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 . 우욱.”
지금은 버스 안.
수학여행 때문에 부산으로 가는 관광버스에 그들은 몸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위의 소리는. . .
“. . . 괜찮나, 승현?”
현준이 승현의 등을 토닥거리며 물었다.
한참을 토한 뒤에야 승현은 파리해진 얼굴로 가볍게 끄덕거렸다.
사실 승현은 다른 반이었지만 버스 값을 아끼기 위한 학교의 농간으로
승현을 포함한 그의 반 아이 몇은 현준이 타고 있는 버스에 타게 되었다.
그 덕에 승현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현준은 승현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는 승현을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 . . 좀 자둬. 멀미에는 차라리 그게 좋을 테니까. . .“
그 말에 승현은 현준의 말을 꼭 이행하려는 양 금세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입가에는 왠지 평화로운 미소를 띤 체.
모든 게 다 두려웠다.
나와 익숙지 않은 모든 것이 다 두려웠다.
나의 형제 승호와 승하, 그리고 부모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
왜?
내가 너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내가 너희들을 익숙해 하지 못해서?
내가 너희들과 다른 행동만 해서?
내가. . .
자폐증이라서?
내가 너희들과 뭐가 다른 걸까?
나도 말할 수 있고, 나도 생각할 수 있어.
왜 나의 행동은 인정해 주지 않는 거지?
왜 나의 생각에는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거지?
왜 날 이해해주려 하지 않는 거지?
승호와 승하도 마찬가지야.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다 마찬가지야.
아무도 날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이해하는 척 가장된 미소만 띌 뿐.
날 이해하려 하지는 않아.
난 보호해야 할 어린 새가 아니야.
날 보호하지 마.
나에게도 힘은 있으니까.
나도 날 이해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던가?
언제나 늘 바래오던 작은 소망.
날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희망이라는 것을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 .
만났다.
날 이해해 줄 사람.
만났다.
만나고야 말았다.
그래서 절대 놓지 않아.
죽어도 놓지 않아.
다신 만나지 못할 거야.
날 이해해 줄 사람은 현준 외엔 아무도 만나진 못할 거야.
절대로 놓지 않아.
설령 상대가 승호나 승하라 할지라도. . .
현준.
나의 현준. . . .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이건 내 꺼니까.
현준은 감격에 겨웠다.
얼마나 바라고 바랬던가?
떠나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진수가 정말 보고 싶었다.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었다.
현준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승현이 왠지 얄미워서
(자신은 이렇게 설레고 있는데 이렇게 편하게 잠을 잔 것에 대해서.)
괴롭히려고 매직을 꺼내들었다.
역시 수학여행 하믄 매직으로 낙서하는 게 제일이다!
그러나 낙서하려던 그의 손은 중간에 멈칫했다.
승현이 너무나 편안히 미소까지 띄며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차가운 얼굴밖에 못 봐서 그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 녀석 상당히 괜찮게 생겼다.
약간 이지적인 얼굴이랄까?
하얀 피부에 약간 얇은 입술이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고 있다.
살포시 감은 눈에는 까만 속눈썹이 가지런히 내려와 있었다.
미끈하고 수려하게 뻗은 코하며 이목구비가 약간 서양인을 연상시키는.
왠지 혼혈아 같은 이지적인 얼굴.
그러나 그의 미소만큼은 왠지 너무나 졸리운 듯한 느낌이라 현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는 결국 부산에 올 때까지 계속 잠이 들어 있었다.
승현은 눈을 깜빡거리며 잠에서 깼다.
왠지 자신의 머리가 묵직했다.
그래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을 손으로 들어 보니 현준의 머리였다.
승현은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현준은 잠결인지 웅얼웅얼 거렸다.
왠지 그 웅얼거리는 입술에 자꾸 눈이 간다.
그의 입술은 언제나 부드러웠다.
지금도 부드러울까?
승현은 살짝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부드러워. . .
느끼고 싶어.
느끼고 싶어.
가지고 싶어. . .
승현은 조용히 허리를 굽혀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워, 부드러워. . .
현준의 혀는 어떤 느낌일까?
현준의 입안은 어떤 느낌일까?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하겠지?
따뜻한 게 좋아.
부드러운 게 좋아.
현준이 너무 좋아.
하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현준은 일어나고 말 거다.
아쉬운 마음으로 입술을 떼며 그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이것도 부드러워. . .
현준은 정말 부드러워. . .
이상한 일이었다.
멀미가 너무 심했던 승현이었는데 계속 아래만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멀미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현준을 보고 있어서 그런가?
승현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현준의 머리카락을 현준의 얼굴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그 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 . . 그만 손떼시지. . .”
재석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다 보고 있었다.
현준이 그에게 기대 잠이 드는 것도.
승현이 현준에게 지분거리는 것도.
왠지 알 수 없는 짜증과 답답함.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분노.
재석은 승현에게 살기를 뿜으며 노려보았다.
그에 지지 않고 승현도 노려보아 주었다.
왠지 버스 안이 기묘한 공기로 둘러 싸였다.
그 때였다.
“. . . 뭐야.”
현준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자신이 승현의 다리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창문 밖을 보게 되었는데. . .
“부, 부산이다.
저거 해운대잖아!
벌써 다 왔단 말야!“
그 말에 다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벌써 다 왔음에 몹시 기뻐했다.
