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물
이곳은 2월이 다가올 때가 되면 더 추워진다.
사실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이 추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텐데, 기껏해야 영하 4도도 되지 않던 곳에 있다 오니 한국의 겨울이 더 춥게 느껴졌다.
그리고 재준은 답지 않게 추운 날씨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물론 더운 날씨도 마찬가지다. 한창 습도가 높을 때면 견디지 못하고 추욱 늘어져 헉헉대며 숨을 쉬었다. 땀에 젖은 모습이 야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계절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겨울이 되면 유독 행동이 느려지는 재준은 보일러를 찬양하며 맨 바닥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곤 했다. 차에 술 한 두 방울을 넣는 습관도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하니까 라제쉬 박사들의 습관이라고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라고. 데운 술에 버터를 띄우는 짓 또한 해서 지승운은 종종 기겁했지만, 그게 또 의외로 맛은 있었다.
“형질이상확인 키트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해서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한다네요.”
승운이 말했다. 재준이 그동안 승운과 함께 있으며 알게 된 사실은 지승운은 무조건 종이 신문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개의 신문을 본다.
때때론 영자 신문을 보는데, 확실히 영어에는 익숙해보였다. 다른 언어는 모르겠다. 요새는 불어를 배우려고 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키트를 판다면 편의점이 더 낫지 않아?”
“의약계 반발이 있어서요.”
“애초에 의약계와 상관없는데 왜 그러지?”
“옛날엔 의사들이 형질이상자 판단을 했으니까요. 지금은 형질이상학 전문가들이나 그 교육과정을 이수한 의사들만 가능한데, 뭐 나름의 파이 싸움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군.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관심 없다. 지승운이 아니었더라면 재준은 가이드니 에스퍼니 하는 것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겠네. 다들 자신의 이득을 따라 움직이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어 나름 머리를 짜내 답했다. 그리고 승운은 재준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굳이 알아차린 척 하지 않는다.
지승운은 나름 고민이 많았다. 귀국을 한지 이제 이틀이다. 휴가는 1월 말일까지 받아뒀기 때문에 2월부터지만, 출근 전에 특별한 날이 하나 더 있었다.
재준의 생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승운이 고민했다. 도대체 뭘 해줘야하지? 나름 멋진 이벤트를 해주고 싶은데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자니, 뭔가 생각을 안한 것 같아서 싫었다.
승운은 예지에게 재준이 뭘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예지의 답은 4시간 만에 왔다. 남 잘 때 메시지 좀 보내지 말라고 먼저 말한 예지는 자기도 재준이 뭘 좋아하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몇 년을 같이 지낸 예지도 재준은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래도 더 생각해보라는 말에 기껏 고민을 하더니만 다음과 같인 답이 왔다.
— 한식?
“…….”
한식을 좋아하는 거야 알고 있지. 미역국이라도 끓여줄까. 하지만 그건 이벤트 같은 것이 되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지. 밥은 전날부터 몰래 준비할 것이다. 이곳에서 하면 들키니까 제 집에 가서 말이다.
하지만 선물. 선물이 뭐가 좋을까.
— 역시 현금이 짱이죠.
“……유예지 연구원은 현금을 좋아하나 봐요.”
“응? 예지?”
갑자기 여기서 예지 이야기가 왜 나오나 싶은 재준이 승운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예지와 대화라도 나눈 듯 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돈 이야기가 나왔나보다. 아니, 돈 이야기? 돈 이야기가 뜬금없이 나왔을 리 없었다. 재준이 픽 웃었다.
“뭐, 유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박사님은 유학할 때 어땠어요?”
“음. 별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외롭다거나, 힘들다거나.”
“매운 게 먹고 싶어 힘들긴 했지만, 사실 익숙해지면 그것도 상관없어요.”
“외로운 건 없었어요?”
재준이 웃어보였다.
재준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승운은 재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모니카 에소노프에 대한 것을 알아낼 때나, 루카스 영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를 보면 재준에 대해 알면 알았지 모를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외로움이니 뭐니 묻는 거 보니 아무래도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얼추 아는 듯 했다.
