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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68화 (68/136)

그저 평범한 게 최곱니다 68화

억지로 가이딩을 끌어낸 건 하진의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 그는 지금 양쪽 코에서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입을 여는 바람에 코피가 입안으로 들어와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침을 뱉을까도 생각했지만, 뱉는 행위마저도 골을 울릴 게 분명했다. 애써 멀쩡한 척, 강아지에게 기회를 주는 척하지만, 그는 지금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야가…… 제대로 안 잡혀.’

누군가 뇌 속에 손을 집어넣어 마구잡이로 주무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피까지 쏟고 있으니 어지러움이 배가 되었다.

결국 핑 도는 시야에 눈을 질끈 감고 버티는데 강아지의 대답이 들려왔다.

“시, 싫어. 갈 거잖아. 난, 난 절대 못 보내.”

강아지의 목소리는 마치 당장 울어버릴 것처럼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절절함은 하진에게는 아무런 감상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방출에는 성공했으나 역시나 이 상태에서 가이딩을 움직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아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그를 재울 수밖에 없었다.

“콜록, 끝까지…… 말 안 듣네.”

그 말을 끝으로 강아지가 잠들었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허물어진 강아지의 얼굴은 가이딩을 받았음에도 고통스럽다는 듯 일그러진 채였다.

“콜록, 콜록!”

하진은 힘없이 기침했다. 바람 빠진 소리와도 같은 기침인데도 몸이 들썩거릴 때마다 온몸이 아팠다.

“젠, 흐으, 젠장. 이걸 어떻게 풀어야…….”

어지러운 시야로 주변을 살피던 하진은 우선 침대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텅 빈 곳이지만, 잘 찾으면 날카로운 게 있을 수도 있었다.

철퍽.

“끄윽…….”

힘이 다 빠진 몸을 겨우 움직여 바닥으로 떨어지자 말 그대로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

너무 아파서 오히려 정신을 잃을 뻔한 하진은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며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허억……!”

그러나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움직이는 것도 힘든 상황에 하진은 기절한 최지형과 강아지를 보며 후회했다. 조금만 더 협박해볼 것을.

“최지형……!”

기어가는 것도 힘들어 엎어진 순간이었다. 강아지가 부셔놓은 벽의 구멍으로 서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지형의 이름을 다급히 부르며 나타난 그는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광경을 보며 당황한 듯했다.

‘……이젠 끝인가.’

하필이면 최지형을 좋아하는 서지한에게 걸렸다. 서주안에게 걸렸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건드렸으니 가만둘 리가…….

“……괜찮나?”

“……뭐?”

그러나 하진의 예상과 달리 서지한은 섣불리 다가오지도 못했다.

하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눈으로 샅샅이 살펴볼 뿐이었다. 오래 살필 것도 없이 묶인 손발을 발견한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날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제정신이 아니라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서지한은 지금 하진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최지형 저 새끼가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젠장, 억지로라도 떼어놨어야 했는데…….”

이어진 말에 하진은 그제야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최지형과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하진이 그와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부리나케 쫓아와 떼어놨던 게 질투가 아니라 하진을 걱정해서였다니.

‘내가 궁예였어도 몰랐겠네.’

이건 하진의 눈치가 부족해서 생긴 오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싫어하는 티를 내던 이가 갑자기 다른 사람과의 사이를 방해하는데 어떻게 그걸 보고 자신을 걱정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젠장. 티라도 제대로 내던가.’

그랬더라면 강아지나 최지형을 찔러보는 대신 깔끔하게 서지한 한 사람만 공략했을 텐데 말이다.

서지한이 오히려 자신을 과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탈출이 더욱 쉬웠을 것이다. 그는 이미 가이드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아,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서지한의 등장과 동시에 그의 마음을 확인한 하진은 절망했던 순간을 잊은 것처럼 안도했다. 물론 최지형과 강아지처럼 하진의 기대를 배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쓰러진 두 사람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곧 죽을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동자를 마주하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고만, 윽, 있지 말고……. 이것 좀 풀어주시죠.”

이젠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축 늘어져서 힘없이 중얼거리자 서지한이 성큼 다가왔다.

조절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일렁이는 가이딩을 느낀 건지 움찔 굳긴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뻗어 매듭을 끊어냈다.

“윽!”

그렇게 죽어라 기를 써도 끊어지지 않던 게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뚜둑 하며 끊어지는 게 억울하긴 했으나 어쨌든 드디어 자유였다.

“손이…….”

