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실수로 수학책을 들고 오지 않았다.
현준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준이 자리에서 일아 나자 반사적으로 같이 일어나는 재석과 인석.
현준은 한숨을 내쉬며 그런 그들을 저지시켰다.
“. . . 됐어. 그냥 승호에게 수학책 빌리러 가는 건데 뭐. . . 같이 갈 것까지야. . .”
그 말에 그들은 약간 안색을 굳히며 앉았다.
현준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야 말았다.
귀여운 놈들. . .
전혀 덩치로나 얼굴로나 귀엽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거리가 아주 먼 그들이었지만
현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런 말을 붙여버렸다.
역시 현준은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게 달라도 한참 달랐다.
“어? 승호가 없네?”
승호의 자리에 갔더니 화장실에 갔는지 비어있는 자리.
현준은 승호의 자리에 앉아 승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주인도 없는데 교과서 함부로 들고 가면 미안하니까.
문득 그렇게 앉아 있다가 녀석의 자리에서 연습장을 발견하였다.
현준은 별 생각 없이 녀석이 만화 그린 거나 좀 보자는 생각에 연습장을 펼쳤다.
“. . . 어? 이건. . .”
현준은 펼치자마자 놀라서는 펄럭거리며 계속 뒤로 넘겼다.
그러나 아무리 뒤로 넘겨도 넘겨도 거기에 그려진 그림은 같았다.
바로 현준, 자신.
현준이 하품하고 있는 모습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며, 졸았던 모습이며.
자신도 모르는 여러 가지 표정이 그 연습장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현준은 자세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림 하나하나에 왠지 애정이 담겨 있달까?
하나하나가 정성이 이만저만 담긴 게 아니었다.
그 때 문득 승호가 들어와서는 그 모습을 보았다.
그 때 승호는 얼굴이 사과처럼 잘 익어서는 잽싸게 현준의 손에서 연습장을 낚아챘다.
현준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놀라서는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승호는 그것을 얼른 자신의 가방 안에 넣으며 나름대로 웃으려 했다.
“아. . . 저기 여기는 웬일이야?”
그 말에 현준은 절대 넘길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 . 말 돌리려 하지 마. 잘 그렸더구만. 왜 그거 그리 부끄러워 하냐?”
그 말에 그는 극구부정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잘 그리기는! 이건 다 실패작뿐인걸! 실제 너는 이것보다 천배 만 배는 더 나아!”
현준은 떨떠름하게 승호를 보며 말했다.
“. . . 내가 보기에는 그 그림이 더 나아보이던데. . .”
그 말에 녀석은 다시 극구부정하며 강하게 외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것은 네 모습의 반에 반에 반도 표현하지 못한 졸작이라고!”
그러더니 풀이 죽어 말한다.
“. . . 나도 모델이나 하나 있었더라면 인체에 대해서 좀 더 잘 그릴 수 있었을 텐데. . .
인체 데셍 책 가지고만 공부한다는 것은 역시 나에겐 안 맞아. 역시 실물이 좋다구. . .“
그 말에 현준은 별로 어럽지 않다는 듯이 문득 말한다.
“그거 괜찮다면 내가 해 줄까? 모델이라는 거.”
그 말에 승호는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뭐어? 내가 말하는 건 누드모델이라고! 몸의 선이 다 보이는. . .
실제 인체 공부하는데 옷으로 가려진 것을 그리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거든.“
그 말에 현준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뭐 어때. 같은 남잔데. 까짓 거 별거 아니라니까.”
그 말에 갑자기 승호의 얼굴이 또 열이 쏠리는 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승호는 더듬거리며 감사의 말을 표했다.
“아. . . 저기. . .고, 고마워. . .”
현준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방긋 웃었다.
“괜찮아. 그깟 거. 진수 녀석도 데리고 가도 되지? 녀석의 몸매도 엄청 좋다니까.”
그 말에 갑자기 승호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저것은 무언가에 미친 광인만이 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진수까지? 좋지. . .그 녀석 딴 건 몰라도 몸의 선만큼은 멋지니까. . .
아, 우리 아예 다들 모아서 같이 하는 건 어때?“
현준은 잠시 상상을 하더니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됐다. . . 마. . . 올릴 거 같다.
남자 7명이 벌거벗고 같이 뒹군다고 생각하니까. . . 엽기다. 엽기. . .“
그 말에 승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멋쩍어 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승호와 약속한 날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녀석들은 다 어떻게든 따돌렸던지 보이지 않았고, 이제 우리 셋만이 이 교실에 남았다.
이 교실은 3학년 교실과는 멀리 떨어진 교실로 아무도 남아서 공부하려 하지 않던 빈 교실이었다.
즉,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란 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의 앞뒤를 신문지로 다 막고, 커튼마저 쳐버렸다.
그 후에야 승호는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연습장을 잔뜩 꺼냈다.
정말 미술 하려는 녀석은 아니고, 다만 몸의 선만 알아가려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전문용지를 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준은 승호의 신호에 옷을 느릿느릿 벗기 시작했다.
물론 허락할 때는 상관없다 생각했으나 막상 벗으려니 좀 민망했다.
