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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137)화 (137/317)

* * * 

쾅!

문 닫는 소리가 제법 거칠게 울렸다. 그 문을 닫은 장본인인 이온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닫히자마자 거의 틈을 두지 않은 채 카밀루스가 쫓아 나왔다.

“이온!”

저를 부르는 소리에 이온이 살짝 충혈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미약한 현기증이 인 탓에 비틀거리고 만 그의 몸을 카밀루스가 서둘러 다가와 받쳐 주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약간은 어둑하고 고요한 복도의 한편에서 그가 품에 안긴 이온을 내려다보며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

아까부터 목 상태가 안 좋았던 이온이 그의 가슴팍에 대고 쿨럭, 쿨럭 기침을 해 대며 고개를 끄덕댔다.

“응, 응…….”

카밀루스는 이온의 가녀린 어깨를 손으로 살짝 쥐며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공작과의 대화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안색이 새하얘진 데다, 색이 옅은 속눈썹이 떨리는 중이었다.

안구에는 얇은 막처럼 물기가 어리기도 한 것을 발견한 카밀루스는 미간을 좁히더니 이온의 자세를 똑바로 세웠다.

“빨리 방에 올라가자.”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 좀 붙잡아 줄래?”

방금 전까지 크레이거 공작의 앞에서 그리 당당하게 말해 놓고는, 뒤에서는 이런다. 말하는 데 모든 기운을 소진해 버린 게 틀림없었다.

“나한테 기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한 카밀루스가 이온을 부축해 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데 왜인지 떠득썩하게 느껴지는 홀로 나가기 전, 이온에게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걸으며 그가 문득 물었다.

“어떻게 안 거야?”

질문에 목적어는 없었지만, 이온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미안, 네 뒷조사를 좀 했어.”

뒷조사라는 단어가 좀 음습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카밀루스는 이상하게도 전혀 기분 나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마저 비쳤다.

어쩌면 그들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가장 최선의 영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너한테 위험한 것만 아니었으면 됐어.”

하지만 그의 대꾸를 듣고 이온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위험했던 것 같아. 조사하는 도중에 사람이 둘이나 죽었거든.”

“둘……?”

죽었다는 말에 카밀루스는 일전에 이온이 에렌스트 경과 저주로 죽은 크레이거가의 퇴직 버틀러에게 찾아갔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이온은 카밀루스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곧장 이해했다.

그러나.

‘하나는 그럼 또 누구지?’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곧장 추궁하지는 않았다. 이제 기회는 많았으니까.

“그럼 네가 무사했으니 됐다고 하자.”

“응, 그쪽 입장에선 아마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이온 크레이거가 죽으면 안 되는 사람…….

카밀루스의 어머니를 찾는 것과 이온 크레이거가 죽지 않아야 하는 것 사이의 연관성이 딱히 없으니, 각각의 사안으로 봐야 하는 건가?

카밀루스는 짧은 순간 그런 질문을 떠올렸다가, 홀로 나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는 거동을 힘들어하는 이온의 몸을 갑자기 번쩍 들어 올렸다.

“앗……!”

예고되지 않은 행위에 이온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뭐 하는 짓이냐는 의미의 눈빛을 보내자 카밀루스가 짓궂게 웃었다.

“이왕 공작에게도 막 지른 김에 소문 다 내야지?”

그러자 이온이 얼굴을 붉히더니 투덜투덜하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너 이러다 쫓겨나…….”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일이고.”

이온은 근거도 없이 당당한 카밀루스의 태도에 기가 막혔으나 어깨를 감싸 오는 카밀루스의 손길에, 몸을 그의 쪽으로 기대었다.

누군가 웅성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홀에는 예상대로 카밀루스의 부관인 페드로가 심각한 얼굴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밀리는 아마도 시녀나 페드로 등의 설득으로 제 방으로 돌아간 뒤인 듯했다.

이온을 안고 나오는 카밀루스가 곧장 2층의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페드로가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랐다.

페드로는 내용은 몰랐지만, 안에서 기분 나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대략 눈치를 챈 모양인지 태도에 날이 서 있었다.

“전하, 대체 무슨 일이길래 공작이 그리 언성을 높인 겁니까?”

카밀루스는 층계를 오르면서 간단히 답을 미뤘다.

“저녁에 말해 줄게. 후작가에 다녀온 데 대한 잔소리도 나중에 하지. 방에 돌아가 있어.”

페드로를 잘 아는 카밀루스가 페드로의 잔소리 거리들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자, 페드로는 무척 불만스러운 듯 보였으나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러고 페드로가 제가 머무는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카밀루스가 이온의 방문을 열었다. 안쪽의 공기가 조금 서늘한 것을 느낀 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좀 춥긴 하네.”

하녀들이 계속 불을 떼며 관리도 했을 테고 딱 하루 비웠을 뿐인데, 금세 사람의 온기를 받지 못한 티가 났다.

안으로 들어선 카밀루스가 이온을 침대 위에 조심히 내려놓고는 이불을 덮어 주자 이온이 옆자리를 툭툭 치며 고갯짓을 했다.

“너도 안으로…… 들어와.”

“그래도 돼?”

