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30)

(12) 

현준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재석의 눈에 들어왔다. 

사내새끼가 손은 또 왜 저리 고운지. 

재석은 속으로 투덜투덜 거렸다. 

왠지 입안이 탔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거 같았다. 

현준의 턱 선을 타고 흐르는 눈물도 그렇고, 

저 눈물을 닦는 하얀 손도 그렇고 다 묘한 느낌을 주게 했다. 

현준은 그렇게 눈물을 닦아 내리더니 그를 쳐다본다. 

왠지 코끝이 약간 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추었다. 

왜 자꾸 이 녀석에게 눈이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자꾸 이 녀석만 보면 입안이 바짝 마르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이 녀석만 보면 가슴이 쓰리는 지 모르겠다. 

왜. . . 

왜. . .? 

갈증이 났다. 

왠지 갈증이 나서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어쩐지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속까지 바싹 타버리는 거 같았다. 

그 때 현준이 뭐라고 입을 달싹거린다. 

이제 보니 입술이 참 작다. 

그러다가 또 자신이 현준의 입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흠칫 놀란다. 

나. . . 정말 맛이 간건가? 

역시 병원에 한 번 상담을 받으러. . . . 

미친 놈. 지랄을 다 떠네. 

위기였다. 

정말. 

그러나 다행히도 재석은 한 번 묻고는 다신 묻지 않았다. 

엄청 수상쩍은 표정으로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현준은 설마 들켰나 싶어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서 얼른 눈물을 닦았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이젠 피식 웃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정말 들켰나 싶어 속으로 엄청 쫄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을 굳더니 자기 혼자서 얼굴을 찡그렸다가 폈다가 오만 인상을 다 쓰더니. . . 

음료수를 벌컥벌컥 원샷해버렸다. 

그 모습에 놀란 현준이 무어라 말하니까 또 계속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이러니 미쳤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 . 

쯧쯧. . . 

젊은 놈이 모하다 그리됐는지. . . 

역시 언덕 위에 하얀 집에 데꼬 가서 진찰 함 받아봐야 겠제. 

언덕 위에 하얀 집 하면 역시 가나병원이 최고다! 

그렇게 혼자 납득을 하고서는 꼭 수학여행 때 데리고 가리라 결심하는 그였다. 

이럴 때 생각나는 속담한가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水深可知 人心不知) 

어쨌든 그래서 이 때까지 생각했던 핑계거리를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저 쪽에서 우당탕거리더니 아주 낯익은 물건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와 재석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현준은 그것이 무엇인가 싶어 인상을 찡그리며 주시했다. 

그러다 흠칫 놀라며 말한다. 

“. . . 승하?” 

현준은 얼른 일어나 아직도 씨근덕거리는 승하를 말리고는 승하가 튀어나온 곳을 쳐다보았다 

“. . . . . ” 

할 말 없음. 

인석을 선두로 승호에다가 승현까지 있었다. 

결국 다 따라왔다는 이야기. 

이 정도면 안 봐도 비디오다. 

보다마나 미. 행. 이겠지. . . 

현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승하는 아직까지도 씨근덕거리며 재석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너 이자식. . . 

야 이 씨발 새끼야. 너 우리 현준이 형에게 무슨 짓 한 거야! 

응! 말 못해! 

무슨 짓 했기에 현준 형이 우는 거냐고! ! !“ 

. . . . 역시 다 봤군. . . 

현준은 한숨을 내쉬며 우선 앞에서 혼자 열내고 있는 승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까앙-------- 

“끄윽.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불의의 기습을. . . 현준형? ” 

“. . .미안하군. 새끼라서. . .” 

현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준의 갑작스러운 개입에 승하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곧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형!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응? 

저 새끼가 협박을 했어? 

아님 저 새끼가 형의 부모님을 납치했대? 

아님 저 새끼가 형에게 손을 올린 거야? 

내 이 새끼를. . . .“ 

이런 걸 가지고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고 한다지? 

스스로 묻더니 스스로 답하는 군. 

역시 스스로 학습법엔 재능 교육이. . . 

. . . 이게 아니잖아! ! ! 

현준은 어이없어 하며 가볍게 노려보았다. 

그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당장 재석에게 달려가려던 승하는 잠시 멈칫했다. 

현준은 재석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 . . 눈에 먼지가 들어갔어.” 

다들 그래서 어째라고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현준은 얼굴을 굳히며 조용히 말한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눈물이 나왔던 거야. 

나 그런 거 의외로 못 참으니까. . .“ 

그 말에 다들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현준을 쳐다보았다. 

현준은 무안했는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결국은 미행도 쫑이 나고, 그렇게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 

내일의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 . 

그러나 이 때는 모르고 있었다. 

수학여행으로 인해 벗어버렸던 짐 덩어리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음을. . . 

그리고 그들에게 라이벌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됐음을. . . 

아무도 알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