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5)

  

현관 앞에 앉아서 시계만 보고 있는 나는 태종이의 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있다. 확실히 일찍 들어오기 시작하는 태종이는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도착한다. 그래서 7시 쯤 되면 바로 현관 앞으로 달려와 앉아서 시간을 재고 있는 거다. 태종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뛰는 가슴을 안고 시계만 눈이 터져라 바라본다.

  

대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소리에 조마조마, 안절부절 못 해서 제 자리를 돌아다니다가 열쇠로 문을 따는 동시에 현관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당연하게 보이는 태종이의 얼굴에 대고 웃는다. 평소에 딱딱한 태종이도 그럴 때면 꽤 귀엽게 웃으면서 내 머리를 만진다. 이 순간이 제일 좋다.

  

내 볼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좀 싫지만 그래도 태종이가 돌아왔다는 기쁨에 마주 웃어주면서 볼을 닦는다.

  

“나 오늘 화장실 청소 했어!”

  

엄마가 칭찬해주길 기다리는 초딩처럼 계속 웃는 얼굴로 있었더니 잠깐 표정이 굳는 것처럼 보였던 태종이가 다시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태종이는 이상하게 웃는 얼굴이 별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다른 때는 잘 웃는데 특히 내가 뭔가 청소를 해놨다고 하면 저 표정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눈치 같아서 기분은 좋다. 내 머리에 입을 맞추는 것도 싫지만 칭찬은 좋다.

  

옷을 벗고 바로 화장실로 향하는 태종이는 씻을 생각인지 뭔지 갑자기 화장실 바닥을 뭔가로 닦는 소리를 낸다. 이상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밥 먹을 준비 하라고 말한다. 내가 이미 청소 다 해놨다니까 또 청소를 하고 있다.

  

태종이 말대로 밥을 막 푸려고 하자 갑자기 화장실에서 튀어나온 태종이가 주걱을 낚는다. 그리고 내 손을 바라보면서 밥을 푼다. 옷 좀 입지?

  

“손 씻었어?”

“응?”

“코 파고 손 씻었어?”

“몰라.”

“일단 손부터 씻어.”

“밥 먹고.”

“밥 먹어야 하니까 손을 씻으라는 거야, 그런데 먹고 씻으면 말이 안 되지.”

“어차피 숟가락으로 먹을 건데 손을 왜 씻어?”

“오늘 오줌 누고 손 씻었어?”

“몰라.”

“솔직히 말 해봐, 오늘 손에 물 묻힌 적 없지?”

“몰라.”

  

왠지 좀 기운 빠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알아서 싱크대로 가 손을 씻었다. 그런 다음 손을 펴서 보여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을 가리킨다. 가서 앉으라는 거다. 앉은 다음 오늘따라 가려운 똥꼬 때문에 엉덩이를 바닥에 문댔다. 그러고도 시원해지질 않아서 바지 뒤로 손을 넣어 똥꼬를 긁자 밥그릇을 상 위로 올리던 태종이가 잠깐 동작을 멈춘다. 이상해서 그 얼굴을 보면서 계속 긁고 있었더니 태종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놀라서 또 똥꼬를 손톱으로 쑤시고 말았다. 아, 너무 아파서 온 몸이 파들파들 떨린다. 눈이 시큰해져 오고 콧물이 흐른다. 내가 똥꼬 긁을 땐 제발 놀래키지 말라고 몇 번을 말 했는데 저렇게 안 지킨다.

  

“너 손은 왜 씻는 거냐?”

  

뜬금없이 묻는 말에 어리둥절해서 태종이 얼굴만 보고 있었더니 눈치가 딱 내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태세다. 그래서 얼른 대답했다.

  

“밥 먹으려고.”

“그럼 다시 씻고 와.”

“왜, 금방 씻어서 보여줬잖아.”

“그렇지, 금방 씻어서 보여준 다음 그 손으로 똥꼬 긁는 것까지 보여주고 있잖아. 지금 빨리 그 손 깨끗이 비누칠해서 씻고 오지 않으면 숟가락으로 똥꼬 다 파버릴 거야, 알아먹었어?”

“그건 좀…….”

“싫으면 씻고 와.”

