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에스퍼 협회 인증서를 확인한 직원은 사원증과 푸른색 끈을 건네며 안쪽을 손짓했다. 보조계 에스퍼라는 뜻의 푸른색 끈을 사원증에 연결하던 연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사원증을 내려보았다.
“한연우 에스퍼?”
“아, 네.”
사원증을 목에 건 연우는 안내에 따라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안쪽의 작은 점을 3초간 응시하세요.”
직원의 말에 연우는 뻑뻑한 눈을 깜박이며 홍채 인식기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지문을 등록하면서는 혀를 깨물며 하품을 참았다.
피곤했다.
연화는 개꿈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연우는 그러지 못했다.
만약에, 혹시라도 만약에 내가 그렇게 죽으면 연화는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연화를 지켜보다가 출근한 참이었다.
“뭐야. 너 또 잠 설쳤지.”
참지 못하고 구석에서 몰래 하품하는 연우를 발견한 사관학교 동기, 선우건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작게 기지개를 켜던 연우가 머쓱하게 웃었다. 뿌듯한 얼굴로 자신과 연우의 사원증을 보던 선우건이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사실 나도 한숨도 못 잤어.”
그러냐, 대답할 시간도 없이 저쪽에서 직원이 선우건을 호출했다.
“선우건 에스퍼!”
“넵!”
달려가려던 선우건이 몸을 돌려 연우를 붙잡았다. 뭘 그리 대단한 말을 하기 위해 몸을 붙이나, 했더니 나중에 같이 강당에 올라가자는 싱거운 말이었다.
센터에 다닌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길치냐.
작게 웃은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우건이 A 구역으로 달려갔다. C 구역으로 향한 연우가 마나 인식기에 사원증을 밀어 넣었다. 옆 사람이 힐끔거리며 연우를 따라 하는 게 보여 부러 천천히 움직이던 연우가 등록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한연우 에스퍼, 보조계 C급, C 구역 배정 맞으시죠?”
“네.”
직원의 손짓에 따라 마나를 흘려 넣자 삐익! 삑!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허둥거리는 연우 대신 사원증을 뽑았다가 꽂아 넣은 직원이 다시 등록기를 손짓했다.
“다시 할게요.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니 아주 살짝만 넣으시면 됩니다.”
아주 살짝 넣었는데….
영혼 없는 친절한 목소리에 손을 올려놓은 연우는 마나 코어에서 마나를 아주 조금 뜯어냈다. 손끝에서 실을 뿜어내듯 마나를 살짝 흘려 넣자 인식되었습니다. 하는 딱딱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직원의 손짓에 손을 떼자 사원증을 회수한 직원이 연우와 사원증을 번갈아 보았다.
“아이템 등록 안 하셨네요?”
“네?”
들어오기 전에 했는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사원증에 등록 마크를 찍어주던 직원이 연우의 손목을 가리켰다. 시선을 따라 손목을 내려보던 연우는 눈썹을 찌푸렸다. 손목에는 못 보던 체인 팔찌가 걸려 있었다.
뭐지?
자세히 살펴보려 걸림쇠를 찾았지만, 시작과 끝이 없는 구조의 팔찌는 손안에서 계속 맴돌기만 했다.
“한연우 에스퍼. 잠시만요.”
쑥 들어온 마나 탐지기가 팔찌를 훑었다. 연우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직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마나 탐지기를 지켜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금 등록 안 하시고 나중에 아이템이라고 밝혀지면 벌금이 부과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다. 벌금이 얼만데.
양해를 구하고 한쪽 구석에 선 연우는 팔찌를 풀기 위해 낑낑거렸다. 눈에 안 보이는 디자인의 잠금쇠인가 싶어 손끝으로 하염없이 더듬느라 손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냥 잡아 뜯으려 해도 뜯기지도 않고 애꿎은 손목만 아팠다.
“무슨 일이야?”
“아. 저분 팔찌가….”
표정 없이 기다려주던 직원은 다른 직원의 질문에 연우를 손짓했다. 사원증의 색을 보고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직원이 화면을 힐끔거리더니 갑자기 표정을 달리했다.
“아, 이건 제가 그냥 처리해놓겠습니다. 하하하. 한연우 에스퍼.”
절단기라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려던 연우는 또박또박 이름을 읊조리는 걸 듣고 방긋 웃었다.
능력 좋은 동생을 두면 이럴 때는 편하다니까.
“안쪽으로 쭉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안내에 인사를 한연우가 안으로 들어가자 선우건이 다가왔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이거 때문에.”
옷을 걷어 올린 연우는 벌게진 피부와 그 위에 걸려 있는 검은색 팔찌를 쳐다봤다. 직원이 따로 지적하지 않았더라면 걸려 있는지도 몰랐을 아주 가볍고 얇은 팔찌였다.
“연화가 준 거 아냐?”
“한연화가? 아닐걸.”
“단호한데. 그래도 졸업선물은 받았을 거 아냐.”
선우건의 말에 연우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상했다. 날짜만 보면 얼마 전에 졸업을 한 게 분명한데,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리듯 기억이 아득했다.
연화…가 졸업선물을 주긴 했다.
