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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84화 (84/136)

84화

“……일주일.”

하진은 기껏해야 이틀, 혹은 저들은 체력이 일반인과 다르니 사흘, 길게는 나흘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것도 길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런데 일주일이라니.

그것마저 정확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일주일을 넘어가던 때도 있었을 텐데 아무리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잘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식사를 대충 에너지 바로 때우고 말이다.

‘한지우한테라도 가이딩받은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줄이야.’

농담이 아니라 하진은 이들이 그렇게라도 가이딩을 받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폭주의 위험에 휩싸였으리라.

하진은 이마를 짚었다. 자신은 그래도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잤건만, 이들은 제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을 찾아 헤맸다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미안해서 괜히 화가 났다.

그러나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만으로도 제 눈치를 살피는 이들을 보니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화를 낸다면 자신을 납치한 세력에게 화를 내야지.

“후우.”

하진은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어 감정을 털어냈다.

“……앞으로는 자기 몸도 챙기세요. 여러분이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제가 기쁘진 않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서운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기저에 깔린 것이 자신들에 대한 걱정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가슴께가 간질거릴 정도로 기뻤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하루에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채우라는 뜻이었지만, 저 정도도 많이 양보한 거겠지 싶어 하진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식사하죠.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하진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꺼내놓은 차진우의 곁으로 가 재료 손질을 도왔다. 혼자 산 시간이 긴 만큼 하진은 요리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매번 배달을 시켜 먹을 수는 없고, 몇 가지 요리만 해 먹자니 금방 물리는 바람에 요리 실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뭘 만들 생각이었습니까?”

“국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쌀도 없는 거군요.”

차진우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진은 자연스레 그의 자리를 밀어낸 다음 메인 요리사 자리를 차지했다.

“계란은, 있네요. 세 개만 깨서 휘저어 주시겠습니까?”

차진우가 능숙하게 하진이 부탁하는 일들을 처리했다. 요리는 하진의 손이 닿자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죽과 김치볶음밥으로 몇 시간을 허비했던 누군가와는 달랐다.

백자안의 것도 준비하려고 했으나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한승호의 말에 그의 것은 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만들면서 간을 봤던 두 사람과 달리 처음 맛을 보는 한승호와 이도윤은 깔끔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국물맛에 감탄했다.

“와! 뭐야? 맛있어!”

하진이 만들었기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실력 좋은 요리사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에 익숙한 그들의 입맛에도 국수의 맛은 훌륭했다.

하진은 감탄에 작게 미소 지었다. 항상 스스로 만들어서 혼자 먹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근데 집에 뭐가 많이 남아 있었네? 어제 다 쓴 줄 알았는데.”

냉장고를 뒤져 있는 재료, 없는 재료 싹 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먹음직한 국수가 만들어진 게 신기한 한승호였다.

“일전에 냉장이 필요 없는 것들을 부탁했었거든요.”

협회에 들어오고서는 스스로 음식을 할 일은 없었으나 가끔씩 해먹고 싶은 게 생길 때를 대비한 것이었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누구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진 형은 못 하는 게 뭐예요?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해줘요.”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운 이도윤이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하진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꿀꺽 국물까지 다 비운 한승호는 포만감에 느른하게 웃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백자안 새끼, 배 아파 죽으려고 하겠네. 자랑해야지.”

하진은 저걸 말려야 하나 고민했다. 백자안이 달려와 자기도 해달라고 울먹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서 싸우지는 마세요.”

그러지 말라고 해봤자 듣지 않을 걸 아는 하진은 그저 위험하게 집에서만 싸우지 말라는 말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전에 검사부터 받아야죠.”

다 먹은 그릇을 가져가는 차진우에게 고개를 까딱이던 하진이 그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볼일을 떠올렸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져서 잠시 잊고 있었으나 알파 팀은 현재 체내에 미확인 약 성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협회의 에스퍼들은 그보다도 더 난리였고.

이도윤과 백자안은 입맞춤으로 가이딩했지만, 아직 두 사람이 남아 있었다. 하진은 아플 수도 있는데 그걸 잊고 있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서둘러 이를 닦았다.

두 사람에게도 얼른 이를 닦고 오라고 이르자 마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이를 닦고 거실로 돌아왔다.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꺼져. 넌 가이딩받았잖아.”

