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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0)화 (30/317)

이어 스펠을 외우는 과정 없이 곧장 검선을 따라 공기가 불타올랐다. 불덩이가 날아가는 방향을 확인한 카밀루스가 즉시 몸을 날렸다. 이온을 보호하려 두 팔로 그의 머리를 껴안고 카밀루스가 바닥을 굴렀다.

“윽, 카밀루스!”

“하…….”

아무렇지 않게 일어선 카밀루스가 곧 실소를 흘렸다. 방금의 공격은 명백하게 이온을 노린 것이었다.

당할 걸 뻔히 알면서 이쪽을 공격하는 속셈이야 다른 게 아닐 터였다. 이쪽이 이온을 보호하면서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다.

카밀루스가 버니언의 비겁함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같이 있는 한 계속 같은 수를 쓸 것임을 알아차린 그는 이온을 제 몸으로 가리며 빠르게 말을 전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틈이 있으면 서둘러 이곳에서 떠나가. 저 녀석 말대로 내 반응이 한발 느릴 수밖에 없어서 자칫하면 네가 위험해져.”

현실적으로 보면 카밀루스의 말이 맞긴 하지만 이온은 곧장 그러겠다고 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면 그 자신도 위험한 것일뿐더러, 애초에 자신 혼자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라도 달리다가 쓰러지면? 그러면…….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과의 재회(2/3)]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 수행 횟수가 카운트됩니다.]

마치 등을 떠미는 것처럼 시스템 메시지도 떴으나 여전히 이온은 주저했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손을 덥석 잡아 왔다.

“할 수 있지?”

그러면서 자신을 힐끗하는 파란색 눈과 단단히 움켜쥔 손에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읽혔다.

게다가 그렇게 묻는 동안 이온의 손을 타고 마나의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숨쉬기가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메시지가 올라왔다.

[상태 이상 ‘충만한 마나’가 일시적으로 강화됩니다. 유지 시간 90분.]

이온은 카밀루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황해 무어라 반박하지 못했다.

심지어 이미 혼자서 결론을 정해 둔 카밀루스는 이온도 이 정도면 납득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이제 다가오는 버니언에게로 향했다. 그렇지만 이온은 그를 혼자 두고 가기엔 많은 것이 걸렸다.

황태자궁에서 일어난 이 난리가 과연 카밀루스가 혼자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의 사고인가?

이온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황궁 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마법으로 난입해서는 황태자인 버니언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버니언이 제아무리 한심해 보여도 결코 종이호랑이는 아니었다.

황제의 복심이 그에게 있는 것이 명확한 데다,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크레이거 공작가도 황제파로서 버니언의 뒤를 알게 모르게 봐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그럼 차라리 자신이 좀 다치고 크레이거 가문이 끼어들 수 있도록 더 일을 크게 벌이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아까 버니언이 지껄인 대로 제아무리 공작이 황실의 충실한 개라고 해도 귀족가 아이의 신체가 다치는 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밀루스, 너 이러다가 갇히면…….”

이온이 계속해서 발을 떼지 못하자 카밀루스가 말을 단호히 잘랐다.

“난 네가 있잖아, 이온.”

“뭐?”

만약에 갇히면 또 구해 달라는 소린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가 전혀 아니었다.

“난 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내가 널 지켜야 하니까.”

하는 말과는 반대로 카밀루스가 이온의 손을 놓고 그를 살며시 밀어 냈다. 떠나가라는 의도가 다분한 손짓이었다.

“더 이상 날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게 아닌 한.

카밀루스의 입에서 작게 주문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그의 오른손 주변에 투명한 물이 뭉치고, 그대로 얼어 뾰족한 송곳 수십 개가 꽃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난 네가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해.”

파바박!

말하면서 손을 펼치는 동작에 따라 얼음 송곳이 날아갔다. 그에 공격 태세를 갖추었던 버니언이 뒤로 물러나자 카밀루스가 이온의 어깨를 떠밀었다.

이온은 입술을 꾹 물었다. 그가 이 자리에서 계속 싸울 각오라면 몸이 약한 자신이 걸림돌밖에 안 되는 건 사실이었다.

가기 전에 이온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나 또 찾아올 거지? 기다릴게?”

“어디든 갈게, 이온.”

대답을 들으며 이온은 옷 안쪽에 목걸이를 집어넣어 마나석을 수습했다.

결심했으니 뒤도 돌아보면 안 됐다. 이온은 카밀루스가 막아 길을 터 주는 동안 힘껏 달렸다.

마법이 부딪치는 소리와 파동이 뒤에서 거세게 밀려왔다. 그때마다 휘청거리면서 이온은 어떻게든 황태자궁의 정원을 가로질러 빠져나왔다.

허억, 헉…….

