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35)

  

욕실에서 고릴라마냥 거대한 아빠와 내가 팔자에도 없는 술래잡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쫓기고, 아빠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쫓는다. 이유는 바로 3분 전, 패닉 상태로 앉아 있는 내 몸에 물을 적시던 아빠는 ‘치카치카 하자’하며 이를 닦아주고, ‘어푸어푸 하자’라며 세수를 시켰다. 그리고 내 몸에 거품칠을 하는 것까진 정말 좋았다. 허옇게 변해가는 내 몸을 여기저기 열심히 조물락대던 아빠는 내 다리를 쫙 벌리더니,

  

‘일쭈 꼬추 좀 만져보자, 꼬추!’

  

라고 외쳤다. 꼬추, 라는 말에 나는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쫓아오는 아빠의 흉측한 손을 피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게 재밌는지 꼬추, 꼬추 하면서 나만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5살짜리 아들 데리고 놀듯이 나를 데리고 논다. 문제는 나는 정말 장난이 아니고, 노는 게 아니라는 거다.

  

왜 우리나라 중년기 사람들은 남자의 고추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아줌마나 아저씨나 지 아들 아니더라도 꼭 고추를 확인하려고 든다.

  

난 아빠가 이럴 때마다 성추행이라는 죄목으로 신고해 버리고 싶다. 내 아빠지만 정말 싫고, 너무 싫고, 엄청 싫다. 매일 이러니 내 앞에서 아빠의 권위 따위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그저 내게 아빠는 싫은 사람, 그냥 싫은 아저씨일 뿐이다. 더 우스운 건 엄마나 이수에게는 절대 이렇지 않다는 거다. 오직 나, 나한테만 이런 짓을 하고 이런 행동과 말씨를 사용한다.

  

원래 아빠가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다. 아빠가 이렇게 변해버린 건 순전히 내 탓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 쯤 되었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상당히 근엄했다. 오히려 너무 자주 먹는 술 때문에 매일 같이 나를 데려다 혼내거나 잔소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아빠는 이수에게만 굉장히 좋은 얘기도 해주고 선물도 자주 사줬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며 신발이고 옷이고, 가방도 비싸고 좋은 것만 사줬다. 나는 그냥 시장에서 눕혀 놓고 파는 거 아무거나 사주면서!

  

나도 인간이고 어렸기 때문에 질투란 것을 하고 가출이란 것을 했다. 매사에 의욕도 없고 멍청한 내가 가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고, 무려 두 달간이나 행방불명되어 실종신고까지 했는데 도무지 나를 찾을 수 없었다는 거다. 당시 나는 몰래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거기 같이 일하는 형에게 신세지고 있었다.

  

형네 집이 또 워낙 편해서 집에 가는 것도 잊어버렸고, 아예 집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형이 나한테 잘해줬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날 찾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무턱대고 들어가 지낸 것도 아니었다. 가출했다고 했더니 형이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었다. 좀 심하게 스킨십을 좋아해 잘 때는 굿나잇 키스를 꼭 해야 한다던 형이었지만 그래도 밥도 잘 하고 성격도 좋아서 엄마, 아빠 보다 더 좋았다. 나중에 형네 집에서 숨어 지내던 것을 들키는 바람에 형은 아빠한테 엄청 혼났고, 반대로 아빠한테 엄청 맞을 줄 알았던 나는 잘못했다고 엉엉 우는 아빠 품에 오래도록 안겼었다.

  

그 뒤로 아빠는 나만 보면 그런 병신 같은 말투를 쓰며 엉겨 붙었다. 이수에겐 근엄한 아빠이면서 내게는 똘끼 가득한 아빠가 된 거다.

  

아빠를 피해 화장실 밖으로 나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안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이수가 놀라서 돌아봤고, 나는 이수의 목에 매달리며 펑펑 울었다. 알몸에 거품칠이 된 대단히 창피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움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더 이상 멀미가 올라와서 아빠와 단 둘이 있지 못 하겠다.

  

“이수야, 나 살려줘, 아빠가 자꾸 성추행하잖아!”

“어어, 뭐, 뭐?”

  

이수는 이상하게 벌건 얼굴로 내 몸을 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다 봐놓고 뭘 또 보는지 모르겠다.

  

잠깐 넋 놓고 있는 이수를 흔들어 깨우는 사이 아빠가 드디어 내가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흉하게 웃는 얼굴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아빠의 것은 야구빠따 만하다. 솔직히 그 부분이 부러워서 좀 구경하다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이수를 앞세워 숨었다. 아빠의 입에선 끊임없이 ‘우리 일쭈 꼬추 보자, 꼬추’라는 말이 반복 되고 있다.