그것은 진수도 마찬가지였는지 좀 머뭇거리고 있었다.
현준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훌렁 벗어버리고는 당당하게 섰다.
우선 승호가 섰을 때의 선을 그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진수는 역시 평소의 그 느끼함을 되찾았는지 별 같잖은 포즈를 다 취하고 있다가 승호에게 혼났다.
“산만하잖아! 좀, 가만히 좀 있어!”
그 말에 진수는 끽 소리 못하고 가만히 섰다.
승호는 현준과 진수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몸을 구부려 보라느니, 바닥에 앉아보라느니, 책상위에 앉아보라느니, 뒤로 돌아보라느니. . .
승호는 정말 진지하게 그렸다.
그러나 현준은 승호의 눈빛이 닿을 때마다 왠지 오싹거렸다.
온 몸을 손으로 더듬는 듯한 강력한 눈빛.
닭살이 두두둑 돋았다.
승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승호는 눈은 마치 자신을 집어 삼킬 듯이 강력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현준은 진수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왠지 모를 민망함에 승호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무렵, 드디어 승호의 입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 . .다 됐다! 고마워!”
현준은 그 말에 떨어지자마자 황급히 옷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입으려는 데 진수가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 . . 그런데 현준. 너는 어째 어릴 때나 지금이나 거기가 별로 안 커진 거 같다?
이래서 밤일은 어떻게 하냐?“
그 말에 현준은 옷을 입으려다 말고 당당히 보이며 말했다.
“눈까리 삐었나! 이거 안 보이나!
나도 이젠 보통의 성인 싸이즈는 된다! 와 그러는데. . . 헉.“
현준은 말하다 말고 녀석의 것을 쳐다보았다.
녀석의 것은. . . 정말 컸다. . .
현준은 부러움의 눈길이 담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그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진수도 처음에는 자랑스러워 하다가 현준이 자꾸 뚫어지게 쳐다보자 급히 바지를 주워 입으며 말했다.
“너 변태냐! 왜 계속 쳐다보고 난리야!”
그 말에 현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 . 니. . . 진짜 크네. . . 하지만 뭐, 재영이 께(것이) 더 컸다.
짜식 어디서 자랑하고 난리고.“
그러고는 뒤로 돌아 옷가지 있는 곳으로 갔다.
진수는 그 말에 위에 옷을 입다 말고 현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건 승호도 마찬가지였다.
“너 그건 어디서 봤냐? 혹시. . .”
현준은 그 말에 뜨끔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연기력으로 뻔뻔하게 밀어붙였다.
“니 빙시가.(병신이냐) 우리는 뭐, 공중목욕탕도 안 가는 줄 아나.
별 이상한 놈 다 본디. . .“
그 말에 진수가 힘줄이 오른 눈으로 현준에게 말했다.
“. . .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그 말에 현준이 뜨끔해서는 버럭거렸다.
“내가 뭐 거짓말했다고 난리고! 증거 있나!”
그 말에 진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 . 증거라. . . 너랑 나랑 대체 몇 년이나 봐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자그마치 10년이다, 10년.
증거? 증거야 있지. 네 놈은 거짓말 할 때 양미간이 약간 찌푸러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려. 게다가 눈도 조금 가늘어지지.
아까 네 모습을 생각해봐. 이 만큼 정확한 증거가 어딨다고 그래?
그건 그렇고. . . 씨발. . . 선수를 빼앗기다니. . .“
그러다 승호와 둘은 눈이 마주쳤다.
두 녀석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할거지?”
"당근.”
"내가 먼저다. 이건 모델로 대신이라고.“
“으윽. . . 별 수 없지. 알았다.”
그러고는 사악한 표정으로 현준에게 돌아섰다.
현준은 왠지 그 표정에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녀석들은 이상히도 이런 일에만 마음이 잘 맞았는지 달려들며 현준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음은. . .
. . . 잘 먹겠습니다. . .
현준은 옷가지를 주우며 녀석들을 발로 밟아댔다.
허리가 찌르르 거리는 게 나으려면 좀 걸릴 것 같았다.
내일이 일요일이기에 망정이지. . .
현준은 녀석들을 밟아대며 화를 버럭버럭 냈다.
“아윽. 허리야. . . 씨발. 니 놈들 미칬나. 그렇게 해대면 대체 내보고 죽으란 말이가,
씨발. . . 씨발. . .개새끼들. . .“
그 말에 진수는 괜히 능글맞게 웃으며 말한다.
“에이~ 너도 좋았으면서. 너도 끝에는 갔잖아.”
그 말에 현준은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승호 역시 그런 현준에 모습에 놀려먹을 기회라고 생각했던지 현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짜식. . . 신음 소리 죽이던데? 적어도 신음 소리는 사투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더라고.”
현준의 얼굴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빨개졌다.
녀석들은 즐거운 소리로 웃었다.
현준은 마침내 터져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악! 니들 따위는 뒈져 삐라! ! !”
그러나 녀석들은 능글맞게 웃으며 현준을 끌어안아줄 뿐이었다.
씨발. . . 그래도 니들이니까 참는다.
젠장. . . 되게 따뜻하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