“에이.”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어차피 숟가락으로 먹는 밥인데 손이 뭐가 중요하다고 저 난리인지 모르겠다. 돌멩이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유독 태종이가 심한 거다. 깔끔 엄청 떨고, 저만 깨끗하면 될 것을 남까지 다 깨끗하길 바란다. 그래서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밥 먹을 땐 꼭 손을 깨끗이 씻어야만 하고, 오줌 누고 꼭 손을 씻어야만 하고, 잘 때도 꼭 이를 닦아야 한다.

  

태종이 옆으로 앉자 왜 자리로 안 가냐고 그런다. 그래도 나는 굳이 태종이 옆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무시하고 그냥 먹는 거다. 나도 내가 가끔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서 그런지 그냥 외로워서 태종이한테 더 어리광 부리는 것 같다.

  

다른 반찬은 거들떠도 안 보고 깍두기만 집어먹자 알아서 밥그릇에 이것저것 놔둔다. 그걸 한참 퍼먹다보면 깍두기가 다 떨어지고 국물만 남는다. 잠깐 태종이 눈치 살피고 그 그릇을 냅다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더니, 역시 평소와 같이 내 머릴 세게 때린다. 그래서 앞니를 그릇에 박아 몹시 고통스럽다. 나만 가지고 그래!

  

“씨발, 그걸 왜 또 처먹어!”

“아, 왜 때려!”

“니가 개냐, 응? 그릇 좀 핥아 먹지 말라고, 지진아 새끼야!”

“나 밥 안 먹어.”

“다 처먹어 놓고 뭘 안 먹어?”

“내일부터 안 먹을 거야.”

“그래, 어디 한 번 굶어 봐라!”

  

태종이한테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여서 엎어져 버렸다. 식식거리면서 돌아봤더니 오히려 더 심하게 노려보면서 꺼지라는 눈빛이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한두 살 먹은 애들도 아니고 언제까지 자기 전에 이 닦아라, 밥 먹기 전에 손 닦아라 하는 규칙들을 지켜가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미 우리는 어른이고 굳이 그 규칙들을 지킬 나이도 훨씬 지났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제 생활방식대로 살면 그만인 거다. 뭐, 그걸 다 떠나서 일단 태종이는 생긴 거랑 다르게 너무 쪼잔하고 찌질하다. 굳이 그걸 다 지켜야 한다니.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 이 감촉, 내가 제일 사랑하는 감촉이다. 이불에 둘러싸인 이 감촉에 또 다시 잠이 온다. 태종이 기다린다고 매일 낮잠을 걸렀더니 몸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계속 늘어지고 기운이 없다.

  

베개를 찾아 끌어 당겨서 베고 태종이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집안에 움직이는 거라야 태종이 하나뿐이라 제일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금방 짜증났다가도 이렇게 발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건 참 좋은 거다. 그 사람이 날 지켜봐주고, 그 사람 눈 안에 있는 동안 나는 몹시 안전한 느낌이 든다.

  

어릴 적부터 머리 나쁜 나보다 훨씬 나은 이수에게 지극 정성을 다 하던 엄마 아빠를 정말 많이 원망했었다. 때문인지 나는 내가 생각해도 태종이에게 너무 어리광이 심한 것 같다. 엄마, 아빠 둘 다 미워했지만 그 중 아빠는 정말 싫다. 요즘의 아빠는 내게 이쁨 받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나는 아빠가 싫다.

  

어릴 때의 아빠에 비해 지금의 아빠는 훨씬 나아지고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싫다. 아빠와 밥 먹는 것도, 아빠가 내 앞에서 재롱 피우는 것도 싫다. 난 영원히 아빠와 상종을 안 할 거다. 아빠 때문에 나는 타인이 하는 전화 통화 소리를 끔찍이 싫어하게 되었고, 태종이도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는 화장실에서 통화하거나 밖에 나가서 한다. 아, 아빠 생각을 했더니 기분이 또 안 좋아졌다.

  

태종이가 나한테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내 턱을 붙잡아 열고 칫솔을 쑤셔 넣는다. 깜짝 놀라 몸부림치자 가만히 있으라며 나를 그대로 일으키고는 열심히 이를 닦아준다. 내가 말 안 듣고 그냥 누워버리면 이런 식으로 이를 닦게 만든다.

