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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66)화 (266/317)

카밀루스는 제 손이 더 기괴해져 가는 장면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마기는 점점 그 영역을 넓히고, 세를 부풀려 나가며 카밀루스의 몸을 변형시켜 나갔다.

시야가 다시 붉게 물들어 갔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이젠 등 뒤에는 제 앞에 죽어서 쓰러져 있는 마리엘처럼 날개가 돋고 있을 터였다.

끔찍한 감각이었지만 카밀루스는 그저 눈을 감고 받아들였다.

몬스터가 되어 이온의 앞에서 날뛰지 않는 것만으로 어디인가. 이 기괴한 몰골을 보여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끝을 향해 가는 카밀루스의 눈에서는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저 때문에 가슴 아파 할 이온을 생각하면 역시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제 어린 구원자.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그 탑에서 어떻게든 절망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던 카밀루스였다. 창밖으로 비치는 밝은 황성의 모습과 가끔 친절한 마탑의 마법사들에게서 듣는 세상 이야기들에 그것도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실은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알았다. 그래서 저에게 가끔 찾아오는 이온과의 그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그뿐이었어도, 카밀루스는 만족했을 거였다.

그런데 이온은 절망에 익숙해져 그것이 절망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그에게 분노할 권리를 일깨워 주고, 그 끔찍한 곳에서 탈출하게 해 주었다.

이온이 아니었다면 탑 안에서 카밀루스는 생을 마쳤을 것이다. 심지어 그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카밀루스는 색색 숨을 내쉬었다. 목에서 들끊는 뜨거움은 사람의 체온과 확실히 다른 감각이었다.

이런 느낌이라면, 그래, 마리엘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모든 부정 행위를 용인하고 싶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지만.

[플레이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중…….]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틈’의 소멸 시간까지 앞으로 0시간 4분 39초…….]

카밀루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가 몸의 기묘한 추락감을 느낀 것은.

세상의 소음이 열린 귀로 흘러들어 오고, ‘틈’에서는 비치지 않던 눈부신 빛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 * *

“허억, 헉…….”

욤뇽이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후 급격히 초조해진 이온은 에렌스트 경에게서 내려서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에렌스트 경은 혹여나 그를 놓치거나 계단에서 미끄러질까 조심하느라 천천히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심상치 않아지자 에렌스트 경이 다시 그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최상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푸른빛의 마나가 가득 찬 가운데, 이온은 제 몸의 네 배쯤은 돼 보이는 커다란 드래곤 두 마리가 몸을 한데 엉켜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하얀 드래곤 한 마리와 검은 드래곤 한 마리.

“끼이이이이…….”

이온이 그 광경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흰 몸체에 물빛 눈을 지닌 드래곤이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함께 가만히 보고 있던 에렌스트 경도 그를 바닥에 내려 주었고, 이온은 올라오느라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천천히 흰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탑의 가운데 몸을 말고 앉아 있는 하얀 드래곤은 물빛 눈에 눈물이 가득 채워 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온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욤뇽이? 너야?”

제 품에 안기던 작은 새끼 드래곤과는 모습이 너무 달랐지만 이온은 물빛 눈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흰 드래곤이 검은 드래곤을 감싸고 있던 몸을 살며시 움직여 머리를 이온의 손 쪽으로 내밀었다.

“끼이이이…….”

그러고는 친근한 것을 대하듯 제 입을 이온의 손에 가져다 댔다. 이온은 그것이 만져 달라는 의미임을 알아차리고 손을 뒤집고는 살살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 뜨거운 체온. 분명히 제가 키우던 그 욤뇽이의 느낌이었다.

“너구나.”

그렇게 말하자 드래곤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져 손등을 살며시 적셨다.

이온은 그것을 보면서 이유를 몰라 안타까워하다가, 이내 깨달았다.

하얀 드래곤의 품 안에 있는 검은 드래곤의 몸에 사슬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드래곤의 몸체는 원래부터 검은색이 아님을 증명하듯 꼬리나 손 등, 새하얀 살결이 드러난 곳이 더러 보였다.

원래는 욤뇽이와 마찬가지로 흰 드래곤이었을 거란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그 모습이 꼭 마기에 잠식된 마리엘의 몸이랑 비슷해 보였다.

