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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7)화 (7/156)

#007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뻔한 사실을 이상하다고 여기다니. 피가 모자랐던 걸까? 서준은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발소리를 죽였다. 끔찍하고 꼴도 보기 싫은 하몽 캠프장이 목전이었다.

‘길…. 이거 길이 맞기는 한가?’

밤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익숙한 지리도 아니다. 서준은 두 갈래 길을 미심쩍게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발로 다져진 흙바닥은 얄궂게도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어졌다. 오른쪽 길은 좀 더 여러 사람이 다녔는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

왜 예지는 이처럼 곤란한 순간에는 발휘되지 않는가? 쓸모라고는 발가락 양말만도 못했다. 서준은 확신 없는 발걸음으로 오른쪽 길로 향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오른쪽 길을 택해 걸었던 그는 멀리 가지도 못했다. 폐자재는 마치 고의인 듯 절묘하게 쏟아져 길목을 막았다. 하마터면 폐자재 위로 엎어질 뻔한 서준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시간만 낭비했어.’

갈림길로 되돌아와서는 팔의 아픔도 잊은 채 이를 득득 갈았다. 왼쪽 길로 나가자 곧 하몽 캠프장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난잡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자 캠프장의 정경이 어스름한 빛을 받아 희미하게 윤곽을 그렸다.

좁은 공터에 건물 두 채가 있었다. 다만 둘 다 단층 형식에 한 건물은 경비 초소와 엇비슷했다. 불빛은 경비 초소의 창문에서 새어 나왔다. 서준은 영화에서 보았던 캠프장 구조를 떠올렸다. 비슷한 풍경을 눈에 담자 간신히 뇌 구석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하나둘 생각났다.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의 배경은 하몽 캠프장 블랙 레이크다. 블랙 레이크, 즉 검은 호수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몽 캠프장 내부와 캠프장을 둘러싼 숲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하몽 캠프장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중앙의 A 구역인 캠프파이어장을 B 구역, C 구역, D 구역이 빙 두른 모양새였다.

서준은 눈꺼풀 안쪽에 달라붙은 풍경을 열심히 되새겼다. B 구역에는 점점이 흩어진 산막과 호수, C 구역에는 단층밖에 없는 캠프장에서 드물게 높은 2층짜리 산장 따위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D 구역에는 식당과 관리인이 상시 거주하는 관리동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의 꼬리마다 어설픈 어미가 따라붙었다. 확신 없는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영화를 볼 때 그곳 지리를 외운단 말인가? 적어도 서준은 아니었다. 그나마 식당 따위를 기억하는 이유도 치어리더와 미식축구 선수 커플이 염장을 지르며 식사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제 와 감상을 남기자면 영화와 하등 상관없는 시퀀스였다. 섹시한 치어리더가 애인의 두꺼운 허벅지 위에 앉아 애교를 부리는 내용의 필요성을 서준은 두 번 태어나도 알지 못했다.

더해서 감독의 사심이 물씬 묻어나 야릇한 노래가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 덕분에 감독의 머리 뚜껑을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를 존경하는 인간이 있다면 얼굴 한번 꼭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외에 중요한 장소로는 B 구역의 호수였다. 검은 호수는 식인 괴수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왜 검은 호수가 ‘검은’ 호수인지 알지 못했다. 복선이고 자시고 시놉시스를 발로 짠 영화였다.

‘그리고 그런 망한 영화에 들어온 게 내 인생이지.’

새삼스러운 자각에 심장이 세게 죄이며 통증과도 같은 공포가 다시금 스멀스멀 일어났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목구멍이 따끔따끔 저렸다. 서준은 혀 아래에 고인 침을 억지로 넘기며 발을 내디뎠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라도 서준에게는 냉혹하도록 실존적인 세계였다.

‘우선 크리스티나와 만나자.’

서준은 차근차근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크리스티나 및 그녀의 일행과 합류였고 두 번째는 무엇이든 무기로 쓸 만한 물자 발견이었다. 겸사겸사 크리스티나 일행의 휴대 전화를 빌려 경찰과 연락할 수 있다면 그도 좋았다.

‘그러니까 크리스티나, 제발 무사히 살아 있어 줘.’

사심으로 뱃속을 가득 채운 서준은 보통 학생이 식인 괴수와 맞닥뜨려 살아남을 확률을 잠시 외면했다.

