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2권) (5/20)

4.

그날따라 날이 더웠다. 재준은 주말 아침 바닷가를 달린 뒤 내내 소파와 침대에 번갈아 누워있었다. 괜히 달리기 따위를 해서 힘을 낭비한 탓이었다.

시간 죽이기라는 취미생활을 하고 나니 다시 주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예지는 근육통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하며 멋대로 차를 마셨다. 출근 시간이 되자 집 앞에 SUV가 섰다. 그들이 언제 돌아온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기에 재준은 오늘도 태환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가니 승운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태환은 조수석에 앉아 손만 들여 보였다.

“박사님.”

“지승운 씨?”

승운은 평소보다 편안한 차림이었다.

제복이 아니라 훈련복을 입은 모습이 묘하게…… 선정적인가?

아차, 이런 생각은 실례지. 재준이 시선을 떼며 “일찍 오셨네요.” 말했다.

“박사님이 보고 싶어서요.”

승운이 웃으며 다했다. 태환과 예지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에라이, 시발.’

‘저걸 저렇게 티 내냐.’

그들이 질린 얼굴로 승운을 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 새끼 알고 있네.’

예지가 생각했다. 태환도 예지가 지승운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 저 눈치 없는 척 하는 박사도 알지 모른다고 태환은 생각했다.

두 사람이 차에 올랐다. 승운은 늘 그렇듯 벨트를 매라는 말을 하고 출발했다.

“저 없는 동안 별 일 없으셨습니까?”

“예, 늘 그렇듯이.”

재준이 대답하자 승운이 태환을 바라봤다. 잘 모셨냐는 얼굴이다. 태환은 조금 억울해졌다. 그가 모실 수 있는 최고의 수준으로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저 신뢰 없는 표정이라니. 그동안 알아온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괄시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바라본단 말인가. 이왕 좋아할 거라면 가이드를 좋아하지!

“그러는 지승운 에스퍼는.”

재준이 말했다. 승운이 리어뷰미러로 재준을 확인했다.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오늘따라 유독 예쁘네. 현재준이 생각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촉촉해 보이는 눈동자가 한층 더 그윽해보였다. 편안한 차림새도 비슷했다. 늘 단정하고 정갈하게 입은 모습만 보다가 좀 풀어져서 그런가. 사적인 비밀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물론 지승운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다 저 에스퍼가 예쁜 탓이지.

아닌 듯해도 자기도 가이드가 맞았나보다.

“괜찮습니까?”

재준이 묻자 승운이 “예?” 하고 되물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괜찮다는 거? 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나? 자신의 머릿속을 들키기라도 한 건가 싶어 표정을 굳히던 승운에게 태환이 말했다.

“박사님이랑 유 연구원이 대장을 좆밥으로 봤습니다. 그슨대 습격이 있었다니까 괜찮냐는 거 있죠?”

승운이 피식 웃어보였다.

“지금 저 걱정해주는 건가요?”

아닌 척 하려고 해도 올라가는 승운의 입 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 재준이 리어뷰미러에 비치는 승운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입매가 보이지도 않는데, 그저 눈만으로도 웃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웃는 모습을 계속 보면 정 들어서 안 되는데. 현재준이 생각했다. 그러나 시선을 피하고 싶어도 예쁜 얼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지승운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선하네요. 절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서.”

당연한 말이다. 누가 지승운을 걱정한단 말인가. 그를 걱정하기에는 세상에는 더 큰 문제들이 많다. 차라리 인류 멸망이나 환경파괴를 걱정하는 편이 더 건설적이었다.

“많이들 걱정할 텐데요.”

“박사님처럼 절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죠.”

기껏해야 폭주 걱정이겠지. 아니면 경제적 손실이나. 승운이 생각했다. 일 마무리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비무장지대에서 박사님이 저보고 위험하니까 들어가 있으라고 했을 때 엄청 놀랐어요.”

승운이 말했다. 태환이 놀란 얼굴로 몸을 돌려 현재준을 바라봤다. 누가 뭐라고? 위험해? 들어가 있어? 이게 무슨 소리지. 위험하긴 누가 위험하단 말인가. 괴수들? 괴수들을 너무 아껴서 죽을까봐 걱정했나? 괴수학 박사니까 그럴 수 있었다. 태환이 나름 납득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럼. 그게 맞지. S급 에스퍼에게 당할 괴수들을 떠올려보라. 귀여운 이름을 붙여 애지중지하는데.

