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눈부신 아침이었다.
그리고 현준이 재영과 함께 동거(?)한 지 약 1주일정도가 다 되어 가는 상황이다.
아파트는 별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둘이서 생활하기 알맞은 정도의 크기였다.
그래도 이정도인걸 보면 그의 어머니인 그 짠순이 최순이여사께서 돈 좀 쓰신 모양이셨다.
현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활짝 폈다.
잠은 더 오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계시기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 .
“. . . 지금 임마, 뭐꼬.
잠버릇이 와 이리 고약하노.“
그렇다.
지금 상황을 잠시 설명하자면 재영이 현준을 마치 인형이라도 되는 양 꼭 끌어안고 주무시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현준은 그 곳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손은 더 그를 죄어왔다.
현준은 이미 그가 깨어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체, 그저 녀석의 잠버릇이 이러려니 했고,
재영은 그런 그의 다행스러운 오해 덕분에 오랫동안이나 현준은 안아 볼 수 있었다.
물론 늘 언제나처럼 현준에게 급소를 차여서 바닥으로 나동그러진다는 결말을 당하긴 했지만. . .
재영은 이제 막 일어난 것처럼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며 엉덩이를 문질렀다.
“아야야. . . 워메. . . 요즘따라 왜 이런디여. . .
왜 맨날 아침마다 밖으로 이탈해버린디여. . .
내 잠버릇이 그리도 고약해부렸으라.“
그 말에 현준은 역시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제발, 그 되지도 않는 사투리 같은 건 마, 치우고, 니 원래대로 서울말 쓰라.
솔직히 니 웃낀거 알고 있나.“
그 말에 녀석은 역시 그 얼굴에 맞지 않게 그렁그렁한 눈으로 현준을 쳐다보며 말한다.
“형. . . 역시 나 미워하는 거지?
내가 형보다 더 어른스럽고, 더 키도 크고, 더 잘생기고, 더 멋지고, 더 옷 발 살고. . .“
퍽------------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현준은 자신의 오른 발을 사뿐히 들어 그러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고,
그 결과 재영군은 지금 저 쪽 한 구석으로 처박혀 계셨다.
“흑! 행님은 야만인이랑께롱~”
. . . 그런 사투리가 어디 있노!
그는 다시 분노한 현준에 의해 고이 밟혀서 폐기 처분 되었고, 현준은 큰일이라도 치룬 듯 손을 탁탁 털었다.
“아아. . . 잘 뭇다.(먹었다)
그래도 니 요리 솜씨라도 건질만해서 다행이다.
난중에 크서 부인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되겠는데~“
그 말에 재영은 눈에 띠게 부끄러워하며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런데 와 내를 쳐다보는데.
녀석의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하는 듯한 시선을 현준은 의문스럽게 쳐다보았지만. . .
역시 전혀 알 수 없었다.
역시. . .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야. . .
현준은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쾅, 쾅, 쾅! ! !
이 엄청난 대문 소리는 그들이 왔다는 걸 암시하는 소리였다.
분명 성질 급한 승하 녀석이 문을 두드리다 못해 발로 차는 것이리라.
현준은 한숨을 쉬며 문을 열어주었다.
꼭 바람피우는 마누라(?)라도 감시하는 듯한 분위기군.
사실 정말 이 녀석들이 이런 데만 마음이 통했는지 자신이 재영과 살기 시작한 그 날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는 매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었던 것이었다.
승하는 발로 차다가 문이 열리기에 문을 벌컥 열었는데, 바로 정면으로 현준이 보이자 좋아서는 어쩔 줄을 모른다.
“혀엉~ 잘 잤어~ 좋은 아침이야~”
그러고는 달라붙는 폼이. . . 정말 영락없이 개새끼(강아지)같다.
. . . 몇 주 전의 날 사랑한다 할 때의 그 카리스마 있던 놈은 어디로 간 것이뇨. . .
현준은 먼 곳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그 때 그 뒤로 재영이 배를 벅벅 긁으며 등장했다.
“뭐꼬, 이 무리들 또 왔나.”
. . . 이번에는 부산 사투리냐. . .
현준을 포함한 모두의 공동된 생각.
녀석은 너무 사투리 쓰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다.
어쨌든 녀석이 등장하자 갑자기 공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왠지 승하와 승현과. . . 어쨌든. 그들의 눈에서 불꽃이 일렁거린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그 모습이 어쩐지 열혈 스포츠만화를 연상시키는 모습같아 현준은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악당! 내가 너에게 질 줄이야. 내 기필코 너에게 다시 승리를 되찾고야 말리라!”
