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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71화 (71/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71화

한승호의 서슬 퍼런 시선이 잠든 이하성에게 향했다. 어쩌다 저딴 게 하진의 아버지여선 그를 슬프게 만든단 말인가.

한승호는 이를 아득 깨물고는 하진을 일으켜 세웠다.

“……됐어. 내가 형 아버지라고 봐줄 거 같아? 형을 죽이려고 한 새끼야. 나중에 죽이지 말라고 애원해도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일단은 가자. 형 빨리 치료받아야 해.”

“놔요. 내가 해야, 내가 끝내야 합니다.”

하진은 한승호의 손길을 거부했으나 반항은 미약하기만 했다. 힘이 모두 빠져서인지 사실은 말려주기를 바란 건지는 하진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자.”

한승호는 하진을 일으켜 세우려다 그냥 그를 안아 들었다. 하진에게서 퍼져 나온 가이딩이 한승호에게 스며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하진의 가이딩이었다.

그러나 한승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하진이 가이딩을 갈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사람이 가이딩을 이렇게 뿌려대고 있는데 그게 기쁠 리가 없었다.

반 정도는 하진이 패륜을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 끼어들었다. 그러나 막상 하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아버지라고 하기도 아까운 이보다 하진의 상태를 살피는 게 더 급했다.

“하진 형 구했어! 다들 적당히 처리하고 위에서 봐.”

나머지 세 사람에게 무전을 남긴 한승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빠르게 위로 향했다. 하진이 힘겹게 올라오던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친 하진은 그에 감탄할 힘도 없기에 한승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이대로 그냥 눈을 감은 채 뜨고 싶지 않았다. 하진은 무언가 부수는 소리와 함께 물씬 밀려오는 시원한 바람, 감은 눈꺼풀을 찔러오는 강렬한 햇빛에 고개를 들었다.

“아…….”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진짜’ 하늘이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저들의 인공 정원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으니 남은 세 사람이 합류했다.

“……하진 씨!”

“하진 형!”

“형! 괜찮아?!”

그제야 하진의 고개가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 향했다. 다들 하나같이 몰골이 엉망이었다. 감탄이 나오는 잘생긴 외모는 그대로지만, 그간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득 가슴이 술렁거렸다. 걱정할 거라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해도 이들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들을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진은 쏟아지는 시선에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은 반정부 측이 하진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성격이 한승호 다음으로 불같은 이도윤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 새끼들이 무슨 짓 한 거야?! 이 개새끼들을 그냥!”

하진을 구했다는 소식에 적당히 제압만 하고 뛰쳐나왔던 그가 다시금 아래로 기어들어 가려고 했다.

“아니…….”

이도윤은 혼자라도 상관없으니 아래로 내려가 반만 죽여 놓은 것들을 아주 죽여 놓을 작정이었다.

“가지 말아요.”

그런데 이렇게 힘없이 자신을 붙잡고 가지 말라 애원하면 그가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하진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얗게 질린 안색에 코피 자국까지 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는 그런 하진이 꼴사납기보다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유리 공예처럼 섬세해 보였다.

그런 하진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이도윤은 금세 정신 차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안 갈게. 이젠 가라고 해도 안 가. 절대 안 떨어질게요.”

그렇게 말하며 하진을 꼭 끌어안기까지 하는데 평소였다면 적당히 받아주는 척 밀어냈을 하진이 얌전히 안겨 있었다.

오히려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허리춤을 잡아 오자 이도윤은 좋아 죽겠는 동시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시발, 무슨 짓을 했으면 이 형이 이러는 거냐고.’

다시 한번 땅 밑에 있을 놈들을 완전히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으나 그가 먼저 하진을 떼어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길어지는 재회의 감동에 차진우가 끼어들었다.

그라고 해서 하진을 끌어안고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안전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겨우 지상으로 올라왔을 뿐, 적의 지원이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다.

재회의 감동은 물론이고 하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그다음에 알아볼 일이었다.

자연스레 이도윤이 하진을 안아 들었다. 하진을 발견하고서부터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던 백자안이 당장이라도 그를 뺏어오고 싶다는 듯 손가락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백자안이라고 해도 질투에 눈이 멀면 멀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한 하진을 억지로 떼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협회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는 하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하진을 안아 든 이도윤마저도 주변 경계에 날이 선 와중에도 백자안은 하진만 바라보았다.