“지승운 씨는 지금 가이딩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가 아니네? 태환이 다시 고개를 돌려 현재준을 바라봤다. 재준은 태환의 시선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태환이 시선을 돌려 유예지를 바라봤다. 예지는 태환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 부분은 말하지 마시고.” 승운이 말했다.

“높은 매칭률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거예요.”

“…….”

잘 나가다가 이런다니까. 승운이 얼굴을 굳혔다. 여기서 높은 매칭률의 가이드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본인은 생각해주는 듯 했지만 승운으로서는 확실한 거절로 느껴졌다.

“예, 그렇겠죠.”

승운이 답했다. 내키지 않는 걸 드러내는 목소리였다. 예지는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 없는 척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재준을 바라봤다. 워낙 표정 변화가 드물어 오래 알고 지낸 예지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

어둠속에 선 자. 어둠에서 태어난 그슨대.

그슨대는 물리 공격을 받으면 더 강해진다고 한다. 공격하는 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슨대는 더 강해져 공격자를 살해한다.

그슨대는 A급 괴수로 어둑시니의 아종, 혹은 변종으로 구분한다. 불, 번개, 빛 등의 물리 공격에 약하다.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그슨대를 생포한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특성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성장하며, 그들의 예상 수명이 어떤지는 파악된 바가 없다.

“이렇게 미라 같은 괴수는 처음 봤습니다.”

현재준이 말했다. 말라비틀어진 그슨대가 그들의 눈앞에 있다. 재준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지승운 씨가 죽인 건가요?”

“…….”

이건 일부러 묻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지승운이 죽였다. A급 괴수였다. A급 괴수를 죽이려면 최소 A급 에스퍼가 있어야한다. 에스퍼의 등급은 처리 가능한 괴수 등급과 동일했다. 물론 B급 에스퍼가 열다섯 명 정도 있다면 A급 괴수를 죽일 수 있었다. 비효율적이었다.

“예.” 승운이 대답했다.

그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힘을 쓰기는 했다. 그냥 터뜨려버릴걸 그랬나. 아예 흔적조차 못 찾도록 했으면 여기서 재준과 그슨대를 볼 일은 없었을 텐데.

“제가 무섭나요?”

승운이 물었다. 그슨대를 바라보던 재준이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마주쳤다. 딱 편하게 떨어지는 눈높이였다.

“왜요?”

재준이 되물었다.

그거야…… 보통은 무서워하니까.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그를 존경하거나, 동경하거나, 혹은 가지고 싶어 하거나. 하지만 그들의 시선과 현재준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시선은 하나다.

무서워하는 것.

재준이 “그럴 리가요.” 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에스퍼 분들도 이렇게 갖다 주시면 좋을 텐데요. 피가 없는 건 아쉽지만 덕분에 연구가 수월해졌습니다.”

……맞다. 이 사람 멀쩡해 보여도 사실 이상한 쪽이었지. 승운이 안심했다.

제정신으로 괴수학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제정신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공부를 계속했다간 실성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작업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랬다. 그들처럼 괴수와 적대되는 경우는 더더욱. 평화로운 21세기에 괴수와 죽음과 삶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은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열두 살 된 아이를 해부하는 제 모습이 무섭습니까?”

재준이 되물었다. 승운은 미라처럼 변한 그슨대를 바라봤다. 배를 갈라 열어본 흔적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겐 익숙지 않겠지만 재준에게 괴수 해부는 일상적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온전한 괴수의 경우 MRI를 찍어 장기 구조를 파악하고 뜯어서 분석하는 것은 후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이건 아이가 아니라 괴수인데요.”

“예, 지승운 씨가 죽인 것도 아이가 아니라 괴수입니다.”

그렇다. 이건 아이 모습을 하고 있어도 괴수다. 절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재준이 이어 말했다.

“추정 나이는 137세. 하지만……. 뭐 그건 생략하고, 발육이 좋은 괴수였습니다.”

“괴수도 발육도가 다릅니까?”

“예,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그렇게 말하며 재준은 승운과 자신을 가리켰다. 같은 사람이지만 발육이 다르다는 것처럼. 승운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승운과 재준은 다른 종이다. 재준이 그렇게 좋아하는 (지승운은 그에 대해 약간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학명으로도 구분되어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 승운은 자신과 현재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준은 계속해서 그슨대를 살폈다. 손끝이나 발 끝 같은 곳은 물론이고 두피나 다른 눈에 띄지 않는 곳을 가리킨 재준이 “고문흔이 있는데.” 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약 백여 년 전 생긴 것 같더군요. 정확히는 그가……. 음.”

