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망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동래학춤을 구경하러 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 . .
“서, 선생님. . . 배, 배가. . .”
현준이 아침부터 배를 잡고 나뒹굴었다.
그 모습에 놀란 담임이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현준을 보살폈다.
“혀, 현준아. 이제 웬일이니.
일어설 수 있겠나?
어서 병원에 가자. 어서. . .“
순진한 담임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어린다.
빙고!
현준은 아예 배를 잡고 몸을 벌벌벌 떨고 있었고
(오직 재석과 인석만이 웃음을 참으려 그리 떤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담임은 아예 현준을 들쳐 업을 기세였다.
자, 이쯤에서 자신들이 등장해야겠지?
재석과 인석은 서로 의미 있는 눈짓을 교환했다.
미안하우. 선생.
“. . .선생님. 저희들이 현준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담임이 잠시 머뭇거린다.
이 녀석들은 양아치 중의 양아치.
이 녀석에게 맡겼다가 현준에게 탈이라도 난다면?
담임은 거기까지 생각해 내고는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눈치 못 챌 현준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더럽게 눈치가 없었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위기 때는 엄청난 눈치를 보인다.
현준은 앓는 목소리로 절절하게 선생님을 불렀다.
“. . . 서, 선생님. . .”
그런 현준의 부름에 담임이 뒤로 돌아봤다.
현준은 더 핼쑥한 표정으로 억지로 웃음을 띠며 자신에게 말했다.
“. . . 서, 선생님. . . 괜찮아요.
저 때문에 선생님께서 수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여기는 제가 살던 곳이기도 하니까. . .
그냥 재석, 인석과 같이 병원에 가겠습니다.“
그런 절절한 현준의 모습에 王 감동 먹으신 담임.
결국은. . . .
“. . . 아, 목이 조금 뻐근하군.
너무 구부리고 있어서 그런가?“
그 말에 재석과 인석이 질린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지금 연극계에서는 아까운 인재 한 명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그들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준은 신나게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어디서 많이 보던 삼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혀엉~ 왔어?”
“. . . . . .”
“아아~ 좋은 아침~”
승하는 ‘미친개’라는 별명에 전혀 안 맞게 시종일관 방실방실 웃으며 현준에게 매달리고,
승현은 여전히 현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놓치 않았으며,
승호는 괜히 현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실시한다.
. . . 쟤네들은 어떻게 빠져나온걸까?
묻고 싶은 게 한 둘이 아니건만. . .
왠지 묻기가 겁이 나서 도저히 물어보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한숨을 쉬며 옆을 바라보는데 승하와 눈이 마주쳤다.
승하는 그 덩치에 안 맞을 정도로 순진하게 씨익 웃었다.
그를 보자 더 머리가 아파오는 현준이었다.
사실 승하는 여기 있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건 2학년 수학여행인데, 어떻게 1학년이 따라온단 말인가?
그런데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승하가 있어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왔냐고 물으니까 대답이. . .
“아, 나?”
그냥 학교에 무작정 결석한다고 연락 날리고 사비로 쫒아 왔지~
나 잘했지? 그치?“
. . . 할말 없음이로다. . .
어쨌거나 그들은 버스를 타고 다시 유성고등학교에 도착했고,
현준은 아무 것도 모른 체 자신을 쫓아오는 5인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들 중 아무도 몰랐던 일이지만.
유성고등학교는 부산의 최악의 축제에 배정고등학교와 함께
영광의 1위를 차지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지독했다.
물론 재미 면으로도 1위를 차지하긴 했었지만.
이 서울 놈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현준은 왠지 기분이 통쾌해졌다.
‘좀 마이~(많이) 당할기다. 아암.’
교문 앞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학교가 너무 썰렁했던 탓이었다.
보통 축제 하면 운동장까지 매점상이 들어서고 이것저것 볼거리들이 가득하지 않나?
그러나 그런 기대를 저버리듯 학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문이란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그런 모습에 다들 얼이 빠져서 현준에게 묻자 현준이 생긋 웃으며 안내한다.
“아아~ 입구가 여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날 따라와.“
그리고는 운동장 끝 편의 계단을 통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반신반의하며 아래로 내려갔고, 곧 그들의 눈앞에 학교 건물의 또 다른 문이 보였다.
통로가 하나 밖에 없었고, 그 통로에는 양 가에 사람들이 전부다 두 줄로 쭈욱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멋도 모르고.