외로움이라.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공부를 할 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만큼 여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바빠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준이 가족 전부를 잃은 때와 괴수학부에 입학해 바빠지게 된 사이에서는 몇 년의 텀이 있다. 그때가 괴롭거나 외롭냐고 묻는다면.
—사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승운아.”
“네.”
“넌 외로워?”
“글쎄요.”
지승운이 고민하듯 말을 흐렸다. 외로움이라. 에스퍼들은 그런걸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확실히 외로움이 뭔지 아니까.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 와서 생각하면.”
재준이 승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사님이 없어서.”
이어지는 대답에 픽 웃어 보인다.
“박사님이 한국에 있었다면 좀 더 일찍 만났겠죠?”
“그랬겠지.”
“하지만 그러면 지금의 박사님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그렇게 절박했던 저도 없을 거고. 전 그래서 박사님을 지금 만난 게 너무 좋아요.”
“더 일찍 만났으면 네가 괴롭지 않았을 수도 있어.”
“에스퍼들은 오만하고 제멋대로라서 그때 만났으면 박사님과 제가 이런 관계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어린 날의 지승운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새끼였지.
제 폭주시기에 맞춰 재준을 만났다면 아마 이런 저런 방식으로 학대 비슷한 것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가볍게 만나며 가끔 다른 가이드들과 뒹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제 짝이라 여기지 않고 무시하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울고불고 매달릴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렇게 된다면 재준은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칼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승운은 얼마 전 알게 됐다. 그 날은 정말 무서웠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재준은 승운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얼굴이었다. 도리어 왜 그러냐는 얼굴로 바라봤다. 도톰한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그 의도가 빤히 보여 재준이 웃음을 흘렸다. 먼저 입을 맞춘 것은 재준이었다. 어떤 농밀한 의도 없이 그냥 가볍게 애정 표현을 하듯 쪽 하고 맞추자 승운이 부족하다는 얼굴을 했다.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방금 전 보다는 길었지만 여전히 짧은 입맞춤에 승운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육식동물처럼 생겨서는 저런 얼굴을 할 때마다 귀여워 재준은 저도 모르게 양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해줘요.”
승운의 말에 재준이 양 뺨을 부여잡고 쪽쪽쪽 입을 맞췄다. 승운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런 거 말고.”
“좀 더 야한 거 해줄까?”
재준의 말에 이번엔 승운이 입을 맞췄다. 재준을 소파에 눕힌 승운이 혀를 뒤섞으며 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유두를 잡아 비튼 승운은 제 입안으로 들어오는 재준의 신음과 숨결이 간지러운 듯 혀를 강하게 빨아올리다가 뗐다.
“술 맛이 나요.”
“차향이 아니라?”
“술 맛이에요.”
취할 것 같아. 작게 말한 승운이 재준의 스웻 셔츠를 벗겼다. 재준 역시 승운의 티셔츠를 벗겼다. 지승운은 유독 얇게 입고 지낸다. 신진대사가 다른 사람처럼. 에스퍼니까 그럴 수밖에 없나 싶었다. 갑작스럽게 옷을 뺏기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은 자신과 달리 승운의 피부는 매끄럽기 짝이 없었다.
재준이 승운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난 그래도 종종 우리가 빨리 만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쿵쿵 하는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진다.
“그렇다면 네가 덜 괴로웠겠지.”
재준이 말했다.
“네가 울지도 않았을 거고.”
승운이 웃어보였다.
“종종 생각나. 네가 울 때가.”
그가 울었던 것 중 90%는 가짜였지만, 재준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난 네가 웃는 게 더 좋아.”
“……죄송해요.”
“뭐가.”
“전 박사님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좋아요.”
“…….”
“슬퍼서 우는 거 말고, 제 아래에서 우는 거요.”
“네 위에서도 종종 울었는데.”
“그건 평소보다 더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제가 다 울 뻔했다니까요.”