왜냐하면 역시 차안에서 몇 시간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서서히 수련장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일생일대의 부탁이다.
사나이로써 한 번만 들어줘.“
그 말에 현준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 . 어쩔 수 없지. 좋아.”
인석이 뛸 듯이 기뻐하며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었던 당연한 사실.
말이 수학여행이었지 이건 거의 놀러 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간단한 부산의 명승지 몇 군데 들린 뒤 나머지 전부를 자유 시간으로 준 것이었다.
이런 파격적이 대우에 제일 좋아한 것은 현준과 인석이었다.
물론 현준은 친구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인석은 혜은을 만나러 갈 생각에.
인석은 그녀가 있다는 유성고등학교를 혼자 찾아갈까 하다가
현준이 부산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현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현준은 처음에는 자꾸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수락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현준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너의 그 사랑이라던 혜은은 어느 학교인데?”
그 말에 인석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응. 유성고등학교.”
“뭐! ! !”
현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지금 유성고등학교라 했재.
그거 우리 학교 아이가.
그럼 혹시 혜은이라는 것은. . .
“. . . 혜은이 혹시 우리 나이?”
그 말에 인석은 활짝 웃으며 답한다.
“응. 무지 이쁘게 생겼어. 2학년 2반이라던데?”
맞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혜은이 맞았다.
그 말괄량이에 털털한 혜은을 지칭하는 게 맞았다.
현준은 순간 뒤로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나고 나서 얼마나 실망을 할까?
갑자기 인석이 불쌍해지는 현준이었다.
“. . . 여기다.”
지금 시각은 정확히 7시 45분.
5분만 더 있으면 야자 1교시가 끝이 날 시간이었다.
인석은 현준을 따라 조용히 학교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뒤로 승호, 승현, 재석이 조용히 몰래 미행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둔팅이 현준은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떠나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싶고, 그리웠었다.
서울. . .
얼마나 불편했던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익숙하지도 않고, 친한 사람도 몇 없고. . .
그러나 여기는 달랐다.
모두 익숙한 사람들.
모두 이미 다 알고 지냈던, 추억이 가득한 공간들.
현준은 조용히 자신의 반인 2학년 2반 앞에 섰다.
. . . 여전히 신나게 떠들고 놀고 있었다.
이 녀석들 고2 맞아?
현준은 숨을 후욱 들이 쉬었다.
인석은 뭐하냐는 듯한 눈으로 현준을 쳐다보았다.
현준은 문을 벌컥 열며 외쳤다.
“야, 임마들아!
니네들 고2 맞나!
지금 뭐하는 짓거리고!
내가 자습시간에 조용히 공부하라 했나, 안 했나! 으이!
지금 내 읍다고 이러면 직무 태만이디.
좀 공부 좀 해라.
공부해서 남 주나!
인간들 그리 살면 안 되는 기라.
와!
와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내가 틀린 말했나!“
인석과 재석과 승호와 승현은 순간 당황을 했다.
지적인 이미지의 현준이.
과묵하던 이미지의 현준이.
그 조용하던 현준이. . .
이미지가 와장장창이었다.
다들 현준의 원래 모습에 경악을 한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고. . .
2학년 2반 녀석들은 처음엔 현준을 보고 눈만 꿈뻑꿈뻑거리다가는 이내 현준임을 알아채고는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김현준! 진짜 니 맞나!”
“김현준이 돌아왔다!
야! 경식아, 준태야, 철호야, 윤석아, 솔아, 재영아 다 와 바라.
현준이가 도로 왔다! ! !"
다들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와 현준에게 엉겨 붙으며 현준의 컴백을 기뻐했다.
그 때였다.
“왔나.”
진수였다.
현준은 진수를 보는 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왠진 모른다.
다른 녀석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진수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현준을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곧 그런 그를 자신에게 끌어당겨서 토닥여 줬다.
현준은 흐느끼다간 아예 진수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진수는 현준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됐다. 됐다. 마.
나도 보고 싶었다. 어디 얼굴 좀 보자.
완전 서울 사람 다 됐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 말에 현준이 눈물을 닦으며 씩씩하게 말한다.
“당근이지.
내가 누꼬!
대한민국의 씩씩한 건아. 김현준이 아이가!
난 사나이니까 당연한거다!“
. . .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라 할 수 있다.
역시 그 엄마에 그 아들이랄까?
생각 안 나시는 분들은 2편을 참고하시길. . .
어쨌든 이 의외의 모습에 굳어 있던 일행들 중 승현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았다.
“저 진수라는 아이 현준과 어떤 관계지?”
그 말에 그는 아무 사심 없이 밝게 대답한다.
“와. 관심 있나.
진수 저 새끼 현준이 남편 아이가.
현준이 전학 가기 전까지 저 둘이 내내 붙어 다녔디.
미친 새끼들. . . 큭큭.“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현준에게로 달려갔다.
그 말을 들은 승현은 화가 치솟았다.
현준은 내 꺼야.
아무도 가질 수 없어.
승현은 현준이 있는 곳을 씩씩거리며 걸어가서는 진수의 품에서 현준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현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 의외의 모습에 학생들은 모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오직 진수만이 덤덤하게 그를 볼뿐이었다.
승현은 진수를 노려보며 말한다.
“현준은 내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