‘이제 오빠 살길은 오빠가 알아서 찾아야지.’
받자마자 도로 가져가라고 싸웠었지. 뭐 저렇게 매정한 말을 하냐며 이를 갈았지만, 사실이었다.
연화는 아직 미성년자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었지만, 연우는 아니었다. 공간 이동 이능을 가진 에스퍼는 제법 많았고, 그중 하나인 연우는 특별할 것이 없는 C급 에스퍼였다.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B급 이상이어야 했고, 이능을 억제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E급 이하부터였다. 에스퍼 보험금을 내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돈벌이로는 어림도 없었기에 연우는 고민 끝에 국가 소속인 대한 에스퍼 센터에 이력서를 냈고, 합격했다.
기숙사로 이사하랴, 연화의 보호자 자격을 지키기 위해 재판에 출석하랴, 바쁜 나날을 보낸 연우는 센터 입사 전날이 되어서야 연화의 선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푸른색의 은색 문양의 책.
표지를 내려보던 연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책을 들어 올렸다. 연화가 예지를 책으로 정리한 이후로, 책을 선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예지를 알려줬다가 혼돈이 찾아온 이후로 연화는 다른 사람이 예지를 정리한 책을 읽는 걸 썩 반기지 않았다. 연우도 그걸 알아서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었고.
아침마다 연우를 붙잡고 무슨 꿈을 꿨다, 누가 나왔다면서 쫑알거리는 걸 멈추고 모든 예지를 혼자만 간직하던 연화였다.
그런데 왜 책을 선물한 거지? 미래를 알고 있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연화의 입버릇이었는데….
“이쪽이야.”
선우건의 목소리에 팔찌에서 시선을 뗀 연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기 아니야.”
연우는 엉뚱한 곳으로 가려는 선우건을 잡아끌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우건은 안내판을 확인하고는 연우를 돌아보며 엄지를 내밀었다.
“역시.”
“아까 설명 들었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게 바로 딱, 찾지는 못하잖아. 네가 공간계라서 그런가?”
선우건의 칭찬에 힘없이 웃음을 흘리던 연우가 조용히 물었다.
“우리… 예전에 사관학교 다닐 때 센터로 견학 온 적 있었나?”
“엑. 무슨 소리야?”
선우건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눈썹을 찌푸렸다.
요즘이야 에스퍼나 가이드가 비각성자, 일반인들과 섞여 살고 있지만 처음 아더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에스퍼는 인간 재해 취급을 받았다. 일반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게이트를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며 위험 구역이 생기고, 탈출한 마수가 일으키는 모든 재난은 에스퍼의 탓으로 돌려졌다.
충분한 훈련과 가이딩이 있다면 에스퍼도 여느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에스퍼 협회의 주장에서도 일반인들은 에스퍼에게 공포심을 느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수습하는 에스퍼의 능력을 보며 사람들은 고마움보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꼈다. 두려움은 에스퍼가 게이트를 몰고 다닌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냈고, 그 말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에스퍼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각성자와 일반인 사이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고, 에스퍼가 일반인의 도움을 거절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결국 곪은 것이 터졌다. 일반인들은 힘을 합쳐 각성자를 테러했고, 테러단체와 없는 말을 지어내는 호사가들의 눈을 피해 몸을 피한 각성자들은 지하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갈등이 풀린 지금도 테러는 일어났다. 몇몇 길드들이야 어디 한번 쳐들어와 보라는 듯 본거지를 알렸지만 다른 곳은 아니었다.
대한 에스퍼 센터는 정부 산하의 기관이라 더욱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을 거다. 실제로 연우는 세 번의 인증을 거친 뒤에야 센터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 그러니 연우는 이곳에 처음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곳이 익숙한지 알 수가 없었다. 사원증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사진이 박힌 사원증은 처음 보는 것임에도 야릇한 추억을 몰고 왔다.
“와, 줄이 너무 긴데.”
선우건의 말에 생각에서 벗어난 연우는 고개를 들어 줄을 확인했다.
광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
“여기로 가자.”
어느 줄이 더 짧은지 기웃거리는 선우건을 붙잡고 엘리베이터의 옆문을 연 연우는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오! 어떻게 알았어? 이것도 공간계의 능력이야?”
연우는 호들갑을 떠는 선우건의 질문을 무시하고 벨트에 발을 올려놓았다.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연우는 팔찌를 내려보다 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길 잃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 망설이던 연우가 광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뒤를 따르던 선우건이 그 자리에 굳은 채 감탄사를 터트렸다.
던전 식물로 꾸며놓은 광장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감탄만 하던 선우건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올랐다. 너무 이쁘다, 진짜 이쁘다. 하염없이 감탄하던 선우건이 동의를 구하듯 연우를 바라보았다.
“너무 이쁘지?”
“응…. 이쁘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연우는 광장을 둘러보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전부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발광형 식물과 벽을 장식하고 있는 덩굴 형 식물, 화려하게 피어나 달콤한 향을 풍기는 꽃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저게 처음 광장을 본 사람의 반응일 텐데 연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을 뿐이었다. 마치 몇 년간 봐온 풍경에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는 것처럼.
그런 자신의 반응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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