  

가끔 너무 세게 해서 아플 때가 있다. 지금도 너무 세게 해서 아프다. 태종이는 뭐든 세게 힘을 줘서 하려고만 한다. 모르고 그랬는지 알고 그랬는지 목구멍이 찔려서 고통의 발버둥을 치는데 제 무릎으로 눌러서 막고 마저 닦는다.

  

얼마 안 있어 입안에서 빠져나오는 칫솔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좀만 더 했으면 진짜로 토할 뻔했다.

  

싱크대까지 끌려가서 입안을 헹궜더니 피가 났다. 개새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물론, 이수에게 잡혀 사는 것보다야 백배 낫긴 하지만 태종이는 너무 까다롭다. 내가 친구하고 사는지 선생하고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다시 이부자리 쪽으로 가려는 나를 또 잡아끌어 화장실 안으로 밀어 넣는다. 또 무슨 볼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자 내 바지를 확 내린다.

  

설마, 태종이도 석현이처럼 변태인 건가, 하고 놀라는 나를 붙잡고 바지하고 빤쓰를 다 벗기더니 샤워기를 든다. 윗옷은 안 벗고 씻나?

  

“똥꼬 가려워했잖아, 아까부터.”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내 엉덩이를 벌려가며 똥꼬를 씻긴다. 석현이가 했던 짓이 생각나 창피하다가도 상대가 태종이라는 것 때문에 안심한다.

  

비누를 손에 발라 똥꼬 위를 열심히 문지르더니 가랑이 사이까지 꼼꼼하게 비벼댄다. 거 참, 이상하다. 분명히 상대는 태종이인데 지금 하는 짓에 몹시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모르게 눈까지 감고 벽에 기대서 태종이의 손이 움직이는 감촉을 열심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머물렀으면 하는 부위로 향할 땐 나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여가며 들이대게 된다. 그것도 너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 나 자신은 한참 동안 못 깨닫는다.

  

문제는 내 그 의미 없는 행동에 태종이가 몹시 당황했다는 거다. 한참 열심히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멈춘 이유도 그거다. 손이 멈춘 데에 불만을 품고 돌아보던 나는 태종이의 벌게진 얼굴을 보며 내 행동이 어땠는지 그때서야 깨닫고 덩달아 벌게진다.

  

이럴 때엔 한 가지 변명거리를 쉽게 구해서 내밀 수 있다.

  

“음음, 알잖아, 어쩔 수 없는 수컷의 본능이라는 게…….”

  

너도 남자니까 이해할 수 있지, 라는 말투를 쓰면 태종이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 마저 작업을 한다. 당연히 손놀림은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런 손놀림으로 나만 아주 죽어나는 거다.

  

진짜로 반응해버린 나의 수컷 본능에 결국 주저앉아서 새색시처럼 다리를 얌전히 모으고 뜨거워진 눈으로 태종이를 노려봤다. 태종이는 화장실 안의 김 때문인지 상당히 벌게진 얼굴로 헐떡이다가 씻고 나오라며 그냥 나가버렸다. 만날 나보고 개새끼라고 하더니, 개는 저잖아.

  

하는 수 없이 혼자서 푼 뒤에 씻고 나왔다. 집안에는 태종이가 보이질 않았고, 현관이 조금 열려 있는 걸로 봐서 밖에 서 있는 모양이다. 담배를 태우거나 그냥 멍 때리고 있겠지.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내다보자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서서 먼 산 보던 태종이가 놀라서 나를 돌아본다. 조금 과장된 몸짓이 웃기다. 우스워서 웃는 내 얼굴을 보고는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리더니 내 아랫도리를 보고 또 놀란다. 그리고 옆 동 사는 사람들한테 까지 다 들리게 큰 소리로 외친다.

  

“빤쓰 안 입어!”

  

어쩐지 아랫도리가 시원시원하다 했다. 나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태종이는 내게 빤쓰를 성심껏 입혀주었다. 바지는 입기 귀찮아서 안 입었다. 오늘은 이러고 자야지.

  

이불로 기어들어가고 한참 누워 있으니 다 씻고 온 태종이가 불을 끄고 내 옆에 눕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 당겨 안고 잠을 청한다. 역시 태종이가 일찍 들어오니 세상 편하다. 내일은 방 청소를 해놔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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