그가 아직 사람일 때 새겨진 흔적이었다. 이 말은 굳이 승운에게 할 필요가 없었다.

“어둠에 삼켜지기 전이겠죠.”

그렇게 말한 재준이 승운을 올려다봤다. 모든 괴수는 그 기원을 생물로 한다. 인간 역시 괴수가 될 수 있다. 조건이 맞는다면. 조건이 맞아떨어지기는 까다롭지만 만에 하나 그게 되었을 때 아주 곤란해지는 인물들도 있다.

“지승운 씨.”

현재준이 말했다.

“삼켜지지 마십시오.”

승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은 알았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나저나 오래 산 괴수여서 잡는데 힘드셨겠어요.”

그렇게 말한 재준은 그슨대를 그대로 사체안치실에 밀어 넣었다. 승운이 웃어보였다. 힘을 덜 쓸걸 그랬다. 그래야 이렇게 불편하게 마주하지 않을 텐데.

“그렇죠.”

그슨대를 잡는 것 보다 재준과 마주하는 지금이 더 힘들었다.

“고생 많으셨네요. 안다 치셔서 다행입니다.”

재준이 말했을 때, 승운은 가슴 한구석에서 뻐근함을 느꼈다. 뻐근함? 뿌듯함?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저런 식으로 걱정한다는 것이 신선했다. S급 에스퍼가 다칠 리가 없었다. 그가 걱정할 때마다 다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지승운을 걱정하냐는 얼굴이었지만, 재준은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 승운은 그게 좋았다.

“그슨대는 어땠습니까? 대화는 통하던가요?”

“예. 말을 했습니다.”

“그래요? 어떤 대화를…… 아니, 습격 사유를 말해주진 않던가요?”

“듣기 전에 죽여서. 그런데 그게 중요합니까?”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괴수박사들이니까요.”

“…….”

“목적을 알면 좋겠죠. 그들을 노린다는 건, 저를 노린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상했지. 이상하고말고. 애초에 괴수들은 무분별하게 나타나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는데 그때의 그슨대는 마치 노리듯이 나타났다. 뭐, 불특정다수를 노릴 수도 있었다. 연쇄살인마처럼 괴수들이 이유 없는 살해를 저지르긴 했으니까. 하지만 대화가 통해. 그게 문제다.

결탁, 명령. 그것들이 괴수에게도 가능한 것인가?

그래,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

괴수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니까.

그들은 그때 괴물, 요괴, 도깨비 등등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나타나는 괴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저 괴수학자들이 싫을 수 있겠죠. 자신들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해부하고 기록하는 이들이니.”

하지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박사님은 무사하실 겁니다.”

지승운은 S급 괴수를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혹은 그 이상일수도 있지만, 아직 S급 괴수라는 것은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 승운을 이길 수 있는 괴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이 결탁을 하든, 명령을 받든, 다른 꿍꿍이가 있든, 혹은 무차별적인 살해라고 하더라도.

“제가 지켜드릴 거니까요.”

승운의 말에 재준은 그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승운의 눈에 현재준의 모습이 비췄다. 재준의 눈에는 승운이 비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안경에 반사된 녹색 빛에 승운의 모습이 어렴풋이 담겼다.

“예, 알고 있습니다.”

현재준이 대답했다.

“지승운 씨를 경호 에스퍼로 둬서 영광입니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묻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

“들으셨어요?”

태환이 말했다. 승운은 뭐가? 라는 표정으로 태환을 보다가 재준을 향해 “박사님.” 하고 웃어보였다. 트레이를 알아서 챙겨주는 모습에 태환은 도대체 지승운이 왜 저러냐는 얼굴이었다.

현 박사가 약 쓴 거 아냐? 태환이 생각했지만 지승운이라면 웬만한 약이나 독도 한 시간이면 해독되는 몸이다. 약을 써서 되는 게 아니었다. 역시 경민이 주장한대로 최면술일지도 모른다. 최면은 뇌에 직접 작용하는 거라 화학식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다르다면서 말이다.

재준이 먼저 트레이에 음식들을 담기 위해 이동했다. 그와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승운이 “뭘 들어?” 하고 물었다.

