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그의 별명은 딱따구리였다. 왜 자신에게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 이유는 모른다. 이유를 아는 사람은 전부 죽었다. 실험체 XSF-H037-C의 배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혹은 갈라졌다. 혹은 장기를 빨렸다. 혹은 뇌를 씹혔다. 혹은 전신이 으스러졌다. 혹은, 혹은, 혹은….
딱따구리는 사람이 죽는 여러 방법을 안다고 자신했었다. 오만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세상에서, 그는.
“아, 눈꺼풀 움찔거렸어.”
음역이 높은 목소리였다. 간신히 눈을 뜨자 금발의 여자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시 보니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오른쪽 뺨에 흩어진 주근깨가 귀여웠다. 딱따구리가 정상적으로 사고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 채로 위산에 녹아내리며 이성 또한 흐물흐물해졌다. 무전기를 통해 하달받은 명령만이 뇌에 새겨졌다. 나머지 주름은 전부 반들반들해졌다.
딱따구리는, 아니, 군인은 짓무른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별안간 강렬한 빛이 그의 눈에 직격했다. 군인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렸다. 순간적으로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겉부터 천천히 녹던 때와는 달리, 마치 내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꺼헉….”
명령 외에는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고 생각했던 뇌에 새로운 주름이 자리 잡았다. 고통과 분노였다. 한 줄 한 줄 깊숙이 새겨질 때마다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이, 이러다 죽어 버리면 어떡하지?”
“정당방위 아니야? 아니, 막말로 우리도 죽을 뻔했잖아. 빌리 다리에 난 상처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까?”
크리스티나와 에어리가 조용하고 빠르게 속닥거렸다. 확실히 군인의 상태는 영 좋지 못했다. 요한이 입가에 손가락을 올렸다.
“쉿, 우선 물어나 보자.”
그는 손과 발이 단단히 묶이고 옆구리에는 아직도 꼬챙이가 꿰여 있는 군인의 앞에 몸을 수그렸다. 요한의 새파란 눈동자가 군인과 마주쳤다.
“우리한테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굳이 안 죽이고 데려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단순히 고문을 즐기기 위해 끌고 왔다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그리고 요한의 직설적인 질문은 뇌에 명령, 고통, 분노라는 단 세 줄의 주름밖에 없는 군인의 입에서 진실을 끌어냈다.
“그야, 너희는! 미끼니까!”
“미끼?”
윌리엄이 군인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이마를 닦아 냈지만 여전히 핏자국이 남은 그의 얼굴은 대단히 험상궂었다. 윌리엄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군인이 상체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그래, 미끼! 우주에서 온 생명체는 살아 있는 인간을 좋아하거든! 죽은 건 미끼가 안 돼. 아, 아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얼른 다시 잡아야 해. 나밖에 없어. 내가 다시 돌려놔야 해. 얼른, 실험실로. 너희, 응? 너희도 나라를 위해 생명 정도는 버려야지. 얼른! 그게 여길 빠져나가면 큰일이야!”
군인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눈물을 흘렸다가, 다시 웃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요한의 눈동자가 천천히 서준을 향했다.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랜턴이 필요 없었다. 서준이 조용히 읊조렸다.
“탱고, 삼바, 부채춤 중에 골라.”
“자, 잠깐. 그렇게 바로 고르면 안 돼. 사람이 신중해야지.”
요한이 진중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서준은 혀를 차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나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고민해라.”
썰렁한 농담을 한두 마디 주고받아도 암울한 분위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구 합숙소는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정직하게 낡아 빠진 건물이었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창문의 유리와 창틀이 덜거덕덜거덕 흔들리고 먼지가 두껍게 쌓인 나무 바닥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힘겹게 삐걱거렸다. 피비린내와 먼지가 뭉친 냄새는 가히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군인을 포박했다지만, 바깥에는 아직도 괴물과 살인마가 어슬렁거렸다. 심지어 외부와 연락도 불가능한 데다가 탈출로까지 막힌 상황이니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잠시간 입을 다물고 있자니 군인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물론 눈꺼풀 위쪽의 피부가 녹아 알아보기 어려웠다.
“XSF-H037-C를 잡자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얘들아, 국가를 생각해. 애국자, 애국자가 될 기회야!”
