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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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혹시라도 다른 놈들이 보면 끝장이다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역시 마음이 들떴던 탓일까? 

그렇게 열심히 두리번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저기 벽 뒤에 숨어 있는 2놈과 

전봇대 뒤에 숨어있는 1놈과 쓰레기통 뒤에 쪼그리고 숨어 있는 1놈은 발견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절대 없을 일이었다. 

이걸로 보아서도 재석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음은 틀림없었다. 

어쨌든 숨어있던 4인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석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룰루랄라 거리며 약속 장소로 갔다. 

자, 그럼 대체 재석은 현준과 무슨 대화를 했기에 이러는 것이란 말인가. . .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재석은 현준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나왔다. 

현준은 복도에서 조용히 말했다. 

“. . .전에 나 때문에 너 인석에게 만원 뜯긴 일 있었지?” 

정말 그 사건을 어찌 기억하지 못하리요! 

피 같은 만원이 그 웬수 같은 인석의 입으로 날름 들어가는 순간 

알 수 없는 자괴감에 온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 만원은 결국 꿈에까지 나타났다. 

그 정도로 목메었었던 만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은 왜. . .? 

재석이 궁금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현준은 쳐다보았다. 

현준은 그런 재석의 눈초리를 받자마자 조용히 말한다. 

“. . . 그 때 내가 한 턱 쏜 댔잖아. 오늘 시간 있나?“ 

재석은 그 말에 얼른 대답한다. 

“물론.” 

그런 그의 말에 현준은 조용히 말한다. 

“. . .우리 둘이서만 가는 거다. 

. . . 아무도 데리고 오면 안 돼. 

특. 히. . .“ 

그러고는 교실을 향하여 눈에 힘을 팍 준다. 

재석은 그런 현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 . . 알겠다. 무슨 말인지. . . 

인석은 어떻게 해서라도 꼭 떼어놓고 오마. . .“ 

그 말에서야 현준은 힘 줬던 눈에 힘을 약간 푼다. 

그리고는 다시 교실로 들어 가버린다. 

이게 사건의 전부이다. 

그러나 어찌됐던 저찌됐던 간에. . . 

저 날파리들을 전부 다 떼어놓고 현준과 단 둘이서 만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 . .매력적인 일? 

그러고 보니 왜 자신이 고작해야 사내새끼랑 만나는 건데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재석은 순간 떠오른 생각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고민했다. 

재석이 멈추는 순간 미행하던 4인은 설마 들켰냐는 생각에 흠칫했다. 

그래서 재석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간을 졸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재석을 바라보았다. 

재석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현준의 모습에 이내 그 생각을 날려버린다. 

‘아무렴 어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건데. 

나에겐 지금이 미래보다 더 중요하니까. 

우습군. 

내가 언제부터 고민을 하고 살았다고. . .‘ 

그리고는 현준에게로 다시 걸어가는 그였다. 

현준은 저 멀리서 재석이 걸어오자 반갑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쓱, 쓱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다행이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현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석에게 무뚝뚝하게 말한다. 

“. . . 그럼 뭐, 먹으러 갈까.” 

그 말에 재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한다. 

“. . . 닭갈비 볶은 밥.” 

. . .엥? 

닭갈비 볶은 밥? 

지금 점마가 닭갈비 볶은 밥이라고 했나. 

현준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우짠노. . . 

난 매운 거 드럽게 못 묵는데. . . 

우짜지. . . 

우짜지. . . 

하지만. . . 

“. . . 가자.” 

못 묵는다고 하면 아마 존나 비웃겠지? 

결국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 . 

제 무덤을 아주 포크레인으로 푹푹 파는 현준이였다. 

“. . . 여기가 이 근처에서 제일 맵게 하는 닭갈비 볶은 밥집이다.” 

“. . . 들어가도록 하지.” 

현준은 역시 그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재석이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준은 어떠한 표정도 얼굴에 떠올리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속은. . . 

‘미칫다. 미칫다. 지금 뭐라고 했노, 으이! 

뭐라꼬? 

제일 매운 볶은 밥집? 

으으으. . . 

기냥 그 말 취소하몬 안 될까. . .‘ 

당장의 사나이 체면마저 흔들리는 현준이었다. . . . 