서지한은 차마 손대지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하진을 살폈다. 어떻게 그 감정을 숨길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절절했으나 하진은 그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막혔던 피가 돌기 시작하며 손과 발끝에서부터 되살아나는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팔과 다리뿐만 아니라 전신에 전기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아윽…….”

그러나 감각이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편하게 누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끝에 힘을 줘 땅을 밟은 하진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판단하에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하진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한 번뿐인 기회였다. 알파 팀의 습격으로 소란스러운 지금 당장 탈출해야만 했다.

소매로 굳어가는 코피를 아무렇게나 닦아낸 하진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움직였다. 그런 그의 앞을 서지한이 막아섰다.

이미 얼얼할 정도로 뒤통수를 맞았던 하진이 반사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가 눈에 힘을 풀었다.

“뭡니까……. 비켜요.”

“가려고?”

“그럼 가야죠. 데리러 왔는데.”

서지한은 눈물만 흘리지 않았지 울고 있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이들에게는 뒤통수를 맞고,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이가 절절하게 굴고 있었다.

하진은 어쩐지 그가 자신을 붙잡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금까지 확신하다가 된통 당했으면서도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면 그냥 내가 정신을 놓은 건지도 모르지.’

머리가 멍해서 좀처럼 길게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으니 후자가 좀 더 그럴싸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하진은 재활을 시작한 환자처럼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서지한은 자신을 지나치는 하진에 눈을 질끈 감았다. 붙잡고 싶었다. 하진이 멀어질수록 충동은 더욱 커졌다.

그는 결국 하진을 붙잡고 말았다. 물론 손이 엉망이 되었으니 뒤에서 끌어안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말이다.

붙잡힌 하진이 화들짝 놀라 버둥거렸다.

“무슨……! 놔!”

“가만히 있어.”

힘이 다 빠진 몸을 버둥거리는 게 안쓰러웠으나 하진을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서지한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외면하고 있었던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나 눈물로 흥건해선 마른 적이 없었던 얼굴을.

“놓으라, 니까…….”

시체가 되어서도 원망만으로 가득하던 눈동자가 서지한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줄 알고 발버둥 치던 하진이 간절한 음성에 뒤를 돌았다. 그때까지도 완전히 경계를 놓지 않았던 그는 서지한의 얼굴을 살피고선 점점 몸에 힘을 뺐다.

“데려다줄 테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 아프잖아…….”

서지한을 붙들고 있는 그것은 사랑이나 미련 같은 절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었다. 지우고 지워도 남아 있는 기름때의 얼룩 같은 죄책감이었다.

하진이 얌전해지자 서지한은 그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리고 쓰러진 강아지와 최지형이 있는 곳을 벗어났다.

그들이 있는 층에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력이 없는 이들은 모조리 더 아래로 향했고, 무력이 있는 이들은 위로 향했으니까 말이다.

“서지한 에스퍼? 여기서 뭐…….”

간혹 마주치는 이들은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서지한이 능력으로 정리했다. 기절인지 죽인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진은 갈피를 잃고 날뛰려는 가이딩을 통제하기 바빴다.

가이딩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하진에게는 낯선 감각이었다. 알파 팀에게 처음 가이딩할 때도 어렵지 않게 해냈던 가이딩이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가진 힘이 방대한 덕에 한 번도 컨트롤에 신경 써본 적이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운 하진이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서지한이 잠들지 않게끔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런…….”

“무슨, 일입니까?”

서지한에게 안겨 이동하던 하진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 몸을 숨기는 행동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전투라면…….”

알파 팀이 있는 곳까지 온 것이다. 하진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들에게 뛰어가고 싶었다.

“내가 올라가 혼란을 만들어낼 테니 넌 다른 쪽으로 올라가.”

하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는 이가 서지한이라는 게 어색할 뿐, 옳은 판단이었다. 반가운 것과 별개로 지금 하진이 끼어들어봤자 개싸움밖에 안 됐다.

몸이 멀쩡했다면 가이딩으로 저들을 재워버리고 여유롭게 알파 팀에 합류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가이딩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괜히 나대다가 알파 팀까지 재워버릴 수도 있었다.

서지한의 품에서 내려온 하진은 한결 나아진 상태에 더는 절뚝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신중하게 손과 발을 움직이는 하진을 지켜보다 서지한이 먼저 돌아섰다.

그는 등을 보인 채 하진에게 당부했다.

“가장 왼쪽으로 달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올라가. 간부 전용 통로지만 지금 상황에 남아 있을 정도로 용기 있는 놈들은 없으니 아무도 없을 거야.”

“……고맙습니다. 재수는 없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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