“또 받을 수도 있지. 형 저 좀 피곤한 거 같아요.”

이미 가이딩을 받았음에도 자기 혼자만 처음이라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이도윤이 하진에게 애교를 떨었다.

그게 개수작인 걸 알지만 딱히 어려울 것도 없으니 하진은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진이 괜찮아도 옆에 있는 이들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한승호가 으르렁거리기도 전에 차진우가 입을 열었다.

“이도윤. 하진 씨를 귀찮게 하지 마라.”

차진우의 엄한 목소리에 이도윤이 대번에 억울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나 빼고 형들이랑 팀장만 두 번, 세 번씩 키스한 거 다 알거든?!”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래, 팀장 말 들어.”

그들 중 제일 말 안 듣는 한승호가 그렇게 말하자 이도윤은 억울해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막내라고 애 취급받는 게 일상인데 이런 부분에서 형들에게 밀리는 게 유쾌할 리가 없었다.

‘내가 이대로 넘어갈 줄 알고?’

그때 두 사람의 합공에도 밀리지 않고 다시금 제 의견을 피력하려던 이도윤의 시야에 하진이 들어왔다.

마치 시선을 끌려는 듯 이도윤을 쳐다보고 있던 하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슬쩍 한쪽 눈을 감아 신호를 주었다.

이런 상황에 자신에게만 굳이 윙크로 신호를 보내는 이유가 뭐겠는가. 이도윤은 괜히 씩씩거리며 분하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척했다.

윙크의 의미는 나중에 그에게만 따로 원하는 걸 해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진은 과연 이래도 되나 싶어 끝까지 고민했지만, 결정을 무르진 않았다.

여전히 아홉 살이나 어린 이도윤과 입을 맞추는 것에 양심이 이래도 되냐며 고개를 빼꼼 들었다. 그러나 나이를 이유로 밀어내는 것에 이도윤이 서운함을 느끼자 원하는 걸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무른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그는 알파 팀에게 물러졌다. 이유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고, 납득 또한 갔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하진 씨?”

“아, 네. 그럼 누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지켜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는 게 새삼 민망해졌다.

이제 키스 정도야 아무렇지 않아졌으나 그렇다고 누군가가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당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혹시 민망하시면 방에서 따로 해도 됩니다.”

그래서 괜히 자신이 민망해서가 아니라 배려하는 척 장소 변경을 권유했으나 이도윤이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해왔다.

“이 형이 아직도 뭘 모르네?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방으로 들어가재?”

얼마나 놀란 건지 의무적으로 끼워 넣던 존대가 싹 사라진 이도윤이 절대 안 된다며 날뛰었다.

그에 두 사람, 특히 한승호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으나 그들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 이도윤의 의견에 수긍했다.

“내 앞에서 해요. 그래야 선 넘으려 할 때 떼어내지.”

그것참 든든하기 그지없었으나 하진은 민망함은 결국 구제되지 못했다. 한승호가 먼저 하진의 앞에 앉았다.

누가 성격 급한 거 아니랄까 봐 그는 하진이 준비되었다고 하기도 전에 얼굴을 감싸고 입술을 들이밀었다.

“으음…….”

숨을 들이쉴 시간도 없이 입술이 맞닿고 혀가 들어왔다. 그러나 이젠 하진도 당황하며 굳어 있지만은 않았다. 서툴게 코로 숨을 마시며 얽혀오는 혀를 통해 가이딩을 불어넣었다.

이따가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니 잠들지 않을 정도로 조절했다. 그 덕에 한승호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방사 가이딩도 좋았으나 입맞춤을 통한 가이딩과 비교가 될 리가 없었다.

“으읏!”

잠깐 입술을 떼어낸 한승호는 하진이 반사적으로 숨을 삼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입술을 붙였다.

마치 잡아먹을 듯 고개를 꺾어 하진의 입술을 머금은 한승호는 한참을 탐하다가 이도윤에 의해 떨어져 나와야 했다.

“뭐야! 얼마 안 했다고!”

한승호가 불만에 가득 차 이도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도윤은 오히려 자신이 더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얼마 안 하기는. 아예 눕히고 올라타려고 하는데.”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자신에게 허리를 잡힌 채 반쯤 누운 하진이 보였다. 숨이 차는지 가슴이 크게 부풀었고, 피가 몰린 입술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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