부산의 고등학교 축제나 구경해볼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첫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 때 현준이 앞장서며 그들에게 부드럽게 경고를 했다.
“. . . 다치지 않게 조심해.”
그들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복도에 발을 들여 넣은 순간부터 다들 그 말뜻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곳은 완전 지옥이었다. . . .
복도로 몇 발 내딛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복독양옆으로 주욱 늘어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로 한 발 내딛은 순간
갑작스럽게 떠밀려서 웬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씨익 웃으며 한 사람당 한 명씩 어깨에 손을 올려 못 도망치게 한 다음
억지로 자신들의 부실을 구경시켰다.
현준은 제외한 나머지들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얼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무 제지도 못하고 결국 그 방을 한 바퀴 다 돈 다음 방명록까지 써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금 우리보고 이걸 사라고?”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빅파이 하나랑 요쿠르트 하나.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자그마치 천 냥.
재석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소녀는 당당히 요구했다.
“야. 이거 안 사면 축제는 와 보러 온 건데!
너희들 6명이서 160원 170원 정도씩 모아서 이거 사면된다 아이가.
별로 부담도 아니구만.“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들은 곧 현준에게 설명을 부탁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준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여기 축제의 참 맛은 말야.
강. 매. 거든?“
그런 그의 말에 더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현준은 부드럽게 말한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축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들어가기 싫다는 사람도 억지로 다 자기 부실로 끌어들여서 자신의 부를 구경하게 해.
그 다음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고 강매하는 거지.“
그리곤 덧붙여 말한다.
“아마 살 때까지는 여기서 못 나갈걸?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여기서는 축제 6시 정도면 끝나니까.”
그 말에 다들, 특히 인석의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인석의 계획은 이러했다.
1. 축제 때 혜은의 부서에 간다.
2. 혜은과 함께 즐겁게 볼거리를 보러 다닌다.
3. 그리고 한창 분위기가 익어갈 즈음. 혜은이에게 사랑한다 고백을 한다.
4. 그리고. . . 키스까지. . .
그러나. . .
정작 축제라는 것은 이런 거였다.
말도 안돼.
인석은 속으로 절규했다.
쯧, 쯧. . . 불쌍한 것.
어쨌든 왠지 지쳐버린 재석은 그냥 천원을 주려했다.
그러나 현준이 그런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야! 우리 수학여행 와서 기념품 다 사서 돈 한 푼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보내줘.“
그런 그의 말에 재석이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고, 현준은 그들에게 무어라 입 모양을 만든다.
그것을 해석해 본 즉.
그리고 축제의 재미는 이 강매를 무찌르는 데 있지.
으핫핫핫핫!
다들 망연자실해졌다.
어쨌든 그런 현준의 말에 당연히 그 소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준은 부실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 나머지들도 덩달아 움직인다.
그러나 이들 역시 만만치 않다.
건장한 남학생들을 시켜 그 부실 문을 막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준은 억지로 탈출을 시도하나 그들의 힘에 눌러져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현준과 그들의 발목을 붙들고 1학년들이 늘어지며 말한다.
“엉엉엉. . . 저희 이거 못 팔면 선배들에게 죽습니다.
제발 좀 사주 세요.“
“착하게 생긴 행님. 이거 하나만 제발, 하나만 팔아주세요. 네에?”
정말 무뚝뚝하고 약간 잔혹한 재석마저도 돈을 꺼내주고 싶을 정도로 애절하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현준은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에 눈도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우리도 돈 없다니까! 놔라!”
그러자 이제는 그들이 현준과 버럭버럭 거리며 싸우기 시작한다.
현준은 그 말에 한마디도 안 지고, 이젠 그들마저 잊고 사투리로 매섭게 받아친다.
그 모습에 현준에게서 잊혀진 그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고, 그 부의 부원들은 질린 표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 .
“으핫핫핫! 잘 있어라. 많이 팔고!”
현준과 그들은 풀려 날 수 있었고 뒤에서는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빨랑 가서 왕소금 하나 사온나!
별 재수가 없으려니까. . .
빨랑 가서 안 사오나!“
현준을 제외한 나머지는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또 다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서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고,
아까와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었다.
결국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있던 6반을 모두 제치고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현준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지쳐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또 어느 부에 붙들렸다.
또 어깨를 붙잡혀서 설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와서는 음료수를 종이컵에 따라 주며 권한다.
