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드디어 수학여행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다들 아침부터 짐을 싼다고 분주했고, 재석과 인석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현준은 짐을 다 쌌는지 어쨌는지 짐은 싸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재석과 인석은 짐을 싼다고 그것을 보지 못했다.
“드디어 서울로 간다고?”
진수가 현준에게 말했다.
현준은 한없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한다.
“응. 오늘 1시쯤에 밥 묵고 그리 간다.”
진수는 그런 친구의 머리를 쓰윽 쓰윽 쓰다듬어 주며 미소 짓는다.
“서울 가서 잘 살아라.”
그 말에 현준의 눈에서는 급기야 눈물마저 흐른다.
아아. . . 대체 사나이 운운하던 놈은 누구였을까?
그런 현준의 모습에 진수는 약간 당황한다.
“아. . . 너. 왜 그래? 응?”
그러나 한번 터진 울음보는 도저히 그칠 생각을 않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이 작지 않은, 게다가 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저런 모습을 한 친구의 모습에
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 따뜻한 손길로 현준의 등을 토닥여 줬다.
현준은 약간 안심이 됐는지 또다시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들어 말한다.
“진수야.”
그 말에 진수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왜?”
현준은 울먹이며 말한다.
“내 서울 가면 니 보고 싶어서 우짜노.”
그 말에 진수는 순간 잠시 당황한다.
맨날 저런 말 하면 느끼하다고 타박 주는 놈이. . . 저런 말을. . .?
진수는 드디어 얘가 미쳤구나. . .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현준은 그런 그의 마음을 당연히도 모른 체 말한다.
“씨발. . . 니 놈 새끼에게 들은 미운 정도 정은 정인지. . .
서울에서 니 진짜 마이 보고 싶었다.“
그런 그의 말에 진수는 무어라 말하려 한다.
그 때 멀리서 승현과 승하가 어떻게 현준이 있는 곳을 알았는지 와서는 늦었다고 손짓을 한다.
그런 그들의 손짓에 현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진수에게서 떨어져서는 인사를 하고는 달려간다.
진수는 현준이 갈 때까지 한참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현준이 확실히 간 것을 보고는 중얼거린다.
“. . . 짜식. . . 정말 중요한 것을 말 못했는데. . .”
그러고는 다시 아쉬움이 남는 듯 현준이 간 곳을 쳐다본다.
그러다 발걸음을 학교 쪽으로 돌린다.
대체. . . 그 중요한 말이 무엇이기에. . . .?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되었다.
현준은 아쉬움이 남는 다는 듯 부산을 정성스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재석과 인석과 함께 버스에 오르려 했다.
그 때였다.
“잠깐!”
그 말에 놀라서 보니 진수와 혜은이었다.
인석은 혜은을 보자 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다.
그러나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다.
현준은 그런 인석의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인석은 현준이 자신의 손을 잡자 놀랐으나, 곧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현준에게 작게 미소지어주었다.
혜은은 인석 앞으로 갔다.
인석과 현준은 순간 긴장했다.
혹시 또 뺨이라도 때리며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붓는 게 아닐까?
그러나 예상 외로 그녀는 인석의 앞으로 가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곤 말했다.
“미안하다. 어젠 내가 좀 심했다. 그래도 친구인데. . .”
그 말에 인석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제 일에 대한 사과와 확실하게 자신이 차였음을 미안해하며 말하는 것이라 느낀 인석은
그런 그녀를 향해 괜찮다 말하려 했다.
그렇게 무어라 말하려는 데 버스에서 선생님이 빨리 올라오라고 부르신다.
혜은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서울 가서도 잘 지내라.
우리 아직 친구 맞재?“
그 말에 인석은 곧 작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응.”
난 이제 괜찮으니까. . .
혜은은 안심했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 뒤로 진수가 현준을 향해 미소지어보였다.
현준은 진수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뒤에서 재석이 잡아끌며 말한다.
“빨리 타. 너만 두고 가겠다.”
그 말에 현준은 재석에게 끌리어 들어 갈 수밖에 없었고, 인석도 곧 현준을 따라 차를 탔다.