“엑스에스에프…뭐? 아니, 무슨 발음이 이래. 그게 괴물의 이름이란 말이지? 흥, 난 영락없이 오드리인 줄 알았지 뭐야.”
농담이라도 하려는 듯 에어리가 애써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랬다가 우리 모두 최면에 걸리면 어떡하려고?”
크리스티나가 대꾸하자 에어리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어깨를 문질렀다.
“아, 그건 아니지. 티나.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 세상에, 보비만 아니었어도 이런 이름은 몰랐을 텐데!”
에어리가 아픈 허리를 문지르다가 버럭 성을 냈다. 그녀는 목청을 높였더니 옆구리가 당긴다며 이를 갈았다. 서준은 그나마 보비가 자신과 취향이 통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다.
“맞아. 그리고 우리는 건강하게 자라서 준법 시민으로서 법 잘 지키고 세금 내는 걸로 충분히 애국 중이지.”
진저리를 치는 에어리를 향해 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는 꼬챙이 손잡이를 검지로 툭 건드렸다. 당연하게도 군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뒤를 따랐다. 요한은 군인의 안구가 눈꺼풀 안쪽으로 돌아가는 꼴을 구경하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XSF-H037-C…. 괴물의 이름치고는 너무 현대적이지 않나? 의미라도 있어요? 내가 듣기에는 무슨 약자 같아서.”
“…….”
군인은 자신을 찌른 요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안구는 이미 혼탁해진 부분이 있어 초점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 합숙소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모를 수가 없었다.
요한을 응시하는 시선이 열렬해졌다. 그것은 원망이나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서준은 그의 눈빛에 어떠한 감정이 실렸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희망이었다. 자신이 크리스티나를 볼 때 꼭 저런 마음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래, 약자지. 사람이 불러낸 서른일곱 번째 생명체. 박사가 붙인 위험도는 고작해야 C등급에 불과해.”
군인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그의 몸이 들썩거릴 때마다 옆구리의 구멍에서 내장이 비죽 솟았다.
“그러니 너희가 조금만 도와주면 잡을 수 있어. 응?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지. 이건 당연한 희생이야.”
“자유랑 인권은 어디에 팔아 치운 헛소리야?”
에어리가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큰소리를 쳤다. 정신을 차린 윌리엄이 그녀를 붙잡아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에어리는 더 욕설하는 대신 양손의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흔들었다.
서준은 괴물의 탄생에 얽힌 비화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다. 그러나 무릇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는 곧 퇴치법과 연관되기 마련이었다. 그는 요한의 옆으로 몸을 슬금슬금 붙였다. 크고 넉넉한 근육과 뼈, 살 옆에 있으니 한결 안심되었다.
“그런 엑스엑스에프… 괴물이 어쩌다 하몽 캠프장에 온 겁니까? 이런 구석진 캠프장에 사실 괴물 격리 시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요한을 향하던 눈이 데굴 옆으로 굴렀다. 군인은 서준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입술을 움직였다.
“알려 주면 도와줄 거야?”
“생각해 보죠.”
어차피 괴물은 물리쳐야 한다. 물론 군인의 계획대로 살아 있는 미끼가 될 마음은 한 톨도 없었다. 하지만 말로는 뭘 못 할까.
“준아.”
요한이 손등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서준의 이름을 부른 뒤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서준은 군인이 보지 못하도록 요한의 등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썼다. 거짓말. 짧은 단어이니 못 알아들었을 리도 만무했다.
흘깃 곁눈질하자 요한의 표정은 여전했다. 한 번 더 쓸까 고민하던 중 군인이 깔깔한 목소리를 꺼냈다.
“실험 중이던 XSF-H037-C를 다른 장소로 이동 중이었어. 어디까지나 비밀리에 이루어지던 작전이었고, 차출된 병력은 우리 소대뿐이었지.”
“다른 장소요? 오, 아니야. 말하지 마요. 난 모르고 싶어.”
에어리가 양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낮에 먹은 것들을 죄 게워 낼 듯한 표정을 짓자 윌리엄이 에어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하긴 들을수록 나중에 정부에 끌려가 기억이라도 소거당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군인은 허파에 바람이 새도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곳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그래, 그냥 지나가는 길. 그런데 운전사가 말하더군. ‘기니피그가 차를 앞서고 있어!’ 말이나 돼? 기니피그? 기니피그가 차를 앞서 질주한다고? 그 멍청이는 도로 근처에서 섹스하는 머저리들을 보느라 한눈판 게 분명했지. 그리고 대가를 치른 건 우리였어. 차는 전복됐고, XSF-H037-C는 구속 장치에서 벗어났지!”