“자자. 피곤하시지요. 이거 좀 마시면서 들으세요.”
그 말에 그들은 너무 지치고 목도 말라서 아무 의심 없이 그 잔을 들려 했다.
그 때 현준이 막아서며 물었다.
“이거 공짜냐?“
그 말에 그는 그 말을 회피하며 다시 권한다.
“에이~ 목마르시면서~
이거 좀 마셔 보세요. 정말 시원합니다“
그 말에 현준은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싫어. 안 먹어.
이거 마시면 또 천원이지?“
그 놈의 천원. 천원. . .
또 현준과 그는 시비가 붙었고. . .
옆에서 있는 그들로써는 차라리 그 놈의 천원을 주고서라도 이 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내가 미쳤지.
왜 사서 고생을 했을까?
차라리 동래 학춤 보러 가는 건데. . .
또 결국은 현준의 승으로 끝을 맺었고, 현준은 아주 뿌듯해 하며 나머지들을 해치고 걸었다.
컴퓨터부. 발명부. 생물부. 지학부. 농구부. ICY.. . .
그리고는 드디어 제일 마지막 부에 도달했다.
현준은 매우 기뻐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자, 돈 한 푼도 안 썼지?
이 축제는 이 맛에 오는 거라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현준을 향해 무한한 살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답게 마지막 부 인 ‘댄스부’에서는 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 현준.”
그 말에 현준이 비릿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냐. 진수. 이번에야말로 네 놈도 물리쳐 주겠다!”
그 말에 진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한다.
“훗. 자기? 이번만큼은 너도 돈을 안 내고는 못 버틸걸?
기대해도 좋아.“
그 말에 현준이 팔뚝을 벅벅 긁으며 말한다.
“새끼. . . 가려워 죽겠다.
흥. 길고 짧은 건 대보아야 안다고, 나도 만만치 않을걸.“
진수와 현준은 둘이 마주보고 생긋 웃었다.
그리고 나머지도 아주 밝게 활짝 웃었다.
‘씨발. . . 내가 다시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 축제에 오면 개(犬)다.’
어쨌거나 현준은 진수가 소개를 해주고, 또 여전히 그들에게 한 명씩 붙었다.
그리고 인석에게는. . . .
“그러니까 춤의 기원이. . . . 인석아. 이것 좀 못 놓나!”
인석은 혜은이의 어깨에 턱하니 손을 올리고는
혜은에게 최대한 밀착을 하며 혜은의 목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 해피!
이때까지의 그 고난과 시련은 바로 이것 위한 것이었던 거야!
인석은 싱글벙글거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댔고, 혜은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 손을 쳐냈다.
인석은 혜은이 손을 뿌리쳐도 계속 어깨에 손을 올려댔고, 그 집념에 결국은 혜은마저 포기하고야 말았다.
혜은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 된 것은 당연한 사실!
부실 소개도 거의 끝났고, 그들은 풍선이 잔뜩 매달려 있는 벽으로 안내가 되었다.
그 곳에는 재석과 오직 그들 6명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진수는 곧 그 문을 걸어 잠그고는 뒤를 돌아 현준을 보았다.
다들 문을 걸어 잠그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진수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여의치 현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거 터뜨려봐.
운 좋으면 사탕 한주먹 받을 수 있고, 운 나쁘면 벌칙을 받아야 돼.
이것은 그냥 너희 6명이 한 개만 터뜨리는 걸로 봐줄게.“
그 말에 현준은 칼을 받아 들고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풍선을 터트렸다.
퍼엉---------
풍선이 터지고 그 풍선 앞에 있던 쪽지가 사뿐히 현준의 손안에 떨어졌다.
현준은 그것을 집어 들고 읽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 쪽지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으르렁거렸다.
“. . .이게 뭐야.”
그 말에 진수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이런~ 벌칙이 걸리고 말았네?
어쩔 수 없지.
자, 어서 벌칙을 받던지 천원을 내던지 둘 중 하나를 골라.“
과연 그 풍선 속에는 어떤 쪽지가 들어있었기에 축제에 온 후 처음으로 현준의 표정이 일그러진 건지. . .
그들은 궁금해서 현준의 쪽지를 펴보았고, 거기에 쓰인 것은. . .
DEEP KISS ME OR GIVE ME \1000
즉, 찐하게 키스 한번 하든지 아니면 천원 내던지.
