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너무 별거 없는 내용이엇다. 굳이 구린내가 나는 곳 하나를 찾자면 본인을 ‘선황대 첫 번째 황후의 아우’라고 설명했다는 점이었다.
‘설마 카밀루스가 제 조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게다가 편지를 보내온 시점이 무척이나 공교로웠다. 마치 네가 왕관을 훔친 걸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마 확신은 못 하는 단계일 터였다. 도둑을 찾아 달라는 방을 온 동네방네 다 붙여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면…… 오히려 방을 붙인 게 이쪽을 숨겨 주려는 의도라든가.’
생각하다가 이온은 너무 과한 추측이다 싶어서 의도적으로 상념을 끊었다.
이온이 카밀루스에게 편지를 되돌려 주며 물었다.
“그래서 왕관은 지금 어디 있어?”
물음에 카밀루스가 안쪽에서 욤뇽이를 데리고 왔다. 저녁인데 웬일로 눈이 말똥말똥한 녀석이 제 머리 위에 왕관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며 놀고 있었다.
아직도 제 머리에 얹을 최적의 각도를 못 찾은 듯싶었다. 물론 왕관이 녀석의 머리에 비해 과도하게 크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녀석, 잠잘 때 빼고 계속 이 상태야. 뺏으려고 하면 울던데…….”
“꾸?”
카밀루스가 좀 지쳤다는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욤뇽이가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뻔뻔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댔다.
그렇게 왕관과 한 세트 취급받게 된 욤뇽이는 이온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온 앞에 오자 얌전해진 욤뇽이는 제 통통한 꼬리를 쿠션처럼 안고서 누웠다.
자연스럽게 커다란 왕관을 등에까지 걸친 녀석에게 웃어 보인 이온이 작게 허락을 구했다.
“왕관 좀 살펴볼게, 욤뇽아?”
“꾸이이…….”
욤뇽이는 약간 불만스러워는 했지만 역시나 카밀루스보다 이온에게 훨씬 관대했다. 이온이 손이 닿을 때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변화는 그의 왼손이 왕관이 닿았을 때 일었다. 사아아, 하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왕관 주변으로 손길에 저항하는 것처럼 물길이 일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조금 떨어져 있던 카밀루스가 소리쳤다.
“손 떼!”
그에 이온도 놀라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당황한 표정이 된 카밀루스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이온의 손을 끌어가 살폈다.
다행히 이상은 없는 걸 확인하고 카밀루스는 안도했다. 이온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방금 그거…… 뭐야?”
역시나 놀란 듯 발딱 일어난 욤뇽이가 왕관을 껴안은 모습을 보며 카밀루스가 중얼거렸다.
“마법이 걸린 거야.”
그거야 마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온 역시도 이미 눈치챘다. 중요한 건 무슨 마법이냐는 거였다.
뒷말이 이어지겠거니 하며 이온이 기다렸으나 카밀루스는 당장 대답을 내놓기보다는 욤뇽이에게서 왕관을 내놓으라고 손짓했다.
하는 수 없이 왕관을 건네준 욤뇽이가 나라 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카밀루스가 왕관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중얼거렸다.
“내 눈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왕관인데…….”
“설마 너도 무슨 마법인지 모르는 거야?”
“거기까지도 아니야. 그냥 마법이 안 걸린 것처럼 보여. ……정말로 신물인 건가?”
카밀루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경우를 처음 맞닥뜨리는 만큼 그도 꽤 당황한 상태였다.
이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다시 만져 볼까?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온의 제안에 카밀루스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방금 일어난 반응은 다 봤어. 잘못했으면 네 손이 잘렸을 거야.”
“…….”
이온은 다행히 아직 멀쩡한 제 왼손으로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걸 훔쳐 올 때에는 내내 카밀루스가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욤뇽이가 놓고서 안 놔줬다고 하니 딱히 다른 사람이 손댈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었다. 이온은 곧장 그것을 입에 담았다.
“그럼 너한테는 반응 안 하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미아블레 가문의 피가 흘러서? 아니면, 물 속성의 마법사라서?”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카밀루스의 말을 듣던 이온은 아, 하며 작게 감탄사를 흘리며 이야기했다.
“거의 쓰지도 않는 저택에 방치해 놓은 이유가 그거였던 걸지도 몰라.”
“그래, 어차피 아무도 훔치지 못할 테니까.”
그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카밀루스가 왕관에 제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마나에서 흘러나오는 미미한 빛에 왕관에 달린 보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뀨우…….”