  

아빠는 이수를 앞세운 나를 원망의 눈으로 보다가 무섭게 이수를 노려보고 있다. 왜 노려보는지 몰라 이수의 표정을 살폈더니 기분 나쁘게 비웃고 있는 얼굴이다. 아, 나라도 이런 아들 너무 싫겠다. 아빠를 아예 깔아보는 눈으로 완전 지가 다 짱이라는 듯이 웃는다. 주먹으로 콧등을 때려버리고 싶다.

  

“이수, 넌 하라는 공부는 않고 맨 컴퓨터만 하냐?”

“아빠는 아까 목욕탕도 다녀왔으면서 또 목욕이야?”

“오래간만에 우리 집 장남이 왔는데 부자끼리 목욕도 한 번 하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따져? 넌 컴퓨터 그만 하고 공부 해!”

“일수대출아, 아빠가 그렇데, 그럼 우리도 간만에 형제끼리 목욕 한 번 할까?”

“아빠랑 하고 나서?”

“아니, 목욕도 너무 자주하면 건강에 안 좋다잖아. 아빠 나이도 있으신데 이제 그만 끝내고 나머진 나하고 마저 하자.”

  

어디서 목욕 너무 자주하면 오히려 더 안 좋다는 소리를 아주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다. 그래도 나보단 머리가 좋은 이수 말이니 별로 틀릴 건 없어 보여 기쁜 마음에 아빠에게 외쳤다.

  

“그럼 나 이수랑 할게!”

“아니, 빠빠는 건강한데, 열 번 해도, 백 번 해도 다 괜찮은데…….”

“아빠 아까 했잖아, 뭐든 과하면 안 좋아. 이제 건강 생각할 나이도 됐잖아.”

“이, 일쭈야, 그럼 목욕 그만하고 빠빠랑 티비 볼까?”

“응?”

  

목욕 그만 하자는 말에 내 귀가 다 뚫리는 기분이다. 하도 오랫동안 건드린 일이 없어 알이 꽉 찼을 귀가 다 뚫리다니, 역시 난 몸을 씻기고 하는 일이 너무 싫고 귀찮다. 밝아지는 내 얼굴을 보며 반대로 어두워지는 이수를 내팽개치고 서둘러 거품을 씻어내고, 그래도 똥꼬는 씻어야 한다는 아빠가 똥꼬 씻겨준 뒤에 냉큼 옷을 주워 입었다.

  

그래도 티비 볼 동안은 별 말이 없어서 아빠와 티비를 보는 건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난 남이 틀어주는 거 본다.

  

자막 없이 영어로만 얘기하는 채널로 틀어놓아도 난 열심히 본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그냥 있으니까 보는 거다. 어차피 집중력하고 담 쌓았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담 쌓고 지냈으므로 뭘 보든 다 어렵고 뭘 보든 다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 챙겨 보는 것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다.

  

아빠가 틀어 놓는 거 보면서 코를 후비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뭔가를 내민다. 알록달록한 것이 가득 붙은 핸드폰이다.

  

뭔지 몰라서 한참 보고 있다가 5분 정도 지났을 때 알았다. 투명 케이스로 보호되고 있는 핸드폰의 알록달록은 전부 내 사진들이었다. 무섭게 내 모가지만 잔뜩 오려져서 핸드폰 가득 다닥다닥 붙어있다. 배터리는 대체 어떤 식으로 빼는지도 궁금할 정도다. 이상해서 손으로 밀어내자 더욱 흥분한 아빠는 내 몸에 달라붙어서 뜨거운 김을 슝슝 뿜어냈다. 그 코에선 불도 쏠 수 있을 것 같다.

  

“이곤 밥 먹는 일쭈, 이곤 학교에서 소풍 갔을 때 일쭈, 이곤 운동회 때 쉬는 일쭈, 이곤 자는 일쭈, 이곤 졸업앨범에 있는 일쭈, 이곤 목욕하는 일쭈…….”

“이게 뭐야, 다 떼! 왜 내 사진을 이런데다 붙여 놔, 다 떼어!”

“시로, 이렇게, 이렇게 붙여놓고 맨날 맨날 볼 꺼양!”

“핸드폰 배경 화면도 내 사진이잖아!”

“지갑도 이렇게 해놨당, 나 잘했지?”