곧 싹싹한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오더니 2층의 어느 자리로 둘을 인도한다. 

그리고. . . . . 

“. . . 뭐야? 겨우 그렇게 좋아하며 간 곳이 닭갈비 볶은 밥집? 

재석이 먹을 게 궁핍했었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 . .“ 

“악! 씨발 저 새끼. 

감히 우리 현준형과 단 둘. 이. 서. 만. 이런 곳에 와? 

나도 아직 못 왔는데. . . 으흐흑. . .“ 

“흑흑. . . 현준이 날 버렸어.” 

“. . . . . . .” 

이 미행하는 4인조 역시 따라서 들어왔다. 

그것도 현준과 재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불과 2~3m 정도 떨어진 테이블에. . . 

그러나 이미 마음을 활짝 놓은 현준과 인석은 이들의 행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현준은 말없이 주걱을 들어 재석에게 먼저 덜어준다. 

그 모습에 왠지 재석은 가슴이 찡해진다. 

그리고는 현준은 자신의 그릇에는 적게 던다. 

그 모습에 재석이 말한다. 

“왜 그리 적게 먹냐.” 

그 말에 현준이 무뚝뚝하게 말한다. 

“. . . 너 많이 먹으라고. 

그 때 인석에게 많이 뜯겼으니까. . .“ 

그 말에 왠지 재석은 다시 찡해졌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섣불리 나타낼 수는 없는 일. 

그는 현준의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바꾸고는 말한다. 

“이거 네가 먹어. 

난 더 덜어서 먹으면 되니까. 

여기 상당히 맛있는 곳이니까. . .“ 

그리고는 어설프게나마 웃어주었다. 

그 말에 현준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재석은 현준이 호호 불어서 먹는 그 모습에 왠지 흐뭇한 느낌이 들어 싱글거리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점마는 눈치가 읍어도 와 저리도 읍노! 

현준은 정말 미치고, 돌고, 환장한 지경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휘저어서 만든 보기에도 엄청 무지 매워 보이는 저 볶은 밥. 

그래서 일부러 선수 쳤던 것이었다. 

일부러 얼마 안 먹으려고 재석의 그릇에 밥을 꾹꾹 가득 담아주었는데. . . 

일부러 자신의 그릇에는 적게 떴는데. . . 

그런데 이 놈의 자식이 그릇을 바꾸어 버리다니. . . . . 

현준은 정말 남들만 없다면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나름대로 호감으로 성의를 보인데다가 씨익 웃어주기까지 했는데. 

사나이 체면상,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부산 싸나이, 김현준.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오오냐. 다 묵는다. 내 치사해서라도 다 묵는다. 

그래. . . 으흑흑흑. . . 다 먹으면 될 거 아이가! ! ! 

망할 재석이 놈아. . .으흑. . .‘ 

현준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 . 

한 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4인조는. . . 

“엥? 저 놈이 갑자기 왜 저렇게 살인적인 표정을 하고 있지? 

저 새끼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그러게? 재석이 왜 현준을 눈앞에 두고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혹시 싸웠나?“ 

“. . . . .” 

“. . . 저, 저기. . . 재석의 10년 지기 친우인 나 인석의 생각으로 저건 웃고 있는 거 같은데. . .” 

“. . . . . .” 

“. . . . . .” 

“. . . . . .” 

여전히 어떤 대화가 오가는 지 알길 없는 그들로써는 지금 재석이 왜 웃었는지도, 

현준의 주위에 왜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지도 알 길이 없었다. 

정말이지 현준에게 지금 이 시간은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인간적으로 정말 너무 매웠다. 

그런데 이걸 재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으니. . . 

그래, 사나이 체면에 이것도 못 묵으면 이게 무슨 쪽이고.(창피이냐.) 

그러고는 맹렬히 퍼먹었다. 

그러나 역시 매운 것은 매운 것. 

아무리 부정을 하려 해도, 아무리 사나이 체면이라도 매운 것은 매운 것이었다. 

결국은 그 매움을 참지 못하고 현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모습에 재석이 먹다가 놀라서 왜 우냐고 묻는다. 

쩝. . . 그렇다고 그 놈의 사나이 체면에. . . 

“이게 너무 매워서 운다.” 

. . .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야노. . .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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