지승운은 그렇게 말했지만, 재준은 알고 있다. 자신이 울 때마다 승운의 미소가 더 짙어진다는 걸. 힘들어 죽겠는데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얄밉다가도, 어차피 자신도 좋아서 우는 건데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을 했다. 그래, 좋았다. 그거면 됐다.
승운이 재준의 목빗근에 입을 맞췄다. 뭘 하든 하기 편하도록 고개를 틀어주던 재준이 대뜸 물었다.
“그래서 고민은 끝났어?”
“예?”
“생일 선물 고민하고 있었잖아.”
승운이 그대로 멈췄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은 것 마냥 몸을 들어 올려 재준을 내려다봤다. 충격 받은 듯한 얼굴에 재준이 민망해했다. 승운의 시선에 약간의 배신감이 보였다. 평소엔 눈치 하나 없으면서 어떻게 오늘은 이렇게 알아차린 건지 모르겠다.
“모르는 척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고마웠을텐데요.”
“나도 고민 중이거든.”
“뭘요.”
승운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재준이 어깨를 추켜올렸다.
“너랑 나 생일이 열흘 차이더라.”
아, 맞아. 2월은 자신의 생일이었다.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걸 못 찾겠어. 혹시 받고 싶은 거 있어?”
“……전 뭐든 상관없는데.”
“나도 그래.”
재준이 답했다.
“네가 주는 건 뭐든 좋아.”
승운의 선물을 고민하며 재준은 역시 반지를 준 것이 너무 성급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제 생일이 더 빨라서 반지를 준비하면 아무래도 지승운이 선수를 칠 것 같았다. 그 전에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도 있었고.
반지는 재준이 먼저 건넸지만, 선물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옷 같은 것을 주자니, 재준은 자신의 센스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가방? 지승운은 가방을 쓰지 않는다. 신발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신이라고 하더라도 신고 어디로 가면 안 되니까. 펜은 괜찮으려나? 만년필 같은 거. 근데 지승운이 펜을 쓰는 경우를 거의 본 적 없다. 효용성이 없는 선물은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지승운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생일 선물 같은 거 너무 고민 하지 마. 사소한 것도 좋으니까. 앞으로 평생 같이 살 건데 매번 특별하고 그런걸 줄 순 없잖아.”
“박사님.”
“응.”
“박사님, 연애 많이 해봤어요?”
“……아니.”
“근데 왜 이렇게 경험이 많아 보이지?”
사람이 안정적인 게 되게 괜찮은 연애를 해본 것 같았다. 승운이 아는 것은 시리예 한명 뿐이었지만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하자 왠지 배알이 꼴렸다. 재준이 피식 웃었다.
“질투해?”
“질투해요.”
“글쎄. 성숙한 사람들을 옆에서 봐서 그런가봐.”
재준이 말하며 승운의 머리를 잡아 제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머리카락과 두피 사이에 손을 넣어 쓰다듬자 긴장한 듯한 승운의 몸이 늘어졌다. 느껴지는 무게감에 재준이 웃어보였다.
“라제쉬 박사님 부부가 그랬거든. 부러웠지. 그런 동반자를 얻고 싶었어.”
그 여자가 아니었구나.
“그러니까 예쁜아.”
재준의 말에 승운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머리카락에 가슴께가 간지러워 재준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너랑 그렇게 살고 싶어.”
“저도요, 박사님.”
승운이 말하며 다시 재준을 끌어안았다. 재준 역시 승운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재준이 다시 말했다. 온기를 느끼는 건 좋은데, 지나치게 불편할 정도로 제 위용을 드러내는 게 있었다.
“그건 어떻게 해결을 좀 해줄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걸 왜 네가 알아서 해. 내 건데.”
재준이 픽 웃으며 말했다.
*
재준의 양 볼과 귀가 새빨개진 상태였다. 승운이 입을 맞출 때마다 호들짝거려 왠지 모를 충족감이 느껴진다. 오늘 유독 민감한 것 같았다. 숨을 들이키는 것 같은 신음이었다.
“소리 내요.”
“소리 내게 해줘야지, 네가.”