이온은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에렌스트 경도, 페드로도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 상황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어떤 현상인지 설명조차 해 줄 수 없을 터였다.

심지어 에렌스트 경은 약간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이온의 뒤로 다가와 충고했다.

“도련님, 그만 물러나세요. 그 녀석은 몰라도 저 검은 건 느낌이 안 좋습니다.”

그에 이온은 미간을 좁히며 욤뇽이의 보들보들한 살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욤뇽이가 지키려고 하는 거잖아. 그렇지?”

“끼잉.”

이온은 성체가 되었으면서도 성격은 여전히 순둥한 흰 드래곤에게 더 다가갔다. 그러고 두 팔로 다 안을 수도 없을 만큼 굵은 녀석은 목을 끌어안았다.

이온은 드래곤의 따뜻한 체온에 왜인지 치유받는 느낌을 받으며 물었다.

“여기 이 애는 누구야?”

“끼.”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는 드래곤은 질문에 그저 구슬픈 눈으로 검게 잠식된 다른 존재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온은 함께 바라보다가 이내 한 가지를 깨달았다. 마기에 잠식된 드래곤은 욤뇽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욤뇽이보다 커 보일 뿐 아니라 머리 위의 뿔도 훨씬 컸다. 눈가 역시 긴 세월 살아온 것을 방증하듯 주름져 있었고.

다만 중요한 건 늙은 게 아니라 무척 지쳐 보인다는 점이었다.

욤뇽이가 슬퍼하는 이유가 그 점 때문임을 눈치챈 이온이 드래곤의 커다란 얼굴에 제 얼굴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네 어머니구나.”

정답이었는지, 욤뇽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이온은 그에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이어 물었다.

“카밀루스는 어디로 간 거야? 마리엘을 만나러, 이곳에 온다고 했었는데.”

게다가 바깥에서 봤을 때는 이곳에 아주 커다란 검은 동공이 생긴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질문을 하고 난 뒤에야 속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가슴속에 확 퍼졌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자 목에 걸린 마나석 목걸이가 있는 쪽으로 손이 저절로 향했다. 옷 아래 숨어 있는 그것을 내리누르는 이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카밀루스를 찾는 말에 욤뇽이 역시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페드로가 그들에게 다가섰다.

“어디…… 대체 어디 있습니까, 대공은?”

“끼잉.”

그제야 욤뇽이가 천천히 제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날개를 조금 파닥여 움직였다.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행동을 보던 이온은 녀석이 무얼 말하려 하는 건지 곧 알아챘다. 이곳에 있었는데,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순간 탑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온이 제 앞에 도로 내려앉아 물빛 눈으로 올려다보는 드래곤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 어디 순간 이동 해 간 거지?”

“끼.”

물으면서도 이온은 제 말이 정답이 아님을 알았다. 카밀루스가 쳐 놓은 황성 결계가 사라졌다. 아무 이유 없이 그가 해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마 이상이라도 생긴 거야?’

그런 질문을 떠올리자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이 흐르려고 했다.

그런 건 이온만이 아니었는지 페드로가 욤뇽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않으며 커다란 물빛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공이 가 있는 곳을 아시면 절 데려다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페드로의 요청에 욤뇽이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곤란해하는 듯 낑낑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끼이, 끼…….”

“제발, 제발 절 데려다주십시오.”

페드로가 숫제 빌듯이 이야기했지만 욤뇽이는 물빛 눈을 흔들면서 이온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쩔 줄 몰라 도와달라는 눈빛이었지만 이온도 그럴 정신은 없었다.

페드로와 욤뇽이를 번갈아 보던 이온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카밀루스가 사라지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지 떠올리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랐다.

이온의 상태를 눈치챈 에렌스트 경이 서둘러 다가와 어깨를 붙잡아 왔다.

“도련님, 도련님?”

“하아, 하…….”

이온은 숨소리를 갈급하게 들이켰다. 그에 에렌스트 경이 더욱 힘을 주었다.

“도련님! 진정하세요, 숨을, 숨을 쉬십시오. 차분히.”

“아, 알렉.”

이온은 이곳에 카밀루스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머릿속에, 금기와 같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설마, 죽은 거야……?’

오늘 계획을 전부 꼬아 놨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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