버스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고, 저기서 손을 흔들고 있는 혜은과 진수가 조금씩 멀어짐이 보이자
현준은 급기야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옆에 앉은 승현이 놀라서 현준을 바라보았으나 현준은 그런 승현의 눈길은 신경도 쓰지 않은 체 계속 눈물만 흘렸다.
승현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었고, 그 때 인석이 그런 현준의 머리 위로 자신의 남방을 벗어서는 던져 주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 . . 너도 울어라. 새끼.
니 놈도 사람이니까 울고 싶을 게 아니냐.
그러니까 너도 실컷 울어라.“
그런 그의 말에 현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남방을 꼭 쥐며 얼굴을 가렸다.
현준의 입술에 그의 남방이 닿는 것이 보이자 인석은 순간 잠시 심장이 쓰라렸다.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왠지 모를 답답함과 쓰라림에 인석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의자에 기대었으나 어쩐지 편하지 않은 느낌.
왠지 약간 화가 났다.
인석은 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으에에에에엑?”
수학여행이 끝나고 일요일에 편히 쉰 뒤 다시 왔던 학교.
현준은 우울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울함을 씻어 주려는 듯 1교시 마치고 담임은 전학생을 데리고 왔고. . .
“현준아. 안녕~”
. . . 보다시피 진수 놈이 그 전학생이었던 것이다.
그것에 너무나도 놀란 현준은 그런 괴상망측한 소리를 냈던 것이고,
진수는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얄미워 현준은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아. . .
. . .가려 했으나. . . 많은 아이들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무심한 표정을 띠며 주저앉았다.
그런 현준의 모습에 진수는 지금까지 현준이 어떻게 서울에서 지냈는지를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동정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 놈이 저렇게 얼굴에 어울리게 살고 있었다니. . .
딴 놈들에게 말하면 절대 안 믿겠지?‘
물론 현준은 지금 그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한 가지 만은 알고 있었다.
차진수. 저 놈이. . .
또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거.
현준은 분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같으니라고. . .
그러나 마음 한 구석만큼은 어쩐지 상당히 기분 좋았던 그였다.
재석과 인석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인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재석의 얼굴은 완전 똥 씹은 얼굴 그 자체였다.
‘저 재수 없는 새끼가 정말 끝까지 태클 거는 구나. . .씨발. . .’
대체 어디서 태클을 걸었다는 걸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 날은 월요일이었지만, 현준은 야자를 띵구고야 말았다.
그 이유인 즉슨. . .
“. . . 야, 너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진수의 서울 구경이랄까. . .?
어쨌든 현준은 며칠 더 있었다고 으쓱거리며 진수를 이끌고 서울 구경을 하러 다녔다.
그러나 현준은 정말 엄청난 방향 치에 길치였다.
그래서 지금 벌써 같은 곳만 맴돈 지 1시간째.
약간 어둑해 지려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 한 내가 미친놈이지. . .’
어쨌든 그렇다고 그들만 이렇게 빠진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준이 빠지면 따라 붙는 옵션.
“으아아아아악! 저 새끼는 또 왜 나타나서 지랄이야!”
“. . . . . .”
“흑흑. . . 이젠 우리에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구나. 현준~ 컴 백~”
“아씨. . . .”
“. . . 언젠가 저 놈 한 번 손봐줘야겠군.”
승하, 승현, 승호, 인석, 재석. . .
또 미행을 결심하다.
그러나 진수는 예전의 현준과 재석만큼이나 허술하지 않았던지.
자신들이 여기 있음을 눈치 채고는 씨익 웃으며 현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승리의 미소를 날려주며 유유자적하게 현준과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다들 이를 갈았다는 것은 자명한 일!
진수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변태 새끼들 같으니라고.
물론 우리 현준이가 좀 괜찮게 생긴 것은 부정 않는다.
하지만 사내새끼들이 사내새끼에게 붙다니. . .
우리 현준이를 위해서도 그건 정신 건강에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며 끄덕였다.
그러다 든 생각.
그럼 나는?
그러나 그런 자신의 물음에도 방긋 웃으며 자기합리화를 시킨다.
내가 된다는데 안 될 일이 어디 있어.
현준 옆에 들러붙는 사내놈은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그러고는 다시 뒤에서 부글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향해 얄미운 미소를 던졌다.
으메~ 신나는 것!
진수는 오늘만큼 신나는 날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현준 옆에 들러붙어 있으면 늘 즐겁다니까~!