이온이 작게 끄덕끄덕하니 카밀루스가 이온의 옆에 앉더니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러자 뭔가 허전함을 느낀 이온이 카밀루스의 가슴 부근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욤뇽이는 어디 갔어? 후작 저에 두고 온 거 아냐?”

카밀루스도 그제야 있던 것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리고는 곳곳에 있는 주머니를 뒤지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택에 같이 도착하긴 했었는데……. 어제 너한테 삐져서 내 방에 가 있는 거 아닐까?”

“……아, 그럴지도.”

이온은 어제 편을 안 들어 주자 충격을 받고 눈물 바람과 함께 사라졌던 욤뇽이를 떠올리며 수긍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8년 동안 쿠키 조공을 얼마나 했는데, 너무 툭하면 삐져 대니 괘씸하기도 했던 이온은 달래러 가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버릇 나빠진단 말이지…….’

게다가 카밀루스의 손가락을 깨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의 입버릇이 너무 나빴다.

이래 봬도 훈육에는 꽤 강단 있는 편인 이온이었기에 이 기회에 안 되는 건 떼 써도 안 된다는 걸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온.”

저를 부르는 소리에 이온이 눈을 들어 카밀루스를 올려다보았다.

“응?”

어느새 얼굴이 어두워진 카밀루스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과 어투로 물어봐 왔다.

“방금 공작 앞에서 너무 막무가내였던 거 아니야? 내가 정말 자격이 없는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이온은 카밀루스에게 기대었던 몸을 떼며 따지듯 물었다.

“자격이 없기는 왜 없어?”

“…….”

“혹시 아버지가 말 안 한 것 중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야?”

이온이 연신 질문을 던졌으나 카밀루스는 눈만 내리깔 뿐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 반응인즉 그런 유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맞는다는 의미인지라 이온은 왠지 몸속의 열이 갑자기 머리까지 확 퍼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 보니.’

카밀루스도 문제였다.

지켜보다 보면 다른 사람 앞에선 말도 잘하고 꽤 강단도 있는 편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이온의 앞에선 자존감이 바닥난 사람처럼 굴 때가 종종 있었다.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스스로를 낮췄다.

아까도 그렇다. 크레이거 공작이 이온이랑 진짜로 잤느냐고 추궁할 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려고 하지 않았나.

한데 그 부분을 지적하려는 순간 카밀루스가 이온은 왼손을 끌어가더니 두 손으로 모아쥐고, 이내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을 통해 입술의 도톰하고 주름진 표피의 감촉이 느껴졌다.

“난 나 때문에 네가 피해 보는 거 싫어, 이온.”

카밀루스가 뱉은 한마디에 이온이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는 맨날 그러면서 나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그래, 나는 그래도 되거든. 너한테 목줄 매인 개잖아.”

“대공께서 내 개라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물론 어느 개가 밤이 되면 주인의 몸에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어 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온은 아직도 허리 밑으로 남아 있는 불편감을 새삼 다시 상기해 내고는 입을 슬쩍 비틀었다. 그러고는 카밀루스가 가져간 제 왼손에 힘을 넣어 그의 손을 마주 잡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잘 들어, 카밀루스. 넌 올해로 스물다섯인 로제니아 클로델의 아들이야. 한마디로 선황과 첫번째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라는 소리지.”

“스물다섯?”

“그래, 스물다섯. 네 어머니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이온은 카밀루스가 다른 말에는 관심 두지 않고 나이만 되묻는 것에 금세 상황을 파악해 냈다. 카밀루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선황이 죽기 전에 알려 주고 갔으니까. 하지만 기록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서 반신반의하고 있었어. 그런데 넌 어떻게 안 거야?”

질문에 이온은 숨기지 않고 전부 말해 주었다. 

늙어서 퇴직한 버틀러를 찾아간 이유와 함께 이후 선황의 시종장이었던 카르코 백작을 찾아간 일과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솔친 후작 저에 가 하녀장인 에린을 만나기까지 저간에 있던 사정들을 설명했다.

꽤 긴 이야기였지만 카밀루스가 묵묵히 듣고는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더 위험했…….”

……던 것 같은데.

그리 문장을 완성해 나가려던 찰나였다. 돌연 이온의 방문 앞으로 다급한 발소리가 뛰어오더니 전담 버틀러의 음성이 문안으로까지 넘어왔다.

“도련님, 잠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먼저 반응한 것은 이온이 아닌 카밀루스였다. 그가 침대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방문을 살짝 열었다.

버틀러는 작은 이온 대신 거구의 카밀루스가 앞을 막는 것에 당황한 듯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카밀루스가 물었다.

“소공작은 지금 거동이 불편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냥 두는 게 좋겠다.”

“송구합니다, 대공 전하. 다른 것은 아니고, 방문객이 있어…….”

손님이 왔다는 소리에 카밀루스가 이온을 돌아보자, 이온이 침대에 앉아 있는 채로 문밖의 버틀러를 건너다 보며 물었다.

“방문객? 오늘 온다고 했던 사람은 없었는데 누가 왔다는 거야?”

그에 돌아온 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노아기사단의 아스타틴 딜런 부단장이라고 합니다, 도련님.”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카밀루스와 이온, 누구 할 것 없이 미간을 와락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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