집착을 넘어 마치 잠시라도 눈을 떼면 하진이 사라지기라도 할 거라고 믿는 사람 같았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간다.”

아무리 S급 에스퍼라고 해도 전투 후에 국토를 횡단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더군다나 하진과 떨어진 후 제대로 가이딩을 받지 못했으니 더더욱 휴식이 필요했다.

차진우는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가이딩을 받지 못해 생긴 증상이라기엔 뭔가 달랐다.

그러나 협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하는 그는 그새 하진의 가이딩에 익숙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저 둘은 쌩쌩해 보이는군.’

하진을 데리고 온 한승호와 현재 하진을 안고 있는 이도윤. 그 둘만 쌩쌩했다.

‘가이딩이라도 받은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차진우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다.

질투 같은 하찮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좋지 않은 하진에게 굳이 가이딩을 받은 두 사람에 대한 분노였다.

반정부 본부를 벗어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하진의 안색을 파랗기만 했다. 저 모습을 보고도 가이딩을 받아갈 생각을 했다는 게 차진우를 화나게 했다.

“이도윤, 한승호. 둘 다 제정신인가?”

“엥? 갑자기 뭔 말이야?”

옷깃을 펄럭이며 열을 식히던 한승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하진의 요청에 그를 땅에 내려주던 이도윤도 마찬가지였다.

“하진 씨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가이딩을 부탁한 거 아닌가?”

차진우의 말에 백자안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서주안에게나 보일 법한 살벌한 눈빛에 의심을 받은 두 사람이 억울해했다.

“시발, 사람을 뭐로 보고!”

“방사 가이딩이 계속 나오는데 내가 그걸 피할 수 있겠어요? 어?!”

누가 보면 형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두 사람은 똑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하진이 힘을 실어주었다.

“두 사람 말이 맞습니다. 방사 가이딩해 준 거예요.”

반정부 본부에서 멀어진 덕인지 아니면 달리는 동안 생각의 정리를 마친 건지 하진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정확히는 가이딩이 조절이 안 돼 흘러나오고 있는 거지만요.”

하진이 덧붙인 말에 알파 팀 전체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나마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한승호도 이렇게 놀랐는데 다른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가, 가이딩 조절이 안 된다니? 그 새끼들이 형한테 무슨 개짓거리라도 했어요?!”

“팀장, 절 보내주세요. 끝장을 내고 올 테니까.”

조용하던 백자안이 살벌한 목소리로 허락을 구했다. 하지만 차진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들 진정해라. 일단은 빨리 돌아가 하진 씨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더는 가이딩을 못 받을 게 무서워서 이렇게 호들갑 떠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진이 아프다. 그 사실 하나로 머리가 하얗게 표백되었다.

“진정하세요. 원인도 알고 있고, 이제 아프지도 않으니까.”

하진이 제대로 쉬지도 않고 다시 움직이려는 이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미 머릿속에 하진이 아프다는 사실이 틀어박힌 그들은 쉽사리 믿지 않았다.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여전히 하얗고, 지쳐 보였던 탓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눈치를 살피는 이들을 보며 하진은 자신이 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갑시다. 대신 이번엔 백자안 씨가 날 안는 게 좋겠어요.”

“왜요?! 나 안 지쳤는데!”

덧붙인 말에 이도윤이 아쉬움에 목소리를 높이고, 백자안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하진의 몰골에 시종일관 어둡기만 하던 안색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가는 길에 이런 식으로 가이딩이라도 받아야죠. 그동안 제가 없어서 가이딩도 못 받았을 거 아닙니까.”

그 순간 알파 팀 전체가 움찔 몸을 굳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평소였다면 하진은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진을 안고 있는 이도윤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감정을 숨기는 데 다른 팀원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갑자기 바싹 굳어버리는 이도윤의 반응에 하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애매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이도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다 문득 대답도 듣지 않았는데 답을 찾고 말았다.

‘아, 그런 건가.’

하진이 없는 사이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은 게 분명했다. 말을 하다가 만 하진을 보며 네 사람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눈치를 살피고, 사고 친 강아지처럼 낑낑대는데 하진의 입에선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지? 그럴 수 있는 일이잖아.’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이딩을 받지 않으면 폭주할 수 있으니 하진이 아니더라도 가이딩은 꼭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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