그는 늘어진 얼굴로 자신의 다리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쪽은 젤로 질척였다. 부풀어 오른 안쪽을 문지를 때면 구멍을 움찔거리며 하, 흐학, 하고 소리 내는 모습에 승운이 만족스런 숨을 내뱉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구멍에 제 성기를 맞췄다. 재준이 눈을 살짝 내리깔며 맞닿은 구멍과 성기를 바라봤다.
승운이 천천히 들어오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삽입되는 것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결국 끝까지 박히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넣자마자 굽어진 발가락을 승운이 일부러 잡아 피며 다른 손으로는 발기한 성기를 살짝 건드렸다. 안 그래도 좁은 구멍이 성기 때문에 한계까지 벌어져있어 있었는데 수음까지 해주자 움찔거리며 제 것을 물어왔다.
“핫, 어읏!”
천천히 박는다고 움직였는데 퍽퍽 소리가 났다. 승운이 박아 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안겨서 신음하는 것뿐이었다. 귓가에 소리가 바로 들어오자 승운이 목을 움츠렸다. 그가 천천히 움직이려고 하면 좁은 구멍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결국 튕기듯 안을 긁어내다가 속도를 빨리 하자 재준이 하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자지 끝에서 투명한 프리컴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승운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던 재준이 몸을 움칫 하며 떨었다. 잔뜩 느끼기라도 한 듯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저어대자 안경이 소파 아래로 툭 떨어졌다.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숨을 가쁘게 쉬던 재준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으, 흣, 승운아—.”
울먹이는 재준의 얼굴과 배가 액체로 반질반질 거렸다. 위로는 눈물을, 아래로는 프리컴을 흘리는 모습에 참지 못한 승운이 골반을 잡고 끌어당기며 박아댔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승운이 다시 재준의 성기를 잡아 흔들었다. 자극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재준이 그저 매달려 울었지만 승운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재준의 복부가 움찔대며 몇 번이나 정액을 쏟아내자 승운도 스퍼트를 올렸다. 가쁜 숨이 재준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퍽 하고 쳐올리자 재준의 몸이 다시 한 번 움찔 떨렸다. 안에서 승운의 것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몇 번에 걸쳐 사정한 승운이 그대로 성기를 빼내자 정액이 흘렀다. 승운이 재준을 돌아 눕히며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추고 짐승처럼 깨물었다. 재준의 목에 남긴 제 치아자국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승운이 허벅지를 쥐어 벌리고는 다시 박아댔다.
벌린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억누르는 신음도, 간드러진 교성도 아닌 새된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엎드린 자세라 도망치기 쉬웠는데도 이상하게 몸이 구속된 것처럼 움직이기 힘들었다. 재준이 팔을 뻗어 소파의 팔걸이를 잡으려 했지만 순간 강하게 박아댄 승운 때문에 몸이 움찔 움찔 떨렸다.
“흐, 흐읏, 읏! 아읏!”
이번에는 얕게 치달았다. 제 등에 상반신을 밀착시켜 안쪽을 비비듯 움직이는 승운에게 재준이 얼굴을 돌렸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제 눈과 마주치자 사르르 웃어보였다.
“키스, 해주세요.”
키스하기 편한 자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재준은 목과 몸을 틀어 승운에게 입 맞췄다. 혀가 얽혀졌다. 자신을 파고드는 승운과, 더불어 소파의 가죽에 비벼지는 제 좆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너무 마찰이 되서 죽을 것만 같았다. 재준이 흐윽 우는 소리를 냈지만 승운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체위를 바꿔 재준의 구석구석을 맛봤을 뿐이다.
재준이 소리를 낼수록 승운의 만족감이 올라갔다. 게슴츠레 눈을 뜬 재준이 승운을 바라보다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승운이 찌르는 각도가 틀어지자 재준이 흣 하고 소리 냈다. 그가 도리질하자 승운이 움직임을 멈추며 “힘들어요?” 물었다. 재준은 대답하지 못한 채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었다.
“하— 예쁜아.”
“녜, 재준 씨.”
