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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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승현이 이상하게도 현준에게 그리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옛날 같았으면 누군가가 간단한 접촉이라도 했을 시엔 아마 엄청난 집착을 보이며 훼방을 놓았을 텐데. 

이상히도 요즘은 넋이라도 나간 듯. 

아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이상히도 늘 멍한 표정만 보였다. 

신경 쓰인다. . . 

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녀석을 볼 때마다, 그리고 녀석과 접촉할 때마다. 

그러나 녀석이 어떻게 해도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즘 점점 녀석들이 좋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 녀석들 중 하나인 승현이 이렇게 무언가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왠지 자신이 아는 척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에,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기 조금 쑥스러운 느낌에 현준은 그만 모른 척 해버렸다. 

“. . . 녀석들은 프로다. 

이곳, 저곳 조사해본 결과 현준 형이 예전에 썼던 그러한 약간 치사한 방법은 씨도 안 먹혀 들거야. 

녀석들은 정말 잔인하고, 치밀한 놈들이니까.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 .“ 

지금, 그들이 다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 현제 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재영. 

재영은 그 날 이후로 웃음을 잃었다. 

그리고 늘 장난스레 쓰던 사투리조차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재영의 차가운 표정에, 예전과 다른 모습에 현준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내색 할 수는 없다. 

괴로워하는 것은 녀석의 몫이니까. 

이겨내야 하는 것도 녀석의 몫이니까. 

재영은 흘러내리는 머리를 추스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 . 우리가 앞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면 돌파야.” 

다들 조용히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재영은 그들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어차피 아직 그들의 세력은 크지 않아. 

우리에 비해서 얼마 되지도 않고, 질도 많이 떨어지지. 

하지만 그 쪽 수뇌부 다섯은 정말 경력이 장난이 아니더군. 

정말 난폭하고, 사나운 놈들이야. 

실제 그 놈들과 붙어서 몸이 성한 놈들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위험하지만 승산은 있어. 

. . .어떻게 할래?“ 

그런 재영의 날카로운 말에 아무도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실 가장 원한이 깊은 사람으로 꼽자면 재영이었으니까. 

재영은 아무도 이견을 내지 않자 이것으로 정하겠다며 그 곳을 정리하고는 나와버린다. 

그리고 그 뒤를 현준이 따라 나왔다. 

현준은 가는 재영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았는지 팔이 많이 말라 있었다. 

현준이 갑자기 그의 팔목을 잡자 재영은 잠시 놀라서 쳐다본다. 

현준은 그런 그를 두고 차분히 말한다. 

“. . . 가만히 두고 볼라고 했는데. . . 

도저히 가만히 못 보겠다. 

니, 요즘 밥은 챙기 먹나! 

보니까 맨날 밥도 안 먹고 그거 조사만 하고 있대. 

그러다 니 건강 해친다. 좀, 작작 좀 해라.“ 

그 말에 재영이 자신이 잡힌 팔목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덕에 재영의 팔목을 꼭 붙들고 있던 현준 역시 재영 쪽으로 딸려 갔다. 

재영은 그런 현준에게 나머지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녀석의 긴 머리카락이 현준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현준을 끌어안고 있었다. 

현준은 녀석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으나, 왠지 가만히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녀석은 현준의 어깨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 . . 형. .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 . 오늘은 저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양보할게. 

어차피 그도 형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인 거 같으니까. . . 

걱정해줘서 고마워. . . 나 정말 괜찮으니까. . . 나중에 집에서 보자.“ 

재영은 그러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현준은 재영의 말에 서서히 뒤로 돌아보았다. 

왠지 뒤에 누가 있는 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할 말이 있어, 현준.” 

. . . 역시 승현이었다. 

왠지 생각이 정리된 듯한 그의 모습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은 그런 현준을 데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으로 갔다. 

현준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현준은 순간 당황을 했다. 

왠지 무어라 정의를 내리기가 매우 애매했던 것이다. 

