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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4)화 (274/317)

“……마나가 아예 돌지 않으시네요. 그 때문에 운신이 어려우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를,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예상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리엘이 제 옷의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더니, 이내 어떤 병 하나를 꺼냈다.

육각형으로 깎여 있는 크리스털 병이었다. 투명한 비치는 안쪽에는 분홍색 약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약을 틈틈이 드시면 완전한 회복은 아니더라도 생활하는 데 도움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왜인지 모를 불길한 느낌 때문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약물을 눈에 담으며 이온이 중얼거렸다.

“……이 저주는, 불치인 건가 보지.”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화하는 마리엘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비친다.

“아마도요.”

확실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건 카밀루스를 구한 데 대한 대가였다. 이온은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남들은 이런 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때만 해도 후회는 없었다.

마리엘이 건넨 이 약물을 마시면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하지 않는가.

비록 건강을 잃고, 아버지의 신뢰마저 잃었지만 탑에 갇힌 비참한 인생을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이온은 마리엘이 건넨 물약이 독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가 건넨 분홍색 약물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정말로 잠시 제 안의 저주가 가라앉고 몸이 호전됨을 느꼈다.

이후 이온의 방에는 늘 그 약병 수십 개가 상시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몸이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회복된 어느 날, 이온은 버니언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카밀루스 클로델, 혹시 그 사생아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아?

황태자궁으로 오면 알게 될 거라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다.

* * *

쾅…….

이온의 손에 의해 문이 살며시 진동했다. 그렇지만 더는 칠 힘이 없어 그는 헉, 헉, 문에 기대어 숨만 몰아쉬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던 발소리가 마침내 1증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이온은 문에서 떨어져 재빨리 탑의 구석으로 도망쳤다. 물론 한 층의 모습 따위야 계단 위에서 보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터라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이 끔찍한 시간을 늦추고 싶었던 이온은 벽에 달라붙어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계단에 두 사람분의 그림자가 졌을 때였다. 이온은 재니스가 아닌 다른 한 사람, 버니언 클로델의 파란 눈을 보며 제가 이 탑에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똑똑히 깨달았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소리가 1층을 다 울릴 만큼 큰 소리를 내며 퍼져 나갔다.

이대로 과호흡으로 기절해 버리는 것 아닐까 싶었으나, 이온은 제가 지금 기절하는 게 나은지 아닌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제힘으론 절대 이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여 이온의 초록빛 눈이 공포감으로 가득 차 버렸을 때였다.

쾅, 쾅.

바깥에서 탑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이온의 시선도, 막 1층에 도착한 재니스와 버니언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문 열어, 재니스. 이곳으로 온 걸 알고 있으니까.”

“……!”

다시 한번 쿵, 하고 문이 내리쳐졌다. 이온은 그게 마치 제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재니스! 너와 난 할 말이 많지 않던가? 이 문 당장 열라고!”

짙은 분노가 밴 음성.

아주 오래전에 들어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온은 문밖의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눈이 동그래진 이온이 입을 열어 카밀루스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을 때였다.

재니스가 눈치채 버렸는지 재빨리 이온의 입을 막아 버렸다.

“읍…….”

마법을 걸어 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재니스가 버니언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공께서 왔군요, 곤란하네요.”

“뭐야, 저거랑은 상관없잖아?”

‘저거’는 이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에 이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재니스가 눈썹을 까딱였다.

“글쎄, 대공이 알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안 돼서 말이죠. 때는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

재니스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온은 그가 왜인지 다른 꿍꿍이를 막 떠올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비쳤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버니언이 미간을 좁히고 있는 와중이었다. 재니스의 어떤 손짓을 본 이후, 이온의 눈앞 풍경이 확 바뀌었다.

탑의 최상층으로 단숨에 이동해 버린 것이었다.

바닥에 살짝 엉덩방아를 찧어 버린 이온은 작게 윽, 했다가 이내 계단 쪽으로 재빨리 기어갔다. 1층으로 도망치면서 온 힘을 다 쓴 탓에 일어서기가 요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선형의 어두운 계단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굳었던 혀가 풀린 것을 느낀 그가 중얼거렸다.

“카, 카밀루스? 카밀루스……!”

1층까지 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이온은 제 메아리의 일부라도 그에게 닿기를 바라며 간절히 외쳤다.

“나, 날 구해 줘, 제발, 제발.”

돌바닥을 짚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서는 순식간에 눈물이 흘렀다.

이 탑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게 끔찍하게 느껴진 이온이 아래층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번엔, 네 차례잖아…….”

* * *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말도 안 되는 기억과 감정. 그것들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가운데 이온은 더는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입술이 떨렸고, 그 사이로 짠맛이 흘러들었다.

어느새 에렌스트 경이 그런 그의 몸을 감싸 안고 의식을 잃으면 안 된다고 몸을 흔들어 깨우려 애썼다.

그러나 이온의 어지러운 머리는 더 이상의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눈꺼풀이 푹 감기고, 다시금 기억들이 뇌리를 점령했다.

왜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불행한 것들이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곳엔 이온이 바랐던 ‘진실’이 있었다.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 * *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에렌스트 경의 당혹한 목소리였다.

“도련님, 도련님!”

뒤늦게 카밀루스의 앞에 창이 주르륵 떴다.

[‘틈’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현실’과 ‘틈’의 규칙은 동일하지 않으나 시간과 죽음에 관련한 규칙은 유지됩니다.]

[상태 이상: 마법 계약]

[‘이온 크레이거’가 상태 이상 ‘실신’에 빠졌습니다.]

[시전자가 플레이어의 1미터 거리 이내로 강제 소환되었습니다.]

잠시 그것들을 멍하니 보던 카밀루스는 에렌스트 경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는 이온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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