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에어리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몸을 높이 띄우자 서늘한 밤공기가 온몸을 격타했다. 흙과 잔디 사이로 깔린 습한 내음이 멀어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을 누릴 재간은 아니었다. 그저 순식간에 달라진 눈높이가 에어리에게 무책임한 상념을 안겨 주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생각이 마구잡이로 늘어지고 지나갔다. 아우성처럼 소란스러운 잡념은 곧 자연스럽게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도약의 실패였다. 허공에 뜬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자세가 흐트러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은 곧 물먹은 솜처럼 추락할 터였다. 원인은 명확했다. 무릎의 통증이었다. 괴물과 처음 마주쳤을 때 당한 부상이었다.
윌리엄의 쇄골과 세게 부딪힌 무릎의 피부 아래에 불덩이가 갇힌 듯 뜨거운 통증이 다리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암담한 상황을 계산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에어리의 입가에 걸린 것은 대담한 미소였다.
그녀는 뛴다는 말의 뜻을 언제나 이해했다. 스스로 선택했다. 당연히 두려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차게 식은 목덜미에서 땀이 솟아났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 멋없는 짓은 자신과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뜨겁게 열이 오른 안구를 얇은 살가죽이 덮은 뒤 다시 열렸다. 맑은 색의 눈동자가 아래를 흘깃거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도 친구들의 표정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윌리엄의 얼굴 또한 어렴풋하게 덩어리로 비쳤다.
이 새까만 세상에서 선명한 것이라고는 오직 괴생명체의 희끄무레한 몸뿐이었다. 그것보다 아래에 있을 적에는 압도적인 절망을 선사하던 육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에어리가 괴생명체 X의 바로 위에 있었다. 말 그대로 그녀가 우위였다. 모든 것이 찰나에 이루어졌다. 도약, 잡념, 이해, 지각, 결심, 행동.
“읍!”
짧은 기합이 터지고 입술이 안쪽으로 말렸다. 단단한 이에 부르튼 살갗이 닿았다. 가늘게 튼 입술에서 스며 나온 피에 혀가 닿기 전, 에어리는 비뚤어진 몸을 억지로 틀었다. 동시에 옆구리에 단단히 묶어 둔 페트병의 뚜껑을 양손으로 잡고 힘껏 뽑아냈다.
페트병의 상단 부분이 쩍 입을 벌렸다. 미리 칼집을 내 둔 덕에 내용물을 쉽게 토해 냈다. 지독하게 신 향이 일거에 쏟아졌다. 기름과 뒤섞인 새큼한 액체가 먼저 새하얀 표면에 떨어졌다.
[크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