그 쪽지를 본 그들은 당황했고, 현준은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오직 진수만이 활짝 웃고 있었다.
드디어 이겼다는 기쁨에서였을 것이다.
스킨십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현준으로써는
드디어 천원을 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현준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천원을 내려 했다.
그러나 정말 배알이 꼬였다.
왠지 자신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현준은 순간 진수를 보았다.
저 녀석은 이미 승리의 브이 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저리도 활짝 웃고 있는 진수의 모습이 너무나 얄미워 현준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니 이기는 꼴 못 본다.
그런 결심과 함께 현준은 진수에게 다가갔다.
진수는 당연히 돈을 줄 줄 알고는 현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순간 현준의 매끈한 두 팔이 진수의 머리를 감쌌고, 현준의 얼굴이 진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진수는 갑작스러운 일이나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머지들은 경악을 하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현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고, 현준의 입술과 진수의 입술이 부딪쳤다.
그런 현준의 모습에 되레 당황한 것은 진수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맛보는 그의 10년지기 친구의 입술이 그리 싫지는 않았기에.
아니, 계집애들의 입술과는 다른 왠지 미묘한 기분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상한 기분 때문에 진수는 그런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현준은 그런 그의 입술을 깊게 탐닉했고, 어느새 현준도 모르게 진수의 두 팔이 현준의 허리에 걸려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미 나머지는 굳어 있었고, 현준은 천천히 그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곤 다시 진수의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 후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으핫핫핫핫!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위는 숨소리 하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현준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재석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때였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승현이 갑작스럽게 현준에게 달려들었다.
그 덕에 현준은 승현과 같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현준은 왜 그러냐며 승현에게 화를 버럭 내려 했고, 그 순간이었다.
“너, 지금 뭐하는. . . 우읍!”
승현이 미친 듯이 현준에게 키스를 했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일에 현준은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승현은 현준에게 키스는 자주 했지만, 그건 엄연히 말하자면 그냥 가벼운 입맞춤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숨도 쉴 수 없을 듯한 열기.
왠지 눈앞의 승현이 두려워져서 현준은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현준의 고개는 승현의 두 팔에 의해 고정된 후였다.
승현은 미친 듯이 현준의 입술을 탐닉했고, 현준은 고통스러워 그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두 팔마저도 승현의 양 팔에 의해 가볍게 잡혀서 머리위로 들어올려졌다.
현준은 다리를 들어올려 그를 차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이미 그의 다리는 승현에게 막힌 지 오래였다.
현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승현은 집요하게 그런 현준의 움직임을 따라 키스를 해댔다.
현준은 미친 듯이 발버둥쳤다.
이미 정신을 먼저 차린 승호와 진수가 승현을 떼어 내려 붙들고 있었고,
승현은 미친 듯이 현준의 입술에 매달렸다.
으드득--------
현준은 승현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제서야 승현은 잠시 주춤했고, 그 틈을 타서 승호와 진수가 승현을 떼어냈다.
승현의 입술에서는 많은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승현은 그것에는 개의치 않고 다시 현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현준에게 입을 맞추었다.
현준은 미친 듯이 몸을 덜썩 거리며 승현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승현은 거기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발광을 했지만, 승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발광을 해도 아무리 두들겨 패도 입술을 깨물어도 몸을 들썩거려도 승현을 떼어내지는 못했다.
현준은 발버둥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눈물을 보이면 정말 완전히 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오만가지 욕을 다하며 현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승현은 그런 현준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더니 잠시 후 승현은 현준에게서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나 현준은 눈을 꼭 감은 채로 그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이 새끼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준의 얼굴 위로 무언가 축축한 것이 하나씩 떨어졌다.
현준은 살며시 눈을 떠 보았고, 보이는 것은 승현의 피범벅에 눈물범벅인 얼굴이었다.
승현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고, 그의 몸은 계속 떨고 있었다.
그리 떨고 있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 . . 나. . . 버리지 마. . . 제발. . . 나 버리지 마. . . “
현준은 그 모습에 승현을 계속 쳐다본다.
승현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은 체 계속 쉴 새 없이 말한다.
“나 버리지 마. . . 나 버리지 마. . .
나 이제 겨우 만났어. . . 나라는 인간을 이해해 줄 사람, 나 겨우 만났어. . .
너에게 버림 받는 게 무서워.