금방 숨이 차올랐지만 이온은 필사적으로 앞만 보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공작가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실질적으로 얼마 안 됐다. 궁의 입구를 통과했을 때는 목에 피가 고인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잠시 저주가 완화된다 해도 본래부터 떨어져 있던 기력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황태자궁 일원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에렌스트 경이 비틀거리는 이온의 몸을 받아 주었다.

“소공작!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가야, 헉, 돼, 빨리 가자.”

숨이 차서 시야가 다 흔들렸다. 재촉하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는 에렌스트 경은 일단 그를 부축했으나 마차에 올라타기 전에 멈춰 섰다.

“소공작.”

왜인지 긴장한 기색이 느껴지는 에렌스트 경의 부름에 뭔가 싶어 고개를 든 이온이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확 굳혔다.

일단 마차를 올라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없는데…… 그 뒤쪽으로 한 무리의 기사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벌써?’

카밀루스가 온 뒤로 주변의 시종이나 기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온이 에렌스트 경의 팔을 밀어 내며 몸을 세웠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숨 때문에 가슴을 들썩이는데, 그중 맨 앞에 있던 덩치 큰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이온의 앞에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통성명을 해 왔다.

“크레이거가(家) 소공작님, 저는 노아 기사단 소속의 아스타틴 딜런 부단장입니다.”

노아 기사단이면 황실 소속 기사단 중 하나였다. 주로 마법대대로 구성된.

이온은 그러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상대를 보았다. 딱딱한 인상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건대 딜런 부단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 같지는 않았다.

“…….”

둘 사이에 잠시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동안 이온이 눈치를 주어 에렌스트 경을 앞으로 부르자, 그가 이온을 대신하여 부단장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황태자궁에서의 볼일이 끝나 공작가로 돌아가고자 하니 길을 터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웃음?’

비웃음이 명백한 그 반응에 이온이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웠고, 딜런 부단장이 에렌스트 경의 요청을 가볍게 거절했다.

“아쉽지만 용건이 있으니 그럴 수는 없소. 이쪽도 황가에 충성해야 하는 입장이라 물러서기에는 썩 곤란하군.”

남의 마차를 가로막고 수행해야 할 용건이라. 이온으로서는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없어 그중 하나를 입에 올렸다.

“……날 납치라도 하려는 건가?”

그것도 황궁에서?

설마 황제까지 버니언과 한통속인가 싶어 긴장했을 때였다. 다행히 부단장은 안심하라는 듯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우리 노아 기사단의 위세가 아무리 드높다 하나 공작가의 영식에게 그런 짓을 할 리가요. 그랬다가는 정말로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공국의 힘이 예전 같지 못하다고 해도 오브라이언 안에서 형제들끼리 피를 흘리는 그런 불행한 일은 있어서는 아니되지요.”

“그럼?”

“저는 단지 황태자 전하께 한 가지 사소한 부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하여 잠시만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계속해서 공대를 하고 있는데 이온의 귀에는 왜 이리 무례하게 들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객관적으로도 아주 무례했다.

허리를 쭉 편 부단장이 그 위협스러운 몸뚱이를 움직여 이온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에렌스트 경이 그 앞을 막아서려고 했으나 아스타틴이 한발 빨랐다.

“……!”

저보다 한참 큰 사내가 이온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목 쪽으로 향해 오는 손길에 이온이 목이 졸리는 줄 알고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건틀릿을 낀 투박한 손가락에 이온의 마나석 목걸이가 걸렸다. 목이 살짝 당겨지는 느낌이 들자 뒤늦게 눈을 뜬 이온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옆에 서 있던 에렌스트 경이 다시금 끼어들었다.

“이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그가 즉시 발검 자세를 취했으나 아스타틴은 무감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감히 일개 가문의 기사 따위가 황제의 그림자에 칼끝을 들이댈 생각인가?”

“…….”

그럴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서 판단하라는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개의 황실기사단 중에서도 노아기사단은 좀 더 특별했다.

마법대대로 구성된 정예 중의 정예로서, 비록 기사라고는 하나 오브라이언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노아기사단이 행하는 행동은 황제의 입을 대변하였으며, 그들을 모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황실을 향한 반발로 간주되었다.

에렌스트 경이 주저하자 아스타틴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금 이온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온의 눈높이에 맞추어 몸을 조금 낮추며 말했다.

“소공작께는 선처를 구하지요. 저는 단지 이 작은 보석 하나를 파괴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 당신께는 유감이 없습니다.”

“……무슨.”

설마 이자는 이게 마나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그야, 겉으로만 보면 일반 보석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하지만 질문을 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아스타틴이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하나 노아기사단의 기사가 어찌 황실의 말을 거역하겠습니까? 그것도 황태자 전하께서 황실의 치부가 알려지면 안 된다며 특별히 부탁하신 것인데.”

그러니까, 단지 출처가 카밀루스라는 게 문제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부단장의 손과 마나석이 맞닿은 곳에서 빛이 났다. 그 의미를 이온이 알아차린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었다.

파악!

마나석이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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