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하나하나 알아먹을 수 있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전화를 끊은 하성진이 모든 걸 포기하고서 늘어져 있는 한지우를 업었다.
“가시죠. 1초가 급한 상황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밀 검사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하성진 대리와 의사들의 머리에 최악의 사태가 스쳤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도 피하려 했던 상황에 직면하자 한지우는 반항조차 멈췄다. 그 덕에 검사 자체는 수월했다. 그러나 얌전하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다.
“이런, 또 코피가……. 솜 가져와!”
죄질만 따진다면 이렇게 곱게 모실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숨만 쉬어도 코피가 터지고, 당장에 죽을 것처럼 하얗게 질린 안색의 한지우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인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하진이 없는 상황에서 사태를 정리할 수 있는 해결책은 오직 한지우에게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 이유였다. 그러니 한지우는 죽어선 안 됐다.
솜을 쑤셔 넣어 코피를 막고 새로운 검사를 실시했다. 한지우는 이 기계, 저 기계 장치를 제 몸에 덕지덕지 붙어도,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검사 기계에 들어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검사를 시행하는 이들은 그 반응을 체념이라 여겼다. 감추려 했던 비밀을 들키고 만 데에 대한 체념.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한 번 도주 시도가 막혔다고 해서 모든 걸 포기할 한지우가 아니었다.
‘몸이 안 움직여…….’
도망을 가고 싶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지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코피를 쏟을 때마다 눈앞이 거멓게 물들고 마치 잠들기 직전처럼 의식이 멀어졌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해도 그때뿐이었다.
“콜록……! 커흑, 켁!”
할 수 있는 모든 검사 중 마지막 검사를 앞두고 한지우가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의사가 곧장 얼굴을 돌리고 기도가 막히지 않게 조치했으나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직 검사가 남았으니 약을 쓸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물리적 조치를 취하려 해도 그들도 그런 걸로 멈출 각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짧은 순간 시선을 나눈 그들은 결국 한지우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검사를 마치기를 선택했다.
“……검사 시행하겠습니다.”
의사로서는 해선 안 될 선택이었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문제였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의 막중함에 연구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한지우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다.
기도로 피가 넘어가는 바람에 자꾸 기침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몸에 힘이 없어 기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싫…….”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싫어’라는 단 두 음절의 말도 제대로 끝맺을 수 없었다.
검사 기계가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을 시작했다. 뚜껑이 닫히며 한지우의 전신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살고 싶…….’
마지막 검사가 끝났다. 의료진들이 기계에서 한지우를 꺼냈다.
“한지우 가이드. x월 x일 x시 x분 사망했습니다.”
사망 선고가 떨어졌다. 죽기 직전까지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최근 며칠 중에서 가장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겨진 한지우의 육신은 그가 맞이한 죽음만큼 편할 수 없었다.
“곧바로 해부실로 보내. 체내에 남은 건 없는지 샅샅이 찾으라고 하고.”
몇 가지 검사를 통해 한지우가 먹은 약의 성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성분이 반이었다.
성분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는 한지우의 체내에 남아 있을 약의 잔재를 찾아야 했다.
“예, 알겠습니다.”
한지우의 시신이 올라간 침대의 바퀴가 조용한 소음을 만들며 지하로, 깊은 지하로 향했다.
* * *
“그러니까 협회에 있는 그 새끼가 사실은 서주안이랑 짜고 형을 팔아먹었다?”
어려울 것 없는 설명이었다. 한승호가 굳이 요약한 것은 제가 들은 게 사실인지 확인하는 동시에 화를 참기 위해서였다.
입이라도 열지 않으면 속에서 분노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다른 이들의 반응도 한승호와 다를 건 없었다. 특히나 백자안의 반응은 하진이 처음으로 그를 무섭게 여길 정도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보다도 살벌한 반응에 하진이 침을 삼켰다.
‘……근데 이렇게 화내는 게 싫지만은 않으면 나도 미친 거겠지?’
납치되었던 시간이 하진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하긴 했다. 그전이었더라면 부담스럽게만 여겼을 과한 반응들이 오히려 싫지 않다니.
‘정신 차리자.’
하진은 자신을 채찍질했다. 납치에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심지어 그 아버지에게 죽을 뻔한 상황이 하진의 정신을 흔들어놓은 것이다.