만약 괴수의 생김새가 영화 속 그대로라면 크리스티나와 떨거지들은 손쉽게 이기다 못해 셀카를 찍으며 희희낙락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 속 괴물의 분장은 허름하고 잡스러웠다.

물론 분장이 어설프기로는 가스마스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가스마스크는 어떠했나? 음습하게 내뱉는 숨결에서 피비린내를 풍겼고 습하고 탁한 소리는 불길한 상상을 자극했다. 이 말인즉슨 식인 괴수가 더욱 끔찍하고 징그럽게 탈바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상념을 하는 사이에도 몸이 착실하게 움직였다. 평소 운동 신경이 나쁜 편이었지만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생존의 본능이라도 발휘된 양 기력이 샘솟았다.

양다리에 힘을 준 서준은 볼에 묻은 잎사귀를 손등으로 털며 수풀을 벗어났다. 그러니까, 이건 전혀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자그마한 건물에서 나오는 가스마스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 따위는.

“…….”

“…….”

참으로 괴상했다…. 왜 가스마스크가 코앞에 있는 걸까? 서준은 잠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슬프게도 상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검은 우비, 하몽 나이프, 방독면 등 그의 특징만이 뚜렷하게 다가왔다.

가스마스크는 이 여름날 더운 우비를 껴입고 방독면을 썼으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원래 공포 영화 속 살인마란 무릇 막대한 체력과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 정도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저 자식 내 뒤를 쫓아오던 거 아니었나?’

서준은 쥐꼬리만 한 체력을 짜내어 필사적으로 달렸다. 마지막에 판단을 잘못 내려 시간을 지체했지만 가스마스크보다는 앞질러 하몽 캠프장에 도착했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을 비웃듯 가스마스크가 왼손으로 하몽 나이프를 슬쩍 들어 올렸다. 날이 바짝 서 무척 위협적이었다.

“이런 씨발!”

두 번 봤다고 벌써 익숙해진 낯짝에 욕설부터 날린 서준이 냅다 달렸다. 가스마스크가 나온 작은 초소가 아닌 그보다 더 면적이 넓은 1층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며 밀듯 문을 열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식당’이라는 문패가 달각 흔들렸다.

“윽!”

다친 부위가 세게 부딪히자 눈앞에 아찔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숨이 턱 끝까지 올라와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걸음이 느려지는 순간 죽음이 덮쳐 올 것이다.

서준이 무턱대고 달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가스마스크의 반응이 느렸다. 그사이 서준은 문을 닫고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바깥에서 본 대로 식당은 꺾인 부분 없이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이었다. 내부는 무척 어두웠는데 달빛이나마 비치던 바깥과 달리 창가에서 들어오는 극소량의 빛으로 간신히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미치광이는 뒤늦게 서준의 뒤를 쫓아왔다. 남자가 뛸 때마다 훅, 훅 하는 거친 숨소리가 방독면을 거쳐 나왔다.

서준은 규칙적으로 늘어선 식탁과 의자 사이를 뛰어넘으며 도망쳤다. 원체 체격이 마르고 날렵해 방해물 사이를 파고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반면 가스마스크의 검은 우비 속 건장한 몸뚱이는 식탁이며 의자에 툭 툭 걸렸다. 서준은 필사적으로 주변 언저리의 의자 따위를 밀쳤다. 상대의 진로에 혹이나 달아 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나뭇가지처럼 마른 서준과 달리 가스마스크는 풍채 한번 훌륭해 얄팍한 철제 의자로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무작스러운 힘으로 방해되는 사물을 전부 밀어 버리자 철제 의자와 바닥이 긁히며 귀 언저리에 쩡한 소리를 냈다.

“아!”

그리고 도주하는 주제에 뒤를 신경 쓰던 서준은 당연하다는 듯 고꾸라졌다. 서준의 발과 철제 의자가 얽히며 가늘고 길쭉한 몸뚱이가 볼품없이 앞으로 무너졌다. 방비하지 못한 충격은 왼쪽 뺨과 어깨, 무릎에 골고루 퍼졌다.

“큭….”

멍청하게 다치는 것이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였다. 사람이 이렇게 우둔할 수가 있나? 자문했지만 슬프게도 정답이 곧 자신이었다.

서준은 길게 자책할 시간도 없었다. 오싹한 감각이 들며 목덜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머리를 옆으로 피하자 바로 그 자리에 하몽 나이프가 찍혔다.

“흐, 억!”

넘어진 서준의 목을 향해 가스마스크가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서준은 숨을 멈췄다. 살인마의 몸에서는 열기가 뿜어졌다. 덥고 축축했다.

