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93화 (93/136)

93화

백자안은 흔쾌히 하진이 건넨 새우를 받았다. 분명 살 땐 제법 크기가 큰 녀석을 샀는데도 어쩐지 그의 손에 잡히니 칵테일 새우 같아 보였다.

“으음…… 어떤 게 물총이라고 하셨죠? 잘 모르겠어요.”

백자안은 꼬리를 젖히면 바로 보이는 물총을 찾지 못하고 하진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하진은 처음이니 못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조금 더 바싹 붙어 물총을 찾아주었다.

“이게 물총입니다. 꼬리랑은 다르죠? 끄트머리만 살짝 떼어내면 됩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직접 손을 잡고 집어주자 백자안의 입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그보다 키가 작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진은 볼 수 없었다.

“이제 알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형.”

“저거 봐, 저거 봐. 저러고 있을 줄 알았지, 내가.”

건들거리며 끼어든 목소리에 헤실헤실 웃던 백자안의 얼굴이 뚱해졌다. 얘기가 길어질 줄 알았는데 그의 생각보다 빨리 끝나 둘만의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하진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한승호를 쏘아보자 그 또한 지지 않고 백자안을 마주 쏘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진우는 아직 손질할 새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곤 팔을 걷어 올렸다.

“제가 좀 돕겠습니다.”

제 자리를 차지하려는 차진우의 기습공격에 백자안이 한승호와 눈싸움하다 말고 빠르게 방어했다.

“제가 있으니 괜찮아요, 팀장. 셋이나 서기엔 부엌도 좁고.”

그러나 차진우의 공격은 만만치 않았다.

“하진 씨도 배가 고플 텐데 손이 빠른 사람이 돕는 게 좋지 않겠어?”

개수작만 부리는 건 전혀 도움은 안 된다는 뜻이었다. 숨겨진 뜻을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백자안의 시선이 뾰족해졌다.

“그래도 손댄 사람이 마저 하는 게 낫죠. 뭐 하러 여럿이서 손을 대요.”

자존심 강한 두 미남의 물밑 싸움에 직설적인 성격인 한승호와 이도윤은 피곤하다는 듯 자리를 떴다.

자신들도 하진의 곁에서 알콩달콩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저 사이에 끼는 건 너무 머리 아픈 일이었다.

더럽게 느리니까 내가 하겠다는 말을 저렇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말로 밀어내겠는가.

특히나 말싸움보단 주먹싸움을 더 좋아하는 한승호가 진절머리를 치며 식탁에 앉았다.

“아!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빨리 좀 해! 하진 형 혼자 하잖아!”

한승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고 설전을 벌이던 두 사람이 그제야 하진을 돌아보았다.

하진 혼자만 일하게 했다는 사실에 백자안이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고 차진우 또한 드물게 당황했다.

“형, 왜 혼자 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저희끼리 떠드느라…….”

“예?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냥 빨리 해치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사실 백자안을 데리고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준비하려니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던 하진이었다.

그러다 두 사람이 대화하느라 정신이 팔리니 이 틈을 타 빠르게 끝내버릴 셈이었다.

“그리고 다 했으니 백자안 씨는 이제 손 씻으세요.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네? 혼자 하기엔 너무 많지 않나요?”

백자안은 어떻게든 하진의 옆에 더 붙어 있어 보려 했으나 실온에 새우를 오래 방치한 게 신경 쓰인 하진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부드럽게 거절했다.

“다음에 다른 요리를 할 때 같이 해보죠. 지금은 새우를 너무 오래 내놔서 제가 혼자 하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언제 또 준비했는지 밀가루 반죽에 새우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에 새우 손질을 끝내는 것부터 알아봤지만, 백자안이나 차진우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손이 빨랐다.

사심을 품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요리에 두 사람은 무어라 더 말도 못 하고 얌전히 물러났다.

하다못해 식탁 위라도 준비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한승호와 이도윤이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정말로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이었는가 자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차진우는 그동안 말리는 처지였던 터라 더욱 민망했다.

아무리 사랑이 사람을 유치하게 만든다지만, 당분간은 자제하리라 다짐했다.