무서워. . . 나 버리지 마. . .
나 네가 필요해.
네가 없는 세상은 이제 나에게도 필요 없어.
제발. . . 날 버리지 마. . . “
계속, 쉬지 않고 그의 눈물과 함께 그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런 그의 모습에 진수와 승호는 이젠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승현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현준은 이젠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이딴 짓을 해 놓고, 버리지 말라니.
이렇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버리지 말라는 말 따위나 하다니.
그러나 승현의 모습에 현준은 왠지 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자폐증.
그게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 .
망할 놈의 병이다. 씨발. . .
현준은 긴 한숨을 쉬며 승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승현은 천천히 현준의 가슴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자신의 눈물 때문에 축축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현준의 체온과 부드러운 심장소리에 점점 눈이 감겨왔다.
현준은 아무 말도 없이 승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승현은 그런 현준의 손길에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입가에 또 그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 .
잠시 후 승현이 잠든 것을 확인 하고는 현준은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승현의 얼굴 위의 피와 눈물을 소매를 닦아주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현준은 그렇게 정성스럽게 피와 눈물을 닦은 뒤 멍하게 있던 승호에게 말을 꺼냈다.
“. . . 임마(이 녀석) 니가 좀 업어라. 짐 자고 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석이 그런 현준에게 조용히 다가가 일으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 . . . 괜찮나?”
그 말에 현준은 힘없이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재석은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러나 승현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정말 누구보다도 불쌍한 놈 인거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정말 그 새끼 누구보다도 불쌍한 새끼니까. . .
재석은 타는 가슴에 얼굴을 찡그렸다.
현준은 아무 말도 없이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재석은 눈을 감아버렸다.
그 때였다.
“자, 괜찮아. 현준아.”
진수가 그런 현준을 안아주며 말한다.
그리고는 현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며 조용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잘했어. 괜찮으니까. . .
자, 울고 싶을 땐 울어. 자. . .“
너무나 안심되는 목소리에
10여년이나 자신의 옆에 언제나 있어주었던 녀석의 목소리에
현준은 서서히 울음을 터트렸다.
“으흑. . .
씨발. . . 좆같은 새끼.
개새끼. 미친 새끼. . . .
씨발. . . 무서웠다. . . 으흑. . .
진수야. . . 내 진짜 무서웠다. . . 윽윽. . .“
그 말에 진수는 아무 말도 없이 현준을 꼬옥 끌어안아주었다.
현준은 펑펑 울면서 말한다.
“근데 나 그 새끼 미워 할 수가 없다.
그 새끼 버릴 수가 없다. . .
누구보다도 불쌍한 새끼인거 아니까. . .
으흑. . .
차라리 미워할 수 있는 놈이면 좋을 긴데. . .
다른 사람들에게 늘 소외당하는 그 새끼 너무 불쌍해서. . .
씨발. . . 이 순간에도 그 새끼 왠지 너무 불쌍해서. . . 윽.
흑. . . 흑. . .“
진수는 그런 그의 등을 토닥토닥거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알아. 알고 있어. . . 알고 있어. . .”
현준은 그런 진수의 목소리에 안정감을 느끼며 진수를 꼬옥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재석은 그런 현준의 모습에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왠지 화가 나고, 답답한 기분.
어쩐지 자신이 슬퍼지고, 한심해지는 기분.
왜 현준은 자신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지.
왜 진수라는 저 자식에게만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 .
저 둘을 갈라놓고 싶어지는 충동에 재석은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 현준이 의지할 녀석은 저 녀석 밖에 없으니까. . .
재석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게 한참만에야 현준은 눈물을 그쳤고, 진수는 그런 현준은 부축하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재석과 인석도 그런 현준을 따라 급히 빠져나간다.
그리고. . .
퍼억--------------
“씨발. . .”
승하가 벽에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그리고는 무언가 굉장히 안타까운 듯한 표정으로 현준이 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다시 벽을 쳐댔다.
무언가 답답함을 해소시키려는 듯.
그런 그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그것보다 더 극심한 상처가 나 있는 듯이 아렸다.
승현은 다시 한 번 더 벽을 쳤다.
이렇게 너무나 경황이 없이 하루가 거의 지고야 말았고, 그들은 그 날 아무 말도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아도 아무 말도 없이 이불을 덮어 쓰고 잠이 들었다.
왠지 다들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수학여행의 두 번째 날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