그런 현준의 머뭇거림을 오해했는지 승현이 현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 . .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어. 

나, 이대로 네 곁에 있어도 되는 지에 대해서 말야. . .“ 

승현은 슬픈 눈으로 현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 . . 이상도 하지. 

내 이성은 네 곁에 더 이상 있어보았자, 둘 다 상처만 입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내 심장은 이대로 쭉 네 곁에 있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있어.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 

승현은 현준을 어루만지던 손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그의 몸이 서서히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 . . 좋아해.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것은 너에게 큰 부담이 되겠지. 

너의 주위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사랑해 줄 사람이 많아. 

난 너무 두려워. 

난 이대로 잊혀져 가는 걸까? 

나, 이제 더 이상 너에게 특별해 질 수는 없는 걸까? 

나 너에게 상처만 주게 되는 걸까? 

자신 없어. . . 

너에게 사랑 받을 자신이 없어. . .“ 

고개를 숙인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눈물은 어두운 골목 안임에도 어느 무엇보다 밝게 반사되어 비취었다. 

“. . .하지만 네 곁에 있고 싶어. 

나 계속 생각해 왔어. 

너를 위해서 떠나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지. . . 

하지만 난 이기적이라 너를 생각할 수가 없었어. 

난 너를 떠날 수 없어. 

그래서 너에게 너무나 미안해. 

그리고 아마 난 너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몰라.“ 

왠지 그의 어깨가 너무나 왜소해 보였다. 

흐느끼는 그의 어깨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싫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좋아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있어서 그들은 전부다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였다. 

절대로 미워 할 수 없는. . . 

이렇게 울면 가슴이 아픈. . . 

현준은 그의 어깨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 . . 우린 아직 18살 밖에 안 됐다. 

좀 더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아직 어리니까 우리 좀 더 누릴 거 다 누려 보자. 

. . .젠장 무슨 말 하는 거고. . . 

에. . .그러니까. . . 나는 그렇게 말재주가 있는 게 아니어서 표현은 잘 못하지만. . .“ 

현준은 그 말을 끝으로 녀석에게 처음으로 입을 맞추어왔다. 

현준의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승현은 놀라 멍하니 있었고, 현준은 입맞춤을 끝낸 후 승현에게 씨익 웃어주며 말한다. 

“. . . 이게 내 대답이다. 

내한테 있어서는 니도, 그 녀석들도 다 중요하다. 

다른 누구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다. 

그니까. . . 더 이상 이렇게 슬퍼하지 마라. 

음. . . 내도 니 . . . 음. . .“ 

그러고는 쑥스러웠던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 . 별로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 .” 

그 말을 끝으로 승현은 현준을 한 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양 손은 현준의 양 옆 벽을 짚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현준은 그런 그의 얼굴에 홀리듯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 

승현은 천천히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처음엔 잠시 닿았다가 이내 떨어져 나가더니 그 다음에는 천천히 강도를 높였다. 

조심스럽게 혀를 집어넣어 입천장을 한번 쓸어보더니 이내 혀를 감아왔다. 

그러다가도 이내 다시 입술을 떼어 현준의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천천히. . . 

조심스럽게. . . 

승현의 입맞춤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왠지 그런 입맞춤에 현준은 힘이 주욱 다 빠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진영의 일 때문에 현준의 몸은 극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나 현준의 쓰러지려는 몸을 가볍게 들어올린 승현은 마지막으로 현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말한다. 

“. . . 그 녀석들뿐이야. 

그 녀석들 외에는 아무도 용납하지 않을 거야. . . 

아무도 너에게 접촉도 하지 못하게 할 거야. . . 

네가 싫어하지 않는 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 .“ 

. . .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으니까. . . 

승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준을 안아들었다. 

승현의 조심스러운 속삭임에 안정이 되었던지 현준은 잠이 빠졌다. 

그 동안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승현은 그렇게 한참을 현준에게 속삭이며 현준의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인석이 뒤에서 보고 있었다. 