근처에 호수가 있기 때문일까? 문득 엉뚱한 기분이 들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숲, 손바닥에 닿는 미지근한 철의 감촉, 가스 마스크의 안구 보호대에 부옇게 서린 김. 서준은 두 번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가스마스크의 눈이 있을 부위를 똑바로 응시하며 팔을 휘둘렀다. 퍽! 철제 의자가 가스마스크의 턱을 세차게 후려쳤다.

서글픈 사실은 힘껏 후려쳤건만 고작 방독면이 비뚤어진 게 전부라는 것이다. 서준은 잇새 사이로 욕설을 짓이겼다. 무리한 자세로 힘을 준 탓에 시큰거리는 손목을 움켜쥘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가스마스크의 주의를 잠시라도 흩트릴 수 있다면 족했다. 서준은 배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주어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

앞으로 쓰러진 몸을 빙글 돌린 그는 양 무릎을 굽혔다가 힘껏 내뻗었다. 가슴팍을 얻어맞은 가스마스크의 돌처럼 단단하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체술이라고는 쥐뿔도 몰랐지만 자신의 비루한 몸뚱이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진 부분이 발이라는 것 정도는 서준도 알았다. 그의 온 힘을 다한 발차기에 칼의 손잡이를 놓친 상대가 중심을 놓치고 뒤로 자빠졌다.

서준의 필사적인 마음에 하늘도 감동하였을까? 비록 근육은 부족해도 키 하나는 길쭉하니 비루먹은 몸뚱이의 눈물겨운 발버둥이 통한 것이다.

[큭!]

방독면을 통한 신음은 공허한 울림과 함께했다. 서준은 가스마스크의 일면을 진지하게 고찰하느니 어설프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을힘을 다해 짜낸 것치고는 어영부영한 몸짓이었다.

본인의 자세를 점검할 틈도 없이 도박장의 경주마처럼 황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그에게도 학습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였기에 이번에는 가스마스크를 돌아보지 않았다.

처음 식당에 들어왔던 입구의 맞은편에 있는 출구로 빠져나온 서준은 다급한 손길로 문을 닫았다.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하몽 나이프가 바닥에 박힌 게 운이 좋았어.’

이 불운하기 짝이 없는 하루에도 그 나름의 소소한 행운이 찾아왔다. 가스마스크의 행동이 지체된 건 서준의 미력한 몸부림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스마스크는 공포 영화의 살인마답게 자신의 상징 무기에 집착했다. 당장 손에서 칼을 놓치고는 서준을 쫓는 대신 하몽 나이프의 손잡이를 붙들고 팔뚝을 억세게 흔들었다. 바닥과 칼날이 난잡하게 부딪히며 끼익 끼익 내던 소리가 귀에 소름 끼치는 잔상을 남겼다.

‘잠깐, 이거 행운이 아닌가….’

가스마스크의 행동은 단 한 가지를 시사했다. 잡히는 순간 서준은 그대로 햄이 될 운명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진실이 피부에 와닿자 땀으로 흠뻑 젖은 가슴팍이 크게 들썩였다.

초조해진 서준은 무거운 다리를 끌어 식당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졌다. 탈출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죽음으로부터 일보 멀어졌을 뿐이다. 그의 삶은 아직도 초라한 밧줄 위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으!’

서준이 질색하며 자신의 비유를 정정했다. 줄타기라니, 평소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산 그에게 반갑지 않은 인유였다. 주변을 살펴 대강 지리를 파악한 서준은 달음박질하며 좁은 길목을 향해 뛰었다.

‘좋아, 저길 지나가면 캠프파이어장하고 야영지가 나와.’

운이 좋으면 바로 크리스티나와 떨거지들을 마주할 것이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허벅지를 두드렸다. 몸을 움직이자 넘어져 부딪힌 무릎이며 잘못 휘두른 손목이 얼얼하니 아팠다. 얻은 것이라고는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자 혀끝에서 짭짤한 피 맛이 났다.

하필 가스마스크와 마주치는 바람에 일정이 아주 엉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는 조용히,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다시피 꿈틀거리며 이동할 작정이었다. 야밤의 부엉이가 내는 날갯짓처럼 매우 고요하게.

그러나 서준은 한밤의 올빼미가 아닌 운동 부족 청년이었다. 식당에서 식칼 따위라도 챙기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8시 50분이었다. 아직도 하루가 끝나려면 멀었다. 지난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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