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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9)화 (279/317)

에렌스트 경을 부른 이온이 소식 들어온 게 있는지 추궁했다. 그는 말을 들으면 당장 뛰쳐나갈 기세인 이온을 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공이 구류당했을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황제의 앞에서 허락되지 않은 자가 공격 마법을 썼기 때문입니다.〉

〈너도 아버지랑 똑같은 말을 하네?〉

〈…….〉

〈내가 스스로 못 알아볼 거 같아? 그리고 카밀루스가 그런 짓을 했다고? 정당한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 생각 없이 그랬을 리 없어.〉

이온의 단정하는 말에 에렌스트 경은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본인은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시에 이온은 미간을 확 일그러뜨렸다.

〈정말 말 안 해 줄 생각이구나.〉

그렇지만 이온은 카밀루스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는 결코 누구처럼 이유 없이 날뛰는 망나니가 아니었다.

바르고,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못된 짓 따위 하지도 못하는 녀석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는 늘 그랬다. 그거 하나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하여 에렌스트 경에게도 결국 축객령을 내리고, 집사를 불러다 부축을 받은 이온이 그대로 페드로를 끌고 나온 거였다.

대공을 구류하라는 명은 버니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카밀루스라면 당장 못 죽여서 안달인 버니언이 바로 처형을 하지 않은 대목에서 이온은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눈치챘다.

이온은 굳이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버니언을 노골적으로 노려보다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평범한 종이 한 장이었다.

그렇지만 안에 있는 내용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대공을 뵙게 해 주시면 폐하께 이걸 드리죠.”

“그게 뭔데?”

“확인하세요.”

버니언은 뭐 별거 있겠냐는 의미로 종이를 펼쳤다가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가 금세 이를 악무는 모습을 보고 이온은 몸을 뒤로 젖혔다.

“……너, 정말이구나.”

이온은 무표정하게 그저 고개만 옆으로 기울일 뿐이었다.

여전히 옆에서 아이를 어르느라 정신이 없던 페드로가 순간 싸늘해진 분위기에 뭔가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버니언과 이온은 그저 눈빛만 교환할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일로 황궁이 불타 버렸을 테니 국고가 더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까?”

“…….”

“뭐, 본인이 태우셔서 아깝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버니언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로 펼친 종이를 던졌다.

이온이 건넨 건 대운하 운용권이었다.

솔친 후작 사건 당시, 이온의 길드에서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세우겠다면서 황실파를 갈라놓았다는 그.

이온의 대담한 도발에 버니언이 눈을 부릅떴다.

“나와 싸우자는 건가, 소공작?”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대공을 뵙고 싶을 뿐입니다. 그걸 위해 대가를 치르겠다는 게 뭐가 나쁘죠?”

그 대가의 내용이 무척 나쁘다.

하지만 이온의 말 자체는 반박할 수 없었다. 버니언은 그만 실소를 내뱉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온이 한마디 더했다.

“설마 저희 크레이거 공작가가 정말로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실 테고.”

“…….”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 그깟 면회 한 번에 이 정도 대가면 아주 준수했다.

이온의 말은 이쪽에서 알아서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그러지 않으면 황실과 크레이거 가문이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거친 언어로 말하지 않았을 뿐,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다.

한때 그깟 크레이거 공작 가문, 그냥 만년 2인자들 아니냐는 인식이 있었던 버니언도 이젠 황제가 되어서 정신 차린 부분이 하나 존재했다.

황실에 있어서 크레이거 가문의 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크레이거 공작이 한 걸음 물러나 있는 현재, 그 가문의 실세는 누가 뭐라 해도 소공작인 이온 크레이거다.

사실 버니언은 이 면회를 허락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그래, 뭐…… 면회를 허락하마.”

아마 카밀루스 클로델의 모습을 보면 이온이 질려 버릴 테니까.

이온은 그것도 모르고 답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 *

황성의 중심인 황궁의 터가 텅 비어 버린 탓에, 전례 없이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역시 버니언이 문제였던지 밖으로 나오니 아이는 다시 페드로의 품에서 방긋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레나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지하 감옥에 도착하자 다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했다.

카밀루스가 구류되어 있다는 지하 감옥의 통로로 들어서자,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데다, 춥고, 바닥은 미끌미끌했으며,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이온은 제 앞에 떨어지는 물방울에도 움찔했다.

‘이런 곳에 카밀루스를 가둬 놨다고……?’

황성 탑이 가장 끔찍한 곳이었지만, 분위기상 이곳도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평생 탑에 갇혀 살았던 카밀루스가 혹시 이곳에서 많이 힘들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늘 그때의 일을 잊은 척 행동하나, 종종 드러나는 그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게다가 기억이 되살아난 이온도 이곳의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었다.

황제의 시종이 와 설명해 준 덕분에 일단 감옥 안으로 들어선 이온은 저를 안내하는 기사들을 따라가며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러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페드로가 이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소공작…….”

“괘, 괜찮아요.”

말까지 더듬어 버렸다.

그에 페드로가 아이를 한쪽으로 추슬러 안고, 제 손을 잡아 주기에 이온은 은근히 고마움을 느꼈다.

카밀루스는 꽤 안쪽에 있는지, 지나가는 길이 꽤 길었다.

하지만 이온은 곳곳에 있는 방을 보면서 움찔했다.

감옥은 전부 독방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황성 안의 죄수들은 대부분 반역죄나 내란죄 등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로서, 처형일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방은 텅텅 비어 있었으나 천장에서부터 사슬이 내려와 있다거나 고문 도구가 즐비한 이곳의 분위기를 두 눈으로 확인하니 긴장이 올라왔다.

죽음의 냄새가 너무 팽배했던 것이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카밀루스를 보려면, 그리고 구해 내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온은 헛구역질마저 나올 듯한 느낌을 억누르며 마침내 기사의 걸음이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입니다, 소공작님.”

“…….”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카밀루스가 갇혀 있다는 곳은 감옥 안에서도 조금 분리되어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을 확인한 이온이 깊은숨을 들이켜고는 이야기했다.

“……열어 주세요.”

끼이익.

낡은 문 소리가 들릴 때 눈을 질끈 감았던 이온은, 이번엔 어깨를 붙잡아 오는 페드로의 손을 느끼며 고개 숙인 채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걸음 걷자 겁이 나 눈을 뜨지 못하는 그를 페드로가 불러 왔다.

“소공작…….”

그렇지만 페드로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잔뜩 묻어 있는 것에, 이온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눈을 떴다.

그 각오란 족쇄가 채워지고, 사슬에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유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 상상보다 더 끔찍했다.

이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카밀루스……?”

이온은 제 예상과 너무 다른 풍경에 완전히 굳어 버렸다.

혹시 제가 환각을 보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마저 들었다.

페드로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그런 그들을 번갈아 확인하고는 철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으나 이온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한 채로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드로.”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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