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끝
재준이 다큐를 끝까지 본 것은 연구실에서였다.
[와, 메이킹에서 지승운 에스퍼 교태 부리는 거 장난 아니던데요? 박사님 무릎에 앉아가지고 막.]
“메이킹도 있어?”
[예, 올라왔어요. 그거보고 또 다들 아주 난리…… 그런데 박사님, 답 드렸어요?]
화면 너머로 예지가 물었다. 예지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온 다음 날 다 봤다며 재준에게 성형을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물론 영상통화로 본 재준의 모습은 예지가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성형이 아니라 진짜 안경 하나 벗고 그렇게 변한 거구나. 재준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심할 줄 몰랐던 예지는 재준에게 [안경 좀 벗어 봐요.] 라고 말했다. 재준은 별다른 말없이 안경을 벗었다가 썼고, 예지는 양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두 눈을 크게 떴다.
[와우. 박사님 안경 벗고 다녀…… 아, 안되겠구나. 허락하지 않겠어요.]
“누가?”
[누구겠어요.]
당연히 지승운이지. 예지도 재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예지가 물었다. 답을 드렸냐고. 재준이 “무슨 답?” 묻자 예지가 뜬금없다는 얼굴을 했다.
[박사님 다큐 안 봤어요?]
“어, 보긴 했어. 중간까지.”
[중간까지? 중간?]
“응. 그 다음엔…… 일이 있었어.”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중요한……. 지승운 에스퍼가 뭐라고 안 해요?]
“같이 봤는데.”
[…….]
같이 보자가 자빠지기라도 했나보지. 예지가 생각했다. 지승운은 끝까지 보지 않은 걸 뭐라 말하지 않았나보다. 하지만 답을 빨리 받기를 원할 텐데.
그렇게 생각한 예지가 슬쩍 재준을 바라봤다. 저쪽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박사님, 그 다큐 끝까지 보세요.]
“그래야 해?”
[예, 그래야 해요. 그거 되게 희망적이더라고요. 여러 생각도 나고. 그리고 박사님이 생각보다 더 잘생겨서 놀랐어요. 제 주위에서 난리더라고요.]
“어, 그건 나도 놀랐어. 내 얼굴이 아니더라.”
[보통은 이럴 때 그 정도 까진 아니라며 겸손 떨지 않아요?]
“나 가이드야. 미학적으로 아름다운걸 부정하진 않지. ……평소의 나와 갭이 심하긴 하니까 나 같지 않아서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고.”
[맞아요. 저도 볼 때마다 박사님 같지 않아요. 게다가 인터넷에 김재준 가이드 찬양들이…… 어우.]
“왜? 뭐라고 하는데?”
[……그냥. 그런 게 있어요. 괜히 검색하지 말아요.]
“나 웹 서핑에 약해.”
[알고 있어요.]
딱히 컴맹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잘 찾는 편도 아니었다. 호기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누르다가 이상한 사이트에 빨려 들어가기나 하겠지. 안 봐도 불 보듯 훤했다.
[아무튼 그거 끝까지 봐요. 박사님을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예지의 말에 재준이 영문 모를 얼굴을 했다. 사실 영문 모를 건 몇 가지 더 있었다. 라제쉬 박사 부부의 축하한다는 말이라든가, 잘 봤다고 전하는 시리예라든가.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 예지에게 물어보자 전 세계로 상영되는 OTT에 올라왔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그렇게 큰 홍보였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S급 에스퍼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가? 재준이 의문을 가졌다.
물론 지승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했다. S급 에스퍼인 것을 포함해서, 가이드 없이 10년 넘게 폭주하지 않은 에스퍼로.
형질이상자의 세계에 관심 없는 재준으로서는 모르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재준은 예지가 메신저 링크로 보낸 사이트를 들어갔다. 로그인을 하라는 말에 예지에게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자 도대체 문화생활은 하고 사는 거냐는 타박과 함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왔다.
“…….”
비밀번호가 password1234인건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승운과 함께 본 곳도 여기였나? 승운의 랩탑으로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게 맞는 것 같았다.
재준이 <지승운>이라는 이름의 다큐를 눌렀다. 안 그래도 메인에 떠 있었다. 밑에 보니 랭킹 1위다.
자막도 여러 국가의 언어가 지원이 됐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처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
이미 봤던 장면이어서 별로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90분가량 지나 마지막 장면이 왔을 때 재준은 승운이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알 것 같았다.
재준이 핸드폰 잠금을 풀어 승운에게 전화했다. 몇 번 신호음이 갔다.
[네, 박사님.]
사실 재준은 승운이 어떤 의도로, 혹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뭘 해줘야 좋아할지도 알지 못한다.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렇다. 온전히 누군가를 전부 알아내고,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승운아.”
당연하다.
[네, 말하세요.]
“결혼해줄게.”
타인이니까.
[…….]
“내가 네 태양도 되어줄게.”
하지만.
“사랑한다.”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박사님.]
그럼에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었다.
가이데올로그(Guidéologue) 외전 1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