  

지갑 속에도 내 사진이 가득 붙어 있다. 내가 이런데 전혀 관심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아무리 봐도 완전 변태 지갑이다. 딸도 아니고 다 큰 아들 사진을 이렇게까지 붙여 놓고 사는 부모는 아마 없을 거다. 그것도 고추 나온 알몸사진까지 붙여 놨다. 성질대로 찢어버리려고 했더니 힘으로 붙잡아 못하게 한다. 너무 짜증나고 화나서 미쳐버릴 것 같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내 그시기 다 봤겠지?

  

툭하면 나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아빠는 자랑하라는 이수는 자랑 하지 않고 내 사진을 저런식으로 붙여 놓고 보여줘 가며 자랑한다. 이래놓고 정작 이수가 뭐만 하면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겉으로만 나 이뻐하는 척이다.

  

중학교 땐 그래도 의욕이 작게나마 있었다. 그래서 축구부에 들라는 친구의 말에 들었다가 아빠가 난리를 쳐서 다시 나오게 했고, 또 친구 따라 태권도부 들었다가 아빠가 난리 쳐서 다시 나와야했다. 또 아르바이트 한다고 말하면 날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한 번은 간신히 허락 받아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했는데 날 만나러온 아빠는 하루 종일 내가 일하는 걸 감시하더니 그 다음 날부터 못 나가게 했다.

  

이유라도 알자고 말하자 어떤 여자가 내 엉덩이를 만졌다고 한다. 친하고 잘해주는 누나니까 당연히 장난치는 걸 받아준 것뿐인데 괜히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한다.

  

결국 내 적성을 찾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의욕 없이 방황하다가 고등학교 올라갔고, 거기서 만난 태종이는 날 붕어 같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좋은 뜻이 아니었을 거다. 그런 드러운 물에 사는 물고기 같다니, 내가 그 때는 그렇게 드럽지도 않았는데.

  

화가 나서 핸드폰 케이스에 내 코딱지를 붙였더니 아빠가 놀라서 휴지로 훔쳤다. 분명 아빠는 내가 싫은 거다.

  

내 인생을 망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다.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집에서 못 나가게 하고, 아빠 옆에만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옆에서 감시를 하려는 거다. 아무것도 못 하는 병신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병신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계속 일을 진행 중인 것 같다.

  

코딱지를 발랐지만 오히려 더 좋아하는 아빠는 뒤처리를 다 하자마자 나한테 달려들어서 꽉 끌어안았다. 내게 있어서 아빠는 너무 버겁고 강력한 상대다. 아무리 반항해도 꿈쩍을 않는다.

  

화가 나서 코 파던 손가락을 아빠 수염에다가 닦았다.

  

“일쭈, 삐쳤쪄?”

“몰라, 아빠 저리 가! 진짜 싫어, 다 짜증나!”

“우리 일쭈 왜 삐쳤쪄?”

“나 진짜 장난 하는 거 아니야, 진짜 화났어! 아빠 진짜로 싫어, 머리 감는 것보다 더 싫어!”

“후후, 그 정도로 싫었쪄용?”

“진짜로 싫다고, 싫어! 아빠 진짜 싫어!”

“후후, 우리 깜찍이 일쭈! 쪼금 있다 빠빠랑 맘마 냠냠 하자, 맘마!”

“하, 진짜 미쳐 돌아버리겠네!”

“우리 일쭈 좋아하는 깍두기 냠냠 하자, 맘마가 만든 깍두기 냠냠!”

“깍두기?”

  

아빠의 의자 등받이 마냥 딱딱한 가슴팍을 밀다가 솔깃한 말에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빠의 산적 같은 얼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산타클로스처럼 쪼갠다.

  

“엄마가 담근 거야?”

“웅, 맘마가 했쪄, 일쭈는 맘마가 한 게 좋징?”

“응.”

  

엄마가 담근 깍두기는 진짜 맛있다. 내가 깍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엄마가 김치 하나는 정말 잘 담그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수많은 깍두기들을 먹어왔지만 우리 엄마만큼 새콤하게 담그는 깍두기는 본 적이 없다. 입 안에 도는 군침이 절로 목구멍을 넘어가며 벌써부터 깍두기의 새콤한 냄새가 가득 풍기는 것 같다.

  

갑자기 보이는 신기루 때문에 아빠 손가락인 줄도 모르고 깍두기인 것 마냥 깨물고 빨아대자 아빠는 정신 놓은 나를 껴안으며 소파 위를 굴러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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