“이번 주에 거제도에서 가이드 한명이 온대요.”

태환이 답했다. 경민에게 들은 소식이었다. 경민은 경원에게 들었을 것이다.

“왜?”

승운이 물었다. 사실 궁금하지는 않았다. 인사이동 시기가 아닌 때에 왔으면 사고라도 쳤나보지 싶었을 뿐이다.

“일 때문이라던데요? A급 가이드래요. 오자마자 대장이랑 매칭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태환이 말했다. 승운이 멈칫했다.

“그리고 다음 발령지를 영종도로 신청했대요. 뭐, 실적도 꽤 괜찮은가 봐요.”

“난 필요 없는데, 매칭.”

“대장한테 거부권이 어디 있어요. 거부하려면 그 가이드를 찾아야지.”

그렇게 말한 태환이 현재준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현 박사는 그렇게 매력 있는 얼굴은 아니다.

평범……? 그래, 굳이 좋게 평하자면 평범했다. 눈이 조금 작은 탓인가.

하지만 키가 훤칠하고 몸매도 나쁘지 않다. 어깨가 굽긴 했지만 뱃살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좀 마른 몸으로 보였다. 지승운은 재준의 몸이 어떤지 대충 알지만 굳이 태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몸을 본다면 태환의 생각이 조금 바뀔지도 몰랐지만 승운으로서는 태환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그러나 승운의 노력이 무색하게, 태환은 현재준 박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성적인 관심은 아니다. 그저 궁금증이었다. 도대체 매력이 뭐가 있지?

사실 태환으로서는 현 박사가 그 예쁜 가이드와 사귈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밤일을 잘하나? 에스퍼 정도의 체력이 있는 건가? 근데 왜 지승운까지 현재준 박사에게 푹 빠져서는 저 난리란 말인가? 정말 미스터리였다.

원하는 음식을 담은 태환은 승운과 함께 재준과 예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현재준은 매력적인 외모가 아니다. 그래도 키나 덩치는 괜찮았지만, 그게 태환에게 매력을 갖다 주지는 않았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제는 제법 친해진 유예지는 넉살좋게 말했다. 태환도 식사 맛있게 하라는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연구원님, 이번 주에 새 가이드 출장 오는 거 아세요?”

“네, A급 가이드요.”

“와, 소문 빠르시네요. 왜 오시는지는 아세요? 설마 매칭 때문에 오는 건 아닐 테고.”

“어? 매칭이요?”

예지가 물으며 승운을 바라봤다. 하긴, 지금 제7센터에서 가장 가이드가 필요한 에스퍼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마저도 가장 등급 높은 에스퍼.

“그렇죠. 둘 다 등급이 높은데 센터가 멀어서 서로 매칭해 볼 일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은가 봐요. 저는 못하지만.”

“왜요?”

“전 B급이잖아요. 가이드는 보통 자신과 상급이거나 최소 같은 등급이어야 하니까요. 레벨 낮으면 서러워서 살기 힘들다니까요.”

“에이, B급도 대단한 거잖아요. 보통은 D급 에스퍼가 제일 많으니까.”

“분포도로 따지면 그렇긴 한데 언론 노출이나 사람들의 인식에서 B급은 그냥 어중이떠중이죠.”

“그러면서 B급 괴수는 엄청 무서워하지 않아요? 실제로 C급 괴수면 도시 하나는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에스퍼도 그렇죠? 마음 먹으면 마을 하나 날리는 거.”

“C급 에스퍼는 C급 괴수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레벨이니까 그것보단 좀 더 낫죠. B급이나 A급은 그것보다 더 대단하고요.”

승운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예지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며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싫어하는구만.

평소에는 눈치 따위 안 보던 태환도 지금 유예지가 지승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싫어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근데 왜? 보통 S급 에스퍼라고 하면 일반인들한테도 호감일 텐데?

“근데 매칭 때문에 오는 건 아니에요. 저희가 요청했거든요. 매번 거절당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된대요.”

“아, 연구소에서 요청한 거예요?”

“네, 간만에 젊은 A급 가이드니까요. 사실 저희 센터에도 A급 가이드가 있긴 한데…….”

유예지가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환갑까지 얼마 안 남으셔서 그런지 힘이 부족하다며 연구협조를 다 거부하지 뭐예요? 말로는 늙은 뒷방 늙은이라 힘이 없다는데, 그냥 임원이라 이거죠.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게다가 곧 가이드로서는 은퇴한다고 하고.”