“얼굴 보고… 하자.”
승운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네 얼굴 좀 보여줘.”
그러고는 곧 웃어보였다. 제 성기를 빼지도 않은 채 재준의 몸을 휙 돌리자 재준이 다시 움찔거렸다. 안에서 반 바퀴 돌면서 성기의 끝 부분이 어딘가에 닿았다 떨어졌다. 분명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았다. 재준이 몸을 떨자 승운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막 사정한 정액이 재준의 성기와 복부에 흘렀다.
“흐, 하으…… 하아, 하—.”
야하다니까, 진짜. 승운이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나중에 가면 또 강하게 찍어 누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천천히 하며 재준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눈을 내리깔며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야했다. 그 다음 시선을 올린 재준이 승운을 향해 배시시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다시 아래에 반응이 올 것 같았다. 재준이 말했다.
“너무 좋아, 너.”
“……저도 그래요.”
***
“형,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응. 좋아.”
이경민이 내려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니, 아예 한국에 오랜만이었다.
“출장은 잘 다녀왔어?”
“최악이었어요.”
이경민은 그동안 중국이며 미국이며 왔다갔다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쪽도 잠깐 들르긴 했지만,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고려인이 아니냐며 여권을 뺏으려는 통에 경민이 결국 타국의 에스퍼라는 것을 밝히자, 형질이상자는 무조건 차출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며 바로 횡단열차를 태워 서쪽으로 보내려는 듯 달려들었다. 결국 도망친 이경원은 캄차카 반도를 지나 홋카이도로 도망쳐 한국 영사관에서 긴급여권을 받아 귀국했다.
이경민이 그동안 보낸 보고서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메일로 보내는 보고서는 정제된 언어로 썼지만 메신저에는 쌍욕이 오고 갔다. 경민은 그 개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억울했다. 그냥 생명수당 이걸로는 부족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니카 에소노프에 대해서도 알아봤는데요. 러시아 쪽도 연관이 안 되어 있는 건 아닌데 모니카 에소노프를 죽인 건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입니다.”
“미국?”
“예, 미국에서 처리했어요. 시신도 미국이 가지고 있는데요? 관계 좀 살펴보니까 러시아 쪽이 도리어 난리에요. 사람 죽였다고.”
“흠.”
“받을 정보가 있었나 봐요. 근데 정부 쪽은 아니고 개인 기업 같아요.”
“원래 괴수학자들 살해청부는 많긴 한데……. 이게 그냥 괴수학자라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첩자라서 그런지는 알아봐야겠군. 국내는?”
“엉망입니다. 지승호가 고생이 많더라고요.”
다들 고생이었다. 심지어 오늘 태환은 출장이었다. 아마 지승호한테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첩보활동을 할 것이 분명했다.
승운이 패드에 올라온 보고서를 살피며 고민했다. 그도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다. 어쨌든 물밑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전면전으로 나서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지승운이 대부분 그 일을 했다. 일종의 얼굴마담처럼.
“금융기관이나 변호사나 자금운용전문가들, 바지사장, 페이퍼 컴퍼니. 아주 모든 직업군이 다 나서서 재산 은닉과 반출을 돕고 있네.”
이경원이 말했다. 저쪽은 정말 물 밑에 있는 쪽이었다. 그것도 주로 취조실 말이다. 그곳에서 만난 이경원은 무섭지만, 취조실 밖의 이경원은 그냥 당중독자였다. 오늘도 어디서 사왔는지 모를 꽈배기를 물어뜯으며 “이쯤 되면 클렙토크라트는 전 인류의 전통이 아닌가 싶어.” 말하는 경원을 향해 승운이 비아냥거렸다.
“치밀한 부패가 무슨 인류의 전통이라고.”
“안 좋은 전통, 안 좋은 전통. 답습!”
경원이 말했다. 승운이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보고서를 바라보다가 다시 피식 웃는다.
저 새끼가 부패 얘기하는데 웃네. 그런 승운을 이상하게 보는 것은 경원만이 아니었다. 이경민이 물었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응? 아니.”
