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벽에 딱 달라붙어서는 그들이 하는 대화를 열심히 들었다.
뭐, 들어보면 딱히 대화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 .
“이 놈의 자식!
오늘 대체 왜 이렇게 늦은 거냐!
그리고 늦었으면서 그 어슬렁거리는 동작은 뭔가!“
“. . . . .”
“이 자식이. .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무시해!“
“. . . . . .”
“이 놈의 자식 좀 보게나!”
퍽--------
“. . . . .”
결국은 일방적으로 화내다가 일방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지각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저 녀석이 지각을 오늘 했던가?
가만 생각해보니까. . . . .
오늘 아침은 현준 혼자서 등교를 했었다.
평소라면 승호와 승하가 같이 동행을 했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은 다들 먼저 가버렸다.
그래서 느긋하게 혼자 등교를 하고 있었는데, 혼자 등교하고 있던 승현을 보았다.
어차피 승현과 그리 친하지도 않고, 게다가 좀 뻘쭘하기도 해서 그냥 말도 걸지 않고 모른 척 앞으로 걸어갔더랬다.
그 때 눈앞에 짐을 잔뜩 든 할머니 한 분이 위태롭게 횡당보도 앞에 서 계셨다.
의협심에 가득 찬 현준은 등교 중이라는 것도 잊고 그 분을 도와 드리려 그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때였다.
승현이 어느 새 그 쪽으로 가서는 할머니의 짐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바보 같이 횡단보도까지 건너서는 할머니 짐을 들어 드리고 있었다.
그 쪽은 학교하고 정반대 방향인데. . . .
어쨌든 그 일로 현준은 승현을 다시 봤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회상을 잠시 끝낸 현준이 다시 그 쪽을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학주의 얼굴을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승현 역시 너무 맞아서 머리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 모습에 현준은 자신도 모르게 뛰어 나가며 말했다.
“저기. . . 선생님!”
현준의 목소리에 학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공부 잘하는 모범생 전학생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현준은 할 수 있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실은. . . 오늘 승현이 많이 아팠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나오는 것도 못 보고 나왔었는데. . .
이제야 등교했나 보군요.
애가 아팠다고 말하기 좀 그래서 말 못한 거 같은데. . .
그만 용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 말 욜라 잘 나오네.
현준은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공손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학주는 그런 그의 말에 설마 거짓말이겠냐는 듯한 생각으로 그만 가라고 보내주었다.
좀 미안했던지 몸조심 잘 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현준은 지금 복도 뒤에서 숨어서 망보는 녀석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체 승현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승현은 아무 말 없이 끌려 나왔다.
뒤뜰에 도착해서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현준은 그제서야 승현의 손목을 놓아주며 말한다.
“. . . 오늘. . . 할머니 짐 들어 드린다고 늦었지?”
그런 그의 말에 그가 깜짝 놀라서 현준을 쳐다본다.
현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의 표정에 승현은 또 잔소리를 듣겠구나 라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였다.
쓰윽.
“. . . 잘 했어.”
현준이 말한다.
너무나 의외의 말에 승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현준은 그를 향해 미미하게 미소를 띄며 말한다.
“. . . 나라도 그랬을 거야. . . 잘했어.”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승현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리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따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
종이 울렸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림과 동시에 뒤뜰로 승호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현준을 보더니 다짜고짜 말한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얘 건들이지 마!”
그리고는 승현을 토닥여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너무나 황당스러워서 현준은 멍하게 그런 승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승호는 화를 내며 말한다.
“이 녀석은. . . 내 동생은. . .
자폐증이 있다고! ! !"
. . . . .에에?
현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을 잇는다.
“심한 자폐는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손이라도 닿으면 아주 많이 두려워해.
몰랐을 테니까 가르쳐주는 거야!
앞으로 조심해!“
그리고는 승현의 손을 잡고 뒤로 돌려고 한다.
그러나 승현은 그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순간, 놀라서 그는 승현을 쳐다보았다.
승현은 고개를 약간 돌려 현준을 쳐다보았다.
현준은 아직도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약간 멍해져 있었다.
승현은 천천히 그런 그에게 다가간다.
현준은 그가 왜 다가오는지 의문을 품는다.
승현과 현준이 마주볼 정도로 가까워졌다.
승현은 그런 상태에서 현준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현준은 지금 뭐 하려는 건지 감도 못 잡은 상태이다.
승호만이 어렴풋이 감을 잡고는 경악한다.
현준은 승현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과 너무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찰나 승현의 입술이 현준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그리고는 이내 말한다.
“. . . 나. . .이거 좋아. . .”
현준은 수습이 되지 않는다.
승현은 아직도 멍해있는 현준의 옷소매를 어린 아이 같이 붙잡는다.
승호는 멍해 있는 현준에게로 다가가서 말한다.
“내 동생이 니가 맘에 드는 가보다.
원래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놈인데. . .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현준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