빌어먹을 함씨아저씨. 유예지가 작게 말했다. 친한 사이인가보군, 다들 생각했다.

“하긴, 보통 센터에 A급 가이드 한두 명은 두는데 제7센터는 한명밖에 없죠? 지원 하는 가이드들도 다들 연령대가 있고.”

“그러니까요. 젊은 A급 가이드가 필요해요. 언제까지 구걸을 할 수도 없고.”

……뭘?

가이드한테 뭘 구걸하는데?

다들 대답을 요구하듯 현재준과 유예지를 바라봤지만 그들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왜 그러냐는 반응을 했다.

뭘 요구하지?

에스퍼에게 가이드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 않나? 하지만 그 누구도 물어보지 못했다.

식사 후 태환이 운전을 해 연구소로 갔다. 승운은 본부에서 일을 보고 간다고 말했다. 승운이 차에 탄 재준을 슬쩍 보자 표정은 태연했다. 언제나처럼.

이후 승운은 제7센터의 부센터장의 방을 찾아갔다. 어젯밤 공문을 그쪽으로 보낸다는 문자를 받았다. 부센터장실 앞에 도착한 승운이 노크를 했다. 들어오라는 말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7센터의 부센터장이자 A급 가이드인 함필관은 들어온 사람이 지승운이라는 것을 알자 바로 일어서 경례했다. 승운도 그에게 경례해보였다.

“지승운 에스퍼.”

“함 가이드님.”

서로 부르는 호칭은 평소와 같았다.

“본부에서 온 공문을 받으러 왔습니다.”

승운이 말했다. 보통 공문은 메일로 받아 패드로 확인했지만 그녀가 보내는 공문은 특별해 직접 우편을 통해 전달되었다. 제7센터에 있는 그녀의 아랫사람이 부센터장이라는 것은 승운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다.

“은퇴 예정이시라고요? 아까 유예지 연구원한테 들었는데.”

“뭐, 가이드로서는 은퇴할 나이도 됐죠.”

그가 말했다. 함필관 가이드는 형질변이자가 세상에 드러날 때쯤 각성을 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함필관이 우편을 넘겨줬다. 승운이 우편을 받으며 말했다.

“말씀 주신 부분은 확인해봤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더군요.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쉽게 드러날 일은 아니죠. 우선 지역 관련해서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인이 얽혀있다 보니.”

“이쪽이 연고지라고 하셨죠.”

“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들 또 학연으로 묶여있기도 하니까 더 알아보기 쉽긴 합니다.”

함필관 가이드의 말에 승운은 “믿겠습니다.” 말하며 공문을 확인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컨퍼런스 까지 한 달 좀 넘게 남았으니 그에 대한 경호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3주 뒤에 다시 한번 중구에 있는 제1센터로 가서 회의에 참석해야했다. 그건 그거고, 다른 것도 확인해야지.

“그리고 내일 새 가이드가 도착합니다.”

함필관 가이드가 말했다. 승운은 암호문을 해석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예, 알고 있습니다. A급 가이드라고 하더군요.”

내일인 줄은 몰랐지만, 곧 오는 것은 알았다. 승운이 다시 암호문을 읽어나갔다.

“센터장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매칭 테스트에 관해서요.”

함필관 가이드는 부센터장으로서 미리 정보를 주는 듯하지만 이미 태환이 그것에 대해 말했다. 태환은 경민으로부터 들었을 거고, 경민은 경원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아마 승운이 경원에게 가면 한 번 더 이야기를 들을 지도 모른다.

승운이 “예에.” 하고 답했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위에선 생각이 다른가보다. 어차피 매칭이 좋지 않을게 분명했다. 암호문을 다 해석한 승운이 공문을 찢었다. 함필관 가이드가 재떨이를 내밀었다. 승운이 재떨이 위에 종이를 놓고 불을 붙였다. 공문이었던 것이 화르륵 타오르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박요한 가이드라고요.”

“예. 그리고 아시겠지만…….”

그가 말을 흐렸다. 안 그래도 승운이 그 부분을 읽고 있었다. 괴수학 박사 박형기의 조카라는 부분이 기재되어있다.

“제7센터장이 욕심이 많네요.”