“그렇다기엔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
“난 원래 늘 기분이 좋았어.”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그나저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누구 생일이에요?”
“그냥 간단한 거면 된다는데.”
아, 그 박사님이 곧 생일인가 보구나. 근데 그걸 여기서 물어봤자 딱히 얻을만한 건 없지 않을까? 현재준 박사를 잘 아는 사람한테 묻는 것이 좋을 텐데. 유예지 연구원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승운이 그녀에게 묻지 않았을 리는 없다. 유예지 연구원도 잘 모르는 건가?
“뭘 그걸 물어봐.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경원이 말하며 제 핸드폰을 두드리더니 승운에게 대뜸 넘겼다.
“이게 뭐야?”
“식물종 희귀괴수 거래 사이트.”
“불법 아냐?”
“동물종은 불법인데 식물종은 합법이야.”
승운이 경원의 핸드폰을 뺏어 살펴봤다. 하지만 승운은 보통 식물종 괴수들을 처리하지 않아서, 이게 얼마나 희귀하고 좋은지 알 수 없었다.
동물종과 달리 식물종은 특정 종류 빼면 큰 피해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보통 D급 이하의 에스퍼들이 찾아가서 해결한다. 애초에 그가 작년에 MKR을 처리하러 간 것조차도 위에서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물론 지승운은 그때 간 걸 후회하지 않지만 말이다.
“좋은데?”
승운이 말하며 사이트 주소를 확인하고 제 핸드폰에서 다시 검색했다. 경원이 폰을 돌려받았다.
“근데 너도 생일 곧이잖아.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딱히.”
“너야말로 선물하기 진짜 까다로워.”
“아무거나 줘, 아무거나.”
“너 박사님한테도 그렇게 말하냐?”
그 말에 경원에게 시선을 한번 줬던 승운은 다시 핸드폰으로 돌렸다. 개무시였다. 오히려 그는 예쁘장하게 생긴 괴수 하나를 보여주며 “이거 박사님이 좋아할까?” 하고 물었다.
“배송하면 언제 오지? 집으로 주문하면 되나?”
승운이 말하며 화면 속 괴수들을 바라봤다. 크기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제일 비싼 게 제일 좋겠지? 승운이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여러 괴수들을 담았다.
***
[박사님까지 이걸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지승운 에스퍼도 이걸로 너한테 상담했어?”
[예에.]
“그래서 현금을 추천했고?”
[현금이 최고죠.]
“지승운 돈 많대.”
현금 줘 봤자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야. 이어지는 재준의 말에 예지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주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요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돈이 풍족한 사람이 왜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겠냐는 말에 재준은 할 말을 잃었다.
재준이 피식 웃다가 시선을 돌렸다. 창가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보던 예지가 [왜요?] 물었다.
예지는 영상 통화 하단에 조그맣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머리를 묶고 있었다.
“물 냄새가 나서.”
[웬 물…… 아, 눈 오려나?]
“눈 냄새는 이거랑 달라. 날씨가 금방 따뜻해져서 그런가.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거기는 비 오다가도 눈으로 바뀌잖아요.]
“그렇지. 운전하기 수월하지 않아. 얼마 전에는 통근버스 탔다니까.”
[아아, 지승운 에스퍼도 김태환 에스퍼도 눈길에 운전을 안 해봤나보구나. 저 다리 위에서 브레이크 밟다가 세 바퀴 돌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나중에 알았잖아요. 다리 위에서는 엑셀도 브레이크도 밟으면 안 된다는 거. 겨울타이어나 체인이나 미끄럼방지 스프레이 같은 거 안 챙겨뒀죠?]
“그런 게 필요하구나.”
[잠시만요. 제가 알려줘야겠다.]
그렇게 말한 예지가 폰을 들어 올려 타이핑했다. 곧 단톡방에 알람이 울렸다.
— 대천재 유예지가 추천하는 눈길 운전 필수품임돠~
재준은 화면을 확인하고 피식 웃다가 다시 예지를 바라봤다. 동시에 띠링 띠링 알람이 더 울렸다.