그 말에 재영이 코웃음 치며 농구공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멍청한 녀석. 넌 평생 농구를 해봤자 나를 따라 올수 없어.
일찌감치 냉수 먹고 속이나 차리는 게 어때. 으핫핫핫핫!“
이 때 왠지 모르게 재수 없어 보이는 미소까지 겸해야 한다.
그럼 우리의 주인공 승하는 눈물을 흘리며 저 뜨거운 태양에 맹세를 한다.
“기필코, 뼈를 깎는 수행을 해서라도 녀석을 이기고야 말겠어.”
그런 그의 눈에 결심의 불꽃이 일렁거렸고, 그의 앞으로 파도가 절벽을 철썩 치고 지나갔다.
. . . 내가 생각했지만 진짜, 딱이다.
현준은 아까 자신이 상상한 것을 저 상항에 빗대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재영은 王 보스 격인가?
묘하게 납득이 가는 현준이었다.
어쨌든 이 놈의 재영이 녀석은 능글맞기가 진수보다 더해서 등빨은 산만한 것이 아침부터 뒤에서 껴안고 지랄이셨다.
“형, 오늘도 우리 사. 이. 좋. 게. 한 이불 덮고 한 자리에서 같. 이. 잤. 잖. 아?
오늘 내 요리 솜씨 어땠어?“
그 말에 현준은 무심코 답했다.
“아아, 니 요리 솜씨 말이가.
죽이지. . .“
현준은 왠지 꿈에 젖는 듯한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데리고 살 사람이 그렇게 요리 솜씨 좋다는 건 진짜 王 행운이다!
암. . .그렇고 말고. . .
내도 커서 꼬옥 요리 잘 하는 사람에게 장가갈끼니까!“
. . . 현준의 생각 없는 그 말에 갑자기 다들 요리에 대한 의지를 불살랐고,
그 날부터 웬일인지 요리코너에 얼쩡거리는 남학생이 생겼다는 비밀중의 비밀.
그리고 현준은 그 날부터 녀석들의 도시락 세례를 받아야 했다.
현준은 너무나 좋아서 입이 헤벌쭉 벌어지고야 말았다.
현준은 학교에 등교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자신이 꼭 에스코트를 받는 듯한 기분이라고.
왠지 모르지만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현준은 기후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리고 물웅덩이 옆을 지나고 있는데 차가 한 대가 씨잉 하고 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현준은 꼼짝없이 물세례를 맞겠구나 싶어서 몸을 웅크렸다.
최아아아악-----------
. . . 물소리가 들렸는데도 자신이 젖은 듯한 느낌이 들지 않자 현준은 웅크렸던 몸을 빼고 옆을 보았다.
옆에는 재석이 자신의 교복 윗도리를 옆으로 펼쳐서는 현준을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물웅덩이가 깊었는지 재석의 등에까지 물이 다 튀어 있었고, 재석은 묵묵히 물에 젖은 옷을 털어냈다.
물론 옆에서 승하가 그 차를 향해 빠큐와 함께 욕을 날려주는 걸 잊지 않았다.
재석은 묵묵히 옷을 털고는 현준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리고 현준의 바지에 물이 약간 튄 것을 보고는 자신의 남방 소매를 꺼내 그 부분을 정성스레 닦았다.
당혹스러워하며 현준은 그를 내려다보았고, 위에서 내려다 본 그의 얼굴은 왠지 정말 남자라는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녀석은 현준의 옷을 깨끗하게 닦아주고는, 다시 일어나서는 현준을 향해 한 번 웃어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씨발. . . 눈물난다. 눈물나. . .
현준은 왠지 모를 심기 불편함으로 교실로 들어갔고,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현준이 왜 저런지에 대해 추측하느라 바빴다.
암만 생각해도 정상이 아닌 거 같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렸다?
그래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건가?
씨발. . . 나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표정이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남. 자. 의 표정이라는 건가?
난. . .
. . . 제길. . . 난 여자가 아니야.
왠지 그들을 인정하면 자신이 여자인 것 같은 기분에 현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도 내내 저기압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려다 무심코 재석을 보았는데, 재석의 표정은 너무나 무서웠다.
평소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의 그런 부드러운 표정과는 무언가 틀렸다.
현준은 왠지 그런 표정에 압도당함을 느끼면서 교실을 들어서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현준이 앉아서 재석을 바라보자 언제 표정이 풀렸는지, 그는 이내 그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왠지 그가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자신 역시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현준은 왠지 모를 답답함에 화가 나 재석에게 갔다.
그리고는 재석의 손목을 잡아 쥐고는 말했다.
“. . . 나랑 이야기 좀 해.”