승운의 말에 함필관이 허허 웃어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승운은 귀찮은 얼굴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사진 앱을 열어 특정 페이지에 가서 코드를 넣자 비밀페이지가 나왔다. 거기에 다시 패스워드를 입력한 뒤 출장이 잡혀있는 가이드 목록을 살폈다. 제2센터에서 제7센터로 일주일. 제4센터장과 제7센터장의 커넥션 또한 그 페이지에 기록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제4센터에도 사람을 보내야할 것 같았다.

“함 가이드님.” 승운이 말했다.

“예, 지승운 에스퍼.”

“지금 제 몸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승운의 말에 함필관의 시선이 그의 시계로 향했다. 녹색이다. 가이드는 필요하지만 지승운의 몸 상태가 좋다는 것은 확실했다. 몇 년째 붉은 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녹색은 감개무량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필요 없습니다만.”

박요한, 수원 출생. 25세로 각성 8년차.

어리네. 이 정도면 경력도 되고 본인 맡은 바는 물론이고 그 이상을 노릴 정도는 될 것이다. 내키지 않지만 눈속임은 해야지. 그러라고 있는 자리이니 말이다.

“뭐, 해야 할 일은 하겠지만.”

그렇게 말한 승운이 파일에 기록된 자료들을 읽어나갔다. 각성 전의 자료는 물론이고 각성 후, 훈련생 때와 그동안 거쳐 간 센터와 에스퍼의 기록은 물론 사생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성격에 대한 평이 안 좋군요. 페어도 자주 교체됐고.”

뒤끝 있을 타입 같은데. 아니, 뒤끝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가 별로 선호하는 타입의 가이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타입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승운은 잘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가이딩은 물론이고 정보를 얻는데 집중하며 곁에 두겠지만.

“내일 매칭을 할 시간 정도는 빼보죠.”

이상하게 내키지 않는다.

***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지승운이 핸드폰을 들어 올려 문자를 확인했다. 출근 후 바로 검진센터로 찾아오라는 거였다. 승운이 폰을 내려놓고 셔츠의 단추를 잠갔다.

열린 문 사이로 경민이 똑똑 노크했다. 경민과 승호는 어제 도착했다.

“여기요. 저번에 빌렸던 가터.”

경민이 승운에게 가터를 건넸다. 어차피 그에겐 이제 맞지 않는 것인데 승운은 굳이 버리는 대신 옷장에 넣었다.

“양말가터는?”

“아, 그건 안가지고 왔어요. 좀 더 빌릴게요.”

승운이 침실 밖으로 나가자 거실과 연결된 주방이 복작복작했다. 그가 제3센터에 처음 갔을 때가 떠올랐다. 팀이 익숙해지기 위해 반년 간 동거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같이 지내는 게 편해서 3년이나 더 함께 살았다.

“오늘 오후에 할 거 없으시면 훈련이나 하실래요?”

승호가 능숙하게 네 사람분의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승운이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상태는 안정적이다.

다시 출근길이 복작복작해졌다. 유예지는 “이것도 두 달 안 남았죠?” 말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경호를 하는 거였기에 컨퍼런스가 끝나면 각자의 센터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유예지의 지옥의 출근길이 시작되겠지. 한동안 운전을 안 해서 편했지만, 언제까지 그 일이 지속될 리는 없었다.

승운은 검진센터 앞으로, 다른 에스퍼들은 재준과 예지와 함께 연구소에서 내렸다.

연구실에 도착한 재준은 오늘의 일정을 살폈다. 가이드와의 약속은 오후로 잡혀있었다. 오전에 일처리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했다. 뻔했다. 매칭이겠지. 어제 점심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특급 에스퍼에게 상급 가이드와의 매칭을 확인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지? 처음 겪어보는 듯한 기분이다.

사실 재준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삶에 자신이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차피 지승운에게 맞는 가이드는 따로 있을 것이다. 자신과 지승운의 상성은 그렇게 좋지 않은 듯하니까.

사실 잘 모른다. 재준으로서는 가이드가 알아야 할 필수적인 상황을 접한 적이 없다. 하지만 분명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가이딩은 손만 닿아도 순식간에 에너지 파장이 안정화되고 금세 괜찮아졌다. 한 1분? 그 정도인가? 물론 영화 및 드라마는 허구인 것이 많았지만 사실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지 않는가. 재준이 한 시간 가까이 손을 잡고 있어도 깨어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승운과 자신은 연이 아닌 듯 했다. 애초에 가이딩이 됐는지도 잘 모르겠다. 뭔가 흐름은 느껴졌지만.