[언제까지 통근 버스 타고 다닐 수는 없죠.]
예지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 저런 얼굴.
“그런 표정을 짓게 해보고 싶은데.”
[네?]
“승운이 말이야.”
이젠 부르는 호칭이 자연스러웠다. 예지가 사과를 와삭 깨물며 생각했다.
“뭐 일단 노력해봐야지. 그래서 유예지 연구원. 이게 이번에 나온 결과인데.”
[어엇, 잠시만요! 아. 메일 말고 메신저로 보내주지. 더 확인이 빠르잖아요.]
“다운 받는 기간이 정해져 있잖아. 용량도 그렇고.”
[잠시만요. 아, 받았어요. 수치 변동이 있네요? 잠시만, 저도 여기서 찾은 게 있어서 메일로 보낼게요.]
“응, 고마워.”
예지가 뭘요, 하고 답하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으아, 이제 출근해야 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박사님, 잘 지내세요.]
“너도. 몸조심하고, 잘 챙겨먹고. 여름에 온댔지?”
[네. 박사님은 겨울에 오실 거죠?]
“응, 매년 겨울.”
[일 년에 두 번은 보겠네요. 명절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박사님도요. 다음 학술회에선 이그노라빌라스에 대해 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한 예지가 코트와 가방을 먼저 챙기고 신발을 신는 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재준이 그런 예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예지 역시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랩탑을 내렸는지 화면이 꺼졌다.
재준 역시 꺼진 화면을 닫았다.
“그래서 선물은 뭐가 좋으려나.”
승운에게는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재준 역시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역시 승운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지승운이 뭘 좋아하냐고요?”
“예.”
“걔…… 딱히 좋아 하는 거 없는데.”
“늘 갖고 싶어 했던 거나. 아, 이 호르몬 수치요. 변동폭이 좀 이상해서요.”
으, 일 하기 싫어서 현재준 부름에 온 건데 재준이 일거리를 내밀었다. 종종 호르몬 계열로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재준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던 경원은 이제 슬슬 귀찮아지고 있었다. 어디 실직한 호르몬 학자 한명 데려와서 괴수연구소에 집어넣으면 자신에게 더 이상 안 물으려나 생각하던 경원은 재준의 말을 한번 곱씹더니 말했다.
“지승운이 늘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거 이미 가졌던데요?”
“예?”
경원이 재준을 가리켰다.
“가이드요.”
지승운이 10년이나 가지고 싶었던, 그 누가 됐든 나타나기만 한다면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던 그 가이드. 실질적으로 지승운에게 필요한건 현재준의 평생이다.
“걔가 갖고 싶어 하는 건 그거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박사님만 있으면 될걸요?”
“제가 있는 건 당연하고요.”
“야한 이벤트라도 해주던가.”
“해줬더니 좋아하긴 하더라고요.”
“…….”
농담 삼아 한 말에 이런 답이 오자 경원은 좀 당황했다. 지승운이 가끔은 좋아서 곤란해 죽겠다는 얼굴로 재준이 너무 솔직하다고 말을 했는데 그게 이 뜻인가 싶었다.
재준이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려 경원을 보다가 다시 서류로 옮기며 말했다.
“우리 이런 대화 나눌 사이 아니죠?”
“아…… 그러게요.”
“저도 말하지 않을 테니 다음부턴 그런 언급 말아주십시오. 승운이가 싫어할 것 같기도 하고.”
“예에…….”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도대체 왜 재준이 저런 말들을 하면 부끄러워하거나 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냥 이미지 상 그래보였는데, 상상과는 달랐다. 재준은 더 이상 경원에게 뭐가 좋겠냐고 묻기보단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승운이 뭔가 하자고 했던 것이 있긴 했다.
차트를 살피던 경원이 재준에게 말했다.
“이 호르몬 변동은 크게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가이드들은 특정 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변동하거든요. 여성 가이드들은 특히 더 그런 편이죠.”
“흠, 그렇군요.”