그러나 역시 이 방향치 놈에게 길안내를 부탁한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 . . 지금 뭐라고. . .?”
현준은 나직이 물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7놈이 나름대로 인상을 쓰며 거칠게 말한다.
“아씨~ 이 씨발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 .
가진 거 다 내 놓으라고!“
역시 전형적인 깡패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둘이 바로 그 유치한 이름의 ‘밤의 천사’의 최고 우두머리들이라는 사실을.
한마디로. . .
명복을 비나이다. . . . .
부디 다음에 태어날 때는 좀 더 센 사람으로 태어나소서. . .
. . .라 할 수 있다.
현준은 그 같잖은 깡패들의 협박에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이게 지금 저걸 협박이라고 하는 기가!
현준은 그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불쌍하신 깡패님들께서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신체
이 자식이 미쳤나 라는 생각을 서슴없이 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을 자르기라도 할 듯 나온 현준의 말.
“이 씨발 새끼가 돌았나! 어디서 그 더러운 아가리를 내놓고 지랄이고. 으이?
니 미쳤나, 돌았나, 빨랫줄에 걸렸나!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는 기가. 아이고 두야!
우리 부산 꼬맹이들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씨발, 좆같은 것들이 대가리 안 돌아가게들 생겨서는. . .
꼭 어딜 가나 이런 새끼들 하나씩 있다니까.
쪽수로 해결하려는 바보새끼들.
마, 집에 곱게 보내 줄 때 가라, 이 쌍놈들아.
별 그지 같이 생긴 게 짜증나게 앞을 가로 막고 난리고.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 .“
지적으로 생기고, 얌전한 모범생 같이 생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 .
생긴 것과는 다른 엄청난 사투리에 王 빠른 말!
그들은 그 말을 반도 못 알아듣고는 멍청하게 반문한다.
“지금 뭐라고 한거지?”
그 말에 그 패거리 중 한명이 답한다.
“몰라.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 .”
퍽!
퍽!
그 말을 한 사람은 나머지 6인에 의해서 발로 밟혔다.
어쨌든 그런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인지 진수가 나선다.
사실 부산 사람들도 이렇게 부산 말을 심하게는 안 쓰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말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진수는 종종 현준의 말을 해석해 주는 역할을 맞고 있었다.
“아, 내가 해석해 줄께.
귓구멍 후벼 파고 잘 들어.“
그리고는 사심 없이 웃으며 말한다.
“이 씨발 새끼가 돌았냐! 어디서 그 더러운 입을 내놓고 지랄이야. 응?
너 미쳤냐, 아님 돌았냐, 아님 빨랫줄에 걸렸냐!
아, 참고로 이 욕은 부산에서 한 때 아주 유명했던 욕으로 우리가 초딩일 때 많이 했었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되니까 너무 신경은 쓰지 마.
그럼 계속 한다~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는 거가! 아이고 머리야!
우리 부산 꼬마들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씨발, 좆같은 것들이 머리 안 돌아가게들 생겨서는. . .
꼭 어딜 가나 이런 새끼들 하나씩 있다니까.
쪽수로 해결하려는 바보새끼들.
임마. 집에 곱게 보내 줄 때 가라, 이 쌍놈들아.
별 거지 같이 생긴 게 짜증나게 앞을 가로 막고 난리야!.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 .
자 이제 이해하겠지?“
무서운 놈. . .
뒤에서 숨어 보고 있던 5인과 그리고 눈앞의 7인은 그를 공포스럽게 보았다.
그리고 현준은. . .
. . . 아무 생각 없었다.
현준에게 생각을 바라는 거 자체가 죄악이 아닐까. . .
긁적, 긁적. . .
어쨌든 그 다음은 당연히 너무나 전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 7인들이 현준과 진수에 의해 그냥 뻗어버렸다는. . .
그 둘은 서로를 향해 활짝 미소 지으며 서울 거리를 쏘다녔다.
물론. . .
“이 쪽이라니까!”
“. . . 야, 거기는 반대 방향이잖아. . .“
. . . 현준의 방향 치로 인하여서 엄청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 .
4월 22일.
차진수, 18세.
현준을 따라 서울로 올라오다.
그래서 현준, 신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