당장에 안심이 된다고 해서 이 관계를 유지해선 안 되었다. 서로에게 집착하는 관계의 끝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진은 사태가 정리되면 정신과 상담을 예약하리라 다짐했다.
“거래 대가가 뭔지는 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지우 가이드가 S급 가이드가 되었다니…….”
“빨리 돌아가야겠군요.”
차진우의 영민한 머리는 그 이후의 상황까지 파악했다. 그는 느리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쩐지 폭주 수치가 빠르게 차는 듯했는데 착각이 아니었다.
이유 모를 찝찝함 탓에 한지우에게 몇 번 가이딩받지 않은 그들의 몸에도 영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S급 가이드라고 좋다며 가이딩을 받아댔던 다른 S급 에스퍼들은 어떻겠는가.
차진우가 드물게 식은땀을 흘렸다.
“좀 더 빨리 움직인다.”
“잠깐만요!”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차려던 차진우가 멈춰 섰다. 에스퍼들이 달리는 동안 그들에게 안겨 편하게 이동했던 하진은 이제 어느 정도 체력을 되찾은 상태였다.
‘가이딩도 조금만 더 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네.’
심리적으로 안정된 덕인지 골골거리던 하진의 안색은 물론이고 가이딩 또한 빠르게 안정되는 중이었다.
“백자안 씨. 내려주세요.”
“네…….”
이제 차진우의 차례인 것이다. 하진의 의도를 알기에 백자안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순순히 하진을 내려놓았다.
왜인지 오랜만에 땅을 밟는 기분이라 어색함에 잠시 발을 더듬었으나 하진은 휘청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 차진우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안으시죠. 가이딩받으셔야죠.”
안아 달라고 먼저 팔을 벌리고 기다리는 행동에 차진우는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유치하지만, 이 광경을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부럽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승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차진우가 냉큼 하진을 안아 들었다.
하진이 자신의 목에 팔을 감자 차진우가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렸다.
협회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그동안 추적은 없었다. 그러나 차진우는 오히려 그걸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수상하군…….’
아무리 그들이 저들의 본부를 헤집어놓았다 한들, 하진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머지 그들의 머리 위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다.
뒤늦게나마 제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지만, 늦은 도주였는데도 추격이 없다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그리고 서지한. 그놈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차진우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차진우를 포함한 알파 팀은 하진을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과 사람을 향해 능력을 사용하고 주먹을 휘둘러 댔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서주안과 그 패거리를 경계하며 미친놈처럼 굴던 그때, 서지한이 나타났다.
같은 S급, 그것도 수많은 전투를 통해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상대의 등장에 긴장한 순간이었다. 어딘가 가라앉은 얼굴이었던 서지한이 먼저 덤벼들었다.
그건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평소 신중한 전투 스타일을 추구하던 서지한은 그 순간만큼은 하진을 잃어 제정신이 아닌 알파 팀처럼 날뛰었다.
그 여파에 다른 이들이 휩쓸리는데도 서지한은 거칠게 날뛰었다. 처음엔 하진의 가이딩을 그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이드를 뺏어간다는데 멀쩡할 에스퍼는 없으니까.
그런데 거칠게 날뛰는 것치고 서지한은 알파 팀을 향해 정확한 공격을 날리지는 않았다.
건물에 금이 가고, 벽이 무너지며 그 잔해가 날리는 등 현장은 엉망진창이 되는데 정작 알파 팀을 향한 강한 공격은 없었다.
차진우는 물론이고, 이도윤과 백자안마저도 이상함을 느꼈다. 서지한이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니. 말도 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도윤이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오히려 서지한은 빠르게 파고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는 신체강화가 능력인 이도윤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달려든 서지한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고, 서지한은 옆구리를 가격당하고 말았다.
“커헉!”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들, 흐트러져 무너진 서지한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도윤이 그대로 달려들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차지우는 그의 속셈을 알아내려 했으나 그 순간 울린 한승호의 무전에 서지한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회상에서 빠져나온 차진우는 하진을 불렀다.
“하진 씨.”
“예?”
차진우는 하진이 무슨 수를 쓴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서지한이 그들을 돕는 듯한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혹시 서지한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