 좀 보고 있었는데…. 크리스티나가 비명을 지르지 뭐야.”

기회를 잡은 건 비단 서준만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요한 또한 틈을 노렸고 허리춤에 무방비하게 매달려 있던 손도끼는 적절한 시기에 그의 손으로 넘어갔다.

서준은 멍청한 표정으로 촉수와 촉수의 이빨에 막힌 볼트를 흔들었다. 요한이 수줍어하며 속삭였다.

“로켓 같은 거였으면 영화 같아서 멋있었을 텐데, 그치?”

“영화 같은 소리 하지 마. 끔찍해.”

서준은 하나뿐인 눈을 찡그렸다. 그는 프레드의 정수리에 돋아난 도끼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왜 너까지 프레드를, 그런 거야?”

“아, 이 사람 죽을 것 같아서. 그대로 죽으면 네가 살인자가 되는데 준이 혼자 그러면 좀, 그러니까? 어차피 못 막을 거면 공범이 되고 싶었어.”

“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준은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피로 젖고 옷은 찢어져 엉망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와 흙을 뒤집어써 더러웠다.

게다가 주변에는 시체, 정확히는 서준과 요한의 합작으로 만들어 낸 연쇄 살인자의 시체와 우주 괴물의 촉수, 시신이 걸린 오두막, 군인의 시체, 우주 괴물의 본체 등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몸 상태 또한 나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준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제 눈이 앞으로 멀쩡하긴 글렀다는 걸 겸허히 받아들였다. 요한의 손은 어떠한가? 시원스레 난 구멍은 이리저리 파헤쳐져 향후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요한은 질리지도 않고 또 고백했고 사실 서준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서준은 요한의 품에서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눈이 하나여도 태양의 밝은 빛은 보였다. 멀쩡한 양쪽 귀로 크리스티나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살인의 밤이 끝났다.

“너무 긴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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