그러자 욤뇽이가 넋을 놓은 표정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사람 머리에 얹기에는 상당히 부족해 보였던 왕관은 카밀루스의 마나가 주입되자 훨씬 커졌다. 이제는 도저히 사람 머리에 얹지 못할 만큼 말이다.
이온은 제 머리쯤은 가볍게 통과해서 어깨에 걸칠 거 같은 그 크기를 확인하고 침음을 흘렸다.
“그냥 보기 좋은 크기로 줄였던 건가 보네?”
“이게 이렇다면 레갈리아도 그럴 확률이 있겠군…….”
카밀루스는 왕관 크기를 도로 줄여서 욤뇽이의 목에 아무렇게나 걸쳐 주었다. 그러자 욤뇽이는 눈을 치켜뜨며 다시 열심히 제 머리에 얹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밀루스가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더니 다시금 후작의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본인들 가문의 물건이니 후작이 이 왕관의 특성에 대해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몰라. 황도에 있는 자 중 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거…….”
“그럼 네가 로제니아 황후의 아들이라는 것까지 추측하고 있을지도.”
“확신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 사실을 잘 이용하면 그가 카밀루스의 정통성을 증명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크레이거 공작도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보통 한 사람의 입은 그 전부를 증명해 줄 힘이 있지는 않다. 또한 중요한 부분이니만큼 실제적인 증거가 필요할 텐데, 미아블레 후작이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
과연 그가 카밀루스의 편을 들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이온은 왜인지 이 편지의 내용이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말투가 조십스럽기도 했고, 카밀루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이 마지막에 들어가 있었다.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둘은 삼촌과 조카의 관계이니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안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야, 카밀루스.”
혹시나 그가 딴생각을 할까 싶어 이온이 얼른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마침 대화를 끝냈을 때였다. 퇴근한 주치의를 급하게 불러들인 에렌스트 경이 카밀루스의 방 문을 두드렸다.
이후 이온의 손목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붕대가 둘둘 감겼다.
카밀루스의 치유 마법은 애석하게도 부러진 뼈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 * *
미아블레 후작이 황도로 올라오는 일주일 동안 황태후궁에서 발신한 연말 연회의 초대장이 뿌려졌다.
내황성의 문을 열고 황성 내에 있는 커다란 연회장에서 많은 귀족들을 모아 두고 하는 큰 행사인 만큼 그 초대장이 도착하자마자 드레스숍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에밀리도 그 행렬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이온은 강제로 따라가게 되었고, 이온이 따라가니 카밀루스도 알아서 쫓아왔다.
이온은 좁은 마차의 가운데, 그러니까 에밀리와 카밀루스 사이에 끼어 앉아 투덜댔다.
“서로 다른 마차 타면 안 됐던 거야? 아니면 맞은편에도 자리가 있는데 왜…….”
그러자 마차의 작은 창을 통해 낮이라 시끌시끌한 바깥을 흥미 어린 눈으로 내다보던 에밀리가 휙 돌아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오빠는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어. 딴 마차 타고 가다가 다시 돌아갈 게 뻔하잖아! 분명 작년에도 그랬지?”
이온은 그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남자들 옷은 딱히 유행이라는 게 없거든. 난 낡으면 알아서 정기적으로 새 옷을 맞추고 있어.”
“어머, 그것도 참 꼰대스러워요, 오라버니.”
“……에밀리, 말버릇 좀 어떻게 해 봐.”
제가 어쩌다 이렇게 동생에게 마구 놀림을 받는 신세가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온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아까부터 말이 없는 카밀루스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던 그가 시선을 느꼈는지 금세 이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카밀루스가 살며시 눈을 접어 웃었다.
“왜?”
“아니…….”
왠지 요즘의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저를 찾아온다는 미아블레 후작 때문인 듯싶었다.
에밀리도 옆에 있는 터라 이온이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사이였다. 그들이 탄 마차가 멈추었다. 에밀리가 얼른 외쳤다.
“도착했나 봐, 오빠. 전하께서도 새로 맞추실 거죠?”
에밀리가 들뜬 음성으로 묻자 카밀루스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 양이 훌륭한 안목으로 살펴 주시면 좋을 것 같군요.”
그러고 마차의 문이 열리자 카밀루스가 먼저 내려 이온을 에스코트했고, 에밀리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생긋 웃더니 이온의 기사인 에렌스트 경을 불러다가 그의 손을 잡고 바닥에 내려섰다.
이온은 왜인지 과도하게 반짝이는 에밀리의 눈빛을 발견하고는 아주 피곤한 하루가 될 것임을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