그런 현준의 말에 재석은 현준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이내 일어서며 말한다.
“. . . 그러지.”
그러고는 같이 일어서려는 진수와 인석을 손으로 저지한 후 현준을 따라갔다.
같이 간 곳은 5층의 도서실 옆 복도였다.
이 제일 구석에 있는 복도는 아무도 올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대화하기에 정말 적합한 곳이라 그는 생각했다.
둘은 서로 마주 보았다.
현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 . . 내 여자 아이다. 그러니까 여자 취급 하지 마라.”
그 말에 재석은 그 듣기 좋은 중음으로 묵묵히 말한다.
“. . . 난 딱히 널 여자 취급한 적 없어.”
그 말에 현준의 눈 꼬리가 치익 치켜 올라가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뭐라꼬! 니가 여자 취급 안 했다고!
니 그럼 아침 일은 뭔데! 아침에 가스나들 보호 하듯이 물 튀는 거에서 내 보호한 건 대체 뭔데.
내도 남자다. 그깟 물 좀 튄다고 큰 일 날 놈 아이단 말이다!“
그 말에 재석은 역시 묵묵히 말한다.
“. . . 너를 딱히 여자 취급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냐.
그저 너에게 물이 튀는 게 싫었을 뿐이야.
그냥. . . 좋아하니까. . .“
그 말에 현준은 아까의 그 답답함이 더 가중되는 것 같았다.
“. .. 니 뭔데. . .
암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내는 남자다. 알고 있다 아이가!
근데 왜 그런 말 하는데.
내는 역시 이해 할 수 없다!“
그 말에 재석은 슬그머니 오른쪽을 쳐다보며 스쳐가듯이 말한다.
“말했잖아. 너를 특별히 여자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거 아니라고.”
그러고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말한다.
“. . . 그냥 좋다.
남자고 여자고 그런 거 다 떠나서 그냥 좋다.
. . . 그냥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런 그의 말에 현준이 아무 말도 없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뭐. . . 안 된다고 해도 좋아할 거지만. . .
만약에 부담스럽다고 하면 나도 인석이처럼 그냥 친구처럼 있을게.
하지만 난 인석처럼 모든 걸 억누르지만은 않을 거다.
거절하려면 지금 거절해라.
지금 확실하게 네 마음을 말해라.
난 네가 싫다 라고. . .“
어느 새 옆을 향했던 재석의 얼굴이 현준의 쪽으로 돌아와 있었고, 현준은 그런 재석의 모습에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지루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재석은 약간 포기했는지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 때 현준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 . . 리. . . 잖아. . .”
그 말에 재석은 현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현준은 무언가 결심했는지 똑바로 크게 말했다.
“이씨. . . 꼭 아픈 데만 찌르고 지랄이고!
내가 니 싫어 할리고 없다 아이가!
이씨. . . 나도 모르겠다.
느네들(너희들)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헤어지면 아마 엄청 아플 거 같다!
씨이. . .“
현준의 씨근덕거리며 그래도 눈물을 안 흘리려고 이를 악물고 대답하는 그 모습에
재석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재석의 입술이 현준에게로 닿은 것은.
그것은 마치 사뿐히 떨어지는 꽃잎같이 잠시 다가 왔다가 이내 떨어졌다.
그러고는 현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그의 손가락에 손등에 손바닥에 계속 입을 맞추었다.
차마 현준에게 상처 주는 행동은 하지 못했던지 그는 현준의 손에만 그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었고,
현준은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손에 닿는 그의 입술이 뜨거웠다.
분명 너무나도 자제에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재석은 잠시 후 손에 키스를 퍼 붓는 것을 멈추고는 그의 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 . . 그래도 다행이다. . . 너에게 거부당하지 않아서. . .
정말, 정말 다행이다. . .“
그런 그의 눈에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재석의 눈물에 현준은 놀라다가 이내 그의 진심에 가슴이 쓰렸다.
재석에게 잡힌 자신의 손이 재석의 눈물로 축축해졌다.
. . . 동정심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 나는 정말 그러고 싶었으니까.
현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석의 얼굴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마주쳤다.
현준이 처음으로 스스로 해보는 입맞춤이었다.
재석은 현준의 입술이 자신에게 닿자 처음에는 잠시 놀란 듯 했으나, 이내 거침없이 현준의 입술을 탐했다.
현준은 그의 키스를 받으며 잠시 생각했다.
. . . 아무래도 내는 이 녀석들에게 코 꿸 것 같다.
엄마, 미안. 내한테 손주는 이제 기대하지 마라.
그 순간 최순이여사께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잠시 떠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