“…….”
군인이 밭은 숨을 내뱉는 소리만이 구 합숙소 1층을 울렸다. 톰팃톳 토박이들은 누구 하나 대꾸하지 못했다.
톰팃톳에 애완동물로 살아가는 기니피그는 딱 한 마리뿐이었다. 서준도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신시아가 키우는 건 정말 기니피그가 맞을까? 물론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실버가 말한 군용 트럭에 괴물이 있었다니.’
제각기 다른 이유로 입을 열지 않는 사이 군인이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으나 말을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상했어. 이상한 일투성이였지. 평소라면 제어 약물을 투여했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해야 정상이야. 그런데 XSF-H037-C는 움직여서 우리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지. 말했듯이, 그건 살아 있는 걸 좋아하거든.”
잠깐이나마 화를 내며 정상적인 감정을 내비쳤던 군인이 다시금 히죽거렸다. 그의 말은 점차 입 속에서 웅얼거리는 것처럼 변해 갔으나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굴었다.
“뻐꾸기를 먹고, 뱁새를 먹고, 참새를 먹고, 모두 먹어 치웠지. 녀석의 위장은 생각보다 따뜻했어. 하지만 호수의 물은 차가웠지. 나는 웅크려 있었어. 모두의 시체 사이에 끼어서 천천히 녹았어. 둥글게 뭉친 고깃덩이 가장 안쪽에 내가 있었지. 비린 호수의 물이 천천히 들어와서…. 흐, 흐흐. 나도 이제 죽을 거로 생각했어. 내가 녹아내렸으니까, 그런데 나를 다시 뱉었어. 이건 모두의 뜻이야. 내가 임무를 성공시켜야 해. 나와 보니 호수가 보였어. 호수가….”
점차 문맥이 이상해지는 군인의 말을 조합하자면 이렇다.
군대는 실험 중이던 외계 생명체 XSF-H037-C를 은밀히 이동시키는 소규모 작전을 실행 중이었으나 운전사의 실수로 차가 전복, 군대는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에 빠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XSF-H037-C가 풀려나 군인을 포식했다. 제어 약물을 투여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괴물은 왕성하게 활동하며 호수로 입수했다.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정리한 일행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기, 그러면 우리가 놀 때도 호수 아래에는 괴물이 있었다는 뜻 아니야?”
에어리의 추측에 크리스티나와 윌리엄, 요한이 얼굴을 찡그렸다. 서준은 비록 함께 있지 않았으나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져 몸을 떨었다. 골든은 한 박자 늦게 ‘실버가 본 트럭!’ 하고 눈동자를 떨었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주근깨가 난 뺨을 씰룩이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깐, 이상한 점이 있어.”
그녀는 군인의 반경에 들지 않도록 거리를 둔 뒤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금색 머리카락은 엉키고 새하얀 피부에도 검게 때가 탔지만 크리스티나의 눈동자는 여전히 신후한 빛을 품고 반짝거렸다.
“이봐요. 아무리 은밀한 작전이라도 저런 괴물을 가지고 이동 중에 연락이 갑자기 끊겼다면 다른 군인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군인은 왈칵 피를 토하며 웃더니 중얼중얼 입술을 달싹거렸다.
“말했잖아. 비밀 작전이야. 박사가 고안한 비밀 작전!”
“그게 무슨,”
“관둬. 크리스티나, 저런 괴물은 말하자면 유독 물질이나 다름없어. 하지만 톰팃톳의 주민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몰랐지. 다시 말해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수상쩍은 작전이었으며, 그 비밀의 대상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는 거야.”
요한이 크리스티나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군인을 내려다보았다.
“자기들끼리 이권 다툼에 빠졌거나, 다른 이유로든 정상적인 연락망이 구축되지 않은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비상식적인 생명체를 하루가 지나도록 방치할 리 없잖아?”
사람 수십을 잡아먹은 존재였다. 그토록 위험천만한 생명체에 관해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에 에어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우, 우리만 중간에 끼어서 이게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