* * *

협회장과 담판을 지은 지도 벌써 며칠이 흘렀다. 하진을 붙잡기 위해 무궁화 2등급을 손에 쥐여줬으나, 그가 그 권력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협회를 떠나니 마니 겁을 줬던 것치곤 하진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한 권력을 쥐고서 한다는 게 병동에 들어가 알파 팀의 과거 건강검진 기록을 살핀다거나 자신이 치료했던 에스퍼들을 살피러 가는 게 다였다.

협회장이 잔뜩 긴장한 채 경계한 게 민망해질 정도로 하진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흐음, 이대로 조용히만 지내주면 나야 좋지만…….”

협회장은 마지막으로 그를 찔러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은 마당에 그런 모험을 할 순 없었다.

‘그나마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이니 다행인가.’

결국 협회장은 하진을 주시하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협회 내 모든 직원이 자신의 눈이기도 하고 말이다.

반면에 하진은 오늘도 자신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 덩치들 사이에 낀 채였다. 몇 번이나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매일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분명 이해했다는 대답만 세 번은 들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숨처럼 내뱉은 말에도 한승호와 백자안, 이도윤은 못 들은 척 각자 하진을 붙잡고 늘어졌다.

“가지 마아…….”

“형이 그 새끼들을 왜 살펴주는데요.”

“…….”

붙잡힌 팔과 어깨가 묵직했음에도 자신을 붙잡는 음성이 너무 애절해서 하진은 냉정하게 떼어내지 못했다.

이들이 전보다 더 하진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며칠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진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날의 이야기였다.

차진우가 유치하게 굴었음에 민망해하고, 그사이에 화려하게 식탁을 채운 하진이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 때였다.

“내일부터는 에스퍼들 가이딩을 하러 다닐까 합니다.”

하진이 갑자기 폭탄을 터뜨렸다.

먹음직스러운 튀김에 눈길을 빼앗기고, 고소한 향에 침을 꼴깍 삼키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식욕을 잃고서 하진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승호 형이 계속 반말해서 그래? 아니, 그래요?”

당황해 말을 더듬는 이도 있었고, 말을 잃고 젓가락마저 떨어트리는 이도 있었다. 하진도 제 예상보다 심각한 반응에 꽤 놀랐다.

반대에 부딪힐 거라고만 생각했지, 마치 버림받은 것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탓이었다.

“아뇨. 전혀 그런 게 아니니 울지 마세요, 한승호 씨.”

이도윤의 말에 정말로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승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백자안이 눈물을 글썽이는 건 봤지만, 한승호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하진도 집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안절부절못했다.

‘차라리 다 먹고 말할 걸 그랬나.’

그저 동의만 구하면 되는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거였다.

“우리, 버리는 거야……?”

“아뇨!”

한승호의 울먹임 섞인 말에 하진이 화들짝 놀라며 부정했다.

진심 어린 한마디에 그제야 눈물은 거둔 한승호는 이내 더 서러워졌는지 투정을 부렸다.

“뭐야? 그럼 왜 그런 말을 해. 놀랐잖아.”

‘얘기할 틈이나 줬냐고.’

하진도 나름 억울했으나 또 울릴까 싶어 얌전히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래요. 미안합니다.”

“그럼 다른 놈들한텐 가이딩 안 하는 거지?”

안심한 한승호는 다시 입맛이 돌기 시작하는지 젓가락을 들고 새우튀김을 집어 한입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하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기대를 배신했다.

“네? 아뇨. 할 겁니다만.”

하진의 대답에 기겁한 한승호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입에 가득한 새우튀김으로 인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식탁이 다시 소란스러워지자 차진우가 손을 들어 모두를 진정시켰다.

“다들 조용. 일단 하진 씨의 말을 먼저 듣는다.”

알파 팀의 입을 다물게 한 차진우의 시선이 하진에게 돌아갔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진 씨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희를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버리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진이 작은 한숨과 함께 투덜거렸다. 그러고는 곧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하려고 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아버지에 관한 조사를 위해섭니다. 워낙에 어릴 때의 기억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 협회 소속 에스퍼였습니다. 이곳에 분명 아버지의 자료가 남아 있을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