그래. 연비, 혹은 부병자자.
그게 있었다.
***
동절기는 웬만하면 식물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승운은 몰랐다. 하지만 괴수는 다른 식물들 보다 튼튼하기 때문에 배송이 가능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내린 비가 결국 눈으로 변했고, 바닥은 반쯤 녹은 눈이 질척대다 그대로 얼었다.
이 구역으로 오는 택배는 여러 검역을 걸치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배송이 늦었다. 심지어 생일에 맞춰 제때 도착하지도 않았다.
2월 1일, 제 집 앞에 있는 희귀식물종 괴수를 바라보던 재준은 승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말하자면 거의 최악의 배송이었다.
“제가 너무 무리했나 봐요.”
재준이 웃어보였다.
생일을 마지막으로 챙겼던 때가 언제더라. 1월 말에는 항상 수업이 있었고, 재준은 제 생일을 누군가와 나누지 않았다. 그 날은 자신의 생일임과 동시에 가족들의 기일이었기 때문에 처음 몇 년은 우울했고, 그 다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제 생일인지도, 가족의 기일인지도 모른 채.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챙겨주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받는 선물이었다. 비록 늦었지만.
재준이 웃어보였다. 승운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거 곧 완공되는 온실에다 갖다 둬도 돼?”
“……박사님 원하는 대로 하세요. 박사님한테 준거니까.”
“하지만 사비라서. 내가 키우고 싶은데 키울 자리가 없고. 온실 완공되고 거기서 키우게 되면 국가 소속으로 생각될지도 몰라서.”
“뭐가 됐든 좋아요. 박사님이 좋아하기만 하면.”
“엄청 좋아.”
아마 내일 트럭이라도 불러 옮겨야겠지만, 뭐 그건 내일 생각해야했다. 어쨌든 재준은 괴수 화분을 그대로 방안에 옮겼다. 죽은 괴수 역시 흙에서 뽑더니 뿌리를 보고 아직 죽지 않았다며 잘 키우면 된다고 말했다. 승운 역시 재준과 함께 화분을 안으로 옮겼다.
이렇게 주고 싶지 않았는데. 승운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승운아.”
“네, 박사님.”
“나도 네 선물 준비하긴 했는데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어.”
“전 박사님이 주는 건 다 좋은데.”
“장담하지 마.”
사실 재준이 예약을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하면 서프라이즈가 아닌데, 또 미리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거라.”
아무래도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주는 선물이 아니니까 상호 허락이 필요했는데, 제가 혹시 위계로 눌러 승운에게 그러자고 하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내가 위 맞지? 재준이 생각했다. 재준이 핸드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승운에게 보여줬다.
뭔가 싶어 화면을 바라보던 지승운이 눈을 깜빡였다.
“어.”
그리고 재준을 바라본다.
“이거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요?”
“응.”
“진짜? 진짜 해줄 거예요?”
“저번에 네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하지만…… 이건 몸에 남는 건데.”
승운이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준 몰래 멋대로 이름을 새기고 나타날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재준이 먼저 예약한 것을 보여줬다. 그러니까, 커플 타투였다.
“응, 그러니까 하자고. 난 너랑 헤어질 생각이 없어서 괜찮을 것 같아.”
“저도 헤어질 생각 없어요.”
“그래? 그럼 그 날 하러 가자. 휴가 냈으니까 너도 휴가 내고.”
“진짜죠?”
승운이 재차 물었다. 재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진짜로?”
“응. 위치는 같이 고민해보고.”
“잘 보이는 데가 좋아요.”
“……원한다면 그래도 괜찮긴 한데.”
보이는 데는 어디를 말하는 거지? 이마? 그건 좀…… 재준의 미학 상 어긋났다. 물론 재준이 미학적으로 뛰어난 취향을 가졌다기보다는 그냥 예쁘다 아니다만 구분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난 아슬아슬한 곳이 좋아. 남들이 모르면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곳.”
그렇게 말하며 재준은 승운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습관처럼, 늘 같은 자리였다. 그때 승운은 여기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