인석은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 곳을 바라보다 이내 벽으로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 . . 씨발. . . 강인석. . . 너 지금 뭐하는 거냐. . . 

꼴 좋다. . . 이렇게 괴로울 거 이미 알고 있었잖아. . . 

하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 . 나 얼마든지. . .“ 

인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의 어깨가 너무나 아파보였다. 

다음 날이었다. 

현준은 왠지 간만에 잠이 푹 들었다는 사실에 만족을 하며 교실로 갔다. 

그리고는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그 이유인 즉슨. . . 

오늘 체육 시험으로 배구 토스를 본다. . . 

라는 인석의 친절한 경고 때문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현준은 구기종목이라면 정말 최악의 운동신경을 달리는 그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기종목을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던 그였다. 

하지만 주위의 반대가 너무 극심해서 그간 공도 제대로 못 만져보았는데, 

어쨌든 시험이라면 공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현준은 그러한 사실에 매우 기뻐하며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준을 진수와 재석과 인석이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체육시간. 

현준의 차례가 되자 현준은 공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아예 진수는 비상약까지 준비해서 스탠드 밖으로 나와 있었다. 

사실 이 토스는 거의 거저먹기 수행평가로, 점수를 잘 주기 위해 좀 유리하게 해주는 그러한 종목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으니. . . 

“. . . 어, 어, 어. . .” 

“현준아! 조심해! ! !” 

. . . 김현준이라는 인간은. . . 정말이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공하고는 생성이 안 맞았다. 

다른 사람들은 배구 토스 40개쯤이야 가뿐하게 넘겼지만(여자애들도 그 정도는 했다.) 

현준은 시작부터 매우 불안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도 집념은 있었던지 완전 슬라이딩을 해가며 팔과 다리가 다 긁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죽자사자 토스했다. 

그리고 그가 20개 정도 했을 무렵. . . 얼굴이 파랗게 질리신 체육 선생님께서 

이대로 가다간 애 한명 잡겠다는 생각에 중지를 하셨다. 

“. . . 그만. 김현준 만점. 다들 이의 없지?” 

그런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만큼 현준의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배구공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할 때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나무에 부딪치고, 계단에서 넘어지고. . . 

게다가 여러번의 운동장 위 슬라이딩으로 그의 팔과 다리는 성한 게 없이 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체육 선생님의 말에 현준 혼자만 납득 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선생님! 그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것입니다! 

저는 20개 밖에 안 했는데 40개 다 한 아이들과 같이 점수를 받는 다는 것은 다른 아이들도 기분 나빠 할 것입니다. 

그렇지 얘들아?“ 

그러나 아무도 응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현준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했다. 

“보세요. 얼마나 바른 말이었으면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저러겠습니까. 

저는 마저 20개 다 채우겠습니다.“ 

얼마 만에 만져보는 공인데. . . 이대로 뺏길 수는 없는 기다! 

그러한 생각에 현준의 눈이 서서히 불타올랐고, 다들 질린 체로 현준이 하는 꼴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현준의 움직임도 진수에 의해 무산 되었다. 

진수가 그의 공을 집어 올리며 저지했기 때문이었다. 

“. . . 나중에 공 가지고 놀게 해 줄게. . . 

우선 치료부터 하자. . . 정말이지 넌 어떤 의미로는 대단해. . . 아주. . .“ 

그리고는 현준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현준의 주위로 재석과 인석 역시 와서는 현준이 치료 받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현준은 팔과 다리를 전부 붕대로 감게 되어 미이라가 되어버렸고, 

너무나 불편해서 당장에 풀려고 펄펄거리는 것을 진수 이하 7명이 붙들어서 겨우겨우 말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날 체육 선생님은 큰 결심을 했다. 

‘. . . 앞으로 절대로 현준이 있는 학년은 구기 종목은 못하게 해야지. . .“ 

그 후로 현준은 체육 시간에 절대로 공을 만질 수도 없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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