괜히 생각해봤자 였다. 남의 것을 탐내봤자 속만 아프다. 그럼에도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졌다. 예쁘긴 참 예쁜데, 가질 수 없는 떡이라니. 일찍 발현을 하면 뭔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다음 매칭은 잘 나올까.” 재준이 말했다.

“네? 누구요?”

“아냐. 가이드는 오늘 점심시간 전쯤에 온다는데.”

“아, 일찍 왔으면 좋겠네요. 빨리 끝내고 싶은데.”

“그래도 그 정도면 뭐……. 여유 있지 않을까?”

재준이 물었다. 예지가 설마 하는 얼굴을 했다.

“그렇지? 시간적 여유가 있지?”

“박사님, 지금…….”

“응. 사냥 가자.”

미소와 함께 말하는 현재준을 보며 유예지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

“지승운 에스퍼님?”

승운이 검진센터로 들어갔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모르는 사람, 아니. 아는 사람이다. 지승운은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남자는 사진과 비슷하게 생겼다. 사진 쪽이 조금 더 호감이었다. 지승운이 자신을 향해 돌아보자 남자- 박요한이 눈을 찡그리며 웃어보였다.

“제2센터 소속 거제도 지사에서 온 박요한 가이드입니다.”

그렇게 말한 요한이 손을 내밀었다. 승운도 망설임 없이 손을 마주잡았다.

“반갑습니다.”

잡힌 손이 따끔하다. 가이드들의 손을 잡으면 대충 어떤 식으로 가이딩이 될지 알게 된다. 이 남자는 멋대로 침범하는 느낌이었다. 과연, A급 가이드인데 이상하게 에스퍼가 자주 바뀐다 했다. 일부러 흘리는 것인지 밀려들어오는 에너지가 손을 휘저었다. 예전 같으면 이것에 매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승운은 이전에 달콤함을 맛보았기 때문에 이런 억지스러운 가이딩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 그 가이드. 가이딩 에너지가 들어오니 그 가이드에 대한 열망이 생긴다. 그 가이드가 재준의 얼굴을 하고 있더라면 더 좋을 텐데.

“…….”

승운이 손에 힘을 풀었다. 악수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에도 박요한은 승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때 마침 우연찮게도 이경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종이봉투, 입에는 꽈배기, 다른 손에는 커피였다.

추러스나 도넛보다 꽈배기가 커피와 잘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이경원의 요즘 최고 고민은 혈당치였고 두 번째 고민이 지승운의 가이딩이었다. 혈당의 고민은 어쩔 수 없지만 두 번째 고민은 아마 오늘 해결될지도 모른다며 설레발을 친 경원은 검진센터 입구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승운과 새 가이드를 만났다.

승운이 마침 잘됐다 싶은 얼굴로 손을 떼고 꽈배기가 든 종이봉투를 대신 들어줬다.

“땡큐. 맞다. 나 이사했어. 너네 옆 동에 두 달짜리 방 나온 거 있어서.”

이제 개 같은 센터 내 기숙사 생활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경원의 얼굴에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잘됐네. 네 동생도 데려가는 건 어때?”

“내 동생은 너랑 사는 걸 더 좋아할걸?”

그거야 네 집이 더러우니까…….

“암튼 올라가자. 박요한 가이드도 같이 가요. 매칭 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홀짝인 경원은 그들을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승운은 박요한을 한번 바라보다 경원의 옆에 가서 섰다.

검사실로 돌아온 경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테스트 실에 두 사람을 밀어놓고 한동안 오지 않았다. 박요한 가이드는 승운의 눈치를 살피듯 입을 꾹 다물었다. 승운이 박요한을 바라봤다. 성질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쪽이 그들과 친분이 있단 말이지? 생각보다 사내정치를 잘 하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쳤다. 박요한은 얼굴을 붉혔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곧 경원이 황급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매치 테스트 시작합니다.”

승운에게 매칭은 일상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의 에스퍼 중 매칭을 가장 많이 시도한 사람을 묻는다면 지승운일 것이다. 아니, 세계에서 손에 꼽을 수도 있다. 공식적인 기록이 있으니 나중에 기네스북에 넣어도 될 것이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기계 위에 손을 올렸다. 기계에 일정량의 힘을 불어넣으면 측정기 내부에서 서로의 에너지를 뒤섞었다가 흐트러뜨린다. 에스퍼의 에너지에 가이드의 에너지가 닿으면 일부는 중화되고 일부는 방출된다. 중화되어 에스퍼의 에너지를 낮추는 양이 매칭 퍼센트다.

승운의 최고 매칭은 37.8%.

대한민국 최고 매칭률은 94%이며, 각인이 가능한 매칭률은 70%, 페어가 가능한 매칭률은 50%이다. 물론 각인이 70% 이하여도 지속적인 각인 가이딩을 주고받았을 때 가능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웬만하면 힘들다고 들었다.

승운은 방금 전 자신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은 가이드를 바라봤다. 전기처럼 찌릿하고 따가운 기분 나쁜 에너지였다. 누군가는 저런 에너지를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승운에게는 아니다. 승운이 주로 다루는 것이 물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 에너지는 튕겨나가는 것이 많았다.

“매칭 결과 나왔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매칭이 높았다.

경원은 결과물을 보며 박수를 쳤다.

“와우, 40.1퍼센트인데?”

승운의 인생에서 가장 높았던 매칭보다 2.3%가 높은 것이다. 물론 일반 에스퍼들이라면 이 정도의 가이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경원이 승운을 향해 뿌듯한 얼굴을 했다. 매번 30%대를 왔다갔다하던 가이드들 사이에서 드디어 나온 40%대였다. 물론 아주 아슬아슬한 정도였지만.

“이거 전속 가이드 삼아 달라고 해야겠는데?”

“아, 네?”

박요한이 수줍게 웃어보였다. 경원은 승운을 보며 너도 좋지? 물으려다가 말았다. 승운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저건, 가이드를 찾아서 좋은 얼굴인가?

그럴 리가. 오히려 저 가이드가 거추장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왜? 얼싸안고 기뻐해야하는데?

“야, 지승운.”

“어.”

대답하는 승운의 목소리 역시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승운은 지금 심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그냥 짜증이 났다.

“나중에 다시 올게.”

그렇게 말한 승운이 검사실을 빠져나갔다. 박요한은 빠져나가는 승운을 아쉬운 얼굴로 바라봤다.

“왜 저래?”

경원이 말하며 박요한을 바라봤다. 고개를 푹 숙인 것이 표정을 보기가 힘들었지만, 민망해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니…….

경원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죄송해요. 쟤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네, 이해해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박요한에게 경원도 미소지어줬다. 미친 새끼가. 이 정도면 지금 당장 가이드 실로 가서 한번 받아보고 써먹을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 게 급선무 아닌가?

경원이 핸드폰을 꺼내 승운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나왔다.

이 개새끼.

작게 욕한 경원이 자신의 동생에게 문자를 날렸다.

***

지승호는 곤란한 얼굴로 차를 몰았다. 이곳에서 태연한 사람은 유예지와 현재준뿐이었다. 애초에 그들로서는 DMZ 내부에 들어올 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지는 아무렇지 않게 바퀴자국만 따라가면 된다고 말했다. 재준의 품에는 이상하게 생긴 괴수가 투명한 반려동물 이동장에 담긴 채로 안겨있었다. 꿈틀거리는 것이 식물종 괴수 같긴 했는데, 저런 모양은 본 적이 없었다.

차량의 뒤에는 바퀴가 달린 케이지가 있었다. 케이지는 차체만 했다. 거의 감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케이지의 창살 간격은 굉장히 작았다. 닭이라도 잡으려나 싶을 정도로.

경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루한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한 경민이 “엥?” 하고 반응했다. 옆에 타고 있던 승호가 “왜?” 하고 물었다.

“와, 이번에 형 매칭 장난 아닌데? 40.1퍼센트래.”

그 정도의 매칭 퍼센테이지가 장난 아니라는 말을 듣는 건가……. 예지가 생각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에스퍼들은 자기와 비슷한 등급의 가이드들과는 50% 이상의 매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도 그 이하의 가이드들을 선호하지는 않을 뿐더러, 60%가 넘어줘야 좀 더 치근덕거림이 강해졌다.

“40.1퍼센트라고?? 40? 30이 아니라 40?”

“그렇다는데? 방금 형이 문자 넣었어.”

놀라 되묻는 승호에게 경민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줬다